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윈 곳간이 늘 문제였다 비우면 언젠가는 채워질 거라는 말은 꽃이 피면 다시 올 거라는 말처럼 헛된 것이라서 쓸쓸했다
날이 저물면 저녁이 찾아들 듯 날이 새면 어김없이 오르던 평사리 - 行 늙은 자동차도 길을 다 외워 차도 나도 편안했던 평사리 - 行 이십여 년
이젠 늙어 기다릴 사람도, 받을 기별도 더는 없어 빈 곳간들을 사람으로, 문장으로 채워놓고
내 언젠가는 최참판댁 솟을대문을 등 뒤로 두고 개치나루 쯤에서 나룻배 하나 얻어 타고 흐르듯 떠나가겠지
나는 늘 평사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이제 평사리가 나를 기다려도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평사리 - 出
- 시집 『다시, 평사리』 (애지, 2017) .......................................................... 전국적으로 평사리란 지명을 쓰는 지역이 여러 곳이다. 거제 여수 김제 경산 하동 등에 평사리가 있고, 한자로도 똑같이 ‘平沙里’다. 중국의 평사낙안(平沙落雁)에서 따와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평사리라 하면 ‘토지’의 무대가 된 악양들판과 섬진강줄기를 끼고 있는 하동의 평사리를 떠올린다. 그 평사리에 최참판댝이 있고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은 원주의 ‘토지문학관’이나 통영의 ‘박경리기념관’과 이름을 달리하여 공식적으로 ‘박경리문학관‘이라고 칭하는데, 구분하기 좋게 ’평사리문학관‘으로도 불린다. 하동이 고향인 최영욱 시인은 평사리 박경리문학관 관장으로 ‘이십여 년’동안 ‘날이 새면 어김없이’ ‘평사리行’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서 “살다보니 단 한 번도 예상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늘 그러리라는 예상은 맞아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 때문에 돈도 안 되고 사람도 안 된다는 시인으로 살아왔다”면서 “산다는 것도 쓴다는 것도 속절없어 쓸쓸했다”고 토로한다. 자신이 전망하고 기획한대로가 아닌 어쩌다 시인으로 살아가지만 ‘야윈 곳간이 늘 문제였다.’ 지난 주말 문학관에서 주최한 ‘토지시인학교’에 강사로 초청 받아 반갑게 최영욱 시인을 다시 만났다. 그가 꿈꾸는 ‘곳간’은 얼마간 헛헛했는지 몰라도 그가 베푸는 ‘곳간’은 언제나 그랬듯이 넉넉하기만 했다. 그리고 은은히 사람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번엔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짧지 않은 세월 박경리 문학이 녹아든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문학정신을 느끼면서 사람을 만나고 문학을 꿈꾸어왔던 만큼 어느 누구보다 선생의 삶과 문학이 체화된 삶을 살았으리라. 어제 쌍계사 대웅전 앞 동백 고목의 뿌리가 큰 바위와 뒤엉켜 경계 없이 한 몸으로 보인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수에 닿아 뒤엉켰을 것이다. 문학관에 세워진 박경리 선생 동상 뒷면에 새겨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구와 ‘케미’가 닮아있고, 문학관 해우소 벽면에 내걸린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란 시 ‘일 잘하는 사내’도 시인의 마음을 크게 일렁였을 것이다. 소설 토지의 등장인물 가운데 ‘구천이’가 있다. 구천이는 마음이 울적하고 무거울 때마다 뒷산에 올라 악양 들판을 묵묵히 내려다보곤 했다. 지금도 고소산성엔 ‘구천이소나무’가 있어 악양 들판의 ‘부부소나무’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최영욱 시인은 정이 참 깊은 사람이다. 그동안 하동과 평사리의 문학을 살찌우기 위해 불러들인 수많은 문인들과 문학인지망생 문학애호가들이 있다. 구천이처럼 형형한 눈으로 ‘늘 평사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이제 평사리가 나를 기다려도 좋지 않을까’ 싶다고 한다. 언젠가는 평사리 밖으로 나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땐 평사리가 최영욱 시인을 그리워하고 기다릴 게 분명하겠지만, 평사리가 이 터줏대감을 쉽사리 놓아줄 것 같지는 않다. ‘ 권순진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