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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소개 스크랩 秋史의 가을
벽산 추천 0 조회 121 12.03.20 12: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사연등(芋社燃燈)

 

초의란 늙은 중이 먹에서 참선하여 / 草衣老衲墨參禪
등 그림자 심심(心心)에 먹 그림자 둥글었네 / 燈影心心墨影圓
등 불꽃 베낼세라 그대로 한 번 도니 / 不剪燈花留一轉
천연스런 연꽃이 불 속에서 솟아나네 / 天然擎出火中蓮

[주D-001]심심(心心) : 불꽃의 중심 부분.

 

유초의선(留草衣禪)

 

눈앞의 조주차를 공짜로 마셔대고 / 眼前白喫趙州茶
손 속에는 굳건히 범지화 쥐었다네 / 手裏牢拈梵志華
외친 뒤에 귓문이
차츰차츰 젖어드니 / 喝後耳門飮箇漸
봄바람 어드멘들 산가가 아니리오 / 春風何處不山家

[주D-001]조주 : 당 나라 조주(曹州) 사람으로 조주화상(趙州和尙)인데 본성(本姓)은 학(?)씨임.
[주D-002]범지화 : 불법을 구할 뜻을 지닌 자에게 설법하는 것.
[주D-003]차츰차츰 젖어드니 : 원문의 ‘飮箇漸’ 세 자는 잘못된 듯함
 

추일만흥(秋日晩興) 3수

 

도황 해자 좋은 철을 서울에서 지내자니 / 稻黃蟹紫過京裏
기러기 나는 -원문 결- 가에 가을 흥이 끝이 없네 / 秋興無端?
어정이라 저기 저 낚싯줄 늘인 곳에 / 最是漁亭垂釣處
갈매기 해방인 양 자유로이 조으누나 / 任放沙禽自在眠

지붕머리 은하수라 유기는 빗겼는데 / 銀河當屋柳旗斜
내일 아침 기쁜 일을 촛불꽃이 알려주네 / 喜事明朝占燭華
좋은 손님 오실 때는 술과 밥이 많을 테니 / 佳客來時多酒食
길한 상서 집에 가득
밤 빛도 하얗구나 / 夜光生白吉祥家

이끼 꽃 수도 없이 댓돌머리 솟아 나니 / 碧花無數出?頭
산 집의 제일 가을 짐작하고 남겠구만 / 占斷山家第一秋
석류 뒤 국화 앞에 구경거리 잇따르니 / 榴後菊前容續玩
장원홍 저게 바로 풍류를 아울렀네 / 壯元紅是竝風流

[주D-001]유기 : 유성(柳星)임.
[주D-002]내일 …… 알려주네 : 촛불 심지에 꽃이 피면 재물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두보 시 “燈火何太喜"의 주석에 보임.
[주D-003]밤 빛도 하얗구나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글이 있음.
[주D-004]장원홍 : 자말리(紫茉莉)의 이명(異名).

 

초량(初?)

 

능각진 봉우리는 여위고 푸르다면 / 楞楞山出瘦靑意
슬슬한 가는 물살 깁 무늬 흐르누나 / 瑟瑟波明經?流
또렷또렷 먼 하늘에 외론 꿈 꼿꼿한데 / 的的遙天孤夢直
여기저기 이슬 땅엔 온갖 벌레 가을 소리 / 頭頭露地百蟲秋

민 행대장의 서장관 행차를 보내다

[送閔行臺丈書狀之行]

 

인생이 황하수를 건너지 못할진대 / 人生未得渡黃河
요연에 가 본 이도 그 또한 많지 않소 / 看到遼燕亦不多
지구를 감돌자면 무릇 얼마나 될고 / 繞出地毬凡幾許
호도껍질 그 속에서 때 놓칠 걸 한탄하네 / 胡桃殼裏歎蹉?

우통(尤?) 시인 옛제 부른 죽지사를 읽어보면 / 尤家昔唱竹枝詞
우리 동방 사이와 다르단 걸 알았거든 / 解識吾東異四夷
사모라 판포를 다투어 곱게 보며 / 紗帽版袍爭艶看
구주의 백성들이 곧 한관의 위의라고 / 九疇人是漢官儀

때마침 이역에서 가을 바람 만난다면 / 恰從異域過秋風
좋은 국화 시든 난초 생각이 많을밖에 / 佳菊衰蘭思不窮
정녕히 알고말고 요양성 바깥 길에 / 定識遼陽城外路
돌아가는 제비가 오는 기럭 원망하리 / ?敎歸燕怨來鴻

[주D-001]우통(尤?) : 청 나라 시인. 호는 서당노인(西堂老人). 우리나라의 풍물을 노래한 죽지사가 있음.
[주D-002]사모라 …… 곱게 보며 : 사모ㆍ판포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관복인데 중국의 아동들이 우리 사행(使行)의 장복(章服)을 보고 도리어 이상하게 여겨 다투어 구경하였음. 사모ㆍ관포란 말은 청 나라 이불(李?)의 《목당시집(穆堂詩集)》에 “紗帽版袍春人貢”이라는 글귀가 보임.
[주D-003]구주 : 기자(箕子)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말한 것인데 기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우리나라를 가리킴.
[주D-004]한관의 위의 : 사모ㆍ판포가 명 나라 복식이므로 한 말임.
[주D-005]좋은 …… 난초 : 위에 보이는 김상헌의 시를 말함.

