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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과 뜰앞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카메라에 담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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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부도탑 주변에도 동백꽃잎은 떨어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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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탑과 주변에 떨어진 동백에 머리숙이고.. |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남쪽나라 강진의 백련사에 피어난 동백꽃.
겨울을 지나고 봄이오니 흐드러지게 피었던 동백이 이제는 서서히 지고 있다.
강진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18년간 귀양와서 살았던 다산초당이 바로 옆에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산길로 800m 떨어져 있다.
백련사는 다산을 통하여 잊혀졌던 조선의 차맛을
다시금 되찾게 해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당시 다산이 귀양와서 있을 때, 이곳 백련사에는 혜장스님이 있었는데,
다산은 혜장스님을 통하여 조선의 차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곳 만덕산 주변에는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서기 43년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지고 왔던 차가 자리잡아 토종으로 야생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들어서면서부터 선비들은 차를 마시는 대신
술을 마시기 좋아하게 되면서 차는 한국인의 삶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리하여 사찰 이외에는 차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다산이 1800년대에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이곳에 있던 혜장스님과 교류하면서 차의 맛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혜장스님의 제자였던 초의스님과도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조선의 차를 되살렸던 것이다.
다산은 이곳 만덕산 근처에서 만들어진 차의 맛을 잊지 못하여
한양으로 올라간 뒤에도 꼭 부탁하여 마셨다고 한다.
이곳 강진 백련사 주변에는 야생화된 차가 많이 있고,
사찰의 주변에도 차밭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요근래에는 커피의 공습에 비틀거리느라,
다시금 한국의 차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또 다시 차를 되살릴 훌륭한 인재가 나타나
다시금 한국의 차가 그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싶다.
다산은 차를 참으로 좋아했다.
그는 차의 좋은 점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다흥 음주망이라, 차마시면 흥하고 술마시면 망한다.
그래도 차보다는 술이 더 좋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가능한 차도 함께 즐겨보길 바래본다.
차나무 동백나무 함께 자라는 강진 백련사에서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의 단아한 모습들에 잠시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