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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僞裝(위장)의 鬼才(귀재) 文魚(문어)! 💢
💢Environmental Special(환경스페셜)‘文魚(문어)’💢
💢 / KBS 2012年(년) 03月(월)14日(일) 放送(방송)💢
Cuttlefish(갑오징魚(어)는 Cuttlefish(갑오징魚科(어과)에 속하는 動物(동물)이다. 몸길이가 8cm ~ 1.8m까지 크기가 多樣(다양)하다. 여덟 개의 짧은 다리와 두 개의 긴 觸腕(촉완:오징어의 10개의 다리 中(중) 다른 것 보다 긴 2개의 다리)이 있는데 이 다리들 가운데에 입이 있다. 各各(각각)의 다리와 觸腕(촉완)에는 딱딱하고 거친 빨판이 나 있다. 觸腕(촉완)은 눈 뒤에 있는 주머니 속으로 끌어 넣을 수가 있으며 다리는 物體(물체)에 몸을 付着(부착)시키거나 게나 물고기 같은 작은 動物(동물)을 잡는 데 쓰인다. 몸에는 褐色(갈색)의 가로줄 무늬와 자주색 斑點(반점)이 있다. 햇빛을 받으면 金屬性(금속성) 光澤(광택)을 내고 자주 몸색깔을 바꾸기도 한다. 몸통은 달걀 모양이며 둘레에는 주름 裝飾(장식)처럼 아가미가 둘러싸고 있다. 해면질과 백악질로 되어 있는 갑오징어뼈라는 내골격이 있는데, 칼슘 成分(성분)이 많아 카나리아·앵무새 等(등) 愛玩用(애완용) 鳥類(조류)의 먹이나 齒藥(치약)의 原料(원료)로 쓰인다. 또는, 뼈를 갈아 傷處(상처)에 바르는 藥(약)으로 쓰기도 한다. 뼈와 몸통 사이의 空間(공간)에 물을 빨아들이고 내뿜는 힘으로 移動(이동)한다.
Cuttlefish(갑오징魚(어)는 Squid[烏賊魚科(오징어과:'오징어'의 非標準語(비표준어)로 烏賊魚(오징어)(軟體動物(연체동물) 頭足綱(두족강) With Squid(오징엇科(과)에 속한 動物(동물)을 通(통)틀어 이르는 말)]하는 軟體動物(연체동물)의 總稱(총칭)으로 오늘날에는 烏賊魚(오징어)를 흔히 Cuttlefish(갑오징魚(어)라고도 하며 피둥어 꼴뚜기를 오징어라고 하는 等(등) 用語上(용어상)의 混同(혼동)이 있다. 東醫寶鑑(동의보감)』·『物名考(물명고):朝鮮時代(조선시대), 유희가 지은 冊(책) 』 ·『物譜(물보):朝鮮時代(조선시대), 이철환[(李哲煥, 1722年(년)-1780年(년)]과 그 의 아들 이재위[李載威, 1755年(년)-1825年(년)]가 엮은 語彙集(어휘집)』·『錢魚誌(전어지)』·『閨閤叢書(규합총서)』 等(등)의 옛 文獻(문헌)에 따르면 우리말로 오중어·오증어·오儷어·오적이·오직어 等(등)으로 불렸으며 漢字語(한자어)로는 오적어(烏賊魚)가 標準(표준)어였고 오즉(烏陝)·남어(纜魚)·묵어(墨魚)·흑어(黑魚)라고도 하였다.
僞裝(위장)의 鬼才(귀재) 文魚(문어)! Environmental Special(환경스페셜)‘文魚(문어)’ / KBS 2012年(년) 03月(월)14日(일) 放送(방송)
선비의 象徵(상징) 문어(文魚)!!!
문어(文魚)는 漢字語(한자어)로는 8個(개)의 발을 意味(의미)하는 팔초어(八梢魚)라 하였고 그 밖에 장어(章魚)·팔대어(八帶魚)라고도 하였다. 참문어[피문어 等(등)으로도 불린다. 英語(영어)에서 그냥 문어(common octopus)라고 하면 이 種(종)을 일컫는다. 이들은 地中海(지중해)와 英國(영국) 南海岸(남해안)에서부터 最小(최소)한 Africa Senegal(아프리카 세네갈)에 걸쳐 棲息(서식)한다. Azores Islands(아소르스 제도), Canary Islands(카나리아 제도), Cape Verde Island(카보베르데 섬)들에서도 發見(발견)된다.Norman, M.D. 2000. Cephalopods: A World Guide. ConchBooks(노먼, MD 2000. 頭足類(두족류): 世界(세계) Guide(가이드). Conch Books(콘치북스).. Foul(파울) – 2010년 F...]와 區別(구별)하기 위해 물문어(水文魚)라고도 부른다.
頭足類(두족류) 中(중)에서 가장 크며 몸길이 3m, 몸무게 30kg인 世界(세계) 最大型(최대형) 文魚(문어)도 있다. 外套膜(외투막)은 짧은 달걀 모양으로 몸 表面(표면)에 작은 유두(乳頭)가 많다.
巨濟島(거제도)의 文魚(문어)낚시는 묵직한 손맛을 볼 수 있는 船上(선상) 最高(최고)의 喜悅(희열)이며, 文魚熟膾(문어숙회)는 입 속에서 씹히는 감미로운 맛과 더불어 간단한 醋醬(초장)만 있음, 술안주꺼리로는 안성맞춤이다.
文魚(문어)라는 말은 어찌하여 글월 "文"字(자)를 쓴 '文魚'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글 쓰는 물고기는 아니다. 文魚(문어)는 먹물 통을 가지고 다닌다하여 文房四友(문방사우)와 關聯(관련)지어 文魚(문어)라 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文魚(문어)는 그물과 같은 얼룩무늬가 온몸에 둘러 있다.
그래서 무늬가 있는 물고기라 하여 무늬 '文'字(자)를 써서 '문어(文魚)‘ 라고 이름 한 것이다. 글월 '文'字(자)는 原來(원래) 무늬 '文'자였다. 웃옷에 무늬가 그려진 모양을 形象(형상)한 자(字)이다.
朝鮮後期(조선후기) 實學者(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年(년)~?)이 編纂(편찬)한 百科辭典(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元(원)나라의 文獻(문헌) <여황일소(艅艎日疏)>를 引用(인용)하여, “文魚(문어)가 사람의 머리와 닮아서 文魚(문어)라 한다”고 했다.
