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터 마성에서 쉰 여덟 번째의 생일을 맞는다. 여느 해와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느낌이 드는 생일이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몇 가지의 일들 속에서 맞는 생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마성(麻城)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으로 오지 전까지만 해도 '문경' 혹은 '마성'이라는 이름의 땅이 나와 인연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경상북도 어디에 있는 지방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마성'으로 발령이 나던 날, 당혹감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삿짐을 꾸리는 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순명(順命)으로 엮어온 내 삶의 관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먼 오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 또한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성이 새로운 내 삶의 터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 위에 얻어진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주의 질서와 우주가 베푸는 은혜 속에는 우연이란 실수는 없다."(양귀자, 천년의 사랑)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가 마성의 주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내 삶의 한 섭리(攝理)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마성에서 즐겁게 살고 있다. 그 즐거움 속의 하루, 생일의 날을 맞은 것이다.
다음은 한 학교의 책임자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학교의 교장이 되어 있다는 것은 일선 교원으로서는 최고의 책임을 지니는 자리이다. 겸손의 미덕을 내세워 자긍심을 애써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긍지감만으로 한 학교의 책임자가 된 의의가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반 생애가 훨씬 넘은 세월의 뒤끝에서 또 다른 일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기쁜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가꾸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또한 가볍지 않은 무게로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다는 사실을 지나칠 수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맞는 오늘의 생일이다. 남다른 능력을 갖지 못하여 무엇을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일은 할 수 없을지라도, 나의 허욕으로 인해 남을 애써 힘들게 하거나 공연한 폐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 내 삶이 되기를 기도해 보는 오늘이다. 또한 나의 조그만 '애씀'이 뭇 사람들의 가슴에 맑은 미소가 되어 피어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은 오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오늘 생일은 날짜가 특별하다. 평생에 처음으로 맞는, 태어난 날과 똑 같은 날짜에 맞는 생일이다. 태어난 날과 같지 않은 생일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우리들에겐 양력과 음력의 두 생일이 있다. 흔히들 음력으로 생일을 기리는 경우가 많지만, 음력으로 치면 양력 생일이 맞지 않고 양력으로 치면 음력 생일이 맞지 않는다. 올 생일을 특별히 기리고 싶은 것은, 내가 태어난 날이 지금부터 57년 전의 양력 9월2일 음력 7월29일인데, 올해가 바로 그 음력과 양력이 일치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자기 생애에서 음력과 양력이 일치하는 생일을 몇 번쯤 맞을 수 있을까. 계산상에 의하면 19년마다 한 번씩 맞을 수 있다는데, 그것도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쯤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음력은 달이 지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을 1달(1삭망월)로 치고,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을 1년(1태양년)으로 치는 것인데, 1삭망월은 29.53059일이고 1태양년은 365.2422일이므로 음력 열두 달은 1태양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래서 음력에는 윤달을 두게 되는데, 7개월의 윤달이 들어가는 19태양년이 되면 음력과 양력이 거의 같은 일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계산식으로 나타내면,「12월×19년+7월=235월, (음력) 235월×29.53日≒(태양력) 365.24일×19년」와 같이 되어 생일의 음력 날짜와 양력 날짜가 태어난 해와 같아지는 것이 19년마다 돌아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날짜 수로 계산되는 수치가 소수점 이하 자리까지 붙어 있고, 양력에도 19년 동안 4∼5번 들어가는 윤년이 있어 19년마다 돌아오는 날에 따라 하루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태어난 해부터 양력과 음력의 생일이 일치하는 해를 따져 보면,
1948년 양력 9월 2일 (목요일) - 음력 7월 29일 (무자년 경신월 경인일) - 1세
1967년 양력 9월 2일 (토요일) - 음력 7월 28일 (정미년 무신월 기사일)
1986년 양력 9월 2일 (화요일) - 음력 7월 28일 (병인년 병신월 기유일)
2005년 양력 9월 2일 (금요일) - 음력 7월 29일 (을유년 갑신월 기축일) - 58세
2024년 양력 9월 2일 (월요일) - 음력 7월 30일 (갑진년 임신월 기사일)
2043년 양력 9월 2일 (수요일) - 음력 7월 29일 (계해년 경신월 무신일) - 96세
와 같이 되어 1967년과 1986년은 음력이 하루 앞서고, 2024년은 양력이 하루 앞선다. 그래서 음력과 양력이 태어난 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올해가 평생에 처음이 된다. 다행히 오래 살다 보면 96세 되는 해에 한 번 더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평생에 한 번 뿐인 날이나 주기를 두고 돌아오는 날, 혹은 어떤 소망이나 기원을 담고 싶은 날이거나, 사회·역사적으로 어떤 계기가 되는 날일 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기린다. 백일, 돌, 생일, 회갑, 고희, 희수(喜壽), 미수(米壽), 백수(白壽), 회혼(回婚)을 기림이 그러하고, 국경일, 경축일, 기타 각종 기념일을 기림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생애에 두 번 맞이할 수 없는 회갑일 같이 내 생애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올해 내 생일의 날이 조금은 각별한 날이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모든 시간이란 우주의 운행 질서에 의해 자연히 돌아오는 것이고 기다리기만 하면 주어지는 것이지만, 올해의 경우처럼 두 날이 최소공배수를 이루어 완전히 합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해와 달의 운행을 통해서 얻는 것으로 흔히 일어 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올해의 생일이 생애 처음의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귀하거나 별스럽다고 생각되는 날이면 친지들과 함께 조그만 잔치라도 베풀어 기리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다. 남이 기려주든 스스로 기리든……. 퇴근길의 선생님들을 사택 마당으로 불렀다. 마성에서 가까운 친지들이란 바로 눈을 뜨면 서로 비비대면서 사는 선생님들이다. 멀리 있는 아들, 딸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마당 가장 자리에 장작불을 피워 잉걸불을 만들었다. 삽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돌렸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고 난 다음, 밥과 국을 내어 왔다. 미역국이다. 웬 미역국?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비로소 말했다. 선생님들은 손뼉을 쳤다. 어쩌면 생애에 처음 맞는, 혹은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각별한 날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했다. 까닭을 설명했다. 다시 한번 박수를 쳤다. 선생님들과 밤이 으슥하도록 술잔을 나누며 특별한 날의 특별한 감상을 특별하게 나누었다. 그 잔 속에 한 번쯤은 더 맞이할 수 있는 날이기를 바라는 소망도 은근 슬쩍 띄우면서…….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오늘만이 특별한 날이 아니다. 삶의 하루 하루가 모두 특별한 날이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없을 새로운 날들이다. 산다는 것은 그런 날의 연속이다. 오늘은 그 많은 특별한 날들 중의 하루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날의 그 특별한 날들을 기리면서 살 일이다. 기릴만한 일을 만들며 살 일이다. 진정 특별한 나날들로 새기기 위하여. 산다는 것의 의미가 날로 새로워지기 위하여. 마성에서 맞는 아주 특별한 생일에-.(2005. 9.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