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을 위해서 국토를 사막화하라?
골프장은 죽음의 땅이다. 우리나라의 지형상 넓은 잔디밭을 관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엄청난 양의 농약 사용으로 잔디 아래의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다. 곤충은 물론이고 미생물조차 제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인근 지역의 심각한 농업용수 부족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지하수를 고갈시켜버린다. 그래서 골프장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현재 추진 중인 골프장까지 포함한다면 전국토의 0.2%인 780만평이 사막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이미 2% 이상의 땅이 골프장에 잠식당했고, 지리산 골프장 이야기가지 들려오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도 부족한 모양이다. 정부와 기업의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골프장 건설을 바야흐로 호황기를 맞았으니 말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해 '골프경기부양책'이라는 해괴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전경련과 정부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법' 역시 차세대 산업 육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목 하에 무제한적인 개발과 투기를 보장하고 있다. 감사원과 국정 감사를 통해 이미 그 허술함이 지적되어온 '남해안관광벨트' 에서도 레저라는 이름으로 골프장 건설이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도, 주택 단지 바로 뒤에도, 보호 동물의 서식지에도, 골프장 건설을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든든한 수문장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재벌에게 가공할 이권을 보장하며 금수강산을 사막으로 바꾸어놓겠다는 것이,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이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IMF 이후 경기 침체를 극복하겠다며 카드를 남발하여 380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어리석은 정책이, 이번엔 자연과 생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인근 농가의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골프장이 과연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현재까지의 과도한 골프 정책으로 얻은 경제적인 효과는 결국 부동산 과열일 뿐이다. 또 골프장 건설로 창출되는 고용 효과를 들먹이지만, 이는 골프장 건설로 발생하는 엄청난 부작용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경남 하동군의 경우, 9홀 골프장이 창출한 효과라는 게 3~4명의 일용직에다 연간 200여 만원의 세수가 전부인 실정이다. 반면 '고성군 공룡 골프장 건설 반대를 우한 공대위'측에 따르면 골프장 건설로 인근 주민이 입게 되는 피해액은 연 4억원을 넘어선다. 게다가 국토의 0.04%를 차지한 골프장들이 줄줄이 도산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역시나 남의 일이 아니다.
독수리의 땅, 장박재를 둘러싼 검은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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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에 휩싸인 장박재와 올리베따노 수도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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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강효정 |
| 사정이 이러하니 골프장 건설이 예정된 지역에서는 어디나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농사일에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되는 농민들로부터 지역 문제에 열의 있는 시민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서부터 세상에서 한 발 비껴선 듯한 수도자들까지.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해 6월 경남 고성군과 K사 간에 “골프장 투자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그러자 주로 유기 농사를 짓는 영현면 주민들이 먼저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취임 당시 영현면 일대를 ‘칼-네이쳐 타운(CUL-NATURE TOWN)’으로 지정하여 친환경농업지역으로 가꾸어나가겠다고 약속했던 이학렬 고성군수는 적법한 절차 운운하며 골프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면장이 포함된 ‘주민 유치 위원회’는 마치 다수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기라도 한 양 목소리를 높였다. 또, 30년간 변동된 적이 없던 골프장 부지의 지목(地目)이 초지(草地)에서 임야(林野)로 슬며시 바뀌어 버렸다. 권력과 돈이 반갑게 손을 마주잡고 장박재에 쇠말뚝을 박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냥 땅을 팔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절하면 또 어딘가 다른 데로 가서 골프장을 지을 테니 차라리 우리가 불편하게 지내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주민유치위원회’가 수도원을 찾아 골프장을 위해 수도원 사유 도로를 팔라는 요청을 하였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연학 수사(고성군 대가면 소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남녀 수도회’ 원장)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주변 유기농가의 피해와 자연 파괴에 대한 우려는 고요한 수도 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골프장 부지인 장박재는 철원과 함께 독수리들의 동계 서식지였죠. 매년 겨울이면 약 150마리의 독수리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군청에서 ‘독수리 서식지’라는 걸 알리는 표지판까지 세울 정도였죠. KBS(창원방송 현장기록 21, 7월 14일자)에 보도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골프장 측에서 소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줄 수 없도록 한 거죠. 게다가 농약을 살포하고 연기를 피우는 걸 봤다는 사람까지 나섰습니다. 결국 작년 겨울에는 독수리들이 더 이상 장박재를 찾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독수리 서식지’ 표지판도 어느새 철거 되어 버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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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청 앞에서 열린 공대위의 기자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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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강효정 |
| 노동과 침묵, 그리고 기도의 생활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수도자들은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6일에는 주민들이 군청 앞에서 총 궐기대회를 가졌으며, 9월 5일에는 촛불 기도회와 촛불 집회를 열었다. 또 수도원과 고성 주민들,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 ‘고성군 공룡 골프장 건설 반대를 위한 범군민 공동대책위’를 결성하고 군 당국에 공개 토론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를 묵살했고, 공대위측은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는 장박재 아래 조그만 언덕바지에서 조촐한 음악회를 개최했다.