 

서쪽 이웃의 이씨 노인에게 장난삼아 바치다

[?呈西隣李?】

 

백발로 즐거움 없어 자다 말고 길이 탄식하노니 / 白髮無歡寤歎長
서쪽 이웃 작은 모임에 좋은 자리 부러워라 / 西隣小集羨淸芳
느릅나무 잎새 떨어져 산집은 고요하고 / ?楡葉脫山齋靜
무를 쪄서 만든 사일의 떡이 향기롭네 / 蘿?蒸成社餠香
좋은 모임은 오늘 밤 달만큼 푸짐할 수 없고 / 嘉會莫饒今夜月
덧없는 인생은 흥취가 소년에게만 있다오 / 浮生只在少年場
아래께 비바람이 거듭 머리를 돌리어 / 向來風雨重回首
수척한 국화꽃이 이미 절반이나 상하였네 / 瘦損黃花半已傷

초가을에 대하여 여덟 가지를 읊다

[新秋八詠]

 

도화세풍(稻花細風)

이삭에 실바람 불어라 완전히 기울지 않아 / 細風吹穗未全斜
흔들리는 벼 야로의 집 울타리와 가지런한데 / ??平籬野老家
담록색 벼 열매는 아직 잎 속에 숨어 있고 / 淡綠?胎猶隱葉
노르스름한 분가루는 꽃이라 이름하네 / 微黃粉屑强名花
늙은이는 기뻐하며 갠 하늘 백로를 바라보고 / ?心喜悅看晴鷺
논 매던 손은 석양까지 한가히 조는도다 / 耘手閑眠到夕鴉
이곳이 바로 소요하며 날 보내기 좋아라 / 是處消搖堪遣日
권세의 길은 위험해라
기아가 있고말고 / 勢途危險有機牙

호리미월(瓠籬微月)

죽죽 뻗는 박넝쿨에 박 열매 드리웠는데 / 瓠葉??瓠子垂
반 갈고리 초승달이 집 서쪽에 기울었어라 / 半鉤新月屋西?
두어 흔적 희미한 달은 막 봉오리 펼쳤는데 / 數痕微白初開?
한 그물 푸르름엔 울타리를 분별 못 하겠네 / 一?純靑不辨籬
문에 나부끼는 나방은 박쥐 날개를 따르고 / 閃戶飛蛾隨?翼
마당에 앉은 늙은 개는 노인과 짝하였도다 / 坐庭老犬伴鷄皮
가을이라 술 빚어 술병을 기울이나니 / 秋來酒熟傾壺口
융왕이 월지로 술 마신 것 부럽지 않네그려 / 未羨戎王飮月支

초근충음(草根蟲吟)

벌레 소리 가을 뜻은 둘 다 흔적이 없고 / 蟲聲秋意兩無痕
기와 그림자 비껴 흘러 들집은 어둑한데 / 瓦影斜流野閣昏
선명한 뜨락 모래엔 이슬 방울이 맺히고 / 的歷庭沙生露眼
움직이는 숲 달은 담장 밑을 비추누나 / 婆娑林月照墻根
절로
굳은 절개 있어 경쇠 치길 좋아한 거지 / 自應?節欣敲磬
어찌 깊은 원한 있어 은총 못 입은 걸 한하랴 / 豈有深?恨覆盆
부질없이 인간의 게으른 아낙만 놀래킬 뿐 / 空向人間驚懶婦
천손까지 재촉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 不聞催促到天孫

수초형비(樹梢螢飛)

남은 안개비 뚝뚝 떨어져 거친 들 적시어라 / 餘?滴瀝濕荒郊
개똥벌레 빛을 날리며 띠지붕을 지나네 / ??飛光度屋茅
담 머리에 구름이 짙어 갈 길을 놓쳤다가 / 垣角雲沈迷去路
뻘밭에 바람이 그치자 새순에 와서 앉아라 / 塘?風定妥新梢
풀 사이 요란하게 반짝인 건 상관할 바 아니요 / 非關草際千星亂
꽃 사이에 한 점 붙어 있는 걸 사랑하나니 / 自愛花間一點膠
서리 오고 낙엽질 때가 참으로 염려되어라 / 霜後飄零眞可念
굴도 없고 둥지도 없는 네가 가련쿠나 / 憐渠無穴又無巢

고림창흔(高林漲痕)

