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
1. 곰배령에서 바라 본 설악산 대청봉
이윽고 내가 한눈에
너를 알아봤을 때
모든 건 분명 달라지고 있었어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네가 숨 쉬면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네가 웃으면 눈부신 햇살이 비춰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
보고 있으면 왠지 꿈처럼 아득한 것
몇 광년 동안 날 향해 날아온 별빛
또 지금의 너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
너를 따라서 시간은 흐르고 멈춰
물끄러미 너를 들여다보곤 해
너를 보는 게 나에게는 사랑이니까
(…)
―― 가수 성시경이 부른 ‘너의 모든 순간’이다. 2014년의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삽입된 ost다.
발라드 명곡 중의 하나로 꼽힌다.
나는 이 노래 가사에서 ‘너’를 ‘산’ 또는 ‘풀꽃’으로 대체한다.
▶ 산행일시 : 2023년 5월 7일(일), 맑음, 바람 거세게 불어 추운 날
▶ 산행코스 : 귀둔리, 곰배골, 곰배령, 1,174m봉, 1197m봉, 1,174m봉, 곰배령, 곰배골, 귀둔리
▶ 산행거리 : 도상거리 8.9km
▶ 산행시간 : 5시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45명)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30 – 잠실역 9번 출구
08 : 06 – 가평휴게소( ~ 08 : 30)
09 : 52 – 귀둔리 곰배령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산행시작
11 : 28 – 곰배령(1,164m)
12 : 00 – 1,174m봉
12 : 10 – 1,197m봉
12 : 40 – 1,174m봉, 점심( ~ 13 : 00)
13 : 10 – 곰배령
14 : 52 – 귀둔리 곰배령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산행종료
14 : 58 – 버스 출발
16 : 24 – 가평휴게소( ~ 16 : 38)
19 : 20 – 잠실역
(사진은 찍은 순서대로 올렸다)
2. 당개지치
3. 곰배골 계류
4. 광대수염
5. 홀아비바람꽃
“규칙도 사라지고 인과(因果)도 사라지고 선악조차 구분되지 않는 예측불가 세상은 내로남불이 힙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작금의 대한민국과 신묘하게 포개어지기도 해요. 영화 속 노인은 말하지요. ‘녹록치 않은 세상이야. 오는 변화
를 막을 수가 있나. 접을 건 접어야지.’ 이제 아시겠지요? 이해하려 드는 순간 꼰대가 되어요. 생각을 접으세요. 새로
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영화 칼럼니스트 이승재가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8)’를 보고, 동아일
보(2021년 7월 2일자)에 쓴 ‘꼰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글 중 끝 부분이다. 여기에서 노인은 나이 먹은
노약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와 현명함을 갖춘 현자를 의미하는 데도 그렇다.
내가 왜 뜬금없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국 영화 얘기를 하느냐면, 서울양양고속도로 가평휴게소에서 도대
체 믹스 커피 자판기를 찾아볼 수 없어서다.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르면, 으레 커피
자판기를 찾아 500원 넣고 믹스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시곤 한다. 달콤한 게 아주 맛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4,100원
내지 5,000원을 주고 마시는 아메리카노이니 커피라떼, 에스프레소 등의 밍밍한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커피 자판기는 커피 이름도 간단명료하다. 블랙, 밀크, 설탕 등이다. 나는 밀크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 양도 적당
하다. 종이컵 반 정도다. 그런데 커피전문점은 커피 이름만으로는 그 커피 맛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거니와 양은
또 너무 많아 짧은 시간에 마시기에는 벅차고, 배도 부르게 된다.
오늘 곰배령을 가면서 들른 가평휴게소에는 온통 커피전문점 수개소가 장악하고 있고, 예전에는 구석진 곳에 놓여
있던 자판기가 그나마 보이지 않으니 씁쓸하다 못해 쓸쓸하다.
7. 나도개감채
9. 곰배령에서 바라본 대청봉
10. 홀아비바람꽃
14. 나도개감채
15. 곰배령에서 서쪽 조망
곰배령 가기가 약간 까다롭다. 입장인원을 제한해서 그렇다. 하루 350명. 주말이면 입장권 예약시작 불과 2분 만에
동이 난다고 한다. 나도 3일전에 예약하려고 했으나 입장인원이 이미 다 차서 예약할 수 없었다. 다행히 산행대장님
이 여러 장 확보하여 갈 수 있었다. 귀둔리 곰배령탐방지원센터 앞에서 국공이 입장권을 확인한다. 아울러 신분증도
꼭 가지고 오라고 했다. 등산객들이 길게 줄 섰다.