이 짧은 句節(구절)의 解說(해설)로 文魚(문어)의 생긴 모습이 사람의 민머리처럼 생겨서 ‘믠어’라 부르다가 漢字(한자)로 '文魚(문어)'라 쓰게 되었다고도 傳(전)한다.
朝鮮後期(조선후기)의 홍만선[洪滿選:1643年(년)-1715年(년)]이 著述(저술)한 <山林經濟(산림경제)>의 救急編(구급편)에는 “産後(산후)에 發熱(발열)할 때는 文魚(문어)를 가루로 만들어 콩잎국(藿羹)에 타서 먹인다”는 民間(민간) 處方(처방)이 나와 있다.
19世紀(세기) 初(초)의 <閨閤叢書(규합총서)>에는 “文魚(문어) 알은 머리, 배, 補血(보혈)에 貴(귀)한 藥(약)이므로 토하고 泄瀉(설사)하는 데 特效(특효)하며 쇠고기를 먹고 체한 데는 文魚(문어) 대가리를 고아 먹으면 낫는다”고도 한다.
文魚(문어)는 선비의 象徵(상징)이다. 우리 祖上(조상)은 문어(文魚)란 이름에 ‘글월 문(文)’ 字(자)를 달아주었다. ‘글 좀 읊을 줄 아는, 즉 常識(상식)과 糧食(양식)을 갖춘 물고기’라는 뜻이다. 큼지막한 (대)머리는 영리한 頭腦(두뇌)를 象徵(상징)하고, 威脅(위협)을 느낄 때 내뿜는 먹물은 炭素(탄소) 가루 成分(성분)의 붓글씨用(용) 먹물과 聯關(연관) 지었을 수도 있겠다.
中國(중국)에서 장위(章魚)라고 부르는 文魚(문어)는 韓國(한국)의 固有(고유)한 作名(작명)이다. 여기에서 우리 祖上(조상)들의 Humor(유머)도 同時(동시)에 보인다. 文魚(문어)의 그 큰 머리통에서 '智性(지성)'을 想像(상상)하고, 性質(성질)난 文魚(문어)가 發射(발사)하는 그 시커먼 먹물에서 '잉크'를 聯想(연상)하여 새삼 어족(魚族)에게도 文字(문자) 文(문)을 붙여 諧謔(해학)을 즐겼다.
또한 옛 先祖(선조)들은 文魚(문어) 대가리가 스님과 닮았다며 ‘스님 낙지(僧絡蹄(승락제)’, 또는 ‘고승어(高僧魚)’라고 부르기도 했다.
文魚(문어)는 지극히 子息(자식)을 사랑하며 性愛(성애)를 즐기지 않는다. 禁慾派(금욕파)인 것이다. 다만 後孫(후손)을 잇기 위해 딱 한 번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3年餘(년여)의 짧은 生涯(생애)를 마치는데 짝짓기를 한 암놈은 數千(수천)~數萬(수만) 個(개)의 알을 낳은 뒤 새끼가 孵化(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며 알을 노리는 敵(적)들을 끝까지 물리친다.
그런 後(후) 힘을 잃고 숨을 거둔다. 수컷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衰弱(쇠약)해져 죽는다. 이렇게 죽음에까지 이르는 文魚(문어)의 子息(자식)사랑은 丁寧(정녕) 限量(한량)없다고 할 수 있다.
文魚(문어)는 외줄낚시와 文魚團地(문어단지)를 使用(사용)해 잡는데 主(주)로 東海岸(동해안)과 南海岸(남해안) 等地(등지)에서 操業(조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大部分(대부분)은 文魚團地(문어단지)를 利用(이용)하는데 긴 모릿줄에 여러 個(개)의 文魚團地(문어단지)를 매달아 海底(해저)에 投入(투입)하여 文魚(문어)를 잡는 漁具(어구)이다.
文魚(문어)의 어둡고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習性(습성)을 利用(이용)해 文魚團地(문어단지)가 考案(고안)되었다. 미끼도 없이 海底(해저)에 가라 앉혀 놓으면 文魚(문어)는 자기 집으로 생각하고 들어가 있다.
原來(원래)는 큰 대나무를 잘라 만들었으나 漸次(점차) 질그릇으로 만든 團地(단지)를 使用(사용)했고, 1960年代(년대) 後半(후반)부터 Plastic(플라스틱) 文魚團地(문어단지)가 使用(사용)되기 始作(시작)하여 現在(현재)는 이것으로 文魚(문어)를 잡는다. 질그릇 文魚團地(문어단지)는 높이가 20cm 內外(내외)이고 入口(입구)의 直徑(직경)은 10cm 程度(정도)이며, 밑바닥에는 3cm 程度(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모릿줄의 길이는 300m 程度(정도)이며, 3m 間隔(간격)으로 約(약) 100餘個(여개)의 文魚團地(문어단지)를 매달았다. 普通(보통) 小型漁船(소형어선)에 1,000~1,500餘個(여개)를 실고 다니며 操業(조업)을 한다. 文魚(문어)는 主(주)로 밤에 活動(활동)하므로 午後(오후)에 文魚團地(문어단지)를 投入(투입)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가서 걷어 올려 團地(단지)안의 文魚(문어)를 잡아낸다.
옛날 先祖(선조)들은 祭祀(제사)나 先祖(선조)의 祠堂(사당)에 文魚(문어)를 올렸고, 또한 술안주로는 文魚(문어)가 最高(최고)였던 모양이다. 各種(각종) 많은 시(詩)에 맛나는 안주꺼리로 登場(등장)한다.
1) 짠 文魚(문어)를 주신 恩惠(은혜)에 사례하다[謝咸留後惠文魚] / 성석린(成石璘 1338年(년)~1423年(년).
海魚紛鉅細(해어분거세) 바다 물고기는 크기가 多樣(다양)하며,
此物最佳哉(차물최가재) 참으로 아름답도다.
聞說巾尤美(聞說巾尤美) 들으니 두건머리(文魚(문어)가 특히 맛나다는데,
誰敎露頂來(수교노정내) 누가 매우 좋은 술에 오라고 하리오?
2) 문어(文魚) / 이응희(李應禧 1579年(년)∼1651年(년),
圓頭長數尺(원두장삭척) 둥근 머리에 길이는 두어 자,
形色異難知(형색리난지) 모양은 이상해 알기 어렵네.
斫罷生金液(작파생금액) 칼로 썰면 금빛 액이 나오고,
炮成泣玉脂(포성읍옥지) 불에 구우면 흰 기름 지글지글.
