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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천성경
제1권 참하나님
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6)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① 참아버님이 걸어오신 복귀의 길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의한 것을 내가 잘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는 걸 알고,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용서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피가 터지더라도 해방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 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내 갈 길을 지켜 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138-358, 1986.1.24) p.152
통일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만약에 내가 ‘저놈의 자식 저거!'하며 분을 참지 못해 입을 다물고 ‘두고 봐라. 몇 개월만 두고 봐라.' 그러면 옥살박살되고 터져 나가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이상하지요? 그래서 혀를 깨물면서 내가 많이 참습니다. 내 입으로 저주를 못 합니다.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내가 내 입으로 저주를 할 수 없어서 입을 물고 있어도 그 원한을 다 하늘이 풀어 주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162-205, 1987.4.12) p.152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떤 전도부인이 통일교회에 죽자 사자 나오다가 내가 자기 역성대로 안 하니까 떨어져 나가서 ‘잘됐군. 하나님의 아들이 저 꼴이야?'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감옥에서 사라질 사나이가 아니야. 나는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할 것이다.'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그놈의 얼굴이. 요전에 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됐구나 했어요. 나는 그러고 사는 사람입니다.
5대 주권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지만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복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모르니까. 내가 한번 만나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다 하고 나서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118, 1990.7.1) p.153
선생님 자신은 이 땅에 올 때에 어떤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이 남겨진 아들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형제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부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모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한의 고개를 탕감하여 풀어 주는 자리에 섰습니다. (234-140, 1992.8.10) p.153
타위적(他爲的)인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타위적인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해 가지고 참사랑을 번식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커버하고 본향 땅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원수로서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사랑으로써 자연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자리를 못잡습니다. 내가 술수를 쓰려면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알았기 때문에 참아온 것입니다. 불같은 성격에 지금까지 40년 참자니 오죽했겠나? 하나님이 나보다 더할 텐데 오죽했겠나 이말입니다. (219-93, 1991.8.25)
한번은 내가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의 중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당신을 절대로 따르겠습니다.'하면서 돌아보니 또 그렇게 나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자리냐?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하나님의 자리를 주시듯이 이제 나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를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215-341, 1991.3.1) p.153
역사를 회고해 볼 때, 40년 전 선생님은 나라에 몰리고 기성교회에 몰리고 전부 몰려 광야에 쫓겨난 고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시 찾아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야 할 뜻을 앞에 놓고, 이 뜻을 이루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2차대전 이후 하늘편으로 확정해 놓은 승리적 기독교 문화권과 자유세계를 통치하는 미국의 기반을 다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습니다. 주인된 입장에서 이걸 잃어버린 비통함과 다시 40년 탕감복귀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이래 몇십만 년, 몇백만 년 걸려 가지고도 못한 인간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135-187, 1985.11.13) p.154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 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뒤넘이치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137-178, 1986.1.1) p.154
하늘땅의 사무친 원한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 나를 살려주소.'라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참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 비통한 사연을 그 누가 알았어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알아 주셨습니다.