맑고 푸른 가을 강에 한 상앗대 깊어라 / 秋江湛碧一?深
지난 일 어리둥절하여 찾아 낼 길이 없구려 / 往事如狂不可尋
수숫잎은 바람에 한들한들 절벽에 붙어 있고 / ?葉?風棲峻壁
띠뿌리는 흙을 띤 채 높은 숲에 엉겨 있네 / 茅根帶土上穹林
쪽 곧은 평행선 물줄기는 누인 베를 가로놓은 듯 / 平行一字疑橫練
꺾여 가닥진 가지는 거문고줄 걸기에 알맞으리 / 衝折?枝合掛琴
상전벽해 천지개벽이 잠깐 사이의 일이니 / 靑海黃塵彈指事
목로집에서 주머니돈 아낌없이 털어 마시세 / ?頭莫惜倒囊金

현애초식(懸崖樵蝕)

기러기 줄 고기 비늘처럼 나란히 열을 지어 / 雁齒魚鱗隊隊排
슬픈 노래 호쾌한 피리로 나루를 함께 이르네 / 哀歌豪笛渡頭偕
책 뜯어 먹는 좀벌레가 붉은 절벽을 타고 오른 듯 / ?書小?緣丹壁
뽕잎 갉아먹는 봄 누에가 푸른 비탈을 오른 듯 / 蝕葉春蠶上翠厓
등 뒤에 붉게 쌓인 건 새 싸리나무이고요 / 背後赤?新?矢
손 끝에 늘어진 푸른 빛은 늙은 소나무 가장이라네 / 指端靑落古松釵
해마다 산간 초막집에 머무는 날이면 / 年年草棲山日
맑은 이슬 가을 바람 기후가 변함없구려 / 玉露?金氣不乖

또, 잡초는 말끔하여 머리를 막 깎은 듯하고, 나뭇짐은 때로 반쯤 기운 비녀 같기도 하네[雜草淨如新剃髮 橫?時有半?釵]. 둥그런 흔적은 마치 용린 거울을 대한 듯하고, 두 길은 때로 연미의 가장귀처럼 나누이네[圓痕宛對龍鱗鏡, 兩路時分燕尾釵].


석계완의(石溪浣衣)

하늘은 청명하고 해는 중천에 떴는데 / 玉宇澄明日未西
모든 집이 빨래하러 일제히 이르러라 / 千家??到來齊
열 폭의 옷은 온 바위를 덮어 펼쳐져 있고 / 十?衣鋪包全石
수많은 방망이 소리는 온 시내를 부술 듯하네 / 百杵聲高碎一溪
분주한 붉은 다리는 빈사의 여자종이요 / 赤脚亂行貧士婢
고개 숙인 검은 머리는 장사꾼의 아내로세 / 鴉?低首賈人妻
황혼에 빨래통 이고 늦게야 돌아오노라면 / 黃昏戴白携歸晩
사립문 안 홀만한 방에서 아이가 울어대네 / ?戶兒啼小似圭

사정쇄망(沙汀?網)

은하수 새벽에 하늘 가득한 별 옮기어라 / 明河曉轉滿天星
해 뜬 어부의 집에 버들잎이 푸르른데 / 日出漁家柳髮靑
발 틈으로는 맑고 푸른 물이 환히 비치고 / ?眼映開澄綠水
고기 비린내는 실바람 백사장에 진동하누나 / 魚腥吹動細風汀
희미한 그물 그림자는 지나는 나비를 놀래키고 / 熹微絲影驚過蝶
선명한 모래빛은 개똥불처럼 반짝이어라 / 的歷沙光閃亂螢
낮엔 말리고 밤엔 담그며 세월을 보내노니 / 晝?宵沈銷歲月
이 가운데서 꽤나 심령을 기를 만하네 / 此中多小養心靈

[주D-001]기아(機牙) : 쇠뇌의 시위를 잡아당겨 살[矢]을 놓는 기관을 이르는데, 전하여 남보다 앞서 기선(機先)을 잡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2]두어 흔적[數痕] : 달이 완전하게 하얗지 않고 속에 여기저기 거무스레한 점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3]한 그물[一?] : 여기서는 박넝쿨이 얼기설기 뻗어서 울타리를 덮고 있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주D-004]융왕(戎王)이 …… 것 : 융왕은 곧 서역(西域) 흉노(匈奴)의 임금인 묵특(冒頓)을 이름. 일찍이 흉노 임금 묵특이 월지국(月支國)을 격파하여 월지왕을 죽이고 월지왕의 두개골을 술그릇으로 만들어 술을 마셨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D-005]굳은 …… 좋아한 거지 : 공자(孔子)가 위(衛) 나라에서 경쇠를 치자, 삼태기를 멘 자가 그 문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마음을 둔 데가 있도다! 경쇠를 침이여!” 하더니, 잠깐 뒤에 다시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굳고 잗닮이여!”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벌레의 울음소리도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절로 나온 것임을 비유한 말이다.《論語 憲問》
[주D-006]천손(天孫) : 베 짜는 일을 맡았다는 직녀성(織女星)의 별칭이다
 

가을에 해거 도위가 왔으므로 달밤에 앞 강에서 배를 띄우다

[秋日海尉至前江泛月]

 

