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전이 건드린 트라우마 - 김형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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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떠올리기조차 싫은데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꼭 내가 당한 일이 아니더라도 목격한 것, 주변에서 일어난 상황이 마음의 화상(火傷)으로 남기도 한다. 평소에 옷깃 여며 잘 감추다가도 불현듯 삐죽 드러나 그 징그러운 흉터를 눈살찌푸리며 쳐다봐야 하는. 내게도 그런 기억이 많지만 하나는 1987년 6월에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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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3이었다. 자율학습 마치면 10시 반인데 시위가 벌어져 버스가 끊기면 방법이 없이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을 되뇌며 오늘날 동서고가도로가 놓인 번잡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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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부전역 근처였을 것 닽다. 누군가 악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홱 고개를 돌려 보니 낯익은 풍경이 시선에 잡혔다. 사복 백골단이 붙잡힌 대학생을 인정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이미 학생은 엎드려 있었는데 짓밟아도 그냥 짓밟는 게 아니라 점프를 하면서 내리꽂았고 걷어차도 대충 툭툭 차는 게 아니라 돌려차기로 학생의 몸뚱이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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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은 모르겠는데 부산의 이른바 ‘백골단’은 단순히 전경들에게 사복을 입힌 체포조가 아니었다. 30대는 넉넉히 돼 보이는 아저씨들이었고, 덩치도 확연히 컸다. 무술 경위들이다 깡패를 고용했다 말은 많았는데 그 정체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들의 폭력성은 정복 전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야차같은 백골단에게 학생이 걸린 것이다. 그는 때리면서 뭐라 뭐라 악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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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이 개새끼야. 그거 놔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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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칠 때마다 발길질이 날아갔다. 정복 전경들이 그러고 있으면 몰려와서 말려 줬을 주변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얼씬을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때에도 살기가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때리나 싶었을 때 학생이 뭔가 감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감쌌다기보다는 움켜쥐고 있었다. 이래도 놓지 않겠느냐며 계속 학생을 때리는 백골단을 보며 그 내용물이 뭔가를 자세히 봤더니 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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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몰라도 그게 중요한 것 같으면 이미 기진맥진한 학생 품에서 빼앗으면 될 텐데 백골단은 옆구리 등 머리를 골고루 걷어차며 “그거 내놔.”를 외쳤다. 즉 그는 항복을 바라고 있었다. 고통을 못이긴 사람이 울며불며 내미는 그것을 전리품으로 얻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학생은 액자를 그러쥔 채 실신해 버린 듯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백골단은 학생을 거칠게 헤집어 액자를 빼앗았다. 그건 다름아닌 박종철 학생의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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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박종철의 얼굴도 갈기갈기 찢겼다. 그걸 찢으면서 백골단은 욕설을 퍼붓고 학생을 밟아댔다. 마지막 자비인지 아니면 기절한 학생 들고 가기가 귀찮아선지 그는 학생을 그냥 두고 번잡한 쪽으로 총총 걸어가 버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엎드려 있던 학생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애타게 학생! 을 부르짖고 학생이 꿈틀하며 피 머금은 얼굴을 움직였을 때 나도 눈물이 나는 줄 알았다.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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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일상적인 80년대였고 학교에서도 어지간히 맞았고, 맞는 걿 봤지만 그렇게 심하게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저렇게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흔히 ‘때려죽인다’는 표현을 할 때, 그 전범(?)을 처음으로 보았다. 눈물이 났던 이유는 그래도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죽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실은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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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발길질은 내 인생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트라우마다. 이후 살아오면서 격앙된 순간. 물리력이 충돌할 위기에서 “그냥 박종철 초상화 줘 버리면 덜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비겁해졌다. 뭐 비겁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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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먹이 아니라 발을 드는 사람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한다. 하늘에 붕 떴다가 발 뒤꿈치로 사람 등을 내려찍던 백골단의 모습이 그린 듯이 녹화한 듯이 재연되기 때문이다.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하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박종철 초상화를 감싸안고 그 매를 감당하던 이가 떠오르고, 그 피칠갑 얼굴이 동동 떠올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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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을 자처했던 (공식 명칭이 아니었으므로) 아니면 누가 그렇게 불렀건 백골단은 그런 존재들이었다. 외신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을 붙잡고 “정말 저 사람들이 경찰이냐.”고 분노에 찬 질문을 하게 만들었을만큼 폭력적이고, 실제로 강경대부터 김귀정까지 생사람을 여럿 잡았던 폭력 범죄 경력 풍부한 이름이었다. 폭력으로 공권력을 상징했고, 끔찍한 주먹질과 능숙한 발길질로 시위대의 기선을 제압했던 명실상부한 ‘민중의 몽둥이’였다. 직접 맞지도 않았던 나에게조차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트라우마를 남긴 이름 모를 백골단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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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럴진대 그날 그렇게 곤죽이 되도록 맞았던 이의 트라우마는 오죽할 것인가. 모르긴 해도 그는 어디가 부러졌을 것이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어찌 그 날을 잊겠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악마처럼 굴던 날을. 그 폭력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다가 실신할 정도로 짓밟히던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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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트라우마를 대단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84학번. 그 시대를 살면서 ‘백골단이 뭔지 몰랐다’는 참으로 더 대단한 ‘정치학 교수’ 출신 김민전이 끄집어냈다. 솔직히 그가 끌고 나온 친구들은 왕년의 백골단은 커녕, 나도 어찌해 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졸렬하고 지질해 보였지만 그들이 뒤집어쓰고 나온 하얀 바가지를 보며 나는 기함했다. 그날의 트라우마가 등천을 하고 스톱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멈추지 않는 재생 화면으로 하루 종일 뇌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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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한다면 범죄인 건 당연히 알고, 누구든 그렇게 한다면 폭력 범죄로 콩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김민전 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안된다. 그냥 그러고 싶다는 것 뿐이다. 강경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쇠파이프질의 딱 반, 그리고 김귀정의 숨을 멎게 한 그 무지막지한 짓밟음의 딱 1/3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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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것까지도 필요 없다. 내가 봤던 백골단의 ‘날아 내려찍기’ 한 번만 맛본다면 김민전 의원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경부선 왕복 오체투지하며 사과하고 다닐 게다. 적어도 수만 명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식하고, 무모하게 찔러대다니, 도대체 저런 물건이 어떻게 박사를 하고 교수를 하며 애들을 가르쳤단 말인가.
첫댓글 요즘 일부 돈벌이 극우유투버들과 정치인들을 보면
연가시 라는 기생충이 생각 납니다,
숙주의 뇌까지 점령하여 모든 행동까지 통제 하다가
결국 죽게 만드는...
2024년에는 계엄을
2025년에는 백골단이라니?
국힘당의 사고방식은 독재와 유신과 계엄에 찌든 듯..
국힘당은 비정상적인 집단인 듯~
무술 유단자들을 모집공고해서 착출한 경찰공무원 으로 알고 있어유
그래서 날고 뛰고
백골 공주는 정권 사수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