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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때 비행기를 한번 타보지 못하면 기약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마는가. 혼례를 올리고 전라남북도 답사여행을 후배 녀석이 승용차를 몰아 이레 동안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는 기분은 어떨까? 큰 애와 아내는 지방에 내려가 있는 나를 만나러 올 때 국내선을 타보았지만 나는 아직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촌놈이다. 그래서 뱃길을 따라 다도해로 가는데도 설레는가. 2002년 홍어 글 하나 썼다가 홍어 대장이 되어버린 내 인생사가 즐겁다. 뜻하지 않은 영광이다. 뭐 하나 손대면 기자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터에 늘 주변 사람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때론 귀찮다고 한다. 단출한 모임이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하루하루 살기도 정신없는데 쉬고자할 때도 카메라가 돌아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게다. 섬 여행은 작년 4월에 다녀왔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어느덧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훌쩍 회원이 늘어 2천명이 넘었다. 그 중 몇 명만을 골랐다. 조촐히 다녀오자는 심사다. 각자 회비로는 부족해 홍어책 발간을 위해 모아둔 돈을 1인당 5만원씩 지불하였다. 이번 여행은 남다른 계획이 있었다. 홍도 유람에 홍어잡이 배를 직접 타서 파닥거리는 홍어를 가까이서 볼 기회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날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전화가 걸려왔다. “야심한 시각에 웬일이세요?” “고량주 갖고 갈 겁니까?”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근데 이 늦은 시각에 구리에서 안암동에 오실 거예요?” “차로 가면 금방인데 뭘….” 11시가 넘어서 고량주를 건네주러 오는 회원이 있어 행복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도 아이들 깨워 밥 한술 뜨고 나니 약속 시간에 대기가 촉박했다. 연세대 정문에서 20여 분 늦게 발효식품 다큐멘터리 방송 제작 차량과 내차에 나눠 타고 흑산도, 홍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홍어배를 탄다고 하니 다들 중무장을 한 상태다. 한분은 대전에서 다른 분은 광주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미리 가 있겠지.
서울을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여 걸렸을 뿐 쭉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들녘은 벌써 앙상하게 비어가고 있다. 그래 계절은 속일 수 없지. 목포에 도착해보니 시간 여유가 충분했다. 바닷바람에 비린내가 풍겨왔다. 세발낙지와 홍어를 주로 파는 항구에 맞닿은 동명시장이다. 허름한 안쪽 골목 늘 가던 보리밥 집에서 탁주와 참게를 갈아 만든 젓갈과 황석어젓, 멸치젓에 담근 풋고추를 곁들여 배부르도록 먹어 속을 채웠다. 게워낼지도 모르지만 든든히 먹는 게 우리네 생활 습관이 아닌가. 배에 올라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각자 자리를 잡았다. 몇 몇은 흥분을 가라앉히지를 못하고 멀미가 심하다는 2층에 올라 금요일 낮을 한가로이 즐긴다. 바람은 거세다. 목포를 뒤로 하고 얼마 빠져 나가지 않았는데도 물결이 출렁출렁 여느 때보다 성이 나 있다. ‘이러다 해강이 솔강이는 어떨까?’ 걱정이었다. 그래도 제 엄마가 잘 보살피겠지. 아이들은 잠시 배가 아프다고 할 뿐 곧 잠에 빠졌다. 기특하다. “울렁울렁.” “더 울렁.”
20여 분 지나자 사람들 속이 뒤집어지나 보다. 아주머니들은 봉지를 찾느라 바쁘다. 작년에 타보았던 나는 어느새 베테랑이 되어 한껏 수작을 부렸다. 눈으로 보면 눈이 현혹되고 귀로 들으면 소리에 압도되어 혼절을 하는 게 연암 박지원 선생의 배타는 방법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면 주변 상황을 잊는 게 최선이다. 맥주 캔을 몇 개 사서 건넸다. 속이 뒤틀리는지 선뜻 받지를 않는다. “한잔씩 합시다.” “미식미식 하는데….” “마시면 괜찮을 수도 있어요.” 둘은 끄덕 없다. 나머지는 위로 솟구쳤다 급전직하 요동치는 배와 딴 몸이 된 탓인지 먹는 둥 마는 둥. “아따 한잔씩 마시라니까요. 잊어야지 세상사마저….” 옆에선 동료 한명이 토악질을 해댄다. 그런 사람을 보고 술을 마시라는 것도 강요 아닌가. 견딜만한 사람들 끼리 나머지를 비웠다.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를 연결한 다리 밑을 빠져 나오기 전인데도 이 지경이라면 필시 절반 이상을 남겨둔 그 다음 물길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잠시 정박한 배가 다시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너른 바다는 갑자기 속력을 늦추거나 현저히 빨라져도 배가 뒤집히기 쉽다. 가던 대로 물결을 타고 오던 대로 물살을 가르면 별 탈이 없다. 연신 창으로 하얀 소금이 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희뿌연 창 사이로 점점이 박힌 작은 섬이 스쳐지나간다.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또 섬섬玉섬이랄 수밖에 없다.