烹龍何足貴(팽롱하족귀) 용을 삶은들 무어 귀하리오.
湯鳳亦無奇(탕봉역무기) 봉을 끓여도 대수로울 게 없어라.
擧世張高宴(거세장고연) 온 세상이 잔치를 열 때마다
佳肴必汝期(가효필여기) 좋은 안주로 이것이 꼭 필요하지.
朝鮮中期(조선중기)의 文人(문인)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옥담시집(玉潭詩集)에 물고기에 對(대)한 五言詩(오언시)를 收錄(수록)하고 있다(玉潭私集, 萬物篇 魚物類:옥담사집, 만물편 어물류). 朝廷(조정)에서는 그의 學識(학식)이 高明(고명)함을 알고 重用(중용)하려 했으나 거듭 辭讓(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代代(대대)로 傳(전)해 내려오는 바에 依(의)하면 先祖(선조)인 안양군(安陽君)이 燕山君(연산군) 때 원사(寃死)를 當(당)하면서 遺言(유언)으로 官職(관직)에 나아가지 말라고 하여 그 遺訓(유훈)을 따른 것이라 한다. 玉潭私集(옥담사집)의 만물편(萬物篇)은 詩人(시인)이 接(접)한 各種(각종) 事物(사물)을 五言(오언) 시(詩)로 적어 描寫(묘사)하고 있다.
事物(사물)을 25種(종)으로 나누었으며, 꽃과 과일 곡물 채소 어류 의복 가축 새 곤충 飮食(음식) 等(등)의 事物(사물)을 多樣(다양)하게 表現(표현)하였다. 特(특)히 어물류(魚物類)에는 東海(동해)에서 生産(생산)되는 種類(종류)(東海産類(동해산류), 西海(서해)에서 生産(생산)되는 種類(종류)(西海産類(서해산류), 강어류(江魚類), 천어류(川魚類)로 나누어 總(총) 25種(종)의 물고기를 連作詩(연작시)로 남겨 傳(전)한다.
3) 예전에 보낸 文魚(문어)에 事例(사례)하며[又謝惠古之文魚(우사혜고지문어)] / 신광한(申光漢, 1484年(년)~1555年(년).
應憐老子口無齒(응련노자구무치) 老子(노자)가 입에 이빨이 없음을 가엾게 여겨.
爲寄珍鮮腹裏腴(위기진선복리유) 貴(귀)한 生鮮(생선)을 보내오니 배가 든든하다.
加餐味過張蒼乳(가찬미과장창유) 張蒼(장창)의 젖보다 맛이 좋아 밥이 더 먹히고,
兼嚼文魚病自蘇( 겸작문어병자소) 文魚(문어)를 씹어 먹으면 病(병)든 몸이 되살아난다네.
[主(주)] 장창(張蒼) : 옛날에 장창(張蒼)이란 사람이 이빨이 없어 乳母(유모) 數十名(수십명)을 두고 젖만 먹으니 100餘歲(여세)가 지나도록 飛白(비백)한 것이 薄俗(박속)과 같고 事物(사물)을 觀察(관찰)하는데 精神(정신)이 少年(소년) 때 보다 더 좋고 膝下(슬하)에 子女(자녀)까지 여럿을 두었으니 이것은 조양(調養)의 묘(妙)인 것이다.
4) 蟶(정)ㆍ八梢(팔초)ㆍ鮫朂(교력)(蟶八梢鮫(정팔초교) / <星湖僿說(성호사설) 만물문(萬物門)> 이익(李瀷 1681年(년)-1763年(년).
우리나라에서는 조수(鳥獸)와 충어(虫魚)에 對(대)한 글자의 뜻을 大部分(대부분) 몰랐다. 壬辰年(임진년) 亂離(난리) 때 천장(天將)이 片紙(편지)를 보내서 맛살조개를 求(구)해 달라는 要請(요청)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맛살조개가 가리합(嘉里蛤)인 줄을 모르고 다만 對答(대답)하기를, “우리나라에는 이런 物件(물건)이 生産(생산)되지 않는다.”라고 했던 바, 天將(천장)은 自己(자기)를 속인다고 몹시 聲(성)을 내기까지 하였다.
하루는 天將(천장)이 계두(桂蠹)를 바쳤는데, 이는 바로 계수나무 속에서 생긴 좀벌레로서 빛깔은 붉고 맛은 맵고 香氣(향기)로웠다. 남월왕(南越王)이 中國(중국)에 공물(貢物)을 바칠 때 비취(翡翠)는 40쌍까지 바쳐도 鷄頭(계두)는 겨우 한 그릇 밖에 바치지 않았다 하니, 그 鷄頭(계두)란 稀貴(희귀)한 것임을 斟酌(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주상(主上)은 오래도록 주저하고 젓가락 대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조금 後(후)에 문어갱(文魚羹)을 올렸는데, 文魚(문어)란 것은 바로 팔초어(八梢魚)다. 그런데 天將(천장)도 亦是(역시) 難處(난처)한 빛을 보이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傳(전)하는 말에, “이 文魚(문어)는 우리나라에만 生産(생산)되는 까닭에 天將(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고 한다. 내가 천사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보니, 그의 자주(自註)에, “문에는 바로 中國(중국) 절강(浙江)에서 나는 망조어(望潮魚)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壬辰年(임진년) 亂離(난리) 때 이여송(李如松) 무리들은 大部分(대부분) 中國(중국) 北(북)쪽 地方(지방)의 사람인지라, 南北(남북)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기 때문에 강회(江淮)의 魚物(어물)을 보지 못한 것은 當然(당연)한 일이다. 《본초(本草)》 오적어(烏賊魚) 조에 上古(상고)하니, “어족(魚族) 中(중)에 뼈없는 고기는 이름을 유어(柔魚)라 하고, 또 장거(章擧)와 석거(石距)라는 두 種類(종류)가 있다.”하였다.
이는 文魚(문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크고 맛은 썩 좋아서 貴重(귀중)한 食品(식품)으로 꼽히게 되고, 烏賊魚(오적어)도 亦是(역시) 팔초어(八梢魚)와 비슷한데 다리가 아주 짧기 때문에 若干(약간) 區別(구별)된다. 推測(추측)컨대, 이 章擧(장거)와 石距(석거)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文魚(문어)와 낙제(絡蹄) 따위처럼 생긴 것인 듯한데, 中國(중국)서도 亦是(역시) 진귀(珍貴)하게 여긴다.
