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4.19 혁명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당시 이승만 정권이 1960년 3월 15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투표함을 바꿔치기하거나 번호를 조작하는 등 말도 안 되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마산 시위 중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서 발견되어 그 참혹한 모습에 전 국민이 분노하였고, 곧이어 4.18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들이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격앙되어 4월 19일, 전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 다시 하라!", "독재정권 물러나라!"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4.19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당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지만, 군대조차 시민들에게 총 쏘기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4.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로 떠났다. 부정선거가 이처럼 한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당시 부통령 이기붕은 집까지 시위대가 몰려오자, "나는 이 나라의 국회의장이고, 차기 부통령이야. 내가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피하기는? 나는 못 가네."라고 거부하다가 당시 육군 6군단 민가로 피신했다가 강영훈 6 군단장이 민가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서 떠나라고 지시해 경무대로 들어갔다. 결국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이 권총으로 가족들을 모두 쏘고 마지막으로 자신도 자살했다.
그런데 지금 올림픽 공원의 상황은 어떠한가? 예년에 유례없는 이 폭염 속에서 젊은이들이 전자투표에 의한 선관위의 조직적 국민의 참정권 훼손에 대해서 항의가 오랜 시간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2026년 전자투표로 이뤄진 부정선거가 1960년 3.15 부정선거 보다 그 규모가 어찌 적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정부 여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대한 분명한 대국민 사과나 조속한 시정조치가 없다.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은 야당 활동에 대한 보도를 거의 외면하는 실정이며, 일부 몰지각한 야당 인사들은 내부 분열을 부추키며 부정적인 비판만을 일삼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적을 이롭게 하는 '利敵行爲'에 가까운 행동이다. 또 현재 여당은 이승만 시대의 자유당처럼 의회를 점령하여 다수당 머릿수만 믿고 법을 멋대로 정하는 실정이다. 아무리 左顧右眄 해봐도 어려움이 첩첩 산맥으로 중첩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 재민의 정신과 헌법 전문에 표시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의 뿌리가 심각히 훼손되어 좌초되어 가고있는 실정이다.
202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