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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가면 그리움만 남고
김 난 석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지.
내 유년시절,
집 앞 미루나무 위에 까치가 내려앉아 울면
어머님은 부엌으로 들어가시다 말고 돌아보시며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때면 손님이 오시든 안 오시든 왠지 모를 설렘을 안고
하루를 보내곤 했었는데...
이젠 주변 모두 회색 빛 도회로 변해 삭막해져서인지
까치도 오지 않고 울지도 않고
미세먼지 속에 바람만 휑하니 지나갈 뿐이니
빛 바랜 사진 한 장 꺼내어 보면서
지난시절을 회상해본다.
- 세월 가면 그리움만 남고 -
아도니스(adonis,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다던 미소년)가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사내.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그를 만난 건
5. 16이 일어난 다음다음 해인 1963년 여름이었다.
서로 형이라 부르던 만 열아홉 살의 어린 시절 그때,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하필 서울의 남산 중턱에서 만났던 것인지
그것은 기억에 없다.
다만 우리는 한 달가량 함께 지내면서 마음을 수양한다고
어느 도관(道館)에 다니던 일이 떠오를 뿐이다.
김형!
헤르만 헤세의 ‘나르시스와 골드문트’가 생각납니다.
나르시스는 정신의 길과 육체의 길을 엄격히 구분하고
그중 정신의 길에 몰입하지요.
태초부터 있었던 로고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는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져 고담한 성당 안에 은둔하면서
오로지 이성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성직자의 길을 갑니다.
그러니 신의 아들이 되는 셈이군요.
그러나 골드문트는 이와 다르지요.
나르시스가 머물고 있는 성당을 박차고 나와 속세에 뛰어들어
온갖 체험을 다하면서 인생을 하나씩 체득해나갑니다.
그러니 바람의 아들이 되는 셈이군요.
그는 오랜 동안의 방랑에서 조금씩 자아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가 정신과 육체, 성(聖)과 속(俗) 등
일치할 수 없는 대립과 모순에 빠져있다는 견해에 도달하게 되지요.
"어느 곳에서도 들이쉼과 내쉼, 남성과 여성, 자유와 질서,
충동과 정신을 동시에 체험할 수는 없었으며
언제나 어느 한 가지의 대가를 다른 쪽을 상실함으로써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 전체의 인생이란 이 두 가지가 얻어질 때에만,
즉 이 메마른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인생이 갈라지지 않을 때에만 의미가 있었다! "
이와 같은 골드문트의 독백은 그러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세속의 삶에도 신의 숨은 뜻이 따로 있을 것이란 예감도 갖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대립과 모순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더욱 빛이 나고 풍요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러한 깨달음은 골드문트로 하여금 삶의 긴 여정을 끝내고
나르시스를 만난 다음 이제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바로 인간의 모태인 이브 상(像)을 창조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브는 탄생의 근원으로서 정신도 육체도 이성도 감성도
모두 내포하는 완전성의 상징일 테지요.
이젠 그 길을 알았으니 그는 나르시스를 이해할만합니다.
이브 상 속엔 정신의 길도 그 축의 하나로 들어있는 것이니까요.
나르시스도 자신과 대립적인 육체의 길을 걸어온 골드문트가
다른 어떤 정신인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브의 상을 구현할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이브의 상 속엔 육체의 길도 그 축의 하나로 들어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골드문트로 하여금
유한한 속세의 삶으로는 완전성의 상징인 이브 상에
도달할 수 없음도 깨닫게 하지요.
김형!
결국 속세와 정신계, 이성과 감성, 자유와 제약 등
대립적 개념들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인간이 완성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한한 속세의 삶으로는 다 이룰 수 없는 것이니
살아가면서 정신계에 의지하거나
한없는 수양의 길을 걸어야 함을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형!
그때 우리는 도관에서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회원들 앞에서 발표를 한 일이 있었지요.
그대는 하나님에게 귀의할 것을 역설하였고
나는 불교의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살아보지도 않고 성인의 말씀을 빗대어
삶에 대해 함부로 뇌까렸으니
그 일을 생각하면 뒷머리가 스멀거리기만 합니다.
김형!
지금도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때 한 마디의 말이나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을 모두 깨달아보려 했으니
참으로 치기 어린 짓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도 나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갈팡질팡하는데 말입니다.
그때 나는 어렵게 사범학교를 나와
간신히 초등학교 교직의 자리를 얻었으나
군사정부에 의해 병역미필이란 이유로 내침을 당했으니
낭인의 신세였지요.
핑계 김에 마음 수양한다고 몇 푼 안 되는 노자를 쥐고
무작정 상경했으니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군요.
우리 참 많이도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빈약하기 그지없었기에
많은 방황도 했었지요.
김형!
아마도 지금쯤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성직자가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성스러운 삶을 영위해나가면 그게 성직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에 성직자는 있으되 성직의 도(道)는 드물다는 말도 하는걸요.
