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야?"
"으휴... 또 배가 난자 당해서 왔구만..."
"벌써 13명째 아닌가?"
"그 놈의 취향은 도대체 뭔지..."
"그러게 말야. 다들 딸 간수 잘 들 하세!"
캄캄한 어둠. 그 어둠을 헤치고 누군가가 달려온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의 경공술만을 보아도 그가 대단한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볍게 한 가옥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빨간 도복. 그 피 빛은 본래의 색인지 아님 누군가의 피 빛인지 분간 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품속을 뒤져 작은 붉은 종이를 꺼내 그 집의 마당에 던져 버리고선 소리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함~"
아직 이슬이 그치지 않은 새벽.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한 소녀가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나온 곳의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작은 문패가 모셔져 있었다. 소녀는 문패 앞에서 다소곳이 절을 하고는 다리를 모아 앉았다.
"아버지, 밤새 안녕히 주무셨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1년이 다 채워져 가는군요. 꿈에서 아버지를 뵈었어요. 걱정스러우신 얼굴이시던데... 저, 괜찮아요. 새어머니와 언니가 잘해주시니 걱정일랑 마셔요. 다만 저에게 걱정이 있다면..."
소녀는 작은 한숨을 뱉어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즈음 한 무사가 여자들을 데려가 난자시켜 죽인다고 해요... 그는 밤중에 붉은 종이를 떨어뜨리고 가는데 그 종이를 받은 집은 딸을 한 명 내천의 큰 다리 밑에 두어야 한데요... 사람을 불러 지키려 고는 하지만 다음날 모두 죽어있데요... 또 데려간 여자들 역시... 옆집 아저씨가 그러셨는데요, 그 무사는 피도 눈물도 없데요. 아버지. 아버지는 절 지켜주시겠죠? 그렇죠?"
작은 소녀는 그렇게 문패 앞에서 몇마디 중얼거리고 밖으로 나와 마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걸음 가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흰눈에 소복히 내린 마당 가운데에... 새빨간 종이 한 장이...
"너가 가!!"
"언니..."
"그래! 그 재수없는 걸 너가 주워 왔잖니! 마땅히 너가 가야지!"
"어머니..."
"뭐야? 그 눈초린? 그럼 내가 가니?"
"... ..."
소녀는 눈물을 꼭 삼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짐을 쌌다. 하지만 그녀이 얼굴은 금새 눈물 범벅이 되고 말았다.
내천 다리밑. 작은 마을의 다리치고는 아래로 사람이 왕래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다리 밑에 한 소녀가 덜덜 몸을 떨며 쪼그리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그녀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각은 정확히 0시.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피 빛의 무사 한 명이 비춰졌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무사는 순식간에 소녀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에 소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졌다. 구역질이 나는 피 빛 옷에 붉은 눈동자를 번득이는 그는 소녀의 턱을 들어 올려 눈 높이를 맞췄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무사는 무관심한 목소리로 질문을 내뱉었다.
"살기가 없군... 버림받았나?"
"... ..."
"...어째서 넌 울지 않지?"
소녀는 계속 입을 다물고 싶었지만 자신의 턱을 죄는 무사의 손에 입을 열었다.
"운다고 해서 내 두려움이 덜해지지도, 죽음을 외면할 수 도 없으니깐 요"
무사는 소녀의 턱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에 든다"
그는 소녀를 자신의 넓은 어깨에 짊어지고 경공술로 어딘가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소녀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무사에 의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툭!
무사는 소녀를 침대 위에 떨어뜨렸다. 갑자기 높은 곳에서 떨어진 소녀를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무사는 여전히 감정하나 들어있지 않은 무뚝뚝한 말투를 던졌다.
