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한참 마당에서 밤나무에 올라탄 풍뎅이 한 마리를 붙잡아 목을 비틀어 뒤집어 놓고 ‘손님 왔다 마당 쓸어라! 손님 왔다 마당 쓸어라!’를 연발하고 있었다. 풍뎅이는 연신 양쪽 날개를 파닥거리며 마당을 쓸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벨 소리가 짤랑 짤랑 들려왔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긴 짐자전거에는 네모 반듯한 얼음 통이 매달려있고 그 자전거를 열심히 운전하며 종을 흔들어대는 그 사람은 바로 아이스께끼 장사였다.
“저, 저기 아저씨! 돈 가진 거 없는데요.”
나는 간신히 목구멍에서 머뭇거리는 말을 토해냈다.
“아, 그래? 그럼 비료포대나 떨어진 신발도 받는단다. 얼른 가져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 나는 마루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떨어진 고무신을 찾아냈다. 한 짝 고무신은 기차표였고, 또 다른 한 짝 고무신은 타이어 표였다. 나는 차마 기차표 고무신은 가져갈 수 없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기차를 타는 꿈을 꾸었다. 저 기차표 고무신을 팔아버리면 다시는 기차를 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겨우 비료포대 두 장과 타이어표 찢어진 고무신을 가져가 아이스께끼 한 개랑 바꾸었다.
입으로 사각사각 베어 먹으면 금세 아이스께끼가 닳아질 것 같아서 연신 혀로 빨아먹었다.
내가 10살이 되던 날 소풍을 가게 되었다.
집 앞에는 치마바위란 산이 있었다. 우린 연중행사가 되다시피 한 그 산으로 소풍을 갔다. 아버지께서 100원짜리 한 개를 주셨다. 쭈쭈바 한 개가 30원이었다. 그해 어느 날인가 세간에는 무서운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아. 글쎄, 하드에서 사람 손가락이 나왔데. 그래서 그 하드공장 문 닫게 생겼나봐.”
“너도 들었니? 하드공장에서 일하던 사람 손가락이 기계에 잘려 아이스크림 속으로 들어갔나 보더라.”
이 소문은 삽시간에 나라 전체로 퍼졌다. 아마 방송에서 뉴스로 나왔었나본데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볼 수 없었다. 그 후로 하얀색 하드는 무서워서 입에 대지를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쭈쭈바는 불티난 듯 팔려나갔다. 처음엔 쭈쭈바를 뜯을 줄 몰라 가위를 찾기 일쑤였는데, 성질 급한 아이들은 입으로 꼭 깨물어 빙빙 비틀었다. 결국 비닐이 잘려나가면 우린 또 그 속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빨고 또 빨았다.
내가 폴라포를 즐겨 찾게 된 때는 아마 내가 어른이 된 후가 아니었나 싶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포항에서 나는 책 세일즈를 하고 있었다.
포항의 기온은 다른 지방보다 훨씬 더웠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우린 비좁은 여인숙방에서 합숙 생활을 하였다.
그래도, 일을 나갈 때는 가장 세련된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나갔다.
어떤날은 줄기차게 빌라주택의 벨만 눌러대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아파트 칸칸이 벨을 눌러 문이라도 열어주길 바라던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집 허탕, 두집,세집 그렇게 한두 시간 허탕을 치고 나면 온힘이 쭉 빠졌다. 맥이 풀린다는 말이 바로 그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우린 삼삼오오 뙤약볕을 피해 빌라 단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폴라포를 입에 물었다. 한 손엔 상담용 가방을 하나씩 들고서…….
그때 그 폴라포 맛은 잊혀지지 않았다. 가슴속을 헤집고 들려오는 말은 ‘안돼! 나는 안돼! 난 세일즈는 적성에 안 맞아! 난 형편없는 놈이야.’ 이렇게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가는 찰나 입속에 들어가는 포도맛 폴라포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톡톡해 해 주었다.
폴라포 한 개를 다 먹고 나면 힘이 솟았다. 희한하게도 폴라포를 먹는 날은 꼭 카드가 나왔다. 군 전역 후에도 폴라포는 유일한 나의 단짝이었다. 오토바이를 타며 시내 곳곳을 누빌 때도 힘에 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언제나 폴라포는 나에게 힘을 넣어주었다. 물론 ‘빙하시대’란 아이스크림도 적지 않게 먹었지만 말이다.
그 후로 보석장사를 하면서부터는 아이스크림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허기질 일도, 갈증 날 일도 없었던 시간들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산을 오를 때도 시원한 얼린 물 하나면 해결이 되었었다.
그런데, 다시 폴라포의 힘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산행 때문이었다.