달을 내고 나서 강을 내었으니 / 生月乃生江
하늘의 의사가 분명하도다 / 天公意分明
금물결 갑자기 번쩍번쩍 빛나니 / 金波忽??
그 누가 놀라 부르짖지 않으리오 / 何人不叫驚
바람 물결이 벽옥을 갈아 내니 / 風??碧玉
비루한 사내가 당장 청수해지네 / 鄙夫立地淸
황제가 처음 배를 만들 때에 / 黃帝作舟時
작은 배를 응당 먼저 만들어 / ?子應先成
이 경쾌한 물건을 물에 띄우고 / 泛此輕快物
용이하게 선경에 당도했으리 / 容易抵瑤京
왕성엔 십만 가호나 모여 살아 / 王城十萬家
연기가 늘 자욱이 끼어 있으니 / 煙火常相?
아무리 좋은 관현악이 있은들 / 縱有絲與竹
어떻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으랴 / 何能發淸聲

이청풍 복현 이 가을에 찾아와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李淸風 復鉉 秋日相過之作]

 

서루에 홀로 서니 생각이 아득했는데 / 獨立書樓思渺然
나루터 석양 아래 나그네가 배를 돌려라 / 渡頭殘照客回船
단풍잎 한 숲 속엔 소가 걸어다니고 / 一林黃葉牛行路
만 조각 찬 구름 아랜 기러기 울며 날아가네 / 萬片寒雲雁叫天
늙은이 필력 신기하여 흐린 눈 닦고 보고 / 老筆有神?病眼
가을 산은 그림 같아 읊는 어깨 솟구쳐라 / 秋山如?聳吟肩
도주의 시구를 누가 능히 화답하리요 / 道州詩句誰能和
산음의 이현편에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山陰理縣編

 

구월 이일에 성수가 오다

[九月二日惺?至]

 

단풍잎 국화꽃 아래 홀로 누각 기대 있는데 / 病葉寒花獨倚樓
조용히 노 저어라 황혼에 남주를 들렀네 / 黃昏柔櫓過藍洲
풀벌레는 산창의 밤에 함께 울어대고 / 草蟲同語山窓夕
벼논의 게는 멀리 택국의 가을이 생각키네 / 稻蟹遙憐澤國秋
상락주는 새로 빚어 초하룻날 마셨건마는 / 桑落新?聊朔飮
유랑하는 행색은 또 남녘으로 발길 돌려라 / 蓬飄行色又南?
인생의 떠돌이 생활 원래 정처가 없으니 / 人生契闊元無定
몇 번이나 협곡에 내린 배를 맞이할런고 / 能幾重迎下峽舟


 

흰구름[白雲]

 

갈바람이 흰구름에 불어 / 秋風吹白雲
하늘에 가려진 것 하나 없네 / 碧落無纖?
이 몸도 갑자기 가벼워져서 / 忽念此身輕
훌쩍 날아 세상을 나가고 싶어 / 飄然思出世

오징어 노래[烏?魚行]

 

오징어가 물가를 돌다가 / 烏?水邊行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보았는데 / 忽逢白鷺影
새하얗기 한 조각 눈결이요 / 皎然一片雪
눈에 빛나기 잔잔한 물과 같아 / 炯與水同靜
머리 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 擧頭謂白鷺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 子志吾不省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 / 旣欲得魚?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하는가 / 云何淸節秉
내 배에는 언제나 한 주머니 먹물 있어 / 我腹常?一囊墨
한 번만 뿜어내도 주위가 다 시커멓기에 / 一吐能令數丈黑
고기들 눈이 흐려 지척 분간을 못하고 / 魚目昏昏咫尺迷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남북을 분간 못하지 / 掉尾欲往忘南北
내가 입으로 삼켜대도 고기들은 깜박 몰라 / 我開口呑魚不覺
나는 늘 배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 / 我腹常飽魚常惑
그대는 깃이 너무 희고 털도 너무 유별나서 / 子羽太潔毛太奇
위 아래가 흰옷인데 누가 의심 안 하겠나 / 縞衣素裳誰不疑
간 곳마다 고운 얼굴 물에 먼저 비치기에 / 行處玉貌先照水
먼 데서 바라보고 고기 모두 피해가니 / 魚皆遠望謹避之
온종일 서 있은들 그대 무얼 기대하리 / 子終日立將何待
다리만 시근시근 배는 늘 고프지 / 子脛但酸腸常飢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어 입고 / 子見烏鬼乞其羽
본색일랑 감춰두고 적당하게 살아가소 / 和光合?從便宜
그리하면 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 / 然後得魚如陵阜
암컷도 먹이고 새끼들도 먹일거네 / ?子之雌與子兒
백로가 오징어에게 말하기를 / 白鷺謂烏?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마는 / 汝言亦有理
하늘이 나에게 결백함을 주었으며 / 天旣賦予以潔白
자신이 보기에도 더러운 곳 없는 난데 / 予亦自視無塵滓
어찌하여 그 작은 밥통 하나 채우자고 / 豈爲充玆一寸?
얼굴과 모양을 그렇게야 바꾸겠나 / 變易形貌乃如是
고기가 오면 먹고 달아나면 쫓지 않고 / 魚來則食去不追
꼿꼿이 서 있으며 천명대로 살 뿐이지 / 我惟直立天命俟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 烏?含墨?且嗔
멍청하다 너야말로 굶어죽어 마땅하리 / 愚哉汝鷺當餓死