絡蹄(낙제)는 俗名(속명) 소팔초어(小八梢魚)라는 것이다. 인묘(仁廟) 丁亥年(정해년)에 中國(중국)사람 임인관(林寅觀)ㆍ진득(陳得) 等(등)이 風波(풍파)에 漂流(표류)되어 제주(濟州)에 碇泊(정박)하자, 우리나라에선 연경(燕京)으로 돌려보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섬 속에 오래 머무르면서 俗名(속명) 도미어(道尾魚)라는 것을 보고 이르기를, “이것이 교력어(鮫魚(상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본초(本草)》에 詳考(상고)해 봐도 이런 種類(종류)가 없으니,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다.
[主(주)1] 蟶(정)ㆍ八梢(팔초)ㆍ鮫朂(교력)(蟶八梢鮫(정팔초교) : 정(蟶)은 맛살조개, 팔초(八梢)는 文魚(문어), 교력(鮫朂)은 도미魚(어)의 一種(일종). 《類選(류선)》 卷(권) 10中(중) 萬物篇 禽獸門(만물편 금수문).
[主(주)1]천장(天將) : 事大思想(사대사상)에서 明(명) 나라 將帥(장수)를 天將(천장)이라 하였음.
[主(주)2] 남월왕(南越王) : 한(漢) 나라 때 조타(趙佗).
[主(주)3] 주상(主上) : 여기서는 宣祖大王(선조대왕)을 말함.
[主(주)4] 오적어(烏賊魚) : 오징어.
[主(주)5] 인묘(仁廟) : 仁祖大王(인조대왕).
[主(주)6] 낙지 : 낙지과에 속하는 연체동물. 한자어로는 보통 석거(石距)라 하고, 소팔초어(小八梢魚)·장어(章魚)·장거어(章擧魚)·낙제(絡蹄)·낙체(絡締)라고도 했다. <자산어보>와 <동의보감> 등에 언급되어 있다.
參考(참고):낙지(英語(영어) : Octopus minor, Korean common octopus 또는 long arm octopus , 文化語(문화어) : 서해낙지는 연체동물의 하나이다. 漢字語(한자어)로는 석거(石鋸)라고 하며, 장어(章魚)·낙제(烙蹄)라고도 쓴다.
5) 歲饌(세찬)을 받고 짓다[宣賜歲饌(선사세찬] 하나의 맛에 詩(시) 한수를 勸(권)하니 榮華(영화)로운 마음을 느끼며. 癸卯年(계묘년) 1783年(년) 1月(월) 3日(일)(一味侑一詩 以志榮感 歲癸卯之正月初三日也(일미유일시 이지영감 세계묘지정월초삼일야) / 유득공(柳得恭 1749年(년)~1807年(년) 고금체시(古今體詩).
坡愛江瑤柱(파애강요주) 강요주(살조개)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於鰒獨瑕疵(어복독하자) 全鰒(전복)에는 그 허물이 있다하네,
試問三韓使(시문삼한사) 三韓(삼한)의 使臣(사신)에게 물어보아도,
誰堪配荔支(수감배려지) 누가 여지를 나누어 주리오.
全鰒(전복)이 生産(생산)되는 蔚山(울산) 바다에 강요(江珧)가 보배다(鰒産蔚山海中者珍於江珧(복산울산해중자진어강요).
文魚卽章擧(문어즉장거) 文魚(문어)는 卽(즉) 낙지와 비슷하고,
其冠似革囊(기관사혁낭) 그 머리는 가죽주머니와 닮았다.
君今有八股(군금유팔고) 그것에는 여덟 個(개)의 다리가 있으며,
亦足稱文章(역족칭문장) 또한 文章(문장)으로 稱(칭)하기에 족하다.
"文魚(문어)"의 또 다른 이름은 "팔초어"(文魚亦名八梢魚(문어역명팔초어 ).
無人讀魚䟽(무인독어소) 어보를 읽는 사람은 없는지,
太半從俗呼(태반종속호) 太半(태반)이 속된 이름으로 부르네.
春風洛水岸(춘풍낙수안) 봄바람은 洛水(낙수) 기슭에 불어오는데,
可憐檀板圖(가련단판도) 아름답구나, 檀板(단판)의 구름이여.
鯔魚(치어)(숭어)의 俗名(속명)은 秀魚(수어)다(鯔魚俗名秀魚(치어속명수어).
髯尺而軀寸(염척이구촌) 짧은 鬚髥(수염)에 작은 몸으로,
參軍主簿流(삼군주부류) 참군(參軍)과 주부(主簿)되어 떠돌며,
本非封侯骨(본비봉후골) 本(본)디 封侯骨(봉후골)이 아닌데도,
云何曲如鉤(운하곡여구) 이 같이 어찌 갈고리처럼 굽었는가?
大鰕(대하:큰새우) (大鰕(대하).
[主(주)1] 강요(江珧) : 正三刻形(정삼각형) 모양의 검은 色(색) 바다 조개이다. 살조개
[主(주)2] 여지(荔支) : 과일의 이름. 中國(중국) 복건(福建)ㆍ광동(廣東)ㆍ사천(四川) 等地(등지)에서 生産(생산)되는 과일로 살은 희고 맛은 달고 즙(汁)이 많으며 모양은 용안의 열매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楊貴妃(양귀비)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主(주)3] 봉후골(封侯骨) : 먼 邊方(변방)에서 큰 功(공)을 세워 貴(귀)하게 될 골상(骨相)을 말한다.
6) 『嶺南樂府(영남악부:1808年(년) 이학규[李學逵:1770年(년),英祖(영조) 46年(년) ∼1835年(년),憲宗(헌종) 1年(년)]가 지은 漢詩(한시)』의「철문어(鐵文魚)」는 高麗(고려) 末(말) 鷄林府尹(계림부윤) 원룡(元龍)의 학정(虐政)을 諷刺(풍자)하였다. 庶民(서민)의 絶叫(절규)를 옮긴 듯한 畫法(화법)으로 되어있다. 元龍(원용)은 鷄林府尹(계림부윤)으로 있을 때 貪虐(탐학)하여 農器具(농기구)인 철파 곧 쇠스랑까지도 걷어갔다. 百姓(백성)들은 그를 철문어부윤(鐵文魚府尹) 이라고 불렀다. 文魚(문어)는 팔초어(八梢魚)라고도 한다.
<철문어(鐵文魚)> 이학규(李學逵).