아무리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만 레버런 문의 사상에 하나가 다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가라는 것이, 오늘날 해방권에 선 통일가라는 것이 싸구려가 아닙니다. 축복받았다는 패들이 움직이는 그 거동거리가 오늘날 악마의 사촌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145-332, 1986.6.1) p.154
내 싸움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이 부족하다 하고, 내가 서러워할 때 아버지께서 눈물 흘릴 것을 염려하면서, 내가 매맞는 자리에서 참기 어려운 비통한 자리에 설 때 하나님이 처참한 자리에 설까봐 염려하여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이를 악물고 내 눈물이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이 떨어질까봐 염려하고 울부짖고 원수를 갚기 위한 도상에서 선봉장으로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용자가 있다 할진대 그 용자 앞에 하나님이 백배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네 이름을 충신이라 할까, 네 이름을 효자라 할까, 네 이름을 열녀라 할까? 지상의 역사상에 어떠한 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너 이상 귀한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머리를 숙여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153-269, 1964.3.26) p.154
나 문총재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외롭지만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역사시대에 외로운 자리에서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곳을 저주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빌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했습니다. 그게 다른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인 시련 때문에 후퇴할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시련을 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죽겠다는 사나이가 개인적인 과정에서 항서를 쓸 수 없습니다. 비겁할 수 없습니다. 여편네가 반대해도 잘라 버렸습니다. 자식이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부모가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나라가 반대하는, 4천만, 6천만이 반대하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175-257, 1988.4.24) p.155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일생에 이것을 고치고 또 채워 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보면 선생님의 생애는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십니까?'하고 한번 물어 봐요. 선생님은 통곡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느끼면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비통함을 체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상에서 비참한 남자입니다. 그러한 고생을 누구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다 잘난 체하고 으스대고만 있지, 선생님의 고생을 모릅니다. 어머님도 모릅니다. (213-278, 1990.1.21) p.155
하나님이 6천 년 간 수고해서 남긴 공적을 다 잃고, 흥남수용소를 찾아간 선생님의 비통한 사연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땅의 미래의 소망으로서 해방의 민족이 되어 나를 환영하려 했던 그 무리가 구름속 지옥으로 꺼져 가는,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너희들은 꺼져 갔지만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가서 광명한 아침 해를 안고 너희들을 다시 찾아가서 해방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쇠고랑을 차고 소리를 지르던 그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려울 적마다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20-205, 1991.10.19) p.155
‘하나님, 당신은 이런 분이셨죠?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할 때 하나님이 손을 잡고 통곡을 하며 ‘어떻게 네가 그걸 알았느냐? 내 아들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하나님은 통곡을 하게 됩니다. 목을 놓고 통곡하는 그 음성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인연은 천년 역사에 연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눈물을 닦고, 곡소리를 그치고 ‘내 아들아!'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필요하고 딸이 필요한 하나님의 입장을 알아야겠습니다. (176-263, 1988.5.11) p.155