귀양살이에서의 여덟 가지 취미생활[遷居八趣] 금호자고(金壺字考)에, 천인(遷人)은 적객(謫客)을 이른 것이라고 하였음

 

서풍은 집을 지나서 오고 / 西風過家來
동풍은 나를 지나서 가네 / 東風過我去
바람 오는 소리만 들릴 뿐 / 只聞風來聲
바람 이는 곳은 볼 수가 없어 / 不見風起處

위는 바람을 읊은 것[吟風]


밝은 달이 동해에 떠오르면 / 明月出東溟
금물결이 만리를 일렁이는데 / 金波?萬里
어찌하여 강 위에 뜬 달은 / 何如江上月
적막하게 그 강물만 비춰줄까 / 寂寞照江水

위는 달을 노래한 것[弄月]

뜻이 있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며 / 有意不看雲
뜻없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라네 / 無意不看雲
뜻이야 있거나 없거나 간에 / 聊將有無意
석양이 되도록 바라본다오 / 留眼到斜?


위는 구름을 보는 것[看雲]


고향이 예서 팔백 리나 되어 / 家鄕八百里
개거나 비오거나 그게 그거로되 / 晴雨無增損
갠 날은 왠지 가깝다 싶고 / 晴日思如近
비오는 날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 雨日思如遠

위는 비를 대했을 때[對雨]


북극이 땅 위로 솟은 것이 / 北極之出地
천리에서 사도가 틀린다는데 / 千里差四度
그래도 망향대에 올라 / 猶登望鄕臺
서글픈 심사로 해 지도록 있다 / ??至日暮

위는 산에 오르는 것[登山]

흐르는 물 저절로 흘러가며 / 流水自然去
가도 가도 막힘이 없누나 / 活活無阻?
생각하면 천지가 창조될 때 / 憶得鴻荒初
산이 무너져 사태가 났던가보지 / 丘陵有崩汰


위는 물에 갔을 때[臨水]


백 가지 꽃 다 꺾어서 봐도 / 折取百花看
우리집 꽃만은 다 못하네 / 不如吾家花
그는 꽃이 달라서가 아니라 / 也非花品別
다만 우리집에 있기 때문이야 / ?是在吾家

위는 꽃을 찾는 것[訪花]

실버들 천 가지 만 가지 / 楊柳千萬絲
가지마다 모두가 청춘이로세 / 絲絲得靑春
그 가지들 봄비에 젖으면 / 絲絲霑好雨
가지가지 사람 괴롭게 만든다네 / 絲絲惱殺人

위는 버들을 찾는 것[隨柳]


 

국화 시절에 혜보ㆍ무구와 함께 죽란사에서 모임을 갖다

[菊花同?父无咎竹欄宴集]

 

옛날의 국화주를 / 舊日黃花酒
금년에는 조금만 기울이네 / 今年只細傾
남쪽 언덕에서는 예를 익히고 / 南皐猶讀禮
동쪽 산협으로 밭 갈러 왔다오 / 東峽已歸耕
성중의 풍류 맛은 떨어지고 / 城邑風流減
산 속이래야 기상이 원만하지 / 山林氣象?
국화 향기 아직은 남아 있어도 / 幽香雖未歇
계절은 이미 겨울로 가는구나 / 亦旣歲?嶸

 

꽃 아래서 혼자 마시며 정언 김상우를 생각하며 시를 써 부치다[花下獨酌憶金正言 商雨 簡寄]

 

국화 아래서 혼자 잔질하며 / 獨酌黃花下
머나먼 곳 사람 생각하네 / ??憶遠人
궁벽한 땅 누구와 함께 있을까 / 地偏誰共住
해 저물어 국화 너를 가까이하리 / 歲暮汝爲親
살짝 취해 시름 잠시 잊었더니 / 薄醉排愁暫
밝은 가지 새롭게 눈에 비치네 / 明枝照眼新
전해 듣기에 많은 백발들이 / 傳聞多白髮
쓸쓸히 강가에 가 누웠다네 / 寥落臥江濱

꽃 아래서 홀로 잔질하다[花下獨酌]

 

오모 차림으로 갈바람 속에서 / 烏帽秋風裏
국화 앞에 쓸쓸히 앉아 있네 / 蕭然坐菊花
그윽이 풍기는 너무 예쁜 색이 / 絶憐幽艶色
고적한 사람 위로를 해 준다 / 能慰寂료寥家
빛나는 태양 아래 누렇게 널려 있고 / 黃擺輝輝日
담담한 석양 놀에 분홍빛 간들거리네 / 紅吹澹澹霞
석공은 지금 보이지 않고 / 石公今不見
맑은 그림자 제멋대로 누워 있구나 / 淸影任橫斜


 

음주(飮酒)