저번 달에 산악회 회원들과 산행을 하였다. 불암산과 수락산 연계산행이었는데 장장 7시간을 걷는 행군이었다. 물들이 부족하여 기진맥진 하고 있을 무렵 정상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사주셨다.
그 아이스크림은 정말 꿀맛이었다.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혀끝을 건드리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차”
더 이상 아름다운 형용사는 필요 없었다. 어느새 회원들의 입에선 찡그림 대신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날, 그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면 아마 중도에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그날 산행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양이 상당히 작았다. 자꾸 하나더 생각이 간절해졌다. 모두들 쉽게 사라져버린 아이스크림의 여운을 마냥 그리워하고만 있었다. 다시 사러 내려가기엔 이미 너무 많은 길을 올라와 버렸기에…….
나는 생각했다. 다음 산행 때는 아이스크림을 아예 미리 준비해서 꽁꽁 얼려서 산행을 하자고 단단히 다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저께 우리가족은 대둔산으로 산행을 하였다.
일반 아이스크림 한 개씩과 폴라포 세 개를 샀다. 밤새 꽁꽁 얼리고 얼음주머니까지 얼렸다. 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하는데 아들이 자꾸 보챈다.
“아빠! 아이스크림 한 개씩 먹으면 안돼요? ‘
주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안돼!”
아이스크림은 가장 극한 상황일 때 먹어야만 그 효과가 백퍼센트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산 입구부터 숨을 헉헉 거렸다. 팔이 다쳐 두어 달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아이의 몸이 많이 쇠약했던 것이다.
아들은 자꾸 컵라면 사달라는 노래를 불렀고, 치킨 사달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찌나 징징대는지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
“아니! 주워온 자식인가요? 애가 저리 사 달래는데 한개 사주지 그래요?”
갑자기 아내와 나는 무안해졌다.
‘주워온 자식? 우리 우진 이가?’
나는 웃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인 아들을 쉽게 주워왔느니 어땠느니 하는 참 쉽게 말을 해 버리는 그런 아주머니가 한편으론 씁쓸했다.
“우진아! 떡이라도 줄까? 조금 더 올라가면 싸가지고 온 밥이며 과일이며 실컷 먹을 텐데 여기서 컵라면을 사 먹어야 쓰겠니?”
아들은 떡 한 조각을 받아먹으며 피로를 달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정상을 향하여 힘을 냈다. 온몸에서 땀방울이 비 오듯 흘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올라간 다음 매점이 있는 가계 앞에서 우린 잠시 쉬었다.
그리고 내가 가방을 열었다.
“자! 우진아! 고생했다. 여기 폴라포!”
“우와! 고맙습니다. 아빠!”
스포츠 맛인 폴라포를 아들은 두 손으로 받아들고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며 그 상큼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먹었고, 아내는 포도 맛이 아니라며 툴툴거리면서도 잘도 먹었다. 나는 이 맛인들 어떠랴 저 맛인들 어떠랴 폴라포 하나 안 녹았으면 그만이지 하는 심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었다.
하도 우리 세 명이 맛있게 폴라포를 먹자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시며 얼른 자리를 뜨셨다.
“아이고, 할망구야!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죽겠소.”
“에고, 영감도 주책이쇼!”
“안되겠어. 저거 먹고 싶어서 얼른 갑시다. 하하하”
나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폴라포는 세 개밖에 사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없었고. 아이스크림 은 그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물이 되어있어서 할아버지에게 드시란 말도 못했다.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이던 아들이 힘이 펑펑 난다며 좋아라. 했다.
“아빠! 다음 산행 때도 꼭 스포츠맛 폴라포 사주세요 아셨죠?”
“하하 그래 그러마! 산에 따라만 잘 다니렴.
아들의 다리도 힘이 솟았고, 그 아들을 바라보는 우리 두 사람도 힘이 솟았다.
아들은 이제 일등으로 앞서서 산행을 하며 제 엄마 손을 이끌었다. 구름다리도 위태위태하던 삼선 계단도 아이는 마치 에버랜드 놀이동산에 와서 놀이기구를 타는 듯 신이나 했다.
그 작은 폴라포 한 개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위로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오늘 마냥 행복한 하루를 폴라포에 탈 수가 있었다.
“폴라포여!”
“언제든 내가 힘들면 널 또 부르마! 부디 사라지지 말고 꾸준히 팔려다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냥 행복했다.
산행은 그런 것이다. 정상 정복의 의미도 있지만, 오며가며 느끼는 이 잔잔한 정을 오래도록 훈훈하게 간직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산행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댓글 훗날 우진이도 아빠와 같은 폴라포 예찬을 하겠군요. 폴라포가 없어지지만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