‘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 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도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어요.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193-73, 1989.8.20) p.156
神様の解怨と孝子の道
真の神様 第一章 神様の本体より抜粋
真のお父様が歩み来られた復帰の道
神様のみ旨を成し遂げてさしあげようと決意したことを私はよく知っています。神様の愛がこのような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ひざまずいて感謝し、許しの道を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人物です。血が吹き出しても解放の道を行かざるを得ない怨恨の神様だということを知る者はいません。私は拷問を受け、倒れそうな立場にあっても神様の前に祈祷をしませんでした。
私は追い回されましたが、私を助けてくださいと、神様の前に私の行く手を守ってくださいと、私を救ってくださいと祈祷するような人ではありません。私は男としての自分の余力をもっており、自分の気概をもっており、闘うことのできる自体力をもっている人間です。私の力が足りなくて意識を失い倒れたならば助けてくれるであろうから、それまでは自分の力で……。私が行く前に神様が先に準備して待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す。
統一教会に神様がおられます。神様がおられるのです。もし私が「あいつ!」と憤りをこらえられずに口を閉じて「今に見ていろ。何カ月かたったときには」と考えようものなら、めちゃめちゃになるのです。それを見ると不思議です。ですから私は舌をかんで我慢するのです。私の口で呪うことはできません。真の父母の名をもった私が自分の口で呪うことができずに唇をかんでいると、天がその怨恨をすべて解いてくれるのです。それを見ると、神様が愛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でしょうか。
西大門刑務所で……。統一教会に死を覚悟して通っていたのに、私がひいきにしてあげないので出ていった女性伝道師がいたのですが、その婦人が「ざまあみろ。神様の息子があのざまだ」と言いました。私は「監獄で消えるような男ではない。私は解放の世界に向けて跳躍するであろう」と言いました。その人の顔が忘れられません。以前悲惨に死んだというのを聞いてかわいそうに思いました。私はそのように生きている人なのです。この心に染み込んだ怨恨……。五大主権者が私にどのように対したか、みな知っています。しかしながら知らないふりをします。復讐しようとはしません。知らないからです。私が一度会って教えてや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すべて話してから清算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れでは先生自身は、この地に来るときにどんな立場に立つのでしょうか。神様の怨恨の心情をもって、息子として完成した愛で愛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兄弟として完成した愛で愛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夫婦として完成した愛で愛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父母として完成した愛で愛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を、愛することによってその恨の峠を蕩減して解いてあげる立場に立っているのです。
利他的なもの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神様が利他的な創造理想を中心として投入、投入、投入して真の愛を繁殖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こうすることによって天下をカバーして本郷の地へと帰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帰る時には怨讐だからといって足でけ飛ばすのではありません。これを愛することによって自然屈服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自然屈服しなければ神様が定着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それゆえ文総裁が……。私が手段、方法を使えば誰にも負けません。しかしそれを知っているがゆえに耐えてきたのです。火のような性格で今まで四十年我慢するのはどれほど大変だったでしょうか。神様は私以上であろうに、いかばかりのことでしょうか。
私が後ろを振り返ってみると、神様が私を抱き締めながら涙を流されたことがあります。「あなたは私の愛の中心です。私はあなたに服従します。あなたに絶対に従っていきます」と祈りつつ、振り返ると、そのように私を抱き締められるのです。その立場はどれほど偉大な立場でしょうか。神様が私にそのような神様の立場を与えてくださるように、今、私もそれと同じ神様の立場を皆さんに与えるのです。何のことか分かりますか。
考えてみてください。歴史を振り返ってみるとき、四十年前、先生は国に追われ、既成教会に追われ、すべてに追われて、荒野に追い出された孤児のような立場にありました。このような立場から歴史的な基準を再び取り戻し、世界的な版図をつくらなければならないみ旨を前にして、このみ旨を成し遂げなければならない先生の立場はどんなに悲惨であったことでしょうか。第二次世界大戦以後に、神側として確定しておいた勝利的キリスト教文化圏と、自由世界を統治するアメリカの基盤をすべて失ってしまった立場だったのです。主人となった立場からこれを失ってしまった悲痛さと、再び四十年蕩減復帰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考え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神様が有史以来、何十万、何百万年をかけても成し遂げ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人類歴史を終結させ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事実をはっきりと知っていた立場から見るとき、どれほど悲痛だったでしょうか。
