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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우리 산 중에 억새와 생명을 같이하는 산이 하나 있습니다. 봄 여름 겨울 내내 등산객은 찾아보기 힘들다가 억새철만 되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지난해 산을 찾은 사람은 37만명. 대부분이 10·11월의 억새산행객입니다. 산 이름만 따진다면 아마 주목조차 받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삼순이’에나 비유할 만할까요? 생김새도 그리 볼품이 없답니다. 정상엔 눈길 끌 만한 거목이나 노거수는커녕 큰 나무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엔 지도에도 이름이 없었답니다. 하지만 가을이면 강원도의 수많은 산들을 뒤로 놓고 이 작은 산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줄을 섭니다. 정수리를 뒤덮은 30만평의 하얀 꽃물결을 잊지 못해서랍니다.
올해 벌써 억새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해마다 10월 중순은 돼야 억새를 볼 수 있었는데 9월말부터 솜꽃이 열렸답니다.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갔죠. 산아래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썰렁한 배추밭도 역시 그대로. 오랜만에 봤다며 마을 앞 구멍가게 아줌마가 돌배와 포도를 따주던 인심도 그대롭니다. 대신 등산로는 넓어졌습니다. 탐방로 난간도 설치하고, 정상에 관망하기 좋은 나무데크까지 만들었습니다.
배꼽같이 푹 꺼진 배추밭을 에돌아 눈길조차 줄 것 없는 산허리를 타고, 억새가 하나둘씩 나타나는 귀밑머리 능선을 거쳐 꽤나 벅찬 가풀막을 힘겹게 올라서면 정상. 다른 산들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푸르디 푸른데 정상은 억새로 환합니다. 봄 여름 겨울엔 ‘못난이산’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가을엔 누가 뭐래도 이 일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산입니다. 정상에는 시인과 화가가 주동이 돼 만들었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란 단체가 준 상패가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상패엔 못난이 억새산을 수상자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억새는 맑은 가을날 희게 흔들리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늘 높이 들어올립니다. 해마다 어김없이 이땅의 산과 들에 가을빛을 뿌려온 억새에 우리는 제3회 풀꽃상을 드립니다…’
억새를 자세히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참 신기합니다. 아마 억새는 빛을 빨아들이는 광섬유 같은 게 있나봅니다. 때론 은박지처럼 번쩍거리고, 저녁놀이 깔릴 땐 감귤 물이 든 듯 은은합니다. 생김새만 보면 ‘억새풀’인데 ‘억새꽃’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겁니다. 억새는 아무리 환하고 빛나더라도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가끔은 늙은 아버지의 허옇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같습니다. 여리고 여린 솜털 같은 억새풀을 보고 있으면 가슴까지 먹먹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억새를 두고 어린 망아지의 혼 같다고 했고, 어떤 시인은 새하얀 꽃상여의 행렬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억새밭 사이로 놓인 등산로는 가리마처럼 산마루 너머 건너편 산으로 흘러갑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우리 산들은 참 잘생겼습니다. 함백산, 태백산, 가리왕산…. 넉넉하고도 힘찬 강원도의 명산들이 눈앞에 쫙 펼쳐집니다. 하기야 좋은 산이란 자기 자신이 잘생겨야 될 필요가 있나요? 다른 산이 보기에 좋으면 그게 명산이지요.
자, 이제 눈치채셨나요? 오로지 억새를 위해 태어난 산. 바로 정선군 남면 민둥산입니다.
》길잡이
열차를 이용할 때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증산역 열차를 타면 된다. 오전 8시부터 대체로 2시간 간격으로 열차가 떠난다. 평일에는 6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전 8시25분 열차와 오후 11시 열차가 1편씩 증편돼 모두 8편 있다. 대부분이 무궁화호 열차로 3시간50분 정도 걸린다. 1544-7788. 철도역에서 증산초등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거리. 증산초등학교에서 정상까지는 4㎞ 정도로 2시간거리다. 자가용을 타고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IC(서제천IC)를 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오른쪽 영월 방면 38번 국도를 탄다. 영월까지는 지난해 왕복 4차선으로 포장됐다. 사북 방면으로 달리다 증산역에서 굴다리 밑으로 좌회전하면 민둥산 가는 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무릉2리 억새마을(능전마을) 앞에서 오르면 1시간10분~1시간30분 걸린다. 성수기 주말에는 주차하기가 힘든 것이 단점. 돌아올 때 38번 국도에서 제천 방향으로 빠질 때 ‘충주·단양’이란 이정표를 보고 빠져야 제천시내를 거치지 않고 외곽도로를 탈 수 있다. (지역전화번호 033)
》여행상품 & 맛집
자가용이 불편하면 여행상품을 이용해도 된다. 우리테마투어(733-0882, www.wrtour.com)는 11월6일까지 매주 수·토·일요일 당일 일정으로 민둥산 산행을 떠난다. 3만5천원. 등산로 아래 남면 무릉2리 억새마을(능전마을) 이강태씨집(591-1598), 이재국씨집(591-1768)에서 민박을 한다. 2만원 정도로 싸지만 욕실 등이 따로 없다. 정선군 남면엔 리버사이드(592-3326), 현대여관(591-1052) 등이 있다. 밥집은 정선 신동 예미리 외곽도로 앞에 있는 정선광장식당(378-5100)의 곤드레나물밥이 별미. 취나물과 비슷한 곤드레나물을 넣고 밥을 한 뒤 부추간장에 비벼먹는다. 5,000원. 정선 남면소재지에서 영월 방향으로 승용차로 40분이나 떨어져 있으니 산행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평창 미탄에 있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 촬영지(사진)는 민둥산에서 1시간거리.
〈정선|글 최병준·사진 김영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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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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