국공이 큰소리로 말한다. 실제 예약하신 분만 이쪽으로 오시고, 그 외 분들은 곧장 들어가시라고 한다. 한 사람이
10명까지 예약할 수 있으니 그 예약을 한 사람만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입장예약이 되지 않았어도
무리지어 이렇게 들어가도 되겠다는 얍삽한 생각이 든다. 한편 그 국공이 매우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예약
하지 않고 서울에서 이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가 입장거부라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얼마나 쪽팔릴까. 그걸
헤아려 국공은 굳이 일일이 예약을 확인하지 않기도 한다.
곰배령 가는 길. 도심 근린공원 산책로를 가는 것 같다. 길을 잘 다듬었다. 길게 줄서서 가니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괜히 길 벗어나 생사면을 누비거나, 계곡에 내려가서 딴 짓을 하기 어렵다. 곰배령 가는 길 내내 그런다.
곰배령탐방지원센터에서 곰배령까지 편도 3.7km다. 왕복 7.4km, 산행시간은 5시간을 준다. 넉넉하다. 산행목적이
야생화 구경이니 만고강산 유람 다름이 아니다. 곰배골 계류 물소리가 우리를 반긴다. 여기도 어제 비가 많이 내렸
다. 계류는 온 산이 울리게 우당탕탕 큰소리치며 흐른다.
그런 계류를 옆에 끼고 1시간 가까이 간다. 풀꽃 구경에 앞서 물 구경한다. 지계곡 실폭을 배경하여 사진을 찍어주
기도 한다.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것 같다. 등로 주변에 새끼노루귀가 흔한데 꽃은 다 졌다. 중형 카메라를 들고 내려
오는 사람을 만난다. 꽃 사진을 많이 찍으셨느냐고 묻자, 그 대답이 의외다. 풀꽃은 하나도 없고 사람 꽃만 많더라고
한다. 빈 눈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괜히 물었다. 갑자기 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눈과 내 눈을 다를 것. 일목일초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간다. 이곳 큰개별꽃조차 야산에서 흔한
그것과 다르게 보인다. 고도 1,000m를 오르자 홀아비바람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납작 엎드려 카메라 앵글 들이댄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나는 오늘 신사산악회 45인승 버스가 만차이기에 풀꽃을 알고,
그에 대단한 관심이 있을 줄로 믿고, 동호인들이라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 천상의 화원이라는 곰배령의 유명
세에 따라 나선 사람들이다.
18. 곰배령 데크로드 주변에 자라는 곰취
19. 큰개별꽃
20. 홀아비바람꽃
23. 큰개별꽃
24. 홀아비바람꽃
25. 산괭이눈
26. 홀아비바람꽃
적어도 카메라는 휴대폰의 그것이 아닌 DSLR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세상 변하는 줄을 모르는 꼰대
여서일까? 휴대폰 카메라를 얕잡아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화소나 화질이 DSLR 카메라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
다. 요즘 세계의 유수한 패션쇼도 때로는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고산에서 풀꽃들을 대할
때는 똑딱이도 아닌 DSLR 풀바디 카메라를 내미는 게 예의라고 본다.
오가는 사람들이 수대로 꽃의 이름을 물어대기에-꽃에 관심을 갖다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일일이 알려드리느라
입안에 침이 다 밭을 지경이다. 어떤 사람은 엎드린 나를 보더니, 저렇듯 예쁘게 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저 꽃은 참
행복하겠다고 한다. 그 사람은 잘못 보고 잘못 알았다. 저 꽃이 행복한 게 아니라 저 꽃을 보는 내가 행복하다. 곰배
령이 가까워지고 요강나물과 나도개감채가 얼굴을 내민다. 반갑다.
