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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7월호의 시와 꼬리풀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47 17.07.09 09:3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구경꾼 - 이경

    -사막 1

 

낙타를 빌려 타고 사막을 구경했다

하이데거를 빌려 타고 서양철학을 구경하듯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명사산을 돌아 나왔다

갑론을박 꼬리에 머리를 부딪는 낙타 행렬을 뒤따르는데

사막이 말씀의 빗자루로 낙타 발자국들을 쓸어내고 있다

학문은 진리를 탐구한다지만 진리는

지식의 쓰레기더미에 깔려 압사할 지경이다

사막은 깨끗이 쓸어 놓은 화선지를 발밑에 깔아주며

맨 처음의 발자국을 찍어보라 하신다 


 

 

가을 들녘에 서서 - 홍해리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인제나 원통쯤에서 - 조길성

 

강원도 인제

원통해서 길 물은 적 있다

거뭇거뭇 검버섯 내리는 버스 정류장

주소를 들이밀자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곳

고개만 넘으면 돼요

그 밤을 다 새워서도 다다르지 못한 곳 있다

시베리아는 어떤가

길을 묻는 순간 길에서 죽을 것이다

그 눈부신 설원의 감옥

설움의 감옥

붉은 혀를 깨물고서 말들이 쓰러져

고요가 될 그곳

   

 

 

이별 참기 - 김혜숙

 

밤새 내리치는 빗소리에

산새는 놀라서 숲 그늘에

숨어 떨다가 이내 잠들고

 

산사에 종소리는 비바람에

울다 지쳐 목탁 소리에 숨어

뜬눈 새운다

 

밤새 뜬눈으로 몸살하던

계곡물 소리 그 안에 들어찬

울음덩이가 한꺼번에 내리치듯

 

이별의 후엔 마지막 남은 마사토까지

게워낸 채 헹궈낸 입 꾹 다물고

가슴바닥으로 밟아낸다

더 울 것 없다


 

항아리 - 박인주

 

빈 독 하나 가득 채워서

조금씩 조금씩 먹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났네

어릴 적에 사춘기일 때 청년일 때

차곡차곡 몸의 기 채워 두고

중년일 때 노년일 때

매일매일 쓰다 보니 체력도 기억도

총명은 어디가고 건강도 어디 가고

빈 독 뒷줄로 물러나

표정을 감추려 해도 속이 비어

얼굴엔 주글주글 주름만 늘고

기억도 가물가물

햇볕도 바람도 공기도 꼭꼭 채워둔

항아리 자꾸만 고장이 난다

   

 

 

마을 하나가 - 김석규

 

마을 하나가 잔잔한 슬픔으로 걸린다.

인기척 내지 않는 나이의 노인네만 나앉아

멀리 숲정이 일렁이는 풍뢰를 듣는 대낮

개망초꽃 하얗게 가고 있는 묵정밭에

새끼를 데리고 고라니가 다녀가면

이내 멧돼지가 와서 파헤치고

가지고 갈 것도 그렇다고 두고 갈 것도 없는

마을 하나가 잔잔한 슬픔으로 걸린다. 


 

 

滿 - 김두환

 

가을 하는 짙푸르러 아득하다

 

도랑물 소리 길길이 울린다

 

벼 이삭들 숙이고 사방으로 넓게

내밀어 안아들인다

 

할아버지 눈길 그 달빛 가늘지만

야금야금 메기며 감들인다

 

무영無影은 안 보여도 염알이하는가

숨결 끈적끈적 감으며 불태움으로

온몸 부글부글 녹아 큰 불길 오른다

   

 

하늘재天嶺에 가면 - 이재부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인 하늘재에서

대자연의 가르침 소리 듣는다

 

물의 내력을 나누는 분재의 현장

수억 년이 지나도 말썽이 없다

 

권력과 재산 싸움에 흐려지는 세상

물길 바람소리로 천심을 보라

 

안았다 놓고 가는 삶의 욕망

허물을 벗는 진경이 보이리.



                      * 월간 '우리詩' 통권 349호(2017년 7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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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7.09 15:44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휴일임에 가만히 카페를 들어왔다 내 시를 접해 반가움에 댓글 달고 갑니다 휴일 평온하게 보내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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