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9. 8.18(일) 08;00-14;15
★코스; 옥수역-뚝섬한강공원-구리 한강시민공원-남양주 한강체육공원-남양주 한강공원 삼패지구-팔당대교-
하남시 미사리-고덕수변생태공원-광나루 한강공원-풍납토성 나들목-잠실철교 남단(50km)
★참가;사이클 동호회원 5명
★기온; 24도-29도, 미세먼지 좋음
-뚝섬 유원지-
서울은 산과 구릉을 끼고 있고 도심 한복판에 한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달리는 두바퀴는 서정적이다. 이번 라이딩은 옥수역에서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팔당대교, 미사리를 거쳐 잠실철교 남단에 이르는 코스로 대략 50km이다. 햇빛이 가장 강한 오후 1시부터 4시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서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코스는 남양주 수석동 고개와 구암정에 이르는 오르막길 구간을 제외하고 순탄한 길이다. 그리고 코스 주변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 문화유적지가 분포해 있다.
옥수역에서 중랑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응봉산(鷹峰山)이 보인다. 응봉산(81m)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매 사냥터였다. 예로부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고 응봉산 봉우리 밑 선돌 부근에 자연 낚시터가 형성되어 조선시대에는 입석조어(立石釣魚)라 하여 경도십영(京都十詠)의 하나로 불리웠다. 최근에는 야경과 일출의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SBS 드라마 '엔젤아이즈', '괜찮아 사랑이야'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응봉산 남쪽 성동구 옥수동 한강 연안의 두모포(豆毛浦)에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빙고터와 사한단터가 남아있다. 중랑천을 건너면 서울 숲으로 이어진다. 서울 숲은 개원 이전까지는 뚝섬이었다. 뚝섬은 임금의 사냥터, 군 검열장, 상수원 수원지, 골프장, 경마장, 체육공원 등으로 활용되어 왔다. 서울 숲은 마포구 월드컵공원(100만평), 송파구 올림픽공원(50만평)에 이어 서울에서 세번째로 큰 공원(18만평)이다. 영동대교를 지나면 청담대교와 뚝섬 한강공원이 나온다. 뚝섬 한강공원 이전에는 뚝섬 유원지로 유명했던 곳이었다.
뚝섬 유원지 부근에 잠실나루가 있었다. 한자로는 잠도진인데 독백(禿白)이라고도 하였다. 효종 때에 수세소(收稅所)를 설치하였고 조선 후기 경강상인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강 상류의 목재가 물길로 많이 운반돼 왔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낭만과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윈드서핑, 수상스키, 모터보트 등 수상스포츠가 인기다. 천호대교를 지나면 광진교에 이른다. 광진교는 한강에서 두번째 건설된 교량이다. 광진교는 천호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서울시 도심과 천호동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광진교가 위치하고 있는 광나루는 옛날부터 충무를 거쳐 동래로,또는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에 있는 유명한 나루터였다. 광진교에서 구리시 방향으로 가면 아차산성이 나온다. 아차산성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축조된 백제의 아단성으로 백제 왕성인 몽촌토성을 방어하는 전진기지이다. 475년 고구려군 3만명에 의해 7일만에 백제 왕성이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재위 455-475, 21대왕)이 붙잡혀 죽은 곳이 이 산성 밑이다. 그리고 온달장군이 실지회복을 위해 출정해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차산성은 삼국 항쟁기에 각별한 방어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남편 온달장군의 주검을 거두기 위해 천리길도 마다치않고 달려온 고구려 평강공주의 슬픈 사랑노래가 한강을 따라 천 여년을 흘러보낸 곳이 아차산성이다. 구리 한강시민공원과 강동대교를 지나 왕숙천 미음교를 통과하면 남양주 수석동으로 들어선다. 수석한강공원을 지나면 미음나루 음식문화특화거리가 나온다. 입맛을 사로잡는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수석동 고갯길은 짦은 거리이지만 헐헐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고개 정상 부근에 수석리 토성이 있다. 수석리 토성은 한강 옆에 낮은 구릉(해발84m)에 위치하여 한강을 건너는 나루를 지키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토성이다. 이 토성은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축조되었으며, 한강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는 봉화를 올리는 통신기능을 지녔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석리 토성에서는 아차산, 이성산, 남한산, 천마산, 수락산과 마을 앞의 나루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석동은 고산 윤선도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고산 윤선도의 양부 윤유기는 한양과 해남의 대저택 외에 경기도 양주(남양주시 수석동)에도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윤선도는 어렸을 때부터 양주에 위치한 별장을 자주 왕래했고 거주하기도 했다. 