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삶을 위하여>
녹색은 청색과 황색을 합친 색인데 그 개념은 동서고금을 통해 매우 애매하다. 녹색은 청(靑)에서 황(黃)에 이르는 다양한 색을 포함하므로 가끔씩 청이나 황과도 혼동되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서 녹색을 띠는 것은 주로 초목의 잎인 데 그 잎은 청색에서 황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을 나타낸다. 푸른색을 의미하는 청(靑)이라는 한자를 파자하면 생(生)과 단(丹)의 2자를 조합한 것으로서 자라는 초목의 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녹색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녹색을 의미하는 북구계의 말 green(영어), grün(독일어) 등은 원래 “자란다(grow)”를 의미하는 말로서 자라는 풀의 색을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의 “harita”는 지형도(地形圖, topographical map)를 의미하는 말로서 녹색과 함께 황색도 의미하는데 이는 연한 녹색이 황색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색에서 황색까지 넓은 범위에 이르는 녹색은 인간에게는 초목의 색으로 인식되고 있어 녹색의 상징적 의미도 항상 식물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녹색은 인간에게 생명의 색이며 낙원의 색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 신의 몸체는 녹색이었는데 이는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막지대에 많은 이슬람의 모스크(mosque: 사원)에 녹색 타일이 많은 것도 황야의 주민들이 가지는 녹색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식물들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한대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항상 초목이 싹트는 봄의 도래를 갈망한다. 녹색은 생명의 부활과 성장과 번영의 색이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의 색채예술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십자가 색이 녹색인 것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론 악마의 몸이나 눈을 녹색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었는데 이는 악마의 상징인 뱀이 녹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명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녹색 숲을 거니는 것을 우리는 삼림욕이라고 한다. 그 삼림욕은 생명기운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사람들마다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그곳은 바로 생명의 색인 녹색으로 뒤덮인 곳이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촘촘히 온갖 화분을 놓는다. 그런 일 역시 생명의 기운인 녹색을 보고 즐기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 온난화가 문제되면서 전 세계는 녹색혁명이니 녹색경제니, 녹색기술이니 하는 녹색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도 그린 테크놀로지를 앞세워 녹색혁명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녹색성장과 관련해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팡팡 뛰어오르곤 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저탄소와 녹색성장을 주축으로 하는 그린경제의 길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하자 태양광 관련 주와 풍력관련 주들이 급등세를 보였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미 “녹색성장 주가 버블단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녹색경제는 비오펙 산유국(非OPEC産油國)의 원유생산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보이고 환경문제 악화로 저탄소사회를 요구하는 세계적 압력이 계속 커져가고 있으므로 그린뉴딜 트렌드(Green New Deal trend)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앞으로 10년간 그린에너지 산업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여 신규 일자리 5백 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도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60~80% 감축하겠다는 후쿠다(福田) 비전(Fukuda vision)을 제시하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기술개발과 제4차 기술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영국과 독일도 그린뉴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녹색경제가 문제되는 이유는 녹색경제야말로 사람이 제대로 숨 쉬고 사는 사회, 제대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사는 사회, 제대로 천명을 다하며 사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의 삶도 당연히 녹색의 삶으로 바뀌어 가야 할 것이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다. 누우면 편하다. 그러나 그 편한 길은 죽는 길이다.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편한 길은 모두 생존의 녹색 길이 아닌 죽음의 적색 길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당장의 몸은 편하다. 그러나 그 길은 건강을 해치는 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또 디지털 공간을 이용하지 않으면 당장은 편하다. 그러나 그 길은 갈수록 바보 멍청이가 되는 길이다.
녹색 인간이 되는 길은 부지런히 운동하고 책을 보고 최신 디지털 공간을 열심히 들락거리는 길이다. 우리 모두 녹색 삶을 위해 육신도 정신도 부지런히 업데이트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