2900여 섬 중에서 신안군에 25%나 흩어져 있으니 보이는 건 물 반이요, 섬 반이다. 해상공원의 으뜸이다. 여타 섬은 2005년쯤에 다리로 연결되어 차를 타고도 가볼 수 있지만 이제 우리가 홍어를 찾아 떠나는 흑산도는 목포 기점 92.7km 떨어진 곳으로 손암 정약전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이 유배당했던 검은 섬이다. 동경 125° 26′, 북위 34° 41′를 향해 육지에서 멀어져 간다. 홍어 공부 향학열에 불타오르는 사람들을 십여 명 싣고서…. 떠남은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다. 몸도 성히 머리는 텅 비운 채 돌아와도 그만이며, 머리에 새로운 세계를 가득 채워 와도 무방하다. 2004년 10월 22일 금요일 낮 햇살에 더 잘게 부서지는 바닷물을 벗 삼았다. 1시간 40분이 지났으니 도착할 법도 하건만 어찌 이리도 애를 태우는가. 그새를 참지 못하는 초행길 친구들 성화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예상보다 20여 분 뒤에 우린 흑산도 예리항에 내렸다.
반가이 맞이하는 한 사람은 카페 회원 흑산넷(www.heuksan.net)을 운영하는 섬소년 이영일 씨고 다른 분은 안면은 없지만 흑산도홍어 중매를 하는 김훈 사장님이다. 섬 바람은 어느 쪽으로 부는지 분간할 수 없지만 맑은 바람이라 상라봉 전망대에 올라 서쪽 홍도로 붉게 떨어지는 낙조를 보는데 아쉬움이 없겠다. 오후 5시를 넘기면 언제고 바다로 해가 풍덩 빠져버릴지 모른다. 쏘옥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날달걀마냥 이글거리던 불덩이를 삼키는 바다 얼마나 그렸던가. 이 찬란한 재충전을 보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암흑천지를 땅을 치고 가슴을 쓸어내린들 무슨 소용인가.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긴 꽁지머리를 싹둑 자른 섬소년을 따라 차에 올랐다. 이르게 뜬 하얀 달이 걸릴 무렵 아직 해는 하늘에 있다. 그 틈을 타서 노닥거렸다. 그냥 바다만 바라봐도 좋다. 상쾌하다. 배 멀미는 온 데 간 데 없다. 비릿한 냄새도 없이 머리가 맑아진다. 가두리양식장을 끼고 고층습지가 있는 장도 너머에 붉은 섬 홍도(紅島)가 길게 늘어서 있다. 바로 앞 지척인데, 한 뼘도 안 되는데 일행은 낭떠러지 위에서 어질어질한 기운을 느끼며 해가 붉어지고 건너편 섬이 더 발개지기를 기다렸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구슬프다. 열두어 명 중 서너 사람만 남아 있다. 한 가지라도 더 보려고 더 높은 봉화대에 올라 많은 걸 주워 담을 심산이다.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잠시 뒤 햇살이 굵어졌다. “쫘악” 퍼지며 깨끗한 먼지 알갱이와 부딪히는 강렬한 서녘 해가 눈에 들어왔다. 석양(夕陽)은 이렇다. 징살맞게 동공을 찢을 듯 사납게 다가와서는 이내 잦아든다. 여려지면서 길어진다. 길어지면서 땅거미를 몰고 온다. 그 곳에 장도도 있고 홍도도 드리워져 있다. 생각 같아서는 한 그릇 푹 퍼서 담아 놓으면 그 장관이 오래 보관될 터인데 바가지도 가져오지 못한 내가 한스럽다. 쪽빛, 황금빛 물결에 마음도 이리저리 움직인다. 억새 깃털도 죄다 날아갔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아쉬움에 한눈팔지 못하고 숨죽였다. 홍도 좌측에서 머뭇거리던 햇님은 둥실 덩실 춤을 추더니 “풍!” “풍!” “풍!” 눈에 띄게 고도를 낮췄다. 속으로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봉화대에 오른다 했다. ‘정말 이러다 아이들에게 낙조(落照)는 놓치고 말텐데….’ 하는 수 없었다. 한번 가본 터라 하염없이 서성이다 보면 횡재수가 목 놓아 기다리고 있겠지. 황홀한 밤을 이렇게 맞으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영겁(永劫)인줄 알았다. 겁박하듯 사라진다. 한소끔도 아니었다. 