설사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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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과 함께 울려퍼진 수녀들의 합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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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강효정 |
| 지난 15일, 고성군 대가면 올리베따노 수도원에서는 ‘장박재·영천강 생태 보존을 기원하는 음악회’(10월 22일 오후 5시~7시, 라디오 평화방송)가 열렸다. 이해인 수녀와 탤런트 양미경이 자연과 생명을 위한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가수 한동준과 권진원이 열창으로 화답했다. 유명인들 뿐만이 아니다. 인근 철성중학교 관악 합주단이 풋풋한 손길로 연주곡을 들려주었고, 뿌에리 깐또리스 소년소녀 합창단이 낭랑한 노래와 아름다운 핸드벨 연주로 가을밤을 수놓았다. 또 베네딕토 수도회의 수련 수녀들도 촛불을 손에 들고 수줍은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3시간 동안 진행된 야외 음악회를 지켜본 관객들도 1,500여명이 넘었다. 그런데,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음악회 내내 그 흔한 경과보고나 성명서 낭독조차 들을 수 없었다. 아니, 골프장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나 유인물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골프장 반대는, 꼭 우리 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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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공룡 골프장 건설 반대를 위한 범 군민 공대위의 요구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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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은 군민 갈등 조장하는 밀실 행정 중지하고, 공룡골프장 관련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
- 공룡골프장 문제에 대한 군민 공대위와 고성군 간의 공개토론회에 고성군은 즉각 나서라.
- 경상남도는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공룡골프장 사업을 절대 허락하지 말라. / 공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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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음악회는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근에서 오리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장기동씨(공대위 집행위원장)는 여름내 그을린 검은 얼굴로 음악회를 지켜보며 말했다. “골프장 문제는 고성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남해안 전역에, 아니 전국적으로 지금 땅이 함부로 파헤쳐지고 있어요. 우리 지역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생명과 자연을 지키는 일인 거지요. 고성 지역 공대위를 경남지역 공대위로 확대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내년에는 지방 자치제 선거가 있으니 그 때 후보들이 골프장을 비롯한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죠. 골프장에 반대하는 논리도 아직은 허술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우더라도 결국 골프장이 들어오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겠죠. 하지만, 설사 수도원 옆에는 결국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는 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 하려고 합니다.” 신문도, TV도 보지 않고 살다가, 골프장 사건 이후 일간지 5개를 읽고 환경 관련 기사를 꼼꼼히 스크랩한다는 이연학 수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부진 계획을 밝혔다.
지역 언론에 따르면, 군 당국과 골프장 측의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될 경우 연내에 인허가절차가 모두 끝나고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권력과 돈이 손을 맞잡을 때, 그것에 맞서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레 포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떡고물이라도 챙길 수 있을까 하여 잇속 빠르게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우직한 믿음으로 길을 나선다. '내 것’에 대한 탐욕을 버린 가난한 마음들이 녹색 사막에 생명의 물줄기를 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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