"여긴 나의 집이다. 난 계집종이 필요했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부엌과 화장실, 욕실은 복도에 나가 오른쪽 끝에 있다"
몇 마디를 던진 무사는 막 방을 나가려다 다시 소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만약 탈출하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그 즉시 죽인다"
무사의 마지막 한마디는 소녀에게 있어 겁에 질리게 했다. 무사가 나가자 소녀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
닭조차 꿈나라에 있을 시간. 소녀는 버릇처럼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엔 꼭두새벽에 사다둔 것 같은 야채들이 구석에 쌓여 있고 그 위엔 작은 종이와 붓, 그리고 약간의 돈이 있었다. 아마 필요한 게 있으면 써놓으라는 의도일 것이다. 소녀는 쌀을 씻어 불에 올리고 아채를 다듬어 찬을 만들었다. 얼마 안돼 구수한 냄새와 함께 조식이 차려졌다. 그녀는 자신의 방 옆, 즉 무사의 방 앞에 놓아두고 자기만의 작은 조식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차려 놓은 조식은 곧 무사의 방을 지나 깨끗이 비워졌다. 소녀는 그걸 보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인간이란 무섭다. 어떤 새로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금새 그 환경에 익숙해져 능숙히 생활해 간다. 소녀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건 빨래 중 나오는 무사의 옷... 원래는 새하얀 옷이 이었겠지만 그 옷엔 새빨간 붉은 피가 한 움큼 배어 있었다. 그 비린 피 냄새에 구역질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저녁을 위해 부엌으로 가던 소녀는 무사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윽... 독을 쓸 줄이야... 코브라의 맹 독답군..."
'코브라의 독!!!'
소녀는 마당에서 언뜻 본 해독초를 생각해 냈다. 일전에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을 때 아버지가 해독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기에 그녀는 해독초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살금살금 해독초 몇 뿌리를 캐온 그녀는 저녁상과 함께 해독초즙과 편지를 끼워 무사의 방 앞에 두었다. 그녀가 방에 들어가자 그는 그제야 밥상을 자신의 방에 들여놓았다. 막 식사를 하려할 때 그는 평소에 없던 이상한 액이 들은 그릇을 발견했다. 그는 그릇아래 깔린 종이 쪼가리를 들어 안에 들어있는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무 허락 없이 약초에 손을 댄 것을 사죄 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해독초를 짜낸 즙이니 식후 드시면 해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무사는 다 읽은 편지를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그는 무예의 고수이다. 그런 그라면 벌써 기를 모아 독을 뱉은 지 오래다. 굳이 쓴 해독초즙을 마실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는 식사가 다 끝난 후 쓴 약초물을 단숨에 들이키곤 상을 내놓았다.
"까아아아악!!!"
소녀의 앙칼진 비명에 무사는 명상을 중단하고 붉은 눈을 떴다. 자신을 검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비명소리가 들리는 부엌으로 향했다.
"까아악!! 싫어, 저리가!! 싫어!!!"
소녀는 건장한 체구의 강간범에게 깔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명은 강간범에 대한 공포의 비명이 아닌 목을 잃은 몸뚱이와 그 목을 들고 붉은 눈을 번뜩이는 무사를 보며 나오는 비명이다.
그날 밤은 유독히 독한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소녀는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몸을 떨며 이불 속에 처 박혀 있었다.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소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은 결국 무사의 신경을 건드렸다. 비명을 질러대던 소녀는 목덜미에서 냉기를 느꼈다. 무사의 검 이였다.
"닥치고 있어"
소녀는 비명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는 달래며 잠이 세계로 빠져들었다.
늘 그렇다 시피 닭이 울기 전 눈이 뜨인 소녀. 답답한 이불을 걷어내고 막 옆을 보았을 때... 소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붉은 눈의 무사가 소녀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일어나자 무사는 몸을 일으켰다.
"계집이 게으르군"
한마디 툭 던진 그는 소녀의 방을 나갔다. 소녀는 한동안 경직되었다. 자신을 위해 밤을 새어준 무사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피 냄새가 배긴 살인마가 밤새 자신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소녀가 점심을 만들기 위해 막 부엌에 들어가려는데...
'타는... 냄새? 무사님이 뭘 태우시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던 소녀는 태우는 게 시체라는 생각이 언뜻 들어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불이 난 곳은 마당이 아닌 무사의 방 이였다.
"무사님!!"
소녀가 무사의 방에 막 들어가려는 순간.
"하앗!!"
소녀는 갑자기 엄청난 압력에 마당으로 퉁겨져 나갔다. 무사의 방 주위의 푸른 기운이 불을 진압하고 있었다. 소녀는 무사의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검은 그을음과 숨막히는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연기 사이로 비틀거리는 무사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를 본 무사의 붉은 눈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번쩍!
무사의 두 눈이 띄었다.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은 소녀의 가녀린 얼굴. 혹 밤을 샌 건가? 그녀는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밖에는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녀의 다리를 배고 누워있는 무사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명치에 칼이 찔리는 중상을 입어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에 사슴같이 선한 눈. 오똑한 코. 꼭 다물린 앵두같은 입...