私は雨が降り雪が降るのも知らずに、夜を朝のように早朝のように感じながら、食事をするのも忘れてこのようなことをしてきた人です。安楽に考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神様を知っているからです。神様を知った罪、誰よりも悲痛な神様であることを知ったがゆえに、私という一身がばらばらに裂かれることがあったとしても、粉になって吹き飛ばされることがあったとしても、この飛んでいく細胞は神様の一点の細胞であると泣き叫ぶことができるならば、男として生まれて価値のある死だと言いながら、死の道を訪ねてもがいているのです。もがいて滅びると思ったら、なくなると思ったらこのようになりました。
天と地に染み込んだ怨恨がどれほど大きいかを知っているがゆえに、血を吐く立場にあっても神様を慰め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私は死にそうです、神様、助けてください」という祈祷をすることのできない真の父母の立場に立たねばならない悲痛な事情を、誰が知っているでしょうか。知る人は誰一人いません。唯一神様だけが、神様だけが……。いくら統一教会に従う人が多かったとしても、レバレンド・ムーンの思想に一つとなっていません。このようなことを皆さんは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統一家というものは、今日、解放圏に立った統一家というものは安っぽ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祝福を受けたという者たちが動くその挙動が今日、悪魔のいとこの立場に立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私は知っています。
「私の闘いがまだ足らなくて、私が涙を流す資格が足らないと感じ、私が悲しめばお父様が涙されることを案じながら、私が打たれて耐え難い悲痛な立場に立てば、天が悲惨な立場に立つのではないかと案じる私の悲痛さは何でもありません。私の悲しみは何でもなく、私の悲しみは何でもありません」と歯を食いしばって私が涙をこぼせば、天が涙をこぼすのではないかと案じ、泣き叫んで怨讐に報いる途上に立ち、先鋒(せんぽう)将として勝利の旗を掲げて勇み立つ勇士がいるとするならば、その勇士の前に神様は百倍謝礼するのです。「お前の名を忠臣としようか、お前の名を孝子としようか、お前の名を烈女としようか。地上の歴史上にたとえ貴い者がいたとしても、お前ほど貴い者はいないであろう」と神様御自身が頭を下げて謝礼するのです。
私文総裁は今まで個人的に孤独な道を歩んできた人です。孤独でも誰よりも神様をよく知っている人です。歴史時代に孤独な立場で悲痛な神様の心情を中心としてそれを呪いつつ自分に恵みを与えてくれという人は多くいますが、私はそのようには考えません。「神様、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と言いました。そこが違うのです。私は個人的な試練ゆえに後退するような男ではありません。世界の試練を越え、神様を解放して死のうという男が、個人的な過程で降伏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卑怯者にはなれません。自分の妻が反対しても切ってしまったのです。子が反対しても切り、父母が反対しても切り、国が反対し、四千万、六千万が反対する道を歩んだ人です。
時間が余りにも短いのです。一生においてこれを直し、満たすためには時間がないのです。先生の生涯がそうなのです。ですから世俗的に見れば先生の生涯はかわいそうなものです。神様に「先生はどんなお方ですか」と聞いてみてください。先生は痛哭するしかない痛みを感じながら、心臓をえぐり出すような痛みをもって身もだえするような悲痛さを体恤しています。先生は地上では悲惨な男です。そのような苦労を誰も知りません。皆、自分が立派な人だと偉そうに威張っているだけで、先生の苦労を知りません。お母様も知りません。
神様が六千年間苦労して残された功績をすべて失い、興南収容所へ行った先生の悲痛な事情を皆さんは知りません。故郷を離れることが問題ではありません。妻子が問題ではありません。天と地の未来の希望として解放の民族が、私を歓迎しようとしていたその群れが、雲の中の地獄へと消えていく、暗黒世界に去っていくのを見て、痛哭しながら再び会おうと叫んだのがきのうのようです。「お前たちは消えていったが、私は再び私の行くべき道を歩み、光明の朝日を抱いてお前たちを再び探し出して解放しよう」と宣言したのがきのうのようです。手錠をかけられ叫んだその声を忘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困難なとき、いつも祈祷したその姿を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
「神様、あなたはこのようなお方ですね。私の知っている神様はこのようなお方です」と言うと、神様は手を握って痛哭し「お前にはそれが分かったのか。我が息子よ」と言うことになります。その言葉を聞けば、神様は痛哭するのです。大声で痛哭するその声はどれほど大きいでしょうか。その因縁は千年歴史に延長させ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神様は知っているので、涙を拭き痛哭をやめて「我が息子よ」と言うのです。それができる息子が必要であり、娘が必要な神様の立場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は神様の真の勇士となろう。神様のための戦場がどんなに悲惨であろうとも私はその前線に参与しよう」というのが先生の精神です。いくら世界の迫害が押し寄せても、孤独単身で迫害を受ける立場、苦痛の立場にあっても私は神様に一度も不平を言ったことがありません。これがレバレンド・ムーンの誇りです。
The Liberation of God and the Way of the Filial Child
Cheon Seong Gyeong
Book 1: True God
Chapter 4: Section 6.1
The path of restoration True Father has walked
I fully understand what it is like to determine to fulfill God's will. I know what God's love is like, and I know that I must both kneel in gratitude and walk the path to offer forgiveness. No one has known that God is filled with bitter grief that compels Him to walk the path of liberation even though His blood might be shed.
