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순천향 의대 이은혜 교수] 정은경과 아이히만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을 앞둔 지난 9월 11일 ‘신뢰의 아이콘’ 정은경 본부장이 초대 청장에 임명되었다. 정은경 청장은 임명식에서 ‘질병관리청 출범 이유는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에 대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국민의 뜻’이라며 "코로나19 극복과 감염병 컨트롤타워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후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예방의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질병관리본부가 신종 감염병 대응 등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에서 독립하여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필자도 질병관리청(최종적으로는 질병관리처) 승격과 보건부 독립을 바랬기에 비록 일면식은 없지만 정 청장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그런데 해맑은 축하인사를 건네기에는 상당히 찜찜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 사안들의 중심에 정 청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첫째,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성 질환에 대한 방역관리의 기본 원칙은 해외 유입 차단임에도 불구하고 본부장 시절의 정 청장은 실질적인 방역책임자로서 방역 전문가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역학조사관을 비롯한 질본 직원들, 전국의 보건소 직원들과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의료진들은 중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내외국인 입국자들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들을 맞이하여 그야말로 몸과 영혼을 갈아넣을 수밖에 없었고, 415 총선을 앞둔 정부는 이를 K-방역으로 포장하여 국뽕 수준의 선전선동을 자행함으로써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냈다. 둘째, 815 광화문 집회 직후 제대로 된 동선 추적이나 역학조사도 없이, 단지 그 시간에 광화문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집회 관련 확진자’를 연일 발표하였다. 이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와 홍위병 언론들은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을 국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특정 교회의 방역을 핑계로 종교탄압에 가까운 전면적 비대면 예배를 강제하고,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유신시대에도 없었던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개돼지 국민들이 수긍해버리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메일 여러 건의 안전안내 문자를 받고 있다. 그런데 815 전에는 “언제 어디를 방문하신 분 중 ‘유증상자’는 가까운 선별진료소에 가셔서 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815 이후에는 “815 광화문 집회 ‘참가자 및 접촉이 있었던 분들은’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아주시고, 결과 확인 시까지 집에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8월 21일 중대본)”, “8월15일 12시~17시까지 광화문 일대를 방문한 대상자는 ‘증상유무와 관계없이’ 관할 거주지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으시기 바랍니다(8월 22일)’, “8.15 경복궁, 광화문 일대 ‘집회참석 및 단순방문, 인근을 지나친’ OOO민은 8.30까지 코로나19 진단검사 행정명령 이행요망, 거부자는 고발 및 구상청구됩니다(8월 29일)”라는 기존의 방역지침을 벗어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최대 잠복기가 2주임에도 불구하고 한달이상 지난 현재에도 집회 관련 확진자를 매일 발표하고 있다.
정 청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치만 앵무새처럼 발표했을 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형 변화에 따른 임상적 의미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또한, 검사건수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확진자 수를 널뛰게 만든 의혹이 있다. 이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는 방역 실패를 유발한 자신들의 실책은 철저히 은폐한 채, 특정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들을 이간질했다. 따라서 정 청장의 행보가 (특히 815 이후에) 과학이나 의학의 논리가 결여된 정치 방역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또한, 정 청장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태도를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그것과 비교해볼 때 의심이 더욱 증폭된다.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대한민국의 전국민은 소위, 코로나 계엄령으로 고통받고 있다. 2-3개월이면 몰라도 8개월째 접어드는, 게다가 끝을 알 수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무차별적 영업제한 때문에 전국의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에 걸려서 죽는게 아니라 굶어 죽겠다며 탄식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방문자의 QR코드 등록이나 인적사항 강제작성, 체온 측정을 빙자한 안면인식 프로그램 도입 및 CCTV 설치 확대, 핸드폰 위치추적 등 방역을 위해서 전국이 전자감시체제로 변하고 있으며, 방역을 이유로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전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할거면 대만처럼 확실하게 방역에 성공해서 경제라도 보존해야 할텐데 그것도 아니다. 현재의 방역체계가 코로나19 사망률에 과연 합당한가? 교통사고 사망자나 자살 사망자 수와 비교할 때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과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 시점에서 왜 대한민국만 전세계와 다르게 방역을 하고 있는가?
국가의 목적은 생존과 번영이며, 모든 정부정책은 이러한 국가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정책이 ‘국가의 자살’을 향해 추진된다면 그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위임을 받을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방역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정책의 하나일 뿐 방역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방역에 집중하느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위태롭게 된다면 그런 방역은 더 이상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의대교수들은 전공의들에게 lab(검사결과 수치)을 치료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라고 가르친다. 혹시 정 청장은 방역에만 몰두한 나머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필자는 정 청장의 행보를 이해하려 애를 쓰다가 문득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정권에서 고속 승진을 거쳐 유태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의 책임 집행자가 되었다. 유태인을 찾아내고, 한 곳에 모은 후, 집단수용소로 이송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그 유태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독일 패망 후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첩보요원에 의해 발각되어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았고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나 아렌트라는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 철학자가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모두 지켜본 후에 내린 결론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은 군인이므로 군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은 불법이며, 자신이 기차에 태워 보낸 사람들이 죽든 말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주도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단지 명령에 복종하여 행정적인 절차를 수행한 것뿐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천생 관료라고 평가하면서, 아이히만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생각하는 능력(able to think)’을 포기했고 그 결과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정 청장으로 돌아가서, 문재인 정권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점차 명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부역하여 질병관리본부장에서 질병관리청장으로 승진하고, 조직을 확대하여 휘하 세력을 늘리는 것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의 직업윤리에 합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정 청장은 자신의 방관과 협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아니면 직업윤리 따위는 팽개치고 공무원 본능(몸집 불리기와 윗사람 눈치보기)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인지?
질병관리청장이 차관급이라는 점에서 정 청장은 이제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정 청장의 역할은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발표하는 daily routine에 그쳐서는 안된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인 출신이 아니고, 현 정권이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크노크라트의 정점에 서있는 정 청장은 의학적 견해와 함께 방역 너머 국민의 삶을 고려한 정책을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 청장은 감염병에 대처하는 컨트롤타워로서 타 부처의 방역역행 시도에 맞서는 지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향후 대응계획을 선제적으로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국민 중 일정 비율을 표본 추출하거나 교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 및 시설을 표본 추출하여 코로나19 항체검사를 시행해서 대한민국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디가 집중방역이 필요한 고위험군/시설인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맞춤 방역정책을 세울 것인지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 청장이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관료주의에만 충실하여 악의 평범성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테크노크라트의 직업윤리에 입각하여 감염병 대응의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뿐만 아니라, 방역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정책의 하나일 뿐, 방역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기 바란다. 도덕과 윤리가 소실된 현 집권세력 내부에서 정 청장이 진정한 ‘신뢰의 아이콘’이 되기를 기대한다.
순천향 의대 이은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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