高麗(고려) 末(말)에 裵元龍(배원룡:高麗後期(고려후기) 兵部尙書(병부상서)를 歷任(역임)한 官吏(관리)로.김해(金海) 배씨(裵氏)의 始祖(시조). 高麗(고려) 태조배향공신(太祖配享功臣) 배현경(裵玄慶)의 後孫(후손)으로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의 큰아들이다. 우왕(禑王)때 權臣(권신)인 염흥방(廉興邦)의 養子(양자)가 되었으며, 廉興邦(염흥방)에게 邸宅(저택)을 賂物(뇌물)로 바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어 侵入(침입)한 倭寇(왜구)를 討伐(토벌)하였으나 討索(토색)과 致富(치부)로 汚名(오명)을 남겼다. 벼슬은 兵部尙書(병부상서)에 오르고 분성군(盆城君)에 封(봉)하여졌다.]이라는 者(자)가 있었다. 鷄林府尹(계림부윤)이 되어 百姓(백성)을 侵奪(침탈)하여 農器具(농기구) 철파, 쇠스랑까지 거두기에 이르렀고, 家族(가족)을 逼迫(핍박)하여 싣고 갔다. 府民(부민)들은 "鐵文魚府尹(철문어부윤)"이라고 불렀다. 八梢魚(팔초어), 屬名(속명) 文魚(문어)다. 철파의 모양이 이와 비슷한 까닭이라 傳(전)한다.
鐵文魚(철문어)야 어찌 묵은 밭은 고르지 않고 도리어 사람 낚는 漁父(어부)가 되어 빼앗는가. 세 갈래 굽은 손톱으로 百姓(백성)의 살을 파내고 기름을 빨아 너희들의 시골집에 실어가 우리 소와 말까지 부수는 구나. 鷄林(계림)에는 이제 남은 쇠라고는 없어 활을 가기고 가서 水文魚(수문어)를 쏘는구나.
[麗季有裵元龍者 爲鷄林府尹 侵漁百姓 至斂民鐵杷 載敀家 府民目爲鐵文魚府尹 八梢魚 俗名文魚 鐵杷之形似之故云 鐵文魚何不杷人命 而反爲人漁 三叉屈折如指爪 爬民之肉吮民膄 而輸爾田廬 又敝我牛車 鷄林自此鐵無餘 抨弓去射(音碩)水文魚][려계유배원롱자 위계림부윤 침어백성 지렴민철파 재敀가 부민목위철문어부윤 팔초어 속명문어 철파지형사지고운 철문어하부파인명 이반위인어 삼차굴절여지조 파민지육연민수 이수이전려 우폐아우거 계림자차철무여 평궁거사(음석)수문어]
7) 이사랑(이상고)가 보낸 4首(수)의 詩(시)에 次韻(차운)하다.[次李侍郞 (尙古) 寄示韻四首] [차리시낭 (상고) 기시운사수] (峴山錄:현산녹) / 조위한(趙緯韓, 1567年(년)~1649年(년).
口厭南烹不可嘗(口厭南烹不可嘗) 입을 가리고 南(남)쪽의 삶은 飮食(음식) 가히 맛보지 아니하랴!
殊形詭狀白而黃(수형궤상백이황) 特異(특이)한 모양과 奇異(기이)한 形狀(형상)에 흰 듯 누렇도다.
紫蝦石首長相憶(자하석수장상억) 곤쟁이(紫蝦(자하), 조기를 오랫동안 記憶(기억)한다네.
幾日投簪去此襄(기일투잠거차양) 며칠 동안 이런 겉치레를 벗고, 벼슬을 박차고 싶구나.
其二[기이]
文魚大口豈堪嘗(문어대구개감상) 文魚(문어) 大口(대구), 어찌 이리 맛이 뛰어날까?
比目王餘色又黃(비목왕여색우황) 가자미 뱅어 色(색) 또한 누렇구나.
斫鯪鱠鯨眞快意(작릉회경진쾌의) 천산갑 벵어 고래를 잘라내니 참으로 愉快(유쾌)한 마음이라,
玉堂金馬不如襄(옥당금마부여양) 玉堂(옥당)과 金馬(금마)도 공(功)이 있는 일만 못하다.
其三[기삼]
海錯腥羶已備嘗(해착성전이비상) 바다의 各種(각종) 海物(해물)은 비린내와 노린내에 그지없다.
懷愁對案馘全黃(회수대안괵전황) 밥상을 마주하니 품은 생각에 낯빛이 전부 누렇다.
君今擇肉魚何用(군금택육어하용) 그대는 이제 골라낸 물고기를 무엇에 쓰리오.
不貴嘉魚去自襄(부귀가어거자양) 곤들매기는 貴(귀)하지 않아 절로 치워버렸다네.
其四[기사]
高潔夫君似孟嘗(고결부군사맹상) 高潔(고결)한 夫君(부군)은 孟嘗君(맹상군)과 같고,
每臨多事不蒼黃(매림다사부창황) 每番(매번) 臨(임)하는 많은 일에도 아주 바쁘지는 않도다.
如今闊步靑雲上(여금활보청운상) 只今(지금)은 闊步(활보)하며 靑雲(청운)의 뜻을 펼치지만,
誰念故人老一襄(수념고인노일양) 늙어 오직 탈것에 의지하는 故人(고인)을 누가 생각하리오.
부원운(附元韻) 석문(石門)
團圓須大小何嘗(단원수대소하상) 둥글고 모름지기 큰데도 根本(근본)이 작다 하는가?
味好無鹽色必黃(미호무염색필황) 좋은 맛에 짜지도 않고 色(색)은 꼭 누렇다.
來佐酒家爲第一(내좌주가위제일) 以後(이후)로 酒幕(주막)에서 권하는 飮食(음식)中(중) 第一(제일)이 되어,
須看美惡占治襄(수간미아점치양) 아름다움과 추함을 결국 보이더니 성히 차치하였다네.
魚腹臟如玉可嘗(어복장여옥가상) 물고기 배때기 내장은 맛이 가히 훌륭하여,
不宜乾貼不宜黃(부의건첩부의황) 건조하여 붙일 일이 아니며 누렇다고 적당한건 아니다.
竹箱包葉堅封寄(죽상포섭견봉기) 대나무 상자에 잎으로 싸서 단단히 봉하여 보내며,
致遠無傷況近襄(치원무상황근양) 멀리 보내도 상함이 없으니 하물며 가까운 곳은 말해 무엇하리.
魚有中腸亦可嘗(어유중장역가상) 물고기의 가운데 창자는 역시 맛이 좋은데,
登盤最厭細而黃(등반최염세이황) 소반에 올리면 모조리 물리니 장황하면서 어이없다.
