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종말론 : 제 4 장 복음의 역사 - 일곱 교회 : 6] 빌라델비아 교회.
6] 빌라델비아 교회.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소아시아의 서부 루디아 지방의 성읍. 터키의 알라셰히르(Alashehir = 붉은 성읍, 흙이 붉은 빛이기 때문) 시가 자리 잡고 있다. 사르디스의 동남쪽 45㎞ 지점에 있는 트몰루스 산맥(Tmolus)의 북쪽과 헤르무스 강(Hermus R.) 상류의 지류 코가무스 강(Cogamus R.) 사이의 대지에 건설되었다.
사르디스로부터 오지(奧地)로 뻗는 간선도로를 제압하고 있다. 포도의 신디오누수스(Dionysus)의 예배가 있다.
BC 150년경 버가모 왕 앗탈로스 Ⅱ세 필라델포스(Attalus Ⅱ Philadelphus, BC159-138)에 의해 건설.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 동쪽 오지의 제 성읍으로 파급시키는 문호로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계 3: 8.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빌라델비아는 버가모와 더불어 BC 133년 로마에 넘어갔다. AD 19년의 지진으로 성읍이 대파되고 여진이 계속되어 시민은 성벽 밖에 움막을 세우거나 천막을 치고 살았다. 디베료 황제에 의해 부흥되고, 네오 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이 주어져 로마 속국이 되었다. 성읍의 이름은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에 의해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으나 본래로 돌아왔다.
이 땅의 유대인은 기독교에 대해 가장 격렬한 적의를 나타냈다. 이 성읍의 신자 11명은 스무르나(Smyrna)에서 폴루카르푸스(Polycarpus)와 순교했다. 계시록에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하나로서 편지를 보내고 있다(계 1: 11. 3: 7-13).
적은 능력과 열린 문은 소아시아에 복음이 확대될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을 보여준다.요한계시록 3: 9에 "보라 사탄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라고 말하는 것은 빌라델비아의 유대인이 방종한 이교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BC 1세기의 대리석 비석이 출토되었는데, 그것은 개인적 밀의교(密議敎)의 규정을 기록한 것이며, 고대 이교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윤리적 이상주의의 실례이다. 여기는 고대의 성벽, 아크로폴리스(Acropolis), 극장, 신전 등의 유적이 있다. 신전이 많기 때문에 소아덴이라고 불리었다.
(1) 이름과 시대상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서머나와 루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 D. 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렸다.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 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B. 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 (Lenski, Johnson).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 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① 의미: 형제 사랑.
② 상징: 선교 시대를 예표 한다.
③18, 19세기: 인도 - 케레. 아프리카 - 리빙스턴. 중국 - 모리슨, 테일러.
한국 - 언더우드, 아펜셀라. 일본 - 해븐, 브라운, 윌리엄스, 박스톤.
이곳은 포도 산지다. 왜 포도였을까? 포도는 성도를 예표 한다.
선교 시대에 이르러 성도들이 전 세계에서 나타날 것을 보여준다. 빌라델비아는 조그마한 도시, 제일 작은 도시인데, 바로 그들이 세계를 향하여 선교를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청교도 102명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여 그들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했다. 또한 순교자를 많이 배출했다.
그러므로 선교 시대는 세계에서 순교자가 제일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절두산이 있다. 한강에 목을 대어놓고 작두로 한 명씩 목을 잘랐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순교자가 많이 나왔는데, 미래에 순교자가 많이 나올 것을 말해주고 있다. 피 없이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 피 없이 전파되면 이상하게 사이비가 들어간다. 이것은 일개 가문도 마찬가지다. 처음 예수 믿는 사람이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믿어야 결국 그 가문이 예수 앞에 나온다.
18, 19세기에 선교사들이 순교한 바로 그때 미국에는 세계적인 인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 지금 세계 선교의 주자는 누구입니까? 세계가 입을 모아 한국이라고 한다. 우리 하나님은 21세기 한국을 선교의 주자로 쓰신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 세계적인 기업과 인물, 기업가가 나온다. 어느 민족이든 세계 선교를 감당하면 그 민족 가운데 뛰어난 인물들이 나온다. 이것은 틀림없다.
