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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우물
오종락
기억의 우물은 아무리 퍼 올려도 완전히 마르는 법은 없다. 오늘도 지난 시간들 속에 채워진 기억의 우물을 부단히 길어 올려 본다. 내가 경험한 기억을 떠올려 요모조모 살펴보고 글로 옮기며 다듬어 본다. 그러면 어설프나마 한 편의 수필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이렇게 하여 쓴 글이 백여 편이나 되어 간다.
내가 첫 습작을 발표한 후 이듬해 내 글이 실린 책이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인 지 어언 3년이 가까워진다. 2015년 상록수필 2호집을 발간할 때 일이다. 미혹한 나의 수필이 난생처음 활자화되어 상록수필이란 책의 한쪽에 자리 잡는다고 생각하니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시간이 지나 새해가 되자 편집위원들의 노고로 상록수필집은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어 발간되었다. 나에게 배분된 30권의 책을 수령하여 커다란 가방에 담으니 한가득 찼다. 갑자기 책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귀한 생일 선물을 받는 것마냥 기분을 몹시 고조시켰다.
무거운 책가방을 집으로 운반한 나는 수필집을 누구에게 먼저 선물할까 고민하면서 대상자 명단부터 적어보았다. 그다음 책 표지 안 쪽에다 정성껏 라벨을 붙인 후 선물할 준비를 해 두었다. 짬날 때마다 순번을 보며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은 후 책을 전달했다. 지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감사히 잘 읽겠다며 언제부터 그렇게 글을 쓰게 되었느냐고 묻곤했다. 아주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며 좋은 작품을 많이 기대한다며 격려해 주기도 했다.
상록수필집에 실린 나의 수필은 나의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려 쓴 회상 수필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옛 시절의 일들을 떠올려 글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기억의 우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두레박을 수없이 오르내리기를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미흡하나마 습작 수십 편을 얻게 되었다. 원고 제출에 앞서 그중에서 조금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필 3편을 골라 보았지만 흡족한 작품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마다 제출한 작품이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을 책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
기억이란 우물에 두레박질은 묘한 마력으로 작용했다. 그 옛날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주고 있었다. 수없이 기억을 되살리며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나의 유년의 기억들이 감쪽같이 되살아났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 뇌리에 깊숙이 묻혀 있던 일들이 하나둘 서서히 떠오르게 된 것이다. 가령 이런 현상과도 흡사하다고나 할까? 창문에 아무리 암막커튼을 친다고 하더라도 새벽의 여명을 완전히 막을 수 없듯, 기억이란 강력한 햇살이 두터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셈이다. 그런 후 드디어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재빨리 글로 옮기고 또다시 기억에 부채질하며 글로 옮기기를 반복했다. 뇌의 해마를 신나게 춤추도록 한 탓인지, 영원히 묻혀버릴 기억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내가 수필이란 글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 옛날 추억의 장면들도 다시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추억이 깃든 장소나 물건을 대하면 지난날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수필창작 글쓰기처럼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잔잔한 추억까지는 느껴보지 못할 것 같다.