大須如腕肥須厚(대수여완비수후) 본바탕은 모름지기 팔뚝같이 살쪄서 두툼하여,
把酒堪誇至自襄(파주감과지자양) 한손에 술잔 들어 자랑할 만하며 너무나 과분하다.
人言赬尾不堪嘗(인언정미부감상) 소문엔 붉은 꼬리가 불감당이라는데,
吾嗜臍邊膩且黃(오기제변니차황) 나는 배꼽 주위가 즐겁고 반드르르하며 또한 누렇다.
暫餒多鹽醉不好(잠뇌다염취부호) 소금기가 많아 졸지에 굶주리더라도 취한 술에는 좋지 않다.
儻非鮮味且嗔襄(당비선미차진양) 혹여 신선한 맛이 아닐지라도 怨望(원망)하랴.
[注(주)] 玉堂金馬(옥당금마) 한(漢) 나라 大闕(대궐)의 옥당전(玉堂殿)과 금마문(金馬門), 翰林院(한림원). 금마옥당(金馬玉堂). 우리나라는 弘文館(홍문관)을 玉堂(옥당)이라 했다.
8) 경성어랑[鏡城漁郞](地名:지명). 儒生(유생) 等(등)이 폐처한 곳에 極甚(극심)한 饑饉(기근)이 들었다고 알러준다. 힘을 합쳐 가는 삼베 한필과 文魚(문어) 두미를 갖추어 보내왔다.
삼베는 난삼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물고기는 祠堂(사당)의 祭祀(제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양 절구의 詩(시)를 지어 感謝(감사)를 表(표)한다.(儒生等 聞余廢處飢窮 合力備細布一匹文魚二尾送來 布則裁爲襴衫 魚則將助祠祭 仍賦兩絶以謝之)(유생등 문여폐처기궁 합력비세포일필문어이미송내 포칙재위란삼 어칙장조사제 잉부량절이사지) / 이단하(李端夏, 1625年(년)~1689年(년), 외재집(畏齋集).
一匹麻絲細織成(일필마사세직성) 한필의 삼실(마실)로 가늘게 짜서 만들어,
諸君遠寄表深情(제군원기표심정) 여러분들께 멀리 보내며 깊은 情(정)을 表(표)하도다.
襴衫新制催刀尺(란삼신제최도척) 난삼을 새로 만들고자 衣服(의복)에 재봉을 서두른다.
庶稱先人錫以名(서칭선인석이명) 先人(선인)들도 고운 삼베의 명성에 稱讚(칭찬)이 자자하였다.
其二[기이]
憐渠北海八梢魚(련거배해팔초어) 北(북)녘 바다에서는 八梢魚(팔초어)를 어여삐 여기며
帶得漁郞塞下書(대득어낭새하서) 漁父(어부)가 取(취)하게 된, 邊方(변방)에 내린 글월이라네.
歸我宗家薦祠廟(귀아종가천사묘) 宗家(종가)에 돌아온 나는 祠堂(사당)에다 올리고,
歸我宗家薦祠廟(귀아종가천사묘) 여러 儒生(유생)에게 情(정)을 담아 膳賜(선사)하니 무엇이 이만한 게 있으랴.
9) 江陵(강릉) 고을원이 魴魚(방어)와 白文魚(백문어)를 보낸 恩惠(은혜)에 謝禮(사례)하며 2首(수)를 짓는다.[謝江陵倅惠魴魚及白文魚二首[사강능졸혜방어급백문어이수] / 이현석(李玄錫:1647年(년)~ 1703年(년), 유재선생집(游齋先生集), 시은록(市隱錄)은 庚午(1690年(년) 以後(이후)에 記錄(기록)한 것이며(以後所錄;이후소록) 문소록(聞韶錄:문소록)은 壬申年(임신년)(1692年(년) 春川府(춘천부) 任所(임소)에서 記錄(기록)한 것이다.(壬申在春川府任所時所錄:임신재춘천부임소시소녹).
食魚何必要河魴(식어하필요하방) 물고기를 먹는데는 하필 하수의 魴魚(방어)가 요긴하다지만,
川鯽溪鰌摠可嘗(천즉계추총가상) 河川(하천)의 붕어나 시내의 미꾸라지 모두 맛나다.
承貺忽思頳尾諷(승황홀사정미풍) 이어 선사하다 갑자기 생각하니 붉은 꼬리 언저리를 보며,
老陶歸計十分忙(노도귀계십분망) 늙어 故鄕(고향)에 돌아갈 計劃(계획)에 어수선히 바쁘네.
峽守今朝不殺猪(협수금조부살저) 오늘 아침 골짜기에 머문 돼지를 잡지 못했는데,
盤中喜得八梢魚(반중희득팔초어) 소반 위의 八梢魚(팔초어)를 보니 즐겁구나.
全身白質文爲號(전신백질문위호) 온몸이 흰 바탕이라 부르게 된 이름이 문(文)이로다.
笑汝虛名政類余(소여허명정류여) 우스운 너의 虛名(허명)(헛된 이름)이지만 벼슬아치 무리와는 다르다네.
10) 간성포 마을[杆城浦村] / 박윤묵(朴允默, 1771年(년)~1849年(년).
盡日路沿滄海濱(진일노연창해빈) 盡終日(진종일) 滄海(창해) 물가 길을 따라.
棠花無數雨餘新(당화무삭우여신) 무수한 海棠花(해당화) 비온 뒤 새롭구나.
日氣甚暄 海棠當秋又發(일기심훤 해당당추우발) 날씨가 매우 따뜻하고 海棠花(해당화)가 가을인데도 또 꽃을 피운다.
蹄鳴沙浦難行馬(제명사포난항마) 말굽소리 울리는 모래 바닷가는 말이 다니기 어렵고,
耳慣風濤不怕人(이관풍도부파인) 바람과 큰 물결소리가 귀에 익어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曬網踈籬千細目(쇄망소리천세목) 성긴 울타리에 그물을 햇볕에 말리는데 數(수)많은 가는 그물구멍 위에,
掛魚層架八梢身(괘어층가팔초신) 層層(층층)이 얽어 매달린 물고기, 여덟 개 긴 다리를 가진 몸이구나.
文魚謂之八梢魚(문어위지팔초어) 文魚(문어)를 八梢魚(팔초어)라 한다.
可憐漁箭塩盆處(가련어전염분처) 소금 굽는 곳, 어살에 잡혀 가련하다.