나는 김형과는 달리 사회 구석구석을 무던히도 쏴 다녔답니다.
낙산 기슭에서 학업기회를 놓친 이들과 야학을 열기도 하고
단칸방에서 남대문시장의 호객꾼들과 함께 혼숙을 하는가 하면
어느 부잣집이나 고관 댁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소위 입주 교사를 하기도 했지요.
대학생활은 차라리 나만의 영달을 위해
영혼을 가두어뒀던 시기라고 해야겠습니다.
어렵사리 공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위세 당당한 권력의 실상도 많이 들여다봤답니다.
권력과 재력의 결탁
권력과 명예의 야합
권력과 환락의 동행
권력과 빈곤의 갈등
권력과 시대의 무상 등을 숨 가쁘게 들여다보면서
한밤중엔 가슴도 많이 쓸어내렸지요.
아마도 아무데서도 안주할 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뿐만도 아니었으니
생존과는 무관한 자신의 명예를 위해
남의 생존조차 짓밟는 처절한 현장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하지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탕아처럼
지난 궤적들을 뒤적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김형!
지난 학창 시절
나는 공주 시내의 중심을 흐르는 금학천 가에
자취방을 얻어 자취를 한 일이 있었답니다.
이른 아침이면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수건 허리에 차고 금학천으로 갔었지요.
방학이 끝나면 모두들 그렇게 모여들었으니
서로 깨끗한 물을 찾아 양치질하고 세수하기 위해
위로 위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부지런을 떨던 나는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곤 했지만
올라가도 올라가도
그에 비례해 물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한강 원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장장 494.44 킬로미터의 한강 발원지는
검룡소(儉龍沼)라는 곳이라는데
두 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정선 아우라지에서 공지천을 거슬러
삼척 태백의 경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면 삼수령이 나온다네요.
이 삼수령 동편 금태봉의 북서쪽 계곡에 검룡소가 있다는군요.
맑은 물을 떠 마시기 위해 이곳까지 들른다는 것이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 많은 한강수를 놔두고 이 물을 잘라 마신다면
몇 사람이나 목을 축일 수 있을까요?
김형!
물은 흘러가면서 깨끗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자연은 자정(自淨) 능력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삶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우리들 본성에 이성이 있기에
속세에 묻혀 살아가더라도 점점 수양되면서
따뜻한 인간미나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정말 그런 것입니까 김형?
그러나 그 따뜻한 인간미라는 것들이
정신계를 지향하는 성직자라거나 고매한 인격 소유자들이 있기에
그를 닮아 흉내 내보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봅니다.
바로 그것이 한강의 원류를 떠올리게 하는
삶에 있어서의 순수성의 원류라고 하겠지요.
김형이 지금쯤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면
바로 그런 원류라고 생각해봅니다.
김형!
이젠 한번 만나 봐도 좋지 않겠습니까?
나르시스와 골드문트가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때와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나처럼은 살지 않았을
그대의 지난날들이 듣고 싶은 것입니다.
성탄절을 보낸 이곳 거리엔
눈인지 비인지 모를 냉기들이 떨어져 내리며
쌓이는 듯 사라지고 맙니다.
허공에서 그렇게 세월을 뚝뚝 떨어 내리고
세월은 육신을 후두둑 흔들며 허물어 내릴 지라도
늘 평안합시다 김형!
마지막으로 나의 노래 하나 붙여보며
엔터를 칩니다.
지난 세월 내내 다독이고도 휘적거릴 것 없이
그렇다고 사붓 사붓 머뭇거릴 것도 없이
철벅철벅 걸어오는 이 누구인가
톡 톡 톡
메마른 창문 두드려보지만
일그러진 눈길 차갑기만 한데
하얗게 피워내지 못한 눈물
서러워 말지니
내일이 오늘이 되듯 어제가 오늘이잖은가
시간은 시간을 잡아먹으며 소멸할지라도
기억은 기억을 낳으며 소생하는 법
뭍 밑에 스며들어 내일로 피어나리라.
(시 '겨울비' 전문)
첫댓글 첫소절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오신다고
시골 큰집 가면 자주 듣던 소리
두분 추억속 주인공들이셨네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잊지못할 주인공은
있기마련 저도
추억의 주인공 꺼내보고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편안한 밤이란 인사에 편안하게 잤나봅니다.
즐거운 하루 열어가세요..
난석님~
60년전의 빛바랜 사진이 눈에 띄네요
김형이란 분 꼭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뭐 하고 계실지~~
고맙습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한강 발원지가 여러곳 인지 오래전에 저도 가본적 있어요 가서보고 실망 했지만요
궁금한 옛 사람들 저도
초등친구가 지금까지 가끔 궁긍해요 둘이 성도 같고 열심히 붙어다녔는데요
그랬군요.
때론 추억 속에 지내는게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