I did not pray to God asking Him to save me even when I collapsed under torture; and though I was pursued, I did not pray to God asking Him to protect me on my path or to save me. As a man of character, I have my own reserve of strength. I have the spirit and the inner strength to fight. I say to myself, "God will save me if I collapse unconscious due to lack of strength. But before that, with my own power..." I know that God is waiting, preparing things in advance before I go. (138-358, 1986.1.24)
God is with the Unification Church. If I were to lose my temper, thinking "that good-for-nothing!" and think to myself, "You wait and see; just wait a couple of months," in the end that person would be broken in pieces. Wouldn't it be strange to see such a thing? That is why I bite my tongue and control myself. I cannot curse others with my mouth. As the True Parent, I cannot use my mouth to curse others. Even as I hold back my words, Heaven releases me completely from my bitter feelings. When you see this, don't you think God loves me? (162- 205, 1987.4. 1 2)
At Seodaemun prison, a lady evangelist who had persevered for a time in the Unification Church but who then left after things did not turn out the way she wanted, said to me, "Oh, this has turned out well for you. Would this happen to the son of God?" I answered "Yes, I am not someone who will disappear in prison. I will make great leaps toward a liberated world." I will never forget her face. I heard that she recently died in miserable circumstances, and I felt pity for her. This is how I live. I know everything about how the five presidents of Korea treated me. Yet I do not show this. I do not seek revenge. They did not know. I have to meet them and teach them. After saying what I need to say, I have to resolve everything. (204-118. 1990.7.1)
When I came to this earth what position was I in? As the son, sibling, couple and parent in whom God's heart of bitter pain remains, I stood in a position to indemnify and release God's anguish at its pinnacle by giving the perfected love that could not be given before. (234-140, 1992.8.10)
Everything exists for the sake of others. Based on God's ideal of creation to live for the sake of others, God had to invest, invest, and invest Himself to multiply true love. As He did, we have to spread it throughout the universe and return to the original homeland. When we return, we should not kick others away as our enemies. We have to bring them to naturally submit to us through love. Without this natural submission, God cannot find His position. If I were to use trickery, I would not be defeated by anyone. However, knowing that we must bring them to submit, I have been restraining myself. Can you imagine how difficult it has been for me to suppress my fiery character for forty years?! How much more difficult would it be for God, Who is more intense than I am! (219-93, 1991.8.25)
Once I turned to look back, and God, who was following me, embraced me in tears. When I turned to say, "You are the center of my love; I submit to You; I will absolutely follow You," God embraced me again. How great it is to be in such a position! Just as God gave me His position, I must also give God's position to all of you. (215-341, 1991.3.1)
Looking back in history, forty years ago I was hunted by the nation and hunted by the established churches. My position was that of an orphan expelled into the wilderness. From such an awful position, I had to fulfill God's requirement to restore the historical standard and create a global foundation! I had lost the victorious Christian cultural sphere that had been established on Heaven's side after World War II, and the foundation of America, the nation that governs the free world. In the position of the owner, I could not help thinking about the intense grief of losing this foundation and about having to accomplish the task of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again, over a forty-year period. Can you imagine how aghast I was, knowing clearly that I could have brought history to its conclusion -- something even God could not do for hundreds of thousands or millions of years! (135-187, 1985.11.13)
I have accomplished these tasks oblivious to rain and snow. Nightfall was like dawn, and I would even forget to eat. I could not take this lightly because I knew God and felt the serious responsibility that comes with knowing God. More than anybody else, I knew how sorrowful God was. Thus, even if my body were torn apart, crumbled into dust and blown away, all those scattered cells could still cry out as God's cells. I grappled with this path of death, accepting it as a worthy death for a man. As I grappled with this, people thought I would perish and disappear, but things have turned out like this. (137-178, 1986.1.1)
Since I knew the great and bitter pain that was entrenched in heaven and earth, I had to comfort God even when I was vomiting blood. Who could ever understand the bitter reality of my position as the True Parent, in which I could not pray, "I am about to die. God, please save me"? Nobody knew of this. Only God. Only He understood my heart.