空有遺基稅及民(공유유기세급민) 공허한 옛터에는 稅金(세금)과 百姓(백성)만이 있다네.
11) 어채명색(漁採名色) 물고기 잡는 方法(방법) / 萬機要覽(만기요람) 1808年(년).
大槪(대개) 어채(漁採)의 명목(名目)이 세 가지가 있으니, ‘어장(漁場)’, ‘어조(漁條)’, ‘방렴(防簾)’이다. 발[簾]을 設置(설치)하는 것을 防簾(방렴)이라 이르고, 배를 두는 것을 漁條(어조)라 이른다.
어장은 바다에는 대구(大口)ㆍ청어(靑魚)ㆍ문어(文魚) 등의 어장이 있고, 강에는 강어휘리장(江魚揮罹場)이 있었다. 방렴 또한 강과 바다에 따라 다른 名稱(명칭)이 있는데 바다에 있어서는 염(簾)이라 하고, 江(강)에 있어서는 전(箭)이라 한다.
어조(漁條)는 오직 바다에만 있는 것인데 또한 어기(漁基)ㆍ망기(網基 그물치는터)ㆍ온돌(溫堗)ㆍ통발[扈桶]ㆍ토전(土箭)ㆍ망선(網船)ㆍ휘리(揮罹) 등의 이름이 있고, 망(網)에도 또한 면휘망(綿揮網 무명실로 뜬 후릿그물)ㆍ면변망(綿邊網 무명실로 가장자리를 뜬 그물)ㆍ큰 그물[大罟]ㆍ갈망(葛網 칡으로 뜬 그물)ㆍ행망(行網)ㆍ주박(注泊 고삭망(槀索網)으로 조수(潮水)의 진퇴(進退)하는 곳에 환포(還布)하는 것)의 稱號(칭호)가 있어서 한결같이 그 장소[基址]의 편리함과 그렇지 못한 것과 어리(漁利)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等數(등수)를 나누어 稅金(세금)을 定(정)했다.
어장(漁場)은 청어휘리(靑魚揮罹)가 15냥, 세망(細網)이 5냥, 문어(文魚)ㆍ강어장(江魚場)에서는 모두 5분의 1을 세로 거두어들인다. 그 이익의 많고 적은 것을 計算(계산)하여서 돈으로 稅(세)를 받아들였다.
12)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答(답)하다. / 이색(李穡 1328年(년)~1396年(년).
用兵同鷙鳥(용병동지조) 軍隊(군대)를 부릴 때는 鷙鳥(지조)를 연상시킨다면,
掃賊似羊群(소적사양군) 敵(적)을 掃蕩(소탕)할 땐 猛虎(맹호)가 羊(양) 떼를 襲擊(습격)하듯.
一境皆承蔭(일경개승음) 한 境內(경내)가 그 그늘에 依支(의지)함은 물론이요.
三韓共揖芬(삼한공읍분) 三韓(삼한)이 모두 그 功績(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
日生天接海(일생천접해) 해가 떠오르나니 하늘이 바다에 잇닿았고,
山近樹浮雲(산근수부운) 山(산)이 가깝나니 나무가 구름에 떠 있는 곳,
偃革今茲兆(언혁금자조) 戰爭(전쟁)을 終熄(종식)할 契機(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
來魚號曰文(내어호왈문) 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
[注(주)1] 軍隊(군대) 지조(鷙鳥)를 聯想(연상) : 萬般(만반)의 準備(준비)를 갖추고 愼重(신중)하게 機會(기회)를 살피다가 한 번 攻擊(공격)하여 敵(적)에게 致命打(치명타)를 加(가)한다는 말이다. 지조(鷙鳥)는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猛禽)을 말하는데, 《육도(六韜)》 발계(發啓)에 “鷙鳥(지조)가 攻擊(공격)할 때에는 먼저 낮게 날면서 날개를 거두는 法(법)이다.[鷙鳥將擊 卑飛斂翼:지조장격 비비렴익]”라는 말이 나온다.
[注(주)2] 戰爭(전쟁)을 …… 문(文)이로구려 : 무비(武備)를 그만두고 文敎(문교)에 重點(중점)을 둔다는 뜻의 ‘언혁상문(偃革尙文)’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表現(표현)한 것이다.
13) 이양구가 보낸 바다의 맛좋은 飮食(음식)에 사례하며[謝李養久惠海味:사리양구혜해미]/ 이득윤(李得胤:1553年(년)~1630年(년).
二脚文魚卅箇蔘(이각문어삽개삼) 文魚(문어) 다리 두 個(개)는 三十個(삼십개)의 人蔘(인삼)과 같고,
題封遠寄意何深(제봉원기의하심) 題目(제목)을 써 封(봉)해서 멀리 보낸, 깊은 뜻 담겼구나.
白頭病客元無取(백두병객원무취) 白髮(백발)의 病(병)든 나그네 본디 取(취)할 것이 없으니,
賴是從前許寸心(뢰시종전허촌심) 이제까지 이런 것에 依支(의지)하며 마음속 작은 뜻 許諾(허락)했다네.
14) 題晩谷絶筆稿:[제만곡절필고] / 后溪集卷之五(후계집권지오) 풍양(豐壤), 조유수(趙裕壽: 1663年(년)∼1741年(년).
斷爛溪西草(단난계서초) 빛이 끊어진 시내의 西(서)쪽 풀숲에,
人詩恐並亡(인시공병망) 사람들이 詩(시)를 읊다 두려워 모두 逃亡(도망)가네.
梵文魚未卞(범문어미변) 佛經(불경)에선 文魚(문어)가 法道(법도)가 아닌지라,
仙字蠧偏傷(선자두편상) 선자(仙字)의 한쪽에 나무좀이 傷(상)하게 만든 것이리라.
有妾能裒拾(유첩능부겁) 번갈아 모을 수 있는 妾(첩)이 있다고,
其誰爲表章(기수위표장) 그 누가 표창 하겠는가?
佛恩如欲報(불은여욕보) 부처의 거룩한 恩惠(은혜) 갚고자 한다면,
玆稿盍看詳(자고합간상) 이에 원고를 어찌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랴.
15) 終南山(종남산)에 寓居(우거)하는 집에[終南寓舍] 鄭林塘(정림당)(惟吉(유길)이 찾아와(鄭林塘 (惟吉)來訪) 詩(시)로써 私禮(사례)하며(詩以謝之) / 송인수(宋麟壽,1487年(년)~1547年(년), 규암선생문집(圭菴先生文集).