수필창작을 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활자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다름없다. 지난날 내가 경험한 그때 그 일을 머리와 손끝으로 다시 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필창작의 길은 지난날 나의 작은 회고록이 되기도 했고, 한편으론 인생 후반기 나에게 다짐하는 자성록이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수필창작은 나의 삶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우물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보물 같은 “온고溫故를 길어 올려 이지신而知新”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서너 해는 주로 옛날 일을 회상하며 오래된 기억의 우물을 길어 올려 그것을 토대로 하여 글을 써왔다. 지금은 머지않은 과거나 최근에 일어난 색다른 경험들을 떠올려 글로 옮겨보고 있다. 또 거기엔 문학의 향기가 나도록 하는 의무감도 느끼게 된다. 문학에 숙맥인 내가 메마른 활자에 향내를 풍기도록 하는 작업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고상하고 그윽한 문학의 향료를 판매하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 향료는 자신의 머리와 손끝으로 생산하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몹시 어렵고 고단한 작업이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순 없다. 나의 든든한 우군友軍! 기억의 샘물은 오늘도 쉬지 않고 솟아오르며 나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누에가 아름다운 비단을 짜는 긴 실을 토해내듯, 기억이란 샘물도 영원히 마르지 않고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언젠가는 기억의 우물에서 누에처럼 은은한 향이 나는 한 자락의 예쁜 글을 뽑아 올리는 좋은 두레박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도 내 작은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 기억의 우물은 돌 틈 사이로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 순간 나의 기억은 고향집 우물가에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을 줍고 있는 가을 소년이 된다. (2018.11.18.)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
수필에 입문하여 습작을 거쳐 오늘날 성과를 거둔 과정을 솔직하게 서술하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렇더랍니다. 생각 속에만 가두어져 있는 그 옛날 일들이 컴퓨터 앞에 않아 말문만 트면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생각의 실마리가 줄줄 풀려 나오는 것이 신기합니다. 생각의 샘은 마르지 않는 샘물, 퍼 낼 수록 맑은 물이 다시 고이는 영원한 샘물이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어린 소년도 되고, 중년도 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오고, 하며 세월을 희롱하시는 오교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글을 쓰면서 잊혀졌던 지난날의 기억의 실타래가 풀려나오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 새벽에 혼자 눈시울에 젖기도하고, 얼굴에 미소도 지으며 자판기를 두드리는 내모습이 우습기도 했습니다. 기억의 우물은 잊혀진 것이 아니라 그냥 세월에 덮혀 가려졌을 뿐이었습니다. 오교수님 처럼 기억의 우물이 마르지 않고 더 성숙되고 향기로워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억의 우물'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런데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그 우물도 어쩌면 언젠가는 말라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수필창작은 활자가 그리는 그림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그 추억의 그림을 다시 현실처럼 느끼는 삶이 청량제가 되어 늘 새로운 삶을 추구해 나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나 온 삶을 그림 그리듯 시원하게 쓴 수필을
대할 때마다 저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향이 풍기는 글 잘 읽었습니다.
수필 창작에 임하는 바람직한 자세와 길을 제시해 주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게으르고 노력없이 연장 탓만 하는 제게 경종을 울려주기도 합니다. 두레박으로 기억의 우물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 멋진 글을 써 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멋진 우물을 갖고계신 오교수님 정말 부럽습니다. 오늘도 기억의 우물에서 맑고 아름다운 물을 퍼올려 주옥같은 아름다운 글로 승화 시키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물의 물은 퍼올리면 퍼올릴수록 맑은 물이 솟아나지만 퍼올리지 않으면 고인물은 썩을뿐 밖으로 넘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수필창작 문우들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화이팅 ~
오교수님의 진솔한 발자취를 옆에서 보아 공감합니다. 제가 느끼는것은 다양한 우물을 파는 모습이 늘 참신하였습니다. 울타리 밖에 무엇이 반드시 있다고 계속 넙보는 열정을 보고 있습니다. 대성하실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기억의 우물을 퍼 올려 쓰신 글이 백여편이 되셨다니 수필집 한 권 내셔야겠습니다.
습작의 과정과 고뇌가 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3년 동안 백여 편의 글을 쓰셨다니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쓰기는 기억의 우물을 퍼 올리는 작업임을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오교수님의 백여편 수필창작에 찬사를 드립니다. 기억우물의 두레박을 수없이 오르내릴때 물은 마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배움에 도움이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필의 소재가 기억의 우물속에 있군요. 두레 박만 던지면 언제나 한 바가지 퍼 올릴 수 있으니 참으로 부자십니다. 오늘은 두레박에서 어떤 소재를 퍼 올리셨는지. 비유에 재치가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기억의 우물 너무도 좋은 표현입니다. 저도 처음으로 저의 글이 책에 실려졌을때 일을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다분한 소질을 갇혀두었다가 세상에 나온겁니다. 우물은 퍼올려야만 새물이 생성됩니다. 자꾸자꾸 퍼올려 많은 작품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