순간 무사는 자신의 입술이 소녀의 입술에 닿아 있다는 걸 느끼고 잽싸게 뺐다. 그 덕분에 소녀는 잠을 깼다.
"무사님..."
소녀의 얼굴은 붉어져있었다. 무사는 소녀의 얼굴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품었다.
먼저 눈을 뜬 건 소녀였다. 소녀는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고있는 무사를 보며 홍조를 띄웠지만 곧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젠 난 어쩌면 좋지? 난 이분을 사모하는 걸까? 이분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날 품으신 걸까?'
소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옷을 주워 입었다. 옷을 다 갖춘 후 몸을 일으키려는 찰라 등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덮친 걸 느꼈다. 무사였다.
"무..."
"나와... 혼인해 주겠소?"
따뜻하다... 차가웠던 무사의 말에 따뜻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저 같은 추한 것을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따스한 오후. 간단히 혼례준비를 끝내고 무사와 소녀는 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섰다. 간단한 의식을 끝낸 둘은 차가운 술을 한 모금씩 넘겼다. 술에 입을 대던 무사는 칼을 뽑아 옆의 허공을 휘두르자 흑의를 입은 괴한이 이미 죽어있는 3구의 시체 위에 떨어졌다. 그들은 그렇게 피비린내가 나는 혼례를 무사히 마쳤다.
"응애! 응애!"
"추, 축하해유. 아들이여..."
붉은 눈의 무사를 보고 한기를 느낀 산파는 찔끔거리며 핏덩이를 무사에게 건네주었다. 무사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장차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지도 모르는 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과 같은 붉은 눈을 갖은 아들을...
평화로운 오후이다. 새하얗게 빤 빨래를 널던 소녀는 문득 마루를 보았다. 그녀의 눈엔 마루에 걸터앉은 무사와 무사 옆에서 곤히 잠든 갓난아기가 비췄다. 무사는 잠들어 있는 그 작은 사람에 손을 대어보고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하다가 그만 그를 울려버렸다. 당황해 하는 무사를 보며 소녀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아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아기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그건...
"크하하하!!! 이 계집이 네놈의 여지냐? 응?"
"네놈은..."
무사는 검을 뽑아 들었다. 흑의를 입은 괴한은 소녀를 등에 짊어지며 소리쳤다.
"이 계집을 찾고 싶다면 우리의 소굴로 와라!!! 대장이 이 계집을 요리하기 전에!! 크하하하하하!!!!!"
흑의의 괴한은 무사를 비웃으며 무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사는 아기를 안아들고 어딘 가로 향했다.
"흠..."
뚱뚱한 뚱보가 소녀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가는 곳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흐흐... 여자한텐 무심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귀여운 계집을 갖고 있을 줄이야... 흐흐흐흐... 재주도 좋군!"
"... ..."
"계집아, 노래를 불러봐"
"... ..."
"흠... 부르지 않으면 네년을 산채로 토막내서 멍멍이 밥에 넣어 줄 거야. 뭐... 그전에 잠깐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흐흐흐"
"툇!"
소녀는 흐물거리는 뚱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뚱보는 하녀를 불러 얼굴을 닦더니 소녀의 뺨을 후려 쳤다.
"꺄악!"
"이 계집년이! 살살 대해주니깐 눈에 뵈는 게 없나?!"
뚱보는 소녀의 옷을 찢어 내고있을 때 또 한번의 비명이 들렸다. 그건 소녀의 비명이 아닌 아까 수건을 가져온 하녀의 비명이었다. 뚱보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그의 작은 눈이 똥그랗게 띄었다. 무사... 무사는 하녀의 배에 박혀있던 자신의 검을 뽑아냈다. 그 바람에 엄청난 양의 피가 사방에 튀었다. 무사는 온 몸이 붉게 물들여 있었다. 뚱보는 실실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흐흐흐... 너가 아무리 최고의 무사 라지만 지칠 대로 지친 지금의 너로선 나에게도 승산이 있다. 잘 가거라. 흐흐"
그가 혼자서 주절주절 떠들어 대고 있을 때 무사는 이미 그이 배에 자신의 검을 쑤셔 넣을 후였다.
"커..."