Even though many people follow the Unification Church, none of them is one with my thought. All of you must understand this. A substandard Unificationist community cannot stand in the sphere of liberation. I know that the behavior of those who have received the Blessing is nowadays like that of the devil's cousins. (145-332, 1986.6.1)
God would offer a hundred thanks to the brave man who would confess that he has not fought enough, that he lacks the qualifications to shed tears, or that he is concerned that the Father would shed tears if He saw him in sorrow. God would offer those thanks to the brave man who, in the unbearably bitter position of being whipped, would worry that God would be in a miserable position or who would be concerned that God would shed tears when he cries through clenched teeth, "My grief is nothing, my pain is nothing, my sorrow is nothing." God would offer those thanks to the brave man who would cry out and raise the flag of victory as the vanguard on the path to take vengeance upon the enemy. God would express His gratitude one hundred times, saying, "Should I call you a patriot, should I call you a son of filial piety, or should I call you a virtuous person? In all the history of the world there has been no person more precious than you." (153-269, 1964.3.26)
To this day, I, Rev. Moon, have walked a lonely path as an individual. Though it has been a lonely path, I know God more deeply than anyone else does. In history, many lonely people cursed their circumstances while asking for blessings. Yet, centering on God's grieving heart, I did not think like those people. Instead, I said, "God, do not worry." That is a different way. I am not a man to retreat due to personal trials. A man who pledges to die only after overcoming the trials of the world and liberating God cannot write a letter of surrender during that individual course. He cannot be cowardly. Even though my wife opposed me, my children opposed me and my parents opposed me, I cut them off in order to walk this path. I walked the path in spite of opposition by my nation of 40 million or even 60 million people. (175-257, 1988.4.24)
Time is so short. A lifetime is not enough time to rectify this and compensate for it. That has been my life course. So from a secular viewpoint, my life would be pitied. Try asking God, "What kind of person is Rev. Moon?" The pain I feel causes me to lament in sorrow; I am experiencing bitter pain like that of a man writhing in agony while having his heart cut out. On this earth I am a miserable man. Nobody knows about my suffering. People may boast about themselves, thinking they are wonderful. Yet they do not know my suffering. Even Mother does not know. (213-278, 1990.1.21)
