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집 이름을 <튀겨도 다시 한번>으로 정하다
구강패 사장은 <죽을 때까지 불러>라는 상호로 <노래방>을 하려고 했으나, 끝내 구청에서 상호등록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등록상태로, 강패는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 간판을, <죽을 때 까지>로 했다. 영어로는, <until we die>로 써놓았다. 한자로는, <死亡時>로 했다.
바깥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둡게 했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면, 마치 <장의사>같았다. 눈이 나쁜 사람들에게는, <장례식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패가 노래방 상호, <죽을 때까지>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루 종일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부동자세로 서있다가, 노숙자에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응급실까지 실려갔다는 전설이 그 지역에 퍼지면서 손님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구청 앞 1인시위가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방에 말기 암환자가 와서 노래를 부르고 간 다음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급속도로 손님이 늘었다.
그래서 발렛 파킹관리직원도 두어야 했고, 입장을 위해 대기번호표도 발급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사전에 입장권을 판매했더니, 암표가 기승을 부려 구청에서 단속이 나왔다.
<아시아국가노래방인권수호연합회>에서도 구강패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었다. 그래서 아시아지역 노래방운영자그룹의 회장단 100명이 해당 구청장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노래방 상호선택권을 부당하게 탄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구강패 사장은 아시아지역국가에서는 아주 유명한 스타가 되었다. 외국 언론사에서도 구강패 사장의 인터뷰를 많이 해갔다.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서는 구강패 사장이 그 나라를 방문하면, 모든 노래방 입장료를 면제해주는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구강패 사장은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노래방에서는 주로 <사의 찬미>를 많이 불렀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사의 찬미 1절 가사는 <죽을 때까지> 노래방 단골 손님들에게는 18번 노래가 되었다.
어떤 음대 교수는 매일 이 노래방에 와서, 혼자, <사의 찬미> 노래만 반복해서 108번 부르고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점차 그 여자 음대 교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의 찬미> 노래를 너무 잘 불렀기 때문이었다.
구강패 사장도 그 음대 교수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는 노래방을 100% 무료로 이용하도록 허용했다. 음대 교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비한 사실이 많았다. 생일이 8월 3일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사의 찬미>를 작사하고 음반에 취입한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김우진과 투신한 날이었다. 음대 교수 이름은 윤심진이었다. <심덕>과 <우진>에서 글자를 한 자씩 따서 합성한 것이었다. 음성이나 음색도 <윤심덕>과 비슷했다. 가끔 일본을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음대 교수는 30대 중반이었는데, 남자 친구는 절대로 사귀지 않는다고 했다. 술을 많이 마셨다. 담배도 많이 폈다. <사의 찬미>를 부를 때는, 노래방 룸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잘 모르고, 그 음대 교수가 <사의 찬미>를 부르고 있을 때 룸에 들어가면, 즉시 노래를 멈추고, 무단침입자를 아주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여교수는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편, <맹초통닭집> 주인인 전맹초(40세, 가명)는 <맹초통닭집>이라는 상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운 상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단골 손님 10명을 초대해서 <죽을 때까지> 노래방으로 갔다.
전맹초는 최근에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뜨기 시작하는, <나훈아통닭집>처럼 유명한 가수 이름을 넣어서 상호를 짓는 것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전맹초 사장을 포함한 모두 11명의 토론참가자들은 노래방에서 가장 큰 룸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 토의에 들어가, 11명 전원일치 결론이 나올 때까지 룸에서 나오지 않기로 했다. 이른바 <죽을 때까지> 토론에 들어간 것이었다.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는 모두 노래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
급성맹장염에 걸려도 병원 응급실에 갈 수 없었다. 방 안에서 약국 약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뇌출혈환자의 경우는 문제였지만, 그런 경우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술과 담배는 무제한 허용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법에서 금지하는 히로뽕, 코카인은 반입이 금지되었다. 토의 초반에 나온 이름은, <나아훈통닭집> <이미지통닭집> <프레슬리숫탉집> <마돈나암탉집> 등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나훈아통닭집>과 유사하거나, 모방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토론 제2라운드에서는 <방탄통닭> <소녀통닭> 등이 거론되었으나, 한류열풍에 <통닭집> 이미지는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제3라운드에서는, <암탉이 운다> <닭의 모가지를 비튼다> <닭발로 긁는다> 등이 유력한 후보로 올랐지만, 한 사람이 찬성하지 않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토론을 시작한지 벌써 3일째가 되었다.
토론 3일째가 되는 날부터는 일체 음식과 물도 금지되었다. 배가 부르고 따뜻해서는 토론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사용도 금지되었다. 대신 대소변용 성인 기저귀가 공적으로 하루에 한 개씩 제공되었다.
4일째는 두 사람이 의식을 잃었다가 한 시간만에 깨어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기 위해 각성제를 먹었다. 체력 유지를 위해서는 토론장 한쪽에서 아령을 들거나, 팔굽혀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쫓기 위해 벽에서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주일이 되는 날 밤 11시 45분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튀겨도 다시 한번>이라는 이름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요새 제일 뜨는 통닭집이, <나훈아통닭집>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훈아>에 필적하는 가수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남진>밖에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짝짝짝, 짜악짜아짝. 대한민국>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이 많은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이어갔다.
”하지만, 남진 이름을 그대로 쓰면, 그것은 <나훈아통닭집>을 따라하는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을 모방하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남지> 가수 이름이 필요하니까 <남진>을 상징하는 히트곡, <미워도 다시 한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
그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에 여러 번 출마했다가 떨어진 사람 같았다. 그렇잖아도 잠바 색깔이 핑크빛이었다. 바지도 핑크색이었다. 안경도 핑크빛이었다. 안경알 색깔도 핑크였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그 남자는 노래방 기계에서 <11534번>을 눌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 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이 노래 2절까지 크게 불렀다. 감정에 도취되어 눈을 완전히 감고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음정 박자는 틀렸다. 꼭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들렸다.
노래는 못했지만, 워낙 발언 내용이 시의적절하고 논리적이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서 <앵콜>을 외쳤다. 그 남자는 정말 자신이 노래를 잘 해서 <앵콜>이 나온 것으로 착각했다.
게다가 노래방기계에서도 <100점 빵빠레>가 울려퍼졌다. 그는 계속해서 앵콜송을 불렀다.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둥지> <당신이 좋아> 등을 연속으로 불렀다. 물론 가사는 노래방 기계를 보고 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통닭집 이름을, <튀겨도 다시 한번>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