양주의 별장은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추억 서린 공간이었다. 고산(孤山)이라는 윤선도의 호 또한 별장이 있던 양주에서 비롯되었다. 한강 주변에 위치한 이곳은 홍수가 나 강이 범람하면 사면이 물에 잠기곤 했는데 유독 '퇴매재산'만 우뚝솟아 남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물바다에 외로운 섬처럼 솟아있는 이 산을 가리켜 고산(孤山)이라고 했는데 윤선도는 이 고산이 세상의 비난과 비방에 맞서 홀로 선 자신의 고고한 기상은 물론, 외롭고 고독했던 자신의 인생과 닮았다고 해서 자호(自號)로 삼았다. 미사대교 쉼터에서 숨을 고른 후 한달음으로 팔당대교에 당도하였다. 팔당대교 쉼터는 바이커들로 붐비는 곳이며, 언제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팔당대교를 건너면 하남시로 진입한다. 한강을 중심으로 예봉산(678,8m)과 검단산(658,3m)이 마주보고 있다. 검단산은 하남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한성 백제시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으로 전해진다.
검단산 일대는 백제 시조인 온조왕 4년 이래 근고초왕 26년까지 무려 370년을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위례성은 검단산과 남한산의 북쪽 산줄기 가운데 '고골' 일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놓은 능터가 지금도 남아있고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묘도 있다.
수크령 풀숲 길을 달린다.
미사리 한강변 길섶에는 수크렁꽃이 활짝 피어 페달링을 멈추게 하였다. 이 수크렁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고사성어에 얽힌 유명한 풀이라고 하였다.
*그령(꾸부령, 암그령) :결초보은의 풀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위무자는 병이 들자 아들 위과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기 후처(위과의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위무자는 "후처를 순장하라"고 유언을 번복하였다. 위무자가 죽은 뒤 위과는 아버지의 첫 번째 유언에 따라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하였다.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진(晉)나라를 공격했고 위과는 왕명을 받들어 군사를 거느리고 진(秦)나라 장수 두회와 싸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위과가 위태로움에 처했을 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 매어 두회가 탄 말을 포함하여 적장들의 말이 묶어놓은 풀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 위과는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두회를 사로잡았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이며 왜 자기를 도와주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바로 위과가 재가시킨 서모의 아버지인데, 자기 딸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싸움터에서 풀을 묶어 두회가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고 말을 해 주었다. 이것이 "결초보은"이라는 고사성어의 해설이다.
어릴때 등하교길에 묶어놓고 친구 넘어뜨리던 수크령 풀
구리암사대교를 지나면 암사동 유적지가 있다. 암사동 선사 주거지는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집단 취락을 이뤄 살던 곳이다.
천호대교에 이르면 부근에 풍납토성이 있다. 풍납토성은 한강 주변에 있는 백제유적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성으로 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이 없는 평야지대에 고운 모래를 다지고 판과 판 사이에 흙을 다져넣어 11m 높이의 성벽을 쌓았다. 풍납토성에서 약 3km에 몽촌토성이 있다. 몽촌토성은 평지성인 풍납토성과는 달리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구릉을 다듬어 성을 구축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을 수도로 삼은 나라는 백제다. 서울은 백제의 678년 역사에서 약 500년(기원전 18- 475년) 동안 수도였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다소 힘든 라이딩이 될 것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라이딩 내내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대원들 모두가 흡족한 얼굴로 둥지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