 

국미는 취하게 만들어 좋고 / 麴米?皆好
운화는 안기를 비스듬히 하지 / 雲和抱更斜
혼자서 천 년 전 벗을 생각하고 / 獨思千載友
권세 있는 집안엔 가지 않아 / 不向五侯家
만물 형태도 변함이 없겠으랴만 / 物態寧無變
어이하여 우리 인생 한계가 있을까 / 吾生奈有涯
뜰에 옮겨 가는 해 그림자를 보게 / 閒看庭日轉
꽃 그림자 몇 가지로나 갈라지는가 / 花影幾枝叉

좋은 말들 앞 다투어 들어오고 / 細馬爭門入
고관들 와 집에 가득하면 / ?貂滿院來
의대가 달아오를까 걱정되어 / 直愁衣帶熱
짐짓 술집 곁으로 간다네 / 故傍酒家廻
마셔도 끄떡없어야 비범한 자이지만 / 牢落聊全性
고결한 자가 방탕해지기도 하지 / ?崎任散才
자기 만족이 그저 제일이니 / 所欣惟自適
우묵한 잔이라도 웃질랑 말게 / 莫笑?堂杯

[주D-001]국미 : 술의 이칭.
[주D-002]운화 : 원래는 산 이름인데 그 산에서 거문고 만드는 재료가 난다 하여 전하여 거문고의 이칭으로 쓰임
 

자온대 밑에서 달밤에 뱃놀이를 즐기며

[自溫臺下汎月]

 

이처럼 맑디맑은 강 위의 달을 / 江月淸如此
인간 중에 그 뉘와 구경을 할꼬 / 人間誰與看
푸른 하늘 너무도 아름다운데 / 碧天容宛轉
가을 강물 똑같이 어우러졌네 / 秋水共?干
오늘밤에 호방한 놀이 이루어 / 廓落成今夜
타향에서 잠시 잠깐 즐거움 누리네 / 飄零得暫歡
끼륵끼륵 바다로 가는 기러기 / 一聲歸海雁
어인 일로 구름 끝 지나 가나 / 何事度雲端

 

산중에서 지은 절구[山中絶句]

 

바다 하늘 서릿기운 산 어귀에 들어오니 / 海天霜氣入山門
자줏빛에 분홍빛 비단폭이 어우러져 / 紫錦紅羅點綴繁
북한산의 백운대만 좋다고 말을 마소 / 莫說白雲臺上好
그곳 풍경 오로지 고향이 가까울 따름 / 風光?是近鄕園

고마 해가 지자 저녁 조수 밀려드니 / 姑麻日落暮潮來
갈바람에 돛단배 쌍쌍이 돌아오네 / 蒲帆秋風兩兩廻
너희들은 한양성 그곳에서 왔을 텐데 / 爾自漢陽城下發
요사이 국화꽃이 몇 가지나 피었더뇨 / 菊花能見幾枝開

백마강 물줄기는 하늘가에 비꼈는데 / 白馬江流天畔橫
부여라 옛 나라에 저녁 연기 깔렸네 / 扶餘故國暮煙平
눈을 들어 천여 리 산하를 바라보니 / 山河擧目千餘里
비바람 치던
삼한 전쟁이 사라졌네 / 風雨三韓小戰爭

[주D-001]고마 : 서산이란 뜻으로 쓰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2]삼한 : 상고 시대에 우리나라 남부에 있었던 마한(馬韓)ㆍ진한(辰韓)ㆍ변한(弁韓)의 합칭이다.
 

가을이 되어[秋至]

 

작은 시내 시든 버들 산들바람 일어나니 / 小溪衰柳有輕風
서재의 새벽꿈에 가을 기운 들어오네 / 秋入書樓曉夢中
흘러가는 세월은 어찌할 도리 없거니 / 無可奈何?歲月
빈궁 영달 벗어나 내 취향을 따르리 / 從吾所好外窮通
술 끊으란 아내 요구 술 한층 더 마시고 / 妻要止酒彌崇飮
시 삼가란 벗 충고 시 구상을 더 한다네 / 友戒耽詩愈刻工
세상만사 생각하면 모든 것이 환상이니 / 萬事商量都是幻
도성문 밖 저 동쪽에 푸른 종산 드높다네 / 鍾山靑出國門東

[주D-001]도성문 밖 …… 드높다네 : 종산은 중국 강소(江蘇) 남경시(南京市) 동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육조(六朝) 송(宋) 나라 때 주옹(周?)과 공치규(孔稚圭)가 은거하던 곳이다. 주옹은 나중에 세상에 나가 회계군(會稽郡)의 해염현령(海鹽縣令)으로 있다가 임기가 만료되어 도성으로 가는 길에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공치규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산은 세상에 나와 벼슬살이하는 자신을 주옹에 견주어 다시 속세를 떠나 은둔하고 싶은 뜻을 표시한 듯하다.

