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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영주 좌석리에서 시작되는 고치재에 첫모습은 어린시절 외딴 외가집을 찾아가는 그런 시골길 같다. 순흥면에서 좌석리·마락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 오르면 옥대리. 길 오른쪽으로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차례로 나타난다.700년 이상 살아오며 고치재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무들이다. 단산저수지를 지나 5㎞ 남짓 오르면 삼거리. 상좌석, 연화동 그리고 미락리로 갈라지는 좌석리의 중심이다.
좌석리에서 위좌석으로 오르다 보면 사과밭이 즐비하다. 연분홍빛의 사과를 주렁주렁 매단 가지가 도로까지 손을 내밀며 낯선 이방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정겨운 동네다. 사과밭에 앉은 집채만 한 바위가 보인다. 이름하여 앉은바위.‘좌석리’라는 마을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올리는 바위다.
삼거리에서 고치재 쪽으로 좀더 오르면 갈림길. 왼쪽이 연화동, 곧장 가면 고치재다. 연화동에는 두개의 예쁜 폭포가 있다. 마을 구경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치재로 향한다.
연화동 갈림길부터 울창한 숲길을 따라 고치재로 오른다. 거의 정상부근까지 포장이 되어 승용차도 쉽게 오르는 길이다. 차창을 열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길이 너무 좁아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길 옆으로 흐르는 풍경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아차’하면 사고가 나겠다 싶어 아예 차를 한편에 세워놓고 내렸다.
길섶에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몸을 흔든다. 나무 끝에 매달린 파란 하늘까지. 정말 아름답다. 굽이치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나도 한 마리 다람쥐인 양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저 밑에 두고온 ‘자동차’생각이 났다. 오늘처럼 차가 귀찮게 느껴질 때는 없었다. 되돌아 내려와 다시 차를 몰고 천천히 고치재를 올랐다.
비포장도로를 한 10여분 달렸을까. 껑충한 장승들이 반겨주는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해발 760m의 고치재 정상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으로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하는 곳이다. 그런 연유로 여기엔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함께 모셨다는 ‘국사서낭당’이란 조그만 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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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 안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산신은 단종 임금과 금성대군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영월에 유배됐을 때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은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금성대군의 밀사들은 단종 복위를 꿈꾸며 영주와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인 고치재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관노의 밀고로 복위운동은 물거품이 되고 단종은 영월,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복위운동의 근거지였던 순흥도호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꿈을 품고 이 험한 길을 다녔던 단종의 밀사들도 고치재에서 이마의 땀을 식혔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고치재의 단풍에서는 서글픈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고개를 넘어 마락리로 향한다. 말이 떨어져 죽을 정도로 계곡이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려가는 길은 흙길이다. 차를 세웠다. 노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갖가지 노란색으로 물든 잎갈나무의 아름다움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소백산을 넘는 지름길로 방물장수나 봇짐을 짊어진 보부상들이 다녔지만 이제는 찾는 이가 없다. 가끔씩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들를 뿐.
마락 청소년야영장이 나타났다. 여기는 1991년까지 옥대국민학교 마락분교였다. 폐교가 되면서 청소년야영장으로 바뀌었다.1964년 개교한 미락분교는 1991년까지 27년 동안 14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계’표지석을 지나면 의풍리에 이른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속하는 마을이다. 여기서 우회전해 남대리를 지나 마구재를 넘으면 부석사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의풍1리 삼거리에서 오른쪽 비포장길로 10여분을 가면 영월 김삿갓마을이 나온다.
삼거리 왼쪽 길은 배틀재 넘어 단양으로 가는 길인데 무척 험하다. 의풍리에서 도계까지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까지가 고치재 여행의 종점.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역사의 아픔이 아직도 오롯이 묻어 있는 고치재 길의 늦가을 풍경은 남달랐다.
경북 영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석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손꼽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사찰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길을 10여분 걸어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에 이르렀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법’이란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가운데가 볼록한 기둥의 아름다운 선으로 유명하다. 여인의 치맛자락을 살짝 올린 듯한 지붕 끝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석사는 늦은 오후가 제격이다. 소백산을 넘어 온 노을이 은행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와 아늑한 절집에 내려앉으면 세상 시름도 잠시 잊게 된다. 운좋게 황금빛 노을을 무량수전 앞에서 본다면 금상첨화. 첩첩이 허리를 포개고 늘어선 백두대간의 황홀함에 빠지게 된다.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
영주의 선비촌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민속놀이와 다도, 붓글씨 등 선비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막걸리와 파전을 먹을 수 있는 토속음식점과 대장간, 한지, 도예품 등을 만드는 공방 등도 만날 수 있다. 입장료는 3000원, 주차료는 무료. 혹시 하루를 영주에서 묵고 갈 요량이라면 선비촌에서 머물 수 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문살 창호지를 간지럽히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2인 기준 2만원부터.(054)638-7114,www.sunbitown.com
영주에는 소문난 먹을거리가 별로 없지만 순흥묵집은 한 번쯤 찾을 만하다. 따뜻한 육수에 신 김치를 썰어 넣고 쫄깃쫄깃한 묵을 말아준다. 값은 4000원. 이밖에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다가 육수와 묵을 넣어먹는 ‘태평초’도 맛있다.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마음에 들 듯.1만 5000원.(054)632-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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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풍기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나오자마자 우회전해 첫번째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 부석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단산면 옥대리 삼거리에서 좌석리·마락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고치령 길이다. 좌석리 소백산 매표소를 지나면 고치령 옛길이 시작된다. 좌석리에서 고치령 정상까지는 약 5㎞, 정상을 넘어 마락리까지는 4㎞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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