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미탄면이 실제 살았던곳 국민 학교 중학교 졸업한곳 귤하리 문희마을은 부산에서도 산악회서 많이 찾아가는
우리나라 백운산 52개중 3개만이 100대명산에든다는 포천 광양백운산과 함께 3대 명산에 들어간다.
동강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황새 여울은 뗏사공 에게는 공포의 구간이다
이곳은 회돌이가 심해서 방심하면 뗏목을 끈어먹고 화목운반을 포기해야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국제신문 이창우 사설에 백운산 소개가된 .곳이다.
율치리는 웰컴투 동막골 촬영지다.
지금은 동계 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다.
정선 광하리 수리봉아래 우리 증조 선산아래 인삼 재배지.
벌초하기 위해서 수리봉 오르는길 태풍에 고목이 임도를 막아 벌목 작업중
군수가 할일 우리가 목마르니 대신 오전내내 작업후 길 확보.
거의 러시아 벌목공 수준이지요. 사촌동생 왼쪽은 원주기거 오른쪽은 부산 모고등학교 과학선생
중간은 우리형님
이제 벌목후 와야를 걸어서 차로 견인 작업중
수풀이 거의 베트남 밀림지대에 버금가는 수준이지요.
이길을 한업이 넘어야 고향 마을 도착한답니다
매년 바위에 가을 농사짓고 옷을 해입혔다고 해서 불려진이름 옷바위 혹은 의암리 마을로 불린다.
버섯 모양 특이하지요. 삶은 계란같이요.
지금부터 동강의 모습
건너편 길따라 쭉 내려가면 영월 단양 제천으로 이어진다.
이다리가 60년대 후반에는 겨울에 강을 건너기위해서 섶다리를 놓고 건너던곳
그위에 잔잔하고 깊은 수심에는 나루터로 강 건너까지 철줄을 매어놓고 줄을 이용해서 배가 건너던 곳이다.
왼쪽 숲이 귤암국민학교 가 있던곳 지금은 레프팅 휴계소로 이용 오토캠핑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이 저의 모교다.왼쪽 계곡따라 20리정도 걸어서 마지막집이 생가다.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지금은 다떠나고 몇집안남았다.
아마 6월25일 전쟁중에도 인민군의 손길이 못미친 첩첩 산중이다
계곡이 깊어 겨울은 길고 일찍 해가넘어가서 밤이 길기만 했다.
긴밤을 보내기위해 감자 강냉이 구어먹으면서 밤을 재세웠다
벌목 작업으로 시간이 소요되서 고기는 못잡고 라면으로 대신했다.
투망은 위법인데 고향이라 펌은 잡아밨지요.
오늘은 방생했답니다.
학교 터 지금은 오토 캠핑장
이곳 잔잔한 물결서 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다이나 마이트로 고기를 잡고 이곳서 벌목한 나무를 뗏목으로 한강으로 이동 서울 성수동 뚝섬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그시절 날품 팔어서 일당 몇십원 받던 시절에 이곳서 뗏사공으로 유명한 노 태근씨는 뗏목을 안전하게 뚝섬까지이동 (약 보름 이상걸릴것으로 추정) 해서 품싹으로 떼돈을 받아 왔다고 해서 지금도 떼돈 번다는 소리가 전해내려 온다고합니다.
지금 생각 해보면 뗏목길이는 약100m 길이에 앞에 노를 젓는 뗏사공과 후미에 부뗏사공이 2인 1조로 내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였다. 뗏목 움직이는 모습보려고 구경 가기도 했었다.
내려가다 주막은 다거쳐서 이동한답니다, 그러니 나루터에 주목에게는 유명인사지요.
운 나뿌면 뗏목 끈어먹고 공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위험지역은 문희마을 황새 여울 지역이 가장 힘겨운 구간이랍니다.
68년도 무장간첩 침범시는 하교길에 전투경찰이 호위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고요
1주일에 강냉이 가루 2되 탈지분유 1되 배급받어서 계곡따라 집에가면서 탈지분유 먹고 업드려 물한목음 먹으면서 가재잡으며
집에 하교하던 추억 머리에 스친답니다.
여름에는 참매미도 잡아서 황덕불에 구어먹던 추억도있고요
여름에는 강냉이 삶아 먹으면서 하늘 처다보고 별도 세어보고요. 지금은 별도 환경에 오염됬는가 안보입니다
강건너마을이 줄굿마을 차량이동중 사진 찍어서 화질이 안좋음
암능 지대는 동강 할미꽃 자생지로 환경 보호 구역
이곳 할미꽃은 하늘로 빠딱 쳐다보고 꽃이 피는게 특징이다.
회양목은 우리 나라에 정선군 이곳과 영월군 평창군에만 자생한다는 나무다.
산중턱에는
산삼이라도 자생할것 같이요
벌초 하고오면서 짬을내서 촬영 옛기억을 회상해 받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