(2) 화폐
빌라델비아 화폐의 디자인은 ‘열린 문’이였다.
역사적으로도 헬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문이며 복음적으로도 예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문이 열렸으며 예언적으로도 미국을 중심으로 선교의 열풍으로 급성장하게 된 선교 시대를 예표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①거룩하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하신 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거룩하고'의 원어적인 의미는 '거룩한 자'다. '거룩'을 의미하는 단어가 신약에서는 218회나 등장한다. 이 말은 '구별되다, 성별되다'란 의미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 가치로 분별할 때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우리 주님이 선교 시대에 걸맞게 거룩하신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
* 막 1: 24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그것은 이 교회의 사명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인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문이 열린 교회’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②진실하다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알레데스(?ληθ??)'와 '알레디노스(?ληθιν??)'로 이 두 단어가 어떻게 다른가?
ⓐ 온전하며 충성된 자.
'알레디노스'는 위조품이나 허실한 것에 비해 참된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 (Hort)
ⓑ 진실한 자.
'알레데스'는 '진실한'이라는 말로 언어나 증거에 참된 것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나 본문에서는 두 번째의 단어가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에 유대인들의 훼방으로 고통과 핍박을 겪는 성도들에게 '오직 주님만 진실하신 분'이심을 증언한다.
* 사 65: 16 -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본 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언급되었다. (Mounce, Ladd).
* 계 19: 11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거룩하다.
* 레 11: 44 -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 벧전 1: 15-16, 23-25 –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③다윗의 열쇠
마지막으로 묘사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 왜 다윗의 열쇠를 가졌을까? 잘 알듯이 다윗은 왕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왕, 만왕의 왕 예수의 모습을 상징한다.
열쇠로 문을 열면 들어가고, 닫으면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세다. 예수님이 열어 주셔서 전 세계에 선교가 되었다. 미국이 잘 나서 선교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빌라델비아 토지는 옥토였다. 씨를 뿌리기만 하면 농사가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이 전 세계에 선교사를 보낼 때 예수님이 전 세계에 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언젠가 언더우드 목사님이 섬겼던 교회를 보았다. 매우 작은 교회였다. 한국으로 말하면 50여명쯤 들어가는 교회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 언더우드 목사가 똑똑해서 선교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 사용하셨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전도지 뿌리고, 북만 쳐도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 별 이벤트를 다 해도 모이기가 쉽지 않다.
헨드릭슨은 1792년부터 선교 운동이 흥왕했다고 말한다. 윌리암 캐리가 세계 선교를 강조한 소책자가 1792년에 나왔다. 이것이 미국 전역을 감동시켰다. 성도들의 마음을 열어 주었다.
지금 한국은 개척교회도 선교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것이다.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복음의 발길을 막았지만,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셔서 이렇게 기독교가 꽃을 피운 것이다.
지금 미국 교회는 선교를 그치기 시작한다. 교회당을 빌려주고 돈을 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이 지금 복 받는 나라다.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 22: 15-25을 반영한다.
* 사 22: 15-25 –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17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23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24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2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④ 닫을 사람이 없다.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복음을 전파하는선교의문.
* 빌 4: 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문이 열렸다
* 고후 2: 12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 전도할 문
* 골 4: 3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 능히 닫을 사람이 없다.
* 고전 16: 9 -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
(4) 칭찬
① 열린 문 -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저자의 견해 - 문자적으로 빌라델비아가 교류하는 중심지였듯이 예언적으로는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을 예표 하는 것으로 본다.
ⓐ 역사적인 의미: 위치적, 행정적, 군사적인 입지 조건을 갖추었다.
ⓑ 복음적인 의미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을 보면 '열린 문 = 선교의 문'이라는 등식을 볼 수 있다.
* 행 14: 27-28 –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 고전 16: 8-9 –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 고후 2: 12-13 –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 골 4: 3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 예언적인 의미 :18, 9세기에 미국의 주도로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다.
교회사에서도 헬라 문화를 전파하는 전초기지가 되듯이 예언적으로도 선교 시대를 예표 하는 교회로 상징되었다고 본다.