None of you knows the bitter circumstances of my going to Hungnam prison after I lost all the foundation for which God had toiled for over six thousand years. Leaving my hometown was not the problem. My wife and child were not the problem. It seems like yesterday that I cried for those who, as the future hope of heaven and earth, were to welcome me as liberated people. But they vanished into hell in the clouds, disappearing into the world of darkness, even while I cried out to them that we would meet again. It seems like yesterday that I proclaimed, "Although you have disappeared, I will keep to my path and bring the bright morning sun to find and liberate you again!" I cannot forget the sound of my shouting this while in chains. I cannot forget the times I prayed while in difficulty. (220-205, 1991.10.19)
When I ask God, "God, are You not this kind of person? The God I know is like this." God would take my hand and weep profusely, asking, "How did you find that out, my son?" When God hears this He will weep. Then how loud the sound of His weeping will be! God knows that this situation cannot continue for a thousand more years. Thus, He wipes away His tears, stops His weeping and says, "My son!" You must understand God's need for such a son and daughter. (176-263, 1988.5.11)
"I will become God's true soldier. No matter how terrible this battlefield for God may be, I will join the frontline." That is my spirit. I never once complained to God even when the world's persecution swarmed about me -- even when I was in a position of utter loneliness due to persecution and suffering. This is what I can take pride in. (193-73, 1989.8.20)
神的解怨了願與孝子之路
天聖經
第一篇 真神
第4章 真父親眼中的神
6)神的解怨了願與孝子之路
① 真父親所走過的復歸之路
我清楚地記著自己曾立下決心要為神成就旨意。我深深瞭解神的愛為何物,也明白應該跪下來以感謝的心行走寬恕的道路。從來不曾有人知道,神是吐著血也要行走解放之路的充滿怨恨的神。
即使是在被拷打至暈厥的時候,我也沒有向神禱告。我是不向神禱告求助的人,就算是被踢來趕去,我也不會求神要祂幫我或守護我的路。
我有身為男子漢的力量,也有我的氣魄和戰鬥力。我的想法是:「假如我力氣不夠而倒在地上人事不醒,神就會救我。在那之前,我要用自己的力量……」我知道在我去之前,神就已在前面做好準備等我來。(138–358, 1986.1.24)
統一教會有神同在。當我被激怒,忍無可忍地緊閉雙唇,心想「等著瞧,再等幾個月看看」時,對方就真的會潰不成軍、一敗塗地。那是不是非常不可思議?所以,更 多時候我是咬緊牙關忍住怒火的,我不能說出詛咒的話,即使我因真父母之名而不能詛咒、緘默不語,上天也會替我洗淨所有冤屈。由此看來,神是不是很愛我呢?(162–205, 1987.4.12)
在西大門監獄,有一個女傳道師嘲笑我說:「真是報應呀,神的兒子怎麼成了這副模樣呢?」這個人過去曾要死要活地加入統一教會,只因我沒有順著她的脾氣,她便 離開了教會。我對她說:「是的,我可不是被監獄嚇破膽的漢子,我一定會躍向解放的世界!」我忘不了當時在眼前搖晃的那副嘴臉,但前一陣子聽說她已淒慘地死 去,又覺得很可憐。我就是這樣的人。
我很清楚五大主權者們(譯注:指韓國歷任的五位總統)都是怎樣對待我的,但我不說什麼,也不想去報復,因為他們是無知的。我倒是應該與他們見一面,好好地教育他們,把該說的都說完之後了結這一切。(204–118, 1990.7.1)
當文老師來到這地上時,是站在什麼樣的立場上呢?人類不曾在兒子、兄弟、夫妻、父母的位置上享受過完成的愛,這些都造成了神的怨恨,因此我必須完成這些愛,蕩減並消解神心中的怨恨。(234–140, 1992.8.10)