 

가을밤 남고와 함께

[秋夜同南皐]

 

덧없는 세월 속에 반백 머리 안타까워 / 荏苒流光惜二毛
가을 회포 설레이지 않는 날이 없다오 / 秋懷無日不蕭騷
돌길 봉한 구름에 세 산이 아련하고 / 雲封石路三山逈
출렁이는 은하수 오경밤이 깊어간다 / 風動銀河五夜高
은어 태운 학사는 오히려 세속 그리고 / 學士焚魚猶戀俗
말을 탔던 산공은 수고로움 마다했지 / 山公騎馬枉辭勞
세밑에 외로이 읊는 시름을 뉘게 말하랴 / 孤吟歲暮愁誰語
차가운 잔 홀로 잡아 수고에게 권한다네 이때 남고(南皐)가 수고라고 자칭하였다.
/ 獨把寒杯勸瘦皐

[주D-001]은어 태운 학사 : 은어는 은어대(銀魚袋)의 약칭으로 은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패식(佩飾)인데, 당 나라 때 5품 이상의 관리가 궁궐에 출입하는 신표(信標)로 사용하였다. 《杜詩批解》 卷22 柏學士茅屋의 “푸른산의 학사가 은어를 태워 버리고 흰말 타고 달려와 바위 밑에 사는구나[碧山學焚銀魚 白馬却走身巖居]”에서 나온 말이다.
[주D-002]말을 탔던 산공 : 산공은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냈던 산도(山濤)의 다섯째 아들인 간(簡)을 가리킨다. 산간이 정남장군(征南將軍)이 되어 양양(襄陽)에 있을 때 형주(荊州) 호족(豪族) 습씨(習氏)의 정원에 자주 놀러갔는데, 하루종일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저물녘에 흰두건을 거꾸로 눌러쓰고 말등에 올라타 돌아왔다 한다. 흔히 술을 취하도록 마신다는 뜻으로 인용된다. 《晉書 卷43 山簡傳》

 

단풍을 읊다. 절구[詠紅葉絶句]

 

기울어진 암벽이 중천에 높이 솟아 / 側壁??到半天
날다람쥐 건너려도 의지할 게 전혀 없네 / 蒼?欲度絶攀緣
어느 누가 빨간 연지 듬뿍 묻은 붓으로 / 誰將颯沓?脂筆
서시의 눈썹 가에 아름답게 찍어놨나 / 細點西施翠黛邊

크고 넓은 바윗돌 구름 기운 배었는데 / 盤陀老石飽陰?
뻗은 덩굴 그윽하고 이끼 자라 두툼하다 / 風蔓幽幽土蘚肥
한 장의 붉은 일산 밑에 앉아 즐기노니 / 坐愛一張紅傘子
석양에 빛난 빛이 사람 옷에 가득하네 / 夕陽輝映滿人衣

윗가지는 붉어 곱고 아랫가지 누르스름 / 上枝紅艶下枝黃
병중의 단장인가 누런 모습 쓸쓸하다 / 黃暈蕭條病裏?
하늘이 단비 이슬 아낀 것이 아니라 / 不是天心?雨露
약한 가지 모진 풍상 견디지를 못해서지 / 無緣弱質冒風霜

해묵은 도랑가에 시들어진 가을풀 / 秋草離離古澗邊
외론 꽃가지 하나 사랑겹기 그지없네 / 一枝孤艶更堪憐
여보게들 이걸 꺾어 운대 향해 가지 마소 / 且休折向雲臺去
자줏빛에 붉은 비단 눈앞에 널렸거니 / 紫錦紅羅滿眼前

둥글넓적 나비 나래 뾰족한 제비 꼬리 / 蝶翅翩燕尾尖
온갖 모양 가위로 섬세하게 오려낸 듯 / 交刀剪出巧纖纖
잎사귀마다 이처럼 기묘함을 이뤘으나 / 雖令葉葉成如許
일만 섬 붉은 서리로 어찌하며 물들일꼬 / 那得紅霜萬斛霑

가을비가 내리는 날 남고를 기다려도 오지 않으므로 쪽지를 보내 초청하였다

[秋雨 期南皐不至 簡邀]

 

저번에 풍우칠 때 만나잔 약속 / 夙昔期風雨
다정하게 지키어 어기지 마소 / 殷勤戒莫違
자주자주 못 만남 또한 아는데 / 亦知無數數
이제 또 비 뿌리니 어찌하리까 / 其奈又??
못가의 집 차가운 꽃이 고요코 / 池館寒花靜
시냇다리 낙엽이 흩날리누나 / 溪橋落葉飛
다행히도 찾아온 손님이 없어 / 幸稀車馬客
작은 서실 단정히 앉아 있다오 / 端坐小書?


