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에 나는 상해를 방문했다. 예전부터 한번 방문해보고 싶었던 도시였기에 나는 들뜬 마음으로 상해에 갔다. 공항에는 칫다다가 소개해주기로 한 라다가 나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남녀간의 사이라는 것은 미묘해서 서로간의 끌림이 없으면 연결되기 어렵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녀에 대한 아무런 끌림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자그리티로 갔다. 칫다다와 더불어 여럿이서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라다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들었는지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색할 뿐이었다. 나는 라다와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 위해 잠시 외출하겠노라고 칫다다의 허락을 받았다. 나는 라다에게 상해의 와이탄 해변을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화려한 상해의 야경을 보고 싶기도 했고 가는 길에 라다와 대화를 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의 야경을 좋아해서 라다에게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라다도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칫다다는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황산을 가기로 했고 라다와 나도 참여했다. 라다는 일을 매우 잘했다. 중국의 여성들은 한국 남자가 보기에는 다소 드세 보인다. 문화대혁명 이후에 남녀차별이 많이 사라지면서 여권이 매우 강해졌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중국 여성들이 보기에 한국 남자들은 다소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중국 남자들은 통이 커서 여자에게 돈쓰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호탕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보니 중국여자와 한국남자는 커플이 되는 경우가 드물고 화목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반면에 중국남자와 한국여자는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한국여성들이 보기에 중국남자는 매우 화통하고 집안일까지 잘하니 자상해 보인다. 중국 남자들은 오히려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여성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느끼기에는 남자를 매우 존중해주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한국남자들은 일본여성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더치페이가 일반화돼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남자들은 데이트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여성들이 보기에 한국남자들은 일본남자들에 비해 훨씬 남자답고 책임감이 있어 보인다. 일본인들은 매우 소극적인 성향이라서 한국남자들이 보기에 일본여성들은 매우 여성적이고 남자를 존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머지 일본 남성과 중국여성이 궁합이 잘 맞으면 좋을텐데 그것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은 일반론일 뿐이고 개별적으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라다는 나에 대해 호감을 표시했고 칫다다에게 결혼해도 좋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살면서 나에게 결혼해도 좋다는 의사표시를 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기에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이는 역시 끌림이 있어야 했다. 그녀는 너무 적극적인 성격이었고 여성적인 매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칫다다도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결혼이 나에게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바는 출가자기 아니면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천재적인 예술가나 과학자의 경우는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성욕도 별로 없고 만일 결혼하면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천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게 되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바바는 그들의 재능이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결혼하지 않거나, 만일 결혼하게 되면 가족들이 천재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의 재능이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희생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나도 간혹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서 고통받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 없다면 천재와 결혼하는 것은 행복하기 어렵다.
바바가 하신 또하나의 조언은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 남자도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본인과 가족이 너무 고통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단순히 돈을 적게 버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은 본인과 가족을 너무 고통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바는 아난다마르가에서 혁명적인 결혼을 권장하셨다. 혁명적인 결혼이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과 용감하게 결혼하는 것이다. 적대적인 나라 사이의 국제결혼은 평화를 가져오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내가 만일 적대국의 사람과 결혼하면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 앞에서 그 나라를 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고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망이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혁명적인 결혼이다. 바바는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칫다다가 새로 오픈한 센터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은 상해 도심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고 있었다. 결혼계획이 무산되다보니 무작정 상해에 머물기도 곤란했다. 2014년 연말을 상해에서 지내고 나는 2015년 1월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2015년에는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계좌의 잔액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고 경제적인 일을 할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무엇이 나에게 맞는 길일까? 새로 구한 고시원 방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차리아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우니 불교의 승려가 될까? 나는 절에서 머문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바는 불교로도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승려는 아차리아에 비해 훨씬 편하게 지낼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배우자를 숨겨두고 사는 은처승들도 많다. 내가 절에서 머물 때 6개월 동안의 행자생활만 견디면 세상에 중처럼 편한 직업도 없다고 말하는 스님들도 있었다. 그것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에게 그것은 도피처일 뿐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도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뜩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중이 될 수 있다면 왜 아차리아가 될 수 없지?' 이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생각해보니 내가 실패한 것은 큰 문제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너무 단순한 문제였던 것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그런 것은 사소하게 느껴졌다. 감정적인 트러블에 휩싸이기 전에 한발짝 먼저 눈치채고 상황에서 벗어나면 될 뿐이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스타일은 차이가 있고 나에게 어떤 길이 맞을 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결국은 바바가 이끄시는 것이었고 나의 에고를 즐겁게 하는 길을 따르기보다는 바바의 뜻에 따르는 것이 중요했다.
5월이 되자 계좌의 잔액은 2백여만원에 불과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트레이닝 센터에 갈 여비로 사용하든가 아니면 빨리 현실에 적응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결국 나는 마지막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칫다다에게 나의 결심을 알렸다. 칫다다는 매우 기뻐하며 나의 선택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이번에는 필리핀 다바오로 가기로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스웨덴으로 갈 수 있었지만 직전에 실패한 곳에 가기는 부담스러웠다.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최소한만 알리고 떠나기로 했다. 워낙 여러번 가다 보니 나로서도 면목이 없고 굳이 지인들에게 출가를 알릴 필요가 없는 이유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마음이 오히려 차분했다.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다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