뚱보는 피가 흘러나오는 무사의 어깨를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쳤다. 무사는 엄청난 고통에 뒤로 빠져버렸다. 뚱보는 자신의 배에 박혀있는 검을 뽑아 뒤로 던졌다. 하지만 그건 옳지 못한 행동이다. 장기전으로 들어간다면 뚱보 녀석은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무사 역시 그걸 생각해 냈지만 문제는 그때까지 자신의 몸이 버터 줄까 였다. 뚱보가 무작정 무사에게 달려들었다. 칼을 잃은 무사는 피할 수밖에 없었다. 뚱보의 머리 위를 뛰어 넘어 가려던 무사는 비명과 함께 뚱보 뒤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뚱보녀석이 넘어가는 무사의 다리 쪽을 찔렀기 때문이다. 덕분에 왼쪽 다리는20CM이상 찢어지고 말았다. 한쪽 다리마저 못쓰게된 무사는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자신 역시 많은 피를 흘렸기에 장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뚱보는 승리를 자신한 미소를 띄웠다.
"흐흐... 잘 가거라! 이 멍청한 무사양반!!"
뚱보는 칼을 높이 쳐들고 막 무사의 심장을 꽤 뚫려는 순간!
푹!
"크억!!"
뚱보는 자신의 배 앞에 무엇인가가 뾰족 튀어나온걸 보았다. 무사의 검!! 뚱보는 뒤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뚱보 뒤엔 무사의 검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무사에게 달려갔다. 무사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헉헉, 아이는, 산 속의, 헉, 노인에게... 큭! 맡겠소"
"무사님..."
소녀의 눈물이 무사의 얼굴에 떨어졌다. 무사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의 미소를 띄웠다.
"당신은...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오..."
자신의 갈 길을 아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했는가? 무사의 마지막 표정은 인자한 미소였다. 소녀는 피투성이의 무사를 안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에 무사의 칼이 보인다. 그녀는 그 칼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칼을 자신의 심장에 겨누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아가야, 아가야 미안하다. 너의 아버지를 혼자서 보낼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푸욱!
"세상에!"
"어쩜 사람을..."
"카하하하! 불을 더 세게 피워라! 더 세게!"
"저 뚱보녀석! 얼마 전에 한 무사한테 죽다가 살아났데! 그래서 그 무사와 여자를..."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심해요! 어쩜, 사람이 이렇게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사람을 토막내고 태우다니... 욱!"
"으∼ 집에 들어가자! 살 타는 냄새가 구역질 난다, 어서!"
많은 사람들이 구역질을 해대며 각자의 갈 길을 재촉했다. 그때, 그들 사이로 어떤 노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그 끔찍한 사형장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아이를 들어 사형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줬다. 주위사람들이 '병신, 미친놈'이라 욕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아이에서 소곤거렸다.
"잘 봐둬라. 저 뚱보녀석이 네 부모에게 해대는 짓거리를! 잘 기억해 둬라! 잊으면 안 된다! 절대로!"
작은 거인의 붉은 눈은 묘한 빛을 내며 반짝였다.
그후로 15년 후.
"크하하하!"
뚱보녀석은 계집을 옆에 둘씩이나 끼고 히히덕 거리고 있다. 한참을 술을 퍼 마시던 뚱보에게 흑의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뚱보에게 귓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주인님!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뭘 걱정해? 없애버려!!"
"옙!"
흑의의 남자는 뒤를 돌아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뿐. 그의 몸은 반 토막이 되어 쓰러져 버렸다. 뚱보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던 여자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쳤다. 뚱보는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 ..."
그의 부름에 붉은 옷의 무사가 나타났다.
"어찌된 일이냐?"
"어떤 무사녀석이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빨리 처리하지 못하냐! 돈 값을 해야할 꺼 아냐! 엉?"
"네. 그래서 지금 그를 처치하려 합니다"
그 붉은 옷의 무사는 자신의 칼을 뽑아냈다. 뚱보가 호통을 쳤다.
"뭣하는 게냐!"
"생각나오? 15년전. 당신이 토막내어 불에 태워버린 가엾은 내 부모의 영혼을..."
"헉!!"
뚱보는 뒤로 슬금슬금 기어갔다.
"내 나이 15. 그래서 난 지금 성인식을 치를까 하오. 당신의 목숨을 재물로 받혀서"
"... ..."
뚱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줌을 지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그 무사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칼을 쳐들었다.
"15년전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나 그대를 내 인생의 첫 번째 재물로 바치겠소"
젊은 무사는 칼을 내리 꽂았다.
어느 작은 마을에 붉은 옷의 붉은 눈을 갖은 무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운명의 짝을 찾기 위해 매일 밤 붉은 종이를 누군가의 마당에 떨어뜨린다. 하얀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