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들에서 북서쪽으로 보이는 백마산 아래로 대야의 중심 시가지가 보이고 산넘어로는 군산시청 방향으로 가는 길이 있다.
나그네가 살던 마을 뒷산 아래로 새로 지은 대야 교회당 건물이 보이고 군산선 철길 앞으로는 나그네 학생 시절에 4H구락부 활동으로 친구들과 함께 밭을 빌려 배추 무 농사를 해보던 추억이 새롭다.(오물 통을 지어보던 경험이~..)
대야 구 시장통.. 어릴 때 친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곳 .. 오늘 같이한 폴신님과도 거의 날마다 습관처럼 거쳐가며 놀던 곳..
대야초등학교 정문 길과 석화리 거쳐 임피 초산등지로 가는 도로가 있다. 초등학교 어린이 들의 학습장(그림, 산행)으로 이용하던 학교 앞산 작은 산봉우리 오메봉~..
군산행 기차가 잘려진 산모퉁이를 돌아 대야로 들어올 때에는 반드시 지금 흐르는 노래 첫머리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기적을 울리던 고척마을..
김구웅(30) 김길웅(30) 친구와 카페회원 난향(50) 후배님도 그 곳에 살았다고 했다.
대야의 유일한 휴식처이며 유원지 역할을 하는 광법사 절을 향해 가는 길 좌측으로 서악리와 오동 마을을 거쳐간다..
보이는 마을은 오동리 마을..
나그네의 어린시절에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그랬겠지만
대야를 둘러싼 산들이 모두 벌거숭이 산이었었다.
이 곳 광법사 절에 오를 때에도
산에는 큰 나무가 없고 자갈이 흘러내리거나 묘지들만 보였었는데
지금 보이는 산은 울창한 숲으로 덮혔고
광법사에 오르는 길에도 산림욕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광법사로 올라가는 길
울긋불긋 꽃길로 수 놓았네~.."
추석날에 색동옷 차려입은 아이들데리고
채색 옷 차림새로 광법사 절에 오르는 많은 여성들을 보면서
나그네가 초등학교 4학년 일기장에 써낸 문구를
담임이신 두용균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신 기억이
떠올랐다.
종교 행사로 절을 찾는 것 말고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나 중학생들까지 소풍 장소로 몰려가고 대야 여인네들 황토찜질 가던곳~..
대야의 청춘 남녀들 사랑찾아 기웃거리던 광법사~..!
오동리 방죽은 산지로부터 내려 뻗은 논 밭에 물을 대기위한 저수지이다.
인공 댐 제방과는 달리 돌보다는 흙으로 덮혀진 저수벽에는 새 봄과 함께 잔디나 작은 꽃들이 많이 피고 쑥이나 나물 캐는 아가씨들도 자주 보였었는데~..
나그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산소에 갈 때면 그 방죽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갔다.
우측 중동 마을 뒷편으로 있는 운심사 절도 빼 놓을 수 없이 쉼터로 찾는 곳이었다. 광법사에서도 본 백일홍 꽃이 예뻤다.
초등학교 뒤로 노인복지센터가 있고 그 윗쪽편으로 군산국민체육 센터 건물이 보이는데 김상철 원장님은 군산시와 근교에서 찾아오는 이용객들이 점점 많아진다며 관심을 많이 보였다.
대야초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에게는
그 누구에게라도 나름대로의 사연들이 담긴 추억거리를 말할 수 있는 대 운동장..
입학식 날 나란히 서기로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열리는 가을 철 대 운동회는 대야 면민 모두에게도 축제의 날로 기억 되고 있을 것이다.
학교 본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게시판에는 학교의 역사와 현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길녀(21)선배님과 장경동(44)후배님의 사진이 눈에 띄고 전국을 제패한 탁구선수들의 어린 모습들도 보였다.
학교 후문에서 바라다보이는 우덕 방향의 이효식(30) 친구가 살던 오산리 마을..예나 다름없이 논과 밭의 작물이 푸르다.
♧♣♧♣
♧♣코스모스 핀 교정에 뛰놀던 것도 지금은
♧♣속절 없는 꿈이련가 밤을 새워 가며
♧♣같이놀던 옛친구도 손잡고 맹세한 언약도
♧♣다 잊고간 친구들의 그 모습 코스모스..♧♣♧♣
나그네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입에 오르는 코스모스 노래이다.