찰나(刹那)거나 순간(瞬間)이듯 순식간이었다. 머리에 고인 피로의 먼지를 토해 발갛게 해수면을 물들였다.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빨간 해, 더 이상 붉을 수 없는 태양(太陽)이 잠기듯 잠길 듯 말 듯 이글거리다가 개(犬) 긴 혓바닥에 휘감기자 이내 회색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붉게 칠해진 홍도도 으스름해졌다. ‘그래 내일 저 쪽 어드메로 홍어 잡으러 떠난단 말이지.’ 그때 아내와 아이들 동료들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없어졌어? 해 졌냐고요?” “…….” “아이구, 왜 안 불렀어? 해강아 해가 물속으로 퐁당 빠졌단다. 아이구 아까워라.” “그니까 뭐 하러 올라갑니까?” 어둑어둑 해졌다. 아름다웠다. 행복했다. 마냥 즐거웠다. 하루가 길었다. 새벽녘 서울을 출발하여 목포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으니 종일 해를 따라 다닌 셈이다. 마을 아래로 내려와 길잡이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자연산 광어에 홍어 한 마리를 잡아 미리 썰어 가져온 진짜배기 흑산홍어를 안주 삼아 ‘오잎주’ 잎새주로 목을 거나하게 축였다.
광어 맛도 뛰어났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삭히지 않고 껍질도 벗기지 않은 선홍빛 흑산홍어를 씹었다. 조밥마냥 까칠까칠하지 않다. 밥 칡을 씹는 느낌이랄까 분대로 만든 차진 인절미에서 덜 찧어진 쌀밥이 오돌오돌 터져 나온다. 신선한데도 비린 맛도 없다. 쉬 넘기기 아쉬워 잘근잘근 씹어대니 찰떡이 입안에 가득 고여 침을 돌아 고이게 한다. 뼈마저 으스러져 녹았다. 달짝지근한 회가 오리지널 흑산 홍어 말고 또 있을까. 술을 부어도 취기는 오르지 않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1차를 마무리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선장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가져간 고량주를 마시며 자산어보(玆山魚譜)냐 현산어보(玄山魚譜)냐 옥신각신 목청 높여 검은 밤하늘을 찔렀다. 새벽녘 선장님을 만나 보니 애초 약속했던 홍어 잡이 배가 멀리 간단다. 하루도 아니고 2박 3일이 걸릴 거라나. 홍도 인근으로 간다던 배가 뜬금없이 월요일 새벽에나 돌아온다니 큰일이었다.
찰떡같이 “고깃배를 태워 준다.” 장담하고 꼬셔서 따라 내려온 사람들 아닌가. 난감했다. 하는 수 없었다. 아침 일찍 부두에서 만나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입가심하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첫날밤은 깊어갔다. 참 하루가 살기에 따라 이렇게 길수도 있구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미 나가있는 다른 배와 연결 해달라고 부탁해볼 참이다. 여기까지 온 목적은 단 한 가지다. 홍어배를 기필코 타고야 말겠다. 홍도 주변에서 조업하는 배는 불과 22km 근처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깨어있는 동안 “갈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면 “저요.” 손들고 내리고를 수십 번 반복했다. “홍어배는 어선 중에서 아주 큰 편이지만 멀미는 쾌속선에 견줄 수 없으니 아예 홍도 유랑이나 하시라.”며 몇 사람 마음을 돌려 세우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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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멋지다....^^멋져요~~~흑산도 멋지네.....가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