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 수도미터의 위기, 스테인리스 전환으로 돌파구 찾아야
구리값·환율·인건비는 치솟는데 조달단가는 하락…제조업계 도산 위기
중국 제조사들 스테인리스 제품군 확대…재질 다변화와 조달제도 개편 시급
국내 수도미터 시장이 원자재 가격 급등과 조달단가 하락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 깊은 침체의 터널로 들어서고 있다. 90여 년간 황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도미터 제조구조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업계에서는 스테인리스 재질로의 전환과 공공조달 가격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 /서울시도 80-300미리 수도미터는 스테인리스로 구매하고 있다.)
구리 원자재 가격과 환율, 인건비가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달가격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제품을 납품할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에 놓였으며, 일부 업체는 경영난과 생존 위기까지 겪고 있다.
수도미터는 상수도 사용량을 측정하는 필수 계량설비다. 그러나 공공조달 시장에서는 납품가격 경쟁이 강조되는 반면, 소재의 내구성과 위생성, 유지관리 비용, 재활용 가치 등 장기적인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원자재는 급등, 조달가격은 하락…제조업계의 이중고
원자재 가격 자료에 따르면 구리 가격은 2017년 톤당 약 4,500달러 수준에서 2026년에는 약 1만5,500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환율 상승과 인건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황동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수도미터 제조원가는 크게 높아졌다.
반면 조달시장의 납품가격은 원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가 제시한 가격 사례를 보면, 과거 7만5,000원 수준이던 제품이 최근에는 4만5,000원 안팎으로 낮아지는 등 가격 하락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15㎜ 복갑습식 수도미터의 경우 과거 조달가격이 4만5,000원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3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디지털 수도미터 역시 과거 7만4,000원 수준에서 최근 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가격 하락이 단순한 시장 경쟁의 결과를 넘어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자재와 인건비가 상승하는데도 납품가격이 하락하면 기업은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는 연구개발과 품질관리, 숙련인력 유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업들이 과도한 가격경쟁을 벌여 낮은 가격에 입찰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업계는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공공조달의 평가구조에도 책임이 있다고 반박한다. 입찰에서 가격 배점이 품질과 기술 평가보다 크게 작용하면 기업은 제품의 장기적인 성능을 높이기보다 낙찰을 위한 가격 인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달가격 현실화는 특정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다. 안정적인 제품 공급과 계량 정확도, 위생 안전성, 사후관리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 기반의 문제다.
■ 중국 수도미터 기업들도 스테인리스 제품군 확대
이 같은 원가 압박과 소재 전환 요구는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수도미터 제조업체들도 스테인리스 소재를 적용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으며, 기계식 계량기에서 스마트미터와 초음파 계량기로 이어지는 제품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1958년 설립된 닝보수도미터그룹(Ningbo Water Meter Group·宁波水表集团)은 중국의 대표적인 수도미터 제조업체로, 기계식과 스마트 수도미터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시장에도 진출해 국제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싼촨즈후이(三川智慧)는 스마트미터와 초음파 계량, 원격검침 기술을 중심으로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산둥신취안 계기(山东新泉仪表)는 STS304·STS316 등 스테인리스 소재를 적용한 수도미터 제품군을 제시하고 있다. 바이레오(Byleo) 역시 스테인리스 케이스를 적용한 용적식 수도미터를 해외시장에 공급하는 업체로 거론된다.
이들 기업의 사례는 중국 수도미터 산업이 다양한 소재와 계량기술을 활용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스테인리스 생산 비율 자체보다 소재 선택의 폭을 넓히고, 제품별 특성에 맞춰 생산과 판매 전략을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황동 중심의 생산구조에서 스테인리스 제품을 병행하는 전략을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진/스테인리스재질의 소형수도미터와 부식이 심한 황동수도미터)
■ 서울시, 대형 수도미터 스테인리스 전환…소형까지 확대 검토해야
국내에서도 스테인리스 수도미터의 적용 사례가 있다. 서울시는 약 4년 전부터 80㎜에서 300㎜에 이르는 대형 수도미터에 스테인리스 제품을 도입해 구매해 왔다.