②열린 문이란?
ⓐ 구원의 문이다.
* 요 3: 18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예비처의 문이다.
* 마 25: 10 -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 계 12: 6, 14 –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 휴거의 문이다.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살전 4: 17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천국 문이다.
* 계 22: 17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③ 순종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적은 능력을 가지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큰일을 행한 것에 대하여 칭찬을 받았다. 그러면 '적은 능력'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닌 신앙의 밑천은 '적은 능력'으로 불릴 만큼 연약한 것이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 도시에서 교회가 거의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은 능력'은 성도들이 지닌 사회적인 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처음 영접한 빌라델비아 도시는 상류층 출신이 아니라 하류층이자 빈민층 출신들이 먼저 예수를 영접하였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이들이 복음으로 인해 변화 받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어려웠던 그 상황에서 '오직 예수'를 부여잡고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것을 칭찬받고 있다.
선교는 결코 돈 있고, 큰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적어도 할 수 있고, 없어도 할 수 있다. 선교하는 기업과 가정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서 선교할 수 없다고 하지 말라.
능력이 없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신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주님께 넘어가면 5,000명이 먹고 남았다. 빌라델비아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가장 열심히 선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작아야 한다.
* 삼상 16: 7, 11-13 – 다윗 –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고전 15: 9 - 바울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 능력을 가져야 한다.
* 삼상 17: 32-37, 45-47, 49 –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 실천해야 한다.
* 요 14: 2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
주님의 칭찬은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적은 능력으로 예수의 말씀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이름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교회 성도들은 내적으로는 예수의 말씀을 지켰고, 외적으로는 예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W.C.C 가 배교하는 행위를 한다. 출발은 선교가 명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혼합주의다. 선교는 '오직 예수' 그 이름을 전하는 것이다.
* 요 14: 21-24 –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고후 12: 9-10 –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세상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보고 가는 길이란 정말 힘들고 어렵다. 이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 쫓아갔던 아브라함의 신앙이다.
* 창 12: 1-4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지키며'(카이 에테레사스)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 예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자.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 같은 것도 아니었다.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벨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다.
그들의 위기는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아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
* 롬 2: 28-29 –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사단의 회는 자칭 유대인들로 서기관들과 바리새파(派)들과 사두개파(派)들과 헤롯당(黨)과 장로(長老)파 등 모든 종파(宗派)를 의미한다.
㉠ 서기관 -로마 가톨릭 같은 교권주의자들
㉡ 바리새파 -자기들만이 정통파라는 보수주의 신학
㉢ 사두개파 -사신 신학 등 자유주의 신학
㉣ 헤롯당 -정치와 결합하려는 자들
㉤ 장로파 -믿음의 연조를 자랑하는 자들
㉥ 모든 종파 -혼합주의나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
ⓔ 거짓말 하는 자는다른 종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범신파들.
* 왕상 22: 22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 욥 13: 4 -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 잠 17: 4 -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④ 저희로 와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됨으로 이스라엘의 대 회심이 이루어지므로 스스로 찾도록 하신다.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
* 사 45: 14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 사 60: 14 -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⑤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발 앞에 절하게 한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한다(Ladd).
* 롬 9-11장.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하는 '사탄의 회'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 (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부인한 혈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한다. -입증한다.
* 욥 42: 8-10 –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슥 8: 20-23 –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5) 책망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예수의 계명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작은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교회에 대하여 책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권면
① 속히 임하리니
선교 시대가 끝나면 '속히 임하리니' 하신 말씀대로 주님은 속히 오실 것이다.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 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
* 마 24: 48-51 –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 살후 1: 7-9 –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는 에베소(2: 5), 버가모(2: 16) 및 사데 교회(3절)에 임하신 모습이다.
ⓑ 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Johnson).
* 계 2: 16 -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계 22: 7, 12, 20 –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 24: 14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다.
빌라델비아 시대가 끝나면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믿음과 면류관을 지켜야 한다.
