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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동초 밀려나와 아우성…속살이 간지러운 다랑논 | |
이병학 기자 | |
나른한 햇살에 늦겨울 찬 바다도 맥이 풀렸다. 따사로운 남해 금산 산비탈, 층층이 쌓인 다랑논·밭에선 푸성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새로 돋아 아우성이다. 바구니를 밀고 가는 할머니의 손길이, 이 근질근질한 비탈밭을 다스린다. 은근히 긁어주고 돋워줄 때, 맨살로 자지러지며 봄 향기를 내뿜는 건 냉이·쑥·동초(유채) 들이다.
남해안 바닷가 마을엔 벌써 봄 향기가 어지럽다. 맵고 사나운 겨울 바람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도, 오목볼록 이어지는 해안선을 둘러보는 동안 스르르 풀릴 듯하다. 찾는이가 적어 한적하기 그지없는 바닷가 마을로 간다. 봄빛말고도 볼거리·느낄거리가 널린 동네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良阿里). 남해도에서도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금산(錦山)의 남서쪽 자락의 마을로, 금산과 함께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굽이치는 해안선 비탈길을 따라 차를 몰면, 할머니 품속 같기도 하고 겨드랑이 같기도 한 아늑한 포구들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여수 쪽에서 오는 물과 앵강만 물이 나뉘는 곳이어서 양아리가 됐다고도 하고, 옛날 임진강가의 양아리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마을 이름을 그대로 썼다고도 전한다.
우묵한 골 안에 들어앉은 포구들의 생김새는 찍어낸 듯 서로 닮았다. 한 포구에서 언덕 하나 넘어가면, 언덕길도 다랑논도 논밭 사이의 구불구불한 산길도, 바다 빛깔도 빼닮은 또하나의 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을마다 몇 그루씩 자라고 있는 듬직한 느티나무 거목들도 같은 모습이고, 시월 보름 나무 아래 밥무덤에서 마을 동제를 지내는 것도 한가지다. 포구 풍경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돌담을 쌓아 일군 다랑논들이다. 다랑논으로 이름나기는 앵강만 건너편, 남면 가천리의 ‘다랭이마을’이지만, 양아리 일대의 비탈밭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파릇파릇 깔린 봄빛의 주인공은 마늘과 동초(겨울초·유채)·시금치·냉이 들이요, 밭마다 흩어져 움직이는 울긋불긋한 점들은 봄빛 더듬어 봄맛을 캐내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주민의 “팔십 파셴뜨가 할매·할배”인 고장이다.
다락밭에서 ‘겨울초’를 캐던 김복수(71)·박막달(〃)씨 부부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봄맛도 이런 봄맛 없을끼라예. 잘 따듬어 갖고 겉절이 해 잡사 보이소. 제초제도 한나 치도 않고, 노지재배를 해 노이깨내 맛이 참말 좋십니더.” 81가구가 사는 드므개마을은 지난해부터 농약·제초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부턴 양아리 전체 마을이 의무적으로 친환경농법을 쓰게 된다. 병해충은 논에 우렁이를 논에 넣어 없애고, 잡초 씨앗은 왕겨를 깔아 없앤다. 드므개마을은 지난해 가을 1만5000평의 다랑논에 유채씨를 뿌렸다. 4월껜 산비탈이 온통 노란 유채꽃밭으로 바뀔 전망이다. 다랑논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소량·대량·벽련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벽련마을 포구에서 배를 타면, 10분 거리의 섬 노도(삿갓섬)로 건너갈 수 있다. 노도는 조선 중기의 소설가 서포 김만중이 3년간 유배생활 뒤 생을 마친 곳이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섬에 갇혀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그를 보고 “노자묵자 할배”라 불렀다고 전한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지내는 지식인 유배자의 생활을 가리키는 것이겠으나, 서포는 여기서 놀고 먹지는 않았다. 병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노도에서 한글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써냈다. 노도는 중국의 진시황이 불노초를 구하러 보낸 ‘서불’이라는 사람과 ‘500명의 동남동녀’ 일행이 금산으로 오를 때 처음 도착한 섬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서불이 지나간 흔적을 표시했다는 고대 각석이 두모리에서 금산쪽으로 오르는 산기슭 바위에 새겨져 있다. 드므개 마을 옆의 소량마을은 ‘금연 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담배 필라카모 딴 동네 가가 피고 오소.” “105명 주민 중 담배 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올해 남해군 보건소에서 ‘금연 마을’로 지정했다. 상주 쪽에서 산길 돌아 넘으며 내려다 보는 포구 풍경이 아름답다. 소량 옆은 대량이다. 양아리의 가장 남쪽 끝 마을이면서 막다른 길 끝에 자리한 조용한 포구다. 차가운 선착장 바닥에선 큼직한 우럭과 돔들이 쾨쾨하면서도 고소하게 말라가는데, 맑고 푸른 파도가 다랑논 주름처럼 자꾸 밀려와 마을에 봄내음을 끼얹고 있다. ?남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황홀한 해안경치 보며 드라이브 볼거리·즐길거리
드므개 마을 봄맞이 농촌체험 행사=지난해 녹색 농촌체험 마을로 지정된 드므개 마을(두모리)에선 3월부터 도시민 가족을 위한 친환경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반농·반어촌인 마을에서 묵으며 온가족이 채소와 콩·옥수수 씨뿌리기, 유채 생육과정 관찰하기 등의 농촌 체험과 비단조개 캐기, 게 잡기 따위의 어촌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1㎞ 가량의 해안 산책로가 있어 바다와 노도쪽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드므개마을 배기준 이장은 “체험 행사는 철마다 프로그램을 달리해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며 “고향의 추억과 따뜻한 인심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 단체용 숙소 2개가 있어 40여명이 묵을 수 있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4곳 있다. 일부 집엔 방에 화장실·조리대가 딸렸다. 1박 3만원. 식사 5000원. 마을회관 (055)862-5863. 남해도의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들=남해군은 남해도와 창선도, 두개의 큰 섬과 딸린 작은 섬들로 이뤄졌다. 몇년 전 삼천포와 창선도가 다리로 연결되면서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해안 경치가 아름다워 섬 전체가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로 불리는데, 특히 앵강만 서쪽, 남면의 동남해안을 도는 두곡~홍현~가천 다랭이마을~선구리를 잇는 코스와 삼동면 지족에서 시작해 동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며 물건리~대지포~항도~초전~미조항에 이르는 해안경치를 즐기는 코스가 이름 높다. 창선도의 서쪽 해안을 따라 도는 창선·삼천포대교~창선교 코스도 둘러볼 만하다. 금산과 보리암=높이 681m의 높지 않은 산이나, 숱한 바위 절경과 빼어난 전망을 갖춘 명산이다. 본디 보광산이었으나, 이성계가 이 산에 와서 기도를 한 뒤 왕위에 오르자,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꿨다고 한다. 쌍홍문 지나 산 9부 능선쯤에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이 있다.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다. 고려시대의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북의 산줄기와 바다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주 해수욕장과 드므개 마을 들머리 사이 국도변의 상주 매표소가 산행 출발지다. 여기서 정상까지 4.6㎞, 왕복 4시간. 복곡 저수지 쪽으론 보리암까지 찻길이 나 있다. 이밖에 남해도의 둘러볼 만한 곳으로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이른바 지족해협에 펼쳐진, 물속에 발을 세워 고기를 잡던 옛 어업방식인 죽방렴, 다랑논과 암수바위 등으로 이름난 가천리 다랭이마을, 물건리 물건방조어부림, 관음포 이순신 전몰 유허지 등이 있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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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구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