곰배령. 찬바람이 세게 불어댄다. 춥다. 여기는 아직 겨울이다. 겉옷 껴입고, 핫팩도 꺼낸다. 그럼에도 곰배령 표지
석을 안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섰다. 표지석 아래에 곰배령의 유래를 새겼다. “곰배령은 산세의
모습이 마치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다양한 식물과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
어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곰배령은 귀둔리보다 강선리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쪽으로 내려가 본다. 광활한 초원이 홀아비
바람꽃 차지다. 아까 나에게 풀꽃이 하나도 없더라는 중형 카메라 든 사람은 곰배령을 건성으로 보았다. 산상이
이 정도보다 얼마나 더 화려할까?
강선리 탐방코스인 1,197m봉 쪽으로 가본다. 완만한 초원의 연속이다. 등로 양쪽에 금줄을 쳤다. 금줄을 넘을 필요
가 없다. 등로에서 엎드려도 충분하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꽃 한 송이 사진을 찍는 데 매우 힘들다.
1,197m봉을 넘으면 내리막이라 뒤돌아온다. 그새 곰배령 고갯마루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곰배령 고갯
마루 풀숲에는 나도개감채가 흔하다. 곰배령 남쪽 1,174m봉 관리사무소에 국공이 상주하고 있다. 국공에게 모데미
풀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강선리계곡 물가에 무리지어 몰려 있는데, 지금은 꽃이 다 졌다고 한다. 그들을 보려고
내년을 기약한다. 1,174m봉 바위벽에 기대 점심밥 먹는다. 근처 박새 숲 사이에서 곰취 몇 잎을 솎아 쌈한다.
28. 큰개별꽃
29. 홀아비바람꽃
30. 얼레지
31-1. 멀리는 점봉산
31-2. 곰배령과 작은점봉산
32. 나도개감채
34. 요강나물
35. 홀아비바람꽃
하산.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꽃이 있는지 살펴간다. 걸음걸음 아껴 걷는다. 올라올 때 피지 않았던 큰연령초가 피었
다. 얼레지도 피려고 한다. 산행 마감시간 15시가 임박해서 주차장에 당도한다. 곰배령을 뒤돌아본다. 푸르고 푸른
산이다. 이백(李白, 701~762)이 「종남산을 내려와 곡사산인의 집 들러 묵으며 술을 마시다(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
置酒)」에서와 비슷하다.
날 저물어 푸른 산에서 내려오니
산 위의 달도 나를 따라 오네
문득 지나온 길 돌아보니
푸르고 푸르구나, 안개 산허리를 둘렀네
暮從碧山下
山月隨人歸
卻顧所來徑
蒼蒼橫翠微
(부기) 곰배령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가평휴게소까지는 막힘없이 달렸다. 가평휴게소를 들렀다 나오자 고속도로
는 거대한 주차장이다. 기어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서종IC와 화도IC를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거기로 빠져나가는
차보다 거기서 들어오는 차들이 더 많다. 아침에 잠실에서 가평휴게소까지 오는 데는 36분 걸렸는데, 반대로 갈 때
는 3시간 가까이 걸렸다.
37. 큰개별꽃
38. 피나물 군락지
39. 큰연령초
40. 나도개감채
42. 큰연령초
43. 산괭이눈
44. 곰배골 지계곡 실폭
45. 곰배골
첫댓글 최불암 나오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 드라마 본 적 있습니다.
재밌게 봤던 것 같습니다.
곰배령은 산이라기보다는 근린공원이더군요.
원로로만 다니게 하고. ^^
예전에는 아무런 제약없이 점봉산과 가칠봉을 오갔는데 ...
눈과 귀를 청소하기 좋은 곳엘 가셨군요. 주말이면 사람이 너무 밀린다던데 용케도 엎드려 많은 야생화를 알현하셨네요.
이젠 젊은이들을 부지런히 흉내내어야 그나마 꼰대소리를 덜 듣습니다. 커피도 아메리카노로 어서 바꾸세요. ㅎㅎ
일보삼배하고 왔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메리카노보다는 다방 커피에 근접한 커피라떼로 입맛을 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곰배령은 산상화원이라해서 수많은 꽃들이 피었는줄 알았지요^^...하필 3일 연휴에 가셔서 도로에서 많은 투자를 하셨군요...덕분에 구경잘했습니다
꽃박람회를 생각하시면 안 돼요.ㅋㅋㅋ
곰배령 좋았어요. 오대산도 좋더군요...
이 봄날 가는 데마다 꽃잔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