② 네가 가진 것 -믿음, 신앙.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을 계속적으로 확고하게 붙잡아야 한다. 말씀과 주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믿음 지키기가 어렵다. 믿음이 식어진다. 그렇게 뜨겁던 믿음이 냉랭해진다. 때문에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
굳게 잡아야 할 목표가 무엇인가?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③ 굳게 잡아- 믿음을 말한다.
'굳게 잡아'(크라테이)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 골 2: 2 -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④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일곱 교회 중에 '면류관'을 사용하여 권면하고 있는 교회는 두 교회다. 빌라델비아 교회와 서머나 교회다. 서머나 교회는 생명의 면류관이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나? 우리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순교와 선교다.
교회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는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믿음을 장성시키는 것이요 두 번째 목적은 장성한 성도가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앞에 인도하는 전도와 선교가 목적이다.
* 계 2: 10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7) 상급의 약속
① 축복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본문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 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솔로몬이 7년 간 정성을 드려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전을 받쳐 주는 두 기둥이 있었다. 그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는 즉 '그는 확립'이란 말이고 보아스의 뜻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란 뜻이다.
'제단'은 하나님께 대한 구약 시대의 예배 행위를 대표하는 말이며, '기둥'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말이다.
* 왕상 7: 21 -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 대하 3: 17 -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 하나님 성전의기둥이 되게 하리니.
선교한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지탱하는 큰 일꾼, 버팀기둥이 되게 하신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역사적인 지진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본 지역이다. 이런 지진이 지나간 후에 성전 기둥만 남았다. 그것을 보는 그들에게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은 피부에 와 닿는 약속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 백성들에게 있어서 '기둥'이 주는 의미는 견고성과 부동성을 상징하는 모형물이 되었을 것이다. 지진 때문에 항상 두려움에 떨었던 그들의 생활에서 견고한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세상의 그 어느 약속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예언적으로는 열린 문을 통하여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천국에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축복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선교를 가장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선교하는 자에게 이런 엄청난 복을 준다. 선교는 어떤 의미에서 계속 쏟아 붓는 것이다. 태평양 바다에 돌 하나 던지는 것과 같은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모든 행위를 기억하신다. 그래서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복에 복을 더하신다.
② 이름의 기록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본문은 빌라델비아 성도 가운데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 번째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 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새 이름을 기록한다.
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에 열 두 기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이름을 새긴다는 것은 축복을 말한다. 선교할 때 네 이름을 기록하겠다.
교회에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것은 축복으로 책임지겠다는 말씀이다. 네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단 12: 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약속하셨다. 할렐루야!
사도행전 13: 1-4을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실라를 통해 선교를 한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교회는 선교하지 않았다. 오늘날 이 두 장소를 비교해 보라. 안디옥 교회는 지금까지 신앙의 본산지로서 그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 역사 속에 남아 있다.
성경 사본도 안디옥 사본이 가장 좋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는 자유주의 일색이다. 로마 가톨릭이 숲을 이룬다.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여러분들이 전도하고 선교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어서 영원히 빛날 줄로 믿는다.
ⓑ 하나님의 이름
세상 모든 만물의 기초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다.
* 민 6: 27 -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낸다(Ladd, Morris, Johnson).
* 계 22: 4 -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 요 1: 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거처(居處)를 정하신다.
* 요 14: 23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 새 예루살렘의 이름.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다. (Mounce, Ladd,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오신 주님으로 이기는 자들은 사도 선지자들의 진리로 새 예루살렘 성전(聖殿)을 건축한 자들이다.
* 엡 2: 20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따라서 새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새 예루살렘은 새 시대를 해산하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셨다.
* 갈 4: 26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불리어진다는 것은 어린양의 아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해산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빌 3: 20 -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시 48: 8 -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 히 12: 22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 나의 새 이름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 자들에게 주어짐을 의미한다. (Mounce, Morris, Beasley - Murray, Ladd).
* 계 19: 12 -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 (Johnson).
* 사 62: 6 -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 사 65: 15 - 또 너희가 남겨 놓은 이름은 내가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리라.
* 엡 3: 15 -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요일 2: 13-14 –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 계 19: 12 -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그이 위에 기록 -소유의 개념
* 계 7: 3 –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 계 14: 1 -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으로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