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목마른 사슴과 같이 갈급해 한다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 경외한다는 것, 믿는다는 것 등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말씀의 신앙, 곧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좀 더 넓게는 따지고 보면 모두 하나 같이 다 말씀이 모든 중심이자 근본이 아닐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기도, 찬미, 헌신, 사명, 경배, 예배의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으로 우리들이 믿고 사모하는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이고,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갈급해 한다거나 사모한다거나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으로 더욱 몸부림치는 것인데 실상은 그것부터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누구나 하고 싶다고 아무렇게나 가능한 것이 아닌 것이며, 특히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모든 인생들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영적으로는 죄와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상태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졌으며 사실상 단절되어 있는 실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가장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법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전적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이자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둠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미움과 우상과 자기 소견과 온갖 불신앙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니라, 또는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들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든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을 주야로 더욱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이 따지고 보면 가장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면서 아래 본문과 같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갈급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치열하고 뜨겁게 사모하고 의지하며 경외하고 앙망하며 기뻐하고 맡기며 동행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이기에 그와 같은 방법들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갈급해 하고 몸부림치는 것만으로도 시편 1편 1~3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증거하고 있듯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더 나아가 그러한 말씀의 절정이자 종합이며 복합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특히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의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치유와 사함과 나음들, 승리와 복과 형통들, 평안과 영광과 부흥들 등이 실제로 다양하게 경험될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말씀의 신앙이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 등에 따라 얼마든지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도 강렬하며 기이하고도 풍성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42:1)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8월 2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