玉人乘月訪幽居(옥인승월방유거) 아름다운 이가 달밤에 외딴집을 찾아와,
柴戶推來樹影疏(시호추내수영소) 나무 그림자 통해 사립문 밀고 부르네.
邨釀暫開千日酒(촌양잠개천일주) 시골에서 빚은 千日酒[천일주:빚어 담근 지 千日(천일)만에 마시는 술)]를 잠시 열었는데,
盤肴偶得八梢魚(반효우득팔초어) 우연히 얻은 소반 위의 안주가 八梢魚(팔초어)구나.
狂詩不用傳驚俗(광시부용전경속) 광시(狂詩)를 쓰지 않으니 世俗(세속)을 놀라게 했다 傳(전)하며,
淸話方知勝讀書(청화방지승독서) 맑고 좋은 말을 사방에 알리는데 讀書(독서)가 最高(최고)라 하네.
明日送君山下路(명일송군산하노) 來日(내일) 山(산) 아래 길로 그댈 보낸 後(후)면,
小齋寥落似逃虛(소재요낙사도허) 쓸쓸한 오막살이 도허(逃虛)와 같으리.
[注(주)] 도허(逃虛) : 虛(허)의 世界(세계)로 달아남. 道家的(도가적) 意味(의미)로 隱遁(은둔)하여 道(도)를 닦음을 比喩(비유).
16) 팔초어[八梢魚] 문어(文魚). / 김려(金鑢: 1766年(년)~1822年(년).
文魚(문어)를 잡을 때에 이곳 사람들은 깊은 밤에 소나무 횃불을 들고 바다 안쪽을 따라 물이 얇고 돌이 많은 곳까지 몰이를 한다.
그리고 이곳에 불을 비추면 文魚(문어)들이 모두 돌밑 돌 위에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고지[鰝(魚+虒)][호(어+사)]는 부처를 닮아, 文魚(문어)와 비슷하고 스님 낙지(僧絡蹄)와 비슷하며 고승(高僧)과도 비슷하다”고 하는데, 그 말들이 아주 재미있다.
고지는 쇠작살로 찔러서 잡기 때문에 文魚(문어)를 잡는 사람들도 잡을 수 있다. 산채로 썰어 먹거나 조리해 먹거나 포를 만들어 먹거나 모두 맛있다고 한다. [土人捕八梢魚者 夜深持松明火 遵海隩至水淺石多處照之 則魚皆坐水底石上而眠 土人言鰝(魚+虒)似佛 文魚似僧 絡蹄似闍梨 語極好笑 以銕叉刺而獲之 故捕八梢魚者 有時而得鮮食 或胞或膎 皆佳云: [토인포팔초어자 야심지송명화 준해오지수천석다처조지 칙어개좌수저석상이면 토인언호(어+사)사불 문어사승 락제사도리 어극호소 이철차자이획지 고포팔초어자 유시이득선식 혹포혹해 개가운]
膎=포해字(자)1. 포 (脯 ) 2. 고기 3. 익힌 飮食(음식).
<우산잡곡(牛山雜曲)> “문어롱영(文魚弄影)‘’ / 김려(金鑢).
夜靜谿沉月色微(야정계침월색미) 밤은 고요하고 계곡엔 달빛이 희미하니,
鰝蹄弄影閙苔磯(호제농영료태기) 文魚(문어)가 요란스레 이끼 낀 바위에 그림자 흔든다.
村丫錯認情僧到(촌아착인정승도) 漁村(어촌) 계집이 정분난 땡중이 온 줄 알고서,
忙下空床啓竹扉(망하공상계죽비) 황급히 寢牀(침상)에서 내려와 사립문을 열어주네.
◯ 김려(金鑢)는 1766年(년)(英祖(영조) 42年(년)~ 1822年(년)(純祖(순조) 22), 朝鮮後期(조선후기)의 文人(문인)으로 樂府詩(악부시)의 大家(대가)였으며, 전이라고 憑藉(빙자)한 短篇小說(단편소설)을 지어 不虞(불우)한 人物(인물)의 行跡(행적)을 敍述(서술)하기도 하였다.
강이천(姜彝天)의 비어사건(飛語事件)에 緣坐(연좌)되어 1797年(년) 富寧(부령)으로 流配(유배)當(당)했고, 1801年(년) 辛酉死獄(신유사옥)에 連累(연루)되어 鎭海(진해)(昌原市(창원시) 鎭東面(진동면)으로 移配(이배)되어 10餘年間(여년간) 歸養(귀양)살이 했다. 晩年(만년)에 아들의 努力(노력)으로 1806年(년)에 流配(유배)에서 풀려나 咸陽郡守(함양군수)로 있다가 56歲(세)에 世上(세상)을 떠났다.
김려(金鑢)는 自己(자기) 시(詩)에서 버림받고 賤待(천대) 받던 最下層(최하층) 百姓(백성)들의 生活(생활)에 깊은 關心(관심)을 가지고 銳敏(예민)한 感受性(감수성)과 氣質(기질)을 바탕으로, 그들의 아름답고 高尙(고상)한 精神世界(정신세계)를 그림으로써, 우리의 詩歌文學(시가문학)을 더욱 豐富(풍부)히 하는데 寄與(기여)하였다.
金鑢(김려)가 留宿(유숙)하고 있던 鎭海縣(진해현)(昌原市(창원시) 鎭東面(진동면)의 집에는 자그마한 고깃배 한 隻(척)이 있었는데, 이에 依據(의거)하여 고기들의 생김새, 習性(습성), 用途(용도), 그 이름의 由來(유래) 等(등)에 對(대)하여 쓸 수 있었다. 驚異(경이)로운 魚類(어류)의 世界(세계)에 對(대)한 知的(지적) 好奇心(호기심)으로 ‘牛海異魚譜(우해이어보:180 1年(년)에 朝鮮後期(조선후기)의 學者(학자) 金鑢(김려)가 쓴 魚譜(어보)’를 著述(저술)할 수 있었다.
또한 ‘牛山雜曲(우산잡곡)’의 境遇(경우)처럼 한 地域(지역)의 特異(특이)한 魚類(어류)들을 集中(집중) 照明(조명)하여 시재(詩材)로 삼은 것은 以前(이전)에는 前例(전례)가 없었던 素材(소재)이며 漢文學(한문학)의 外延(외연)과 한시사(漢詩史)를 豐饒(풍요)롭게 만들었다.
첫댓글 이승철 <lsung8867@daum.net>금 2021-08-06 오후 6:44 ~ 양 선생님 참으로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항상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