스테인리스 제품은 초기 구매가격이 주철 제품보다 2배 이상 높지만, 내식성과 재사용 가능성, 유지관리 측면은 물론 탄소중립,온실가스감축등 환경측면에서도 매우 유리하다. 따라서 서울시의 도입 사례는 초기 구매가격만이 아니라 사용기간과 자원순환까지 고려하는 수도행정의 한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사용 종료 후 제품을 의무적으로 회수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므로서 대형수도계량기의 재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면 자원순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회수된 수도미터를 세척하고 계량부 등 필요한 부품을 교체해 재사용할 수 있어 소재를 폐기하는 대신 다시 활용하는 순환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대형 수도미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소형 수도미터에서도 황동 제품과 스테인리스 제품의 성능과 경제성을 비교하고, 검증 결과에 따라 구매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자재 수급 불안과 국제 분쟁에 따른 가격 변동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소재를 다변화하면 특정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개발은 재촉하고 구매는 미루는 관수시장, 바뀌어야 한다
공공조달 시장의 또 다른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개발을 요구하면서도 개발 이후의 구매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기업들을 울리고 있다.(표사진/황동원료인 구리와 스테인리스의 원료 니켈의 국제시세 변화)
민간시장에서는 생산자와 구매자가 개발을 의뢰할 때 납품 시기와 구매량, 가격조건 등을 협의해 개발비 투자에 대한 위험을 줄인다. 반면 관수시장에서는 시범사업과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도 실제 구매 시기와 물량이 불명확해지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제조업체가 개발비와 시험·인증 비용을 부담하고도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공공기관의 요구에 맞춰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정작 시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기업의 연구개발 의지는 약해지고 새로운 제품의 시장 진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원격자동검침 수도미터도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3년 관련 제품의 개발을 요구했고, 업체들은 제품 개발과 조달 등록을 추진했다. 그러나 개발 이후 구매가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아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개발과 구매를 연결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공기관이 특정 제품의 개발을 유도할 경우에는 사전에 시범사업 규모와 평가 기준, 구매 가능 물량, 도입 일정 등을 최대한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시범사업 결과가 기준을 충족하면 실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불가피하게 일정이 변경될 경우에는 그 사유와 향후 계획을 기업에 설명해야 한다.
기술개발을 요구하는 행정과 구매를 책임지는 행정이 분리되면 개발비는 기업이 부담하고 정책의 성과는 시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공공조달은 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증된 기술이 실제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스테인리스 제품, 위생·환경 인증과 조달 기반 갖춰야
스테인리스 수도미터의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제품의 성능과 인증체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업계는 스테인리스 제품이 무연황동 제품과 마찬가지로 위생 관련 인증과 환경표지, 조달 등록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구매할 수 있는 제품군으로 일부 기업들은 구매 절차를 모두 완료한 상태이다.
현재 업계에서 제시하는 가격 비교에서는 스테인리스 제품의 가격이 무연황동 제품보다 약 15~20% 높다. 그러나 이 차이는 규격과 구조, 생산량, 가공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향후 황동 가격이 계속 상승한다면 상대적인 가격 격차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스테인리스 제품의 가격이 조만간 무연황동보다 낮아질 가능성은 높다.
K-water가 공급하는 충청권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스테인리스 수도미터를 적용 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새로운 소재를 검토하고 적용하는 움직임은 향후 시장 전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스테인리스 제품의 확대는 단순히 황동을 다른 소재로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위생 안전성과 내구성, 계량 정확도, 재활용 가능성, 장기 유지관리 비용측면에서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 최저가격 경쟁에서 장기 성능 중심 조달로 전환해야
수도미터 시장의 경쟁력은 얼마나 낮은 가격에 납품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확한 계량과 위생 안전성, 장기간의 내구성, 효율적인 유지관리, 안정적인 부품 공급까지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리와 황동 등 주요 원자재 가격과 환율, 인건비 변동을 반영할 수 있는 적정 조달단가 산정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 입찰 평가에서도 가격뿐 아니라 계량 정확도와 내구성, 위생성, 유지관리 비용, 사후관리 능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황동과 스테인리스 제품을 동일한 사용 조건에서 비교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장기 성능과 총생애주기 비용도 검증하여 이론적 바탕을 지자체가 구축할 필요가 있다. 신제품 개발과 시범사업이 실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발주기관의 구매계획과 평가 절차를 수평적 관계에서 개선해야 한다.
재질 전환은 모든 제품을 일시에 바꾸는 방식보다 규격과 사용환경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스테인리스 제품의 초기 구매비용이 높더라도 장기적인 유지관리와 회수·재사용 효과를 포함하면 경제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미터는 국민이 사용하는 수돗물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수도행정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기본 설비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조달가격이 하락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제조업체의 경영난을 넘어 품질과 공급 안정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황동에서 스테인리스로의 전환은 소재 변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가를 외면하는 조달구조, 개발을 요구하고도 구매를 미루는 관행, 최저가격에 치우친 평가체계를 함께 바꿔야 한다. 수도미터 조달의 기준을 ‘가장 싼 제품’에서 ‘장기간 안전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원자재 위기 시대 물관리 산업이 풀어야 할 과제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박남식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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