여자 어린이들 뒤 쫓아가며 하얀 브라우스에 빨간 코스모스 꽃도장을 찍어주던 그 시절~..
저 푸른 교정의 뜰에서 남자 어린이들 축구 하고 여자 어린이들 고무줄 뛰기 놀이하던 그 시절들이 그립게 스쳐간다.^^*..
******* 고향 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타지에 나가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은 언제까지라도 그리움으로 가슴에 담겨있으며 찾아가고픈 곳이기도 합니다.
고향이라는 말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말 한다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곳에서 함께하던 사람들과 추억속의 사연들이나 향기(정서)까지 다 포함하여 말해주는 것 같이 생각 됩니다.
하루의 일정으로는 다 돌아볼 수도 없을뿐만아니라
추억을 따라 쓴 글 또한 길게 쓰다보면 마치 개인의 자서전의 한 부분처럼 보여지고 매우 지루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애써 줄여 쓴다고 하면서도 제 개인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격려와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신 우리 님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터전들과 함께 주신 나그네의 삶 속에서 항상 작은 자로 걸어가는 제가 언제까지나 님들의 참 이웃이기를 바랍니다.^^*
김후배님, 고향의 중심지에 일터를 마련하시고 교회에서는 장로로서의 직임과 선후배 아우러 고향을 지켜나아가는 지킴이의 직분도 잘 감당하시리라 믿고 감사드립니다..생각 같아서는 벼가 무르익은 가을철에 몇 장면만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그 외에라도 어떤 사진과 글 그리고 고향소식 자연스럽게 올려주세요^^*..
옛날과 달리 오늘의 우리는 세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 될 수 있는 자들입니다..고향과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이나 외국에까지 흩어져 사시는 우리 선후배님들..그 옛날 장날이 되면 가끔씩 만나뵙던 님들 계시던 것처럼.. 자주 들려서 서로의 소식이나 정담을 나누시며 좋은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김후배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이 많은 사진과 글들을 정리해서 올리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죠....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혹 더 가보고 싶으신곳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제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후배님, 고향의 중심지에 일터를 마련하시고 교회에서는 장로로서의 직임과 선후배 아우러 고향을 지켜나아가는 지킴이의 직분도 잘 감당하시리라 믿고 감사드립니다..생각 같아서는 벼가 무르익은 가을철에 몇 장면만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그 외에라도 어떤 사진과 글 그리고 고향소식 자연스럽게 올려주세요^^*..
장로는 아직 멀었구요...집사입니다..
선배님, 정말 훌륭한 유물을 만드셨습니다. 원래는 고향에 있는 저희가 했어야 하는데 죄송스럽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편집기술도 훌륭하시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사존합니다.
옛날과 달리 오늘의 우리는 세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하나 될 수 있는 자들입니다..고향과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이나 외국에까지 흩어져 사시는 우리 선후배님들..그 옛날 장날이 되면 가끔씩 만나뵙던 님들 계시던 것처럼.. 자주 들려서 서로의 소식이나 정담을 나누시며 좋은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김후배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얀 브라우스에 꽃도자을 찍어준건??????????// 좋은일인가요? 아니면?????????
백후배님, 아주머니 어린시절에 꽃도장 찍혀본 경험담 들어보세요~..처음엔 달아나면서 눈을 흘기더니만..나중엔..그리고 더 나중엔 그 교정의 추억을 못잊도록 그리면서 덕분에 나그네도 그려보지요~..
너무도 정겨운 고향 26회졸업시절 들석화리(중리) 살던 추억이 떠 올라요 마루고개,,,,,,
마음속 감정으로는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도 인터넷은 못하시거나 안 하시는 님들이 많으신데..선배님께서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참으로 반갑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40년이 흘렸나..어렴픗한 기억이라...시간 내서 한번쯤 다시 돌아보고 싶습니다....
추억 여행기 2번에서 미화님 사시던 그 곳 갔었는데..미리 좀 알았었더라면 더 좋을 뻔 했네요^^*..
선배님 고향의 향기가 물씬 뭍어나네요..
어디 어디 해도 우리들 모두가 꿈을 공유하고 키워가던 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