1961년 5월에 창설되었다. 그해 10월 런던에서 벨기에·프랑스·독일·영국·아일랜드 대표 등이 모여 국제운동규약을 제정하였고, 1968년 이를 개정하였다.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평의회에서 선출한 국제집행위원회가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며, 전 세계에 있는 회원국이 낸 기부금과 기금으로 운영된다.
이데올로기·정치·종교상의 신념이나 견해 때문에 체포·투옥된 정치범의 석방,공정한 재판과 옥중에서의 처우 개선, 고문과 사형의 폐지 등 을 목적 으로 한다. 이 를 위해 해당 국가의 사회체제에 관계없이 정부에 서신 등으로 요구하는 운동을 계속하여 이제 까지 약 2만 명의 정치범을 석방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1977년에 노벨평화상, 1978년에 유엔인권상을 수상하 였다.
1999년 현재 162개국에 지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110만 명이넘는 회원이 있다. 1972년에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가 설립되었으며, 사무국은 영국 런던에 있다.
참고로, 문화방송 PD수첩은 1990년 5월 8일 다국적 기업의 한국 여성 노동자 무단 해고를 다 룬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를 첫 회로 방영했고, 이후 동료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 은 파키스탄인 2명의 항변을 담은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1997년 3월 25일)로 앰네스티 언론 상을 받았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창설자인 피터 베넨슨이 25일 밤 영국 런던 서부 옥스 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고 이 단체 브렌던 패디 대변인이 26일 발표 했다.
러시아계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것 으 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돕기 운동에도 열심 이었고, 16살 때는 스페인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지원 하는 캠페인을 처음 벌이면서 인권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해 역사를 공부한 그 는 2차 세계대전 때 정보장교로 참전 했다가 제대 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1950년대 초반 부터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그가 앰네스티를 창설 한 것 은, 40살 때인 1961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카페에서 2명의 젊은이가 ‘자유’ 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 돼 투옥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는 영국 유력지 〈업저버〉에 ‘잊혀진 수감자들’ 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이 들을 포함 한 6명의 수감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석방운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고, 이것이 국제 앰네스티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애초 1년 기한의 한시적 조직으로 출발한 앰네스티는 세월이 흐를수록 활동폭을 넓히 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180만명의 회원과 지지자를 둔 세계 최대 인권단체로 성장했다.
앰네스티가 처음 사용한 ‘양심수’ 라는 단어는 어느새 보통명사가 됐고, 철조망이 둘러쳐진 양초의 모습을 한 이 단체의 로고는 전세계 억압받는 양심수들에게 희망과 자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77년 앰네스티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베넨슨은 “맨 처음 앰네스티의 이름으로 촛불을 켰을 때 나는 ‘어둠을 욕하기보다 촛불 하나 켜는 게 낫다’는 옛 중국의 속담을 떠올렸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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