必須是利他的。神便是以利他的創造理想為中心,以投入、投入、再投入的方式繁殖真愛的,因此必須以同樣的方式克服天下、回到本鄉之地。不是用腳踢仇敵的方式 回去,而是以愛使他們自然屈服。若不能使仇敵自然屈服,神便無法站穩腳跟。假如我想使計謀,是絕不會輸給任何人的,可是因為知道了這個原則,我忍了下來。 以我烈火般的性格居然忍耐四十年到今天,那容易嗎?神的遭遇比我還要不堪,竟也要如此忍耐,這談何容易!(219–93, 1991.8.25)
有一次我回頭看,神便抱著我流下了淚。我說:「您是我愛的中心,我要服從您,並且絕對地跟隨您。」當我這樣回首望時,神又把我擁入懷中。那是多麼偉大的位置!
神是如此抬舉我,把如此偉大的待遇給了我,如今我也要把同樣的待遇分給大家。(215–341, 1991.3.1)
回顧歷史,四十年前的文老師遭到國家和基督教會的排斥,到處忍受著白眼並且被唾棄,就像被流放到曠野中的孤兒一樣。那時文老師所面對的旨意,是必須在這樣的立場上重新樹立歷史性的基準、建設世界性的版圖,我必須實現如此的旨意。可想而知,文老師的立場是多麼艱難?第二次世界大戰後,勝利的基督教文化圈以及統治自由世界的美國勢力圈就已歸到了神方,可是這大好的根基竟在一夜之間喪失掉了。作為主人,面對所失去的一切,我在感到悲痛的同時,不得不重新思考怎樣才能用四十年時間蕩減復歸這一切。
當時本來極有可能解決神花費幾十萬年、幾百萬年也沒能解決的人類歷史性課題。因此,我非常清楚那個根基的喪失意味著什麼。那時,我的心情真可謂是萬念俱灰。(135–187, 1985.11.13)
我對氣候的變化茫然不覺,甚至把深夜當作清晨和黎明,廢寢忘食地從事著這項工作。我無法放鬆下來,因為我認識神。就因為認識神,瞭解到神的悲痛比任何人都 大,所以縱然會被千刀萬剮,甚至變成灰飄散到天際,但只要變成粉末的那每一個細胞都能標榜自己是神的一個細胞,我就認為那是生為男兒的我所能迎接的最有意 義的死亡。為此我視死如歸,在死亡的道路上摸爬打滾地前進著。本以為這樣折騰的結果是死亡,沒想到反而收穫了今天的成就。(137–178, 1986.1.1)
我知道充斥在天地間的怨恨有多深,所以就是到了口吐鮮血的地步,我也要安慰神。我必須站在真父母的立場,所以不能禱告說:「我快死了,神啊,求您救救我。」有誰能瞭解如此悲痛的緣由呢?沒有人知道。只有神,唯有神,祂理解我。
追隨統一教會的人再多,也沒有都與文牧師的思想成為一體。你們要知道這一點。所謂統一家族,今日站在解放圈裡的統一家族可不是廉價的稱謂。我知道那些所謂已接受祝福的人群的舉動,如今已到了與惡魔的堂兄表弟無異的地步。(145–332, 1986.6.1)
若有人唯恐自己戰鬥得還不夠而深感自己沒有流淚的資格,怕自己掉淚時上天也會落淚,所以從不曾痛快地哭過;怕自己的悲傷會令父親難過,所以即使因挨打而品嚐 著無法忍受的悲痛,也不想令天父的心境更加淒慘而咬緊牙關,用「我的悲哀、痛苦和憂傷不算什麼」來安慰神,並且在復仇的路途中作為先鋒的勇士而舉著勝利的 旗幟勇往直前,那麼,神就會用一百倍的感激來答謝那位勇士。神會說:「該叫你忠臣,還是孝子、烈女呢?地上的歷史中再怎樣寶貴的人物也沒有你寶貴!」神會 親自低頭答謝他。(153–269, 1964.3.26)
文總裁至今仍是獨自在走著孤獨的路。是很孤獨,但我比任何人都瞭解神。歷史上,有很多人在孤苦無依的狀態下以神悲痛的心情為中心詛咒自己身處的環境而求神賜 福給自己,我卻從來沒有那麼想過。我對神說:「神啊,請您不要擔心。」這就是不同之處。我可不是遭遇了個人的考驗就打退堂鼓的人。
發誓要超越世界的考驗、解放神之後再死的男子漢,怎能在個人的路程中寫下投降書!絕不能卑怯。就算遭到妻子、子女、父母的反對,面對著眾叛親離的局面,我也義無反顧地前進到底。即使國家反對,四千萬、六千萬人都表示反對,我也依然走我要走的路。(175–257, 1988.4.24)
時間是如此緊促。要在一生中修正這所有的錯誤、填補這所有的漏洞,時間真的很不夠用。這就是文老師的生涯。所以在世俗的角度看來,文老師的生涯是可憐的。你不妨問一問神:「文老師是一個怎樣的人?」文老師承受著逼人慟哭的苦楚,體恤著剜心割肉般的疼痛而苦苦掙扎。
文老師在地上是悲慘的男人,誰也不知道那種勞苦。每個人都認為自己最優秀而到處炫耀自己,卻不知道文老師的勞苦,就連真媽媽也不知道。(213–278, 1990.1.21)
你們是無法瞭解失去神辛苦六千年才累積下來的所有功績而進入興南監獄的文老 師那悲痛的苦衷。背井離鄉不是問題,妻離子散也不是問題。當被天地當作未來的希望而要來歡迎我的、那本應成為解放的民族的人群消失在黑暗世界的地獄中時, 我一邊慟哭一邊對他們大聲說著再見,那彷彿還是昨天的事。我宣佈:「雖然你們失敗了,但我要重新行走我該走的路,擁抱光明的太陽重新尋找你們,並且解放你 們!」這就像是昨天才發生的事。我無法忘記自己帶著鐵鏈大聲喊出的那個聲音,也無法忘記每當遇到困難時禱告的情景。(220–205, 1991.10.19)
「神啊,您是這樣的存在吧?我所認識的神是這樣的。」當我這樣說時,神拉著我的手慟哭不已,說:「你是怎麼知道的?我的孩子!」神只要聽到那樣的話語就會慟 哭,那放聲慟哭的聲音是巨大的。神也知道絕不能讓這父子因緣在延長一千年歷史,於是擦乾眼淚、停下哭聲,說:「我的兒子啊!」要知道。神需要的就是能夠那 麼做的兒子和女兒。(176–263, 1988.5.11)
「我將成為神真正的勇士。不論為神而戰的戰場多麼悲慘,我都會投身進入那個戰線。」這就是文老師的精神。縱然全世界都把矛頭對準我,把我逼進孑然一身承受逼迫的痛苦的角落,我也沒有對神說過一句為自己抱不平的話。這就是文牧師引以為傲的地方。(193–73, 1989.8.20)
要絕對相信神。偏左、偏右或東西南北、前後左右的角度都無法相信,但只要絕對地相信,就會不偏不倚地站在中央線上。當你絕對地相信時,就會找到「一」的位置、進入絕對的位置――也就是神所在的位置中去。從那時開始,所有問題都能迎刃而解。
所以,信仰大都具有獨裁性,是不能討論的。既然扭曲了,就是要用強制性的方法也要使之對準角度。所以說,神多麼痛苦,我們人類又多麼痛苦啊。(188–225, 1989.2.26)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