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선 바오로 신부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사도행전 6,1-7 요한 6,16-21
오늘 미사의 말씀은 <삶의 풍랑에 개입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십니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요한 복음 6장 17절)
복음사가는 먼저 예수님의 부재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요한 복음 6장 18절)
물 일에 익숙한 제자들이 큰 바람을 예견 못하고 배에 오릅니다.
천재지변에 의한 환경적 어려움을 맞닥뜨린 것이 오늘 제자들을 뒤흔든 첫째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요한 복음 6장 19절)
두 번째 두려움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옵니다.
사람이 물과 관계하는 방식은 물에 잠기거나 헤엄치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체험했든 전해 들었든 그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은 초월적으로 보면 신비일 테지만 기괴하게 보면
유령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복음 6장 20절) 예수님은 그들의 두려움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계시의 말씀으로 제자들이 겪는 두려움을 없애 주십니다.
"주님의 소리가 물 위에 머물고 ... 주님께서 크나큰 물 위에 계시네."(시편 29장 3절)라는 시편 작가의
고백처럼, 물 위를 걸어 호수의 성난 힘 위에 우뚝 서신 분께서 말씀으로 제자들의 내적 동요까지
가라앉혀 주신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의 부재가 그분 현존의 권능과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여정이 되기도 하지요.
없어 보아야, 잃어 보아야 현존의 행복을 알 수 있으니까요.
영성 생활에서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주님의 부재 상황이 우리를 갈증과 두려움으로 삼켜 버리게
허락하지 않으려면, 언젠가 반드시 주님께서 성난 힘 위를 당당히 걸어 우리에게 다가오시리라는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 안에 직무가 분화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6장 1절)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믿고 따르며 유다교에서 새로운 길로 들어선 이들 안에 갈등과 소요가 생겨납니다.
아무리 뜨거운 마음과 선의로 시작한 길이어도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도
새어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들이 느낀 차별과 불공정은 공동체의 수치스런 흠집이 아니라, 개선하여 더 나아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오늘의 독서 대목은 사도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이를 잘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 4절)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소명을 지키면서,
다른 선량하고 지혜로운 이들을 봉사의 직무로 초대합니다.
주님의 지체가 저마다 받은 모든 소명이 소중하고 가치로우며, 사람들은 이로써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 참여함을 한 걸음씩 익혀 나가는 여정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세상 안이든 교회 안이든 왜 불일치와 갈등이 없겠습니까.
그런 고통과 어려움의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귀 기울이고 지혜를 모아 찾아 나가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잠시의 혼돈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자라나"(사도행전 6장 7절)는
놀라운 체험까지 덤으로 받을 겁니다.
교회는 넘실거리는 어둠의 물 위를 항해하는 배입니다.
우리는 그 배 안에서 외부적 어둠과 바람과 파도는 물론, 내부적 갈등과 충돌의 아픔까지 떠안고 가야 하지요.
주님의 현존을 믿고, 그분 몸의 지체인 서로를 믿고 기다려 주며 무지와 의혹의 밤바다를 통과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등대와 같은 위로이고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예수님 목소리에
위로와 힘을 받는 오늘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뒤흔드는 문제들을 바로 그 예수님께서 압도해 짓밟으시며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힘내십시오. 이 여정을 통과하면서 "배는 어느새 가려던 곳에 가 닿"을 것입니다.
아멘.
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