 

가을 마음[秋心]

 

부슬부슬 산중 비가 차가운 못에 뿌리니 / ??山雨落寒塘
가을 풀 가을꽃이 작은 담에 누웠구나 / 秋草秋花臥小牆
설령 푸른 하늘이 깨끗하게 갠다 해도 / 縱使碧天澄霽了
시든 화초 그 어찌 오경 서리 대항하랴 / 殘芳那抵五更霜

우물가 차가운 연기 푸른 오동 감쌌는데 / 金井寒煙鎖碧梧
두레박 소리 끊기자 우는 까마귀 지나간다 / ??聲斷度啼烏
해가 지고 별 나올 적 천금이나 다름없는 / 偏知日沒星生際
황혼 무렵 한 시각이 사그라짐 느끼겠네 / 銷得黃昏一刻殊

우수수 가을바람 버들가지 불어대니 / 秋風??柳彊彊
가지마다 잎 떨어져 춤사위가 볼품없네 / 拂盡千條舞不長
귀공자여 찾아와서 말고삐 매지 마소 / 莫敎王孫來繫馬
병든 허리 자줏빛의 고삐가 부끄러워 / 病腰羞殺紫絲?

곱디 고운 월계화 한 떨기 꽃나무가 / 月季嬋娟一瓣團
한쪽에는 떨어지고 한쪽에는 싸늘하다 / 半邊虧落半邊寒
생각난다 지난날 봄바람에 좋게 피어 / 憶曾好發春風裏
자줏빛에 붉은빛을 우리 함께 보았지 / 時紫時紅許共看

산골 석류 옹골차고 해변 석류 둥글둥글 / 山榴磅?海榴團
바람에 가지 흔들려 편안치를 못하구나 / 搖蕩風枝耐却安
어이 애써 시고 쓴 물속에 가득 머금고서 / 何若滿含酸苦汁
요염하게 붉은 뺨 사람 눈길 끄는지 / 巧將紅頰媚人看

가을바람을 주제로 두보의 운을 차한 여덟 수

[秋風八首次杜韻]

 

온 누리의 구멍에 일제히 이는 바람 / 衆竅齊吹雜嘯吟
높은 하늘 휘몰아쳐 가을 음기 밀어내네 / 長天?闔?秋陰
일만 골짝 찬 구름에 교룡이 조화부리고 / 寒雲萬壑蛟?變
일천 숲 안개비에 제비 참새 자취 없어 / 煙雨千林燕雀深
이슬 받던 손바닥 푸른 연잎 꺾이었고 / 綠藕?垂承露掌
서리 견딘 굳은 마음 붉은 파초 끊어졌구나 / 紅焦鬪斷耐霜心
꽃다운 초목 점차로 세밑으로 달려가니 / ??群芳趨歲暮
시름 생각 어지러워 거문고를 의지하네 / 幽愁?亂倚枯琴

서산 위의 누런 구름 저녁 까마귀 일어날 제 / 西嶽黃雲起暮鴉
시내 건넌 차가운 비 모래알이 날리누나 / 度溪寒雨定飛沙
음산한 첩첩 산중 외론 나무 흐릿하고 / 陰?疊?迷孤樹
겹성에 밥짓는 연기 집집마다 싸늘하다 / 煙火重城冷萬家
지붕에 매인 늙은 오이 시든 덩굴 남았고 / ?屋老瓜餘敗蔓
섬돌에 덮인 연한 이끼 꽃무늬가 바래졌네 / 緣階弱蘚洗團花
창가에 홀로 취한 술 무엇으로 해소할꼬 / 當?獨醉憑誰解
향로 연기 사라질 때 저녁 차를 맛본다오 / 金鴨銷時點晩茶

운길산 산기슭에 누런 잎이 흩날리니 / 雲吉山前黃葉飛
소양강 이북에서 철 이른 기럭 돌아오네 / 昭陽江北早鴻歸
낮은 무논에 자란 벼 이제 붉게 익었고 / 汚邪水稻紅初熟
팔딱 뛰는 냇물 고기 희뿌옇게 살쪘구나 / 撥剌溪魚白正肥
장한은 진정으로 순채 생각 이뤘거니 / 張翰眞成憶蓴菜
전군 어찌 반드시 마의를 저버리랴 / 錢君豈必負麻衣
세속에서 물러남은 실로 좋은 일이건만 / 世間休退誠能事
절반은 남에 의해 절반은 자신이 어겨 / 半被人牽半自違

상쾌한 강호에는 해와 달이 한가론데 / 瀟?江湖日月遲
한 장이라 홍패에 마음 기약 틀려졌네 / 紅牌一面誤心期
뱀비늘에 숨은 신세 끝내 누굴 기다릴꼬 / 蛇?避景終誰待
모기 눈썹에 지은 둥지 그 또한 위태로워 / 蚊睫營巢也自危
저문 계절 처마끝은 구름 속에 아스랗고 / 歲晏?稜雲裏逈
몸 한가해 주렴을 빗속에 드리웠네 / 身閑簾幕雨中垂
계자 또한 어쩌면 좋은 계책 없으리니 / 唯應季子無長策
영예가 굶주림을 구제한다 아니 믿어 / 不信榮名解救飢

드높은 산 큰 도읍 철관이 웅장한데 / 華嶽名都壯鐵關
오문이라 대궐 길 구산에 곧장 닿았네 / 午門輦路直?山
푸른 하늘 돌기둥은 무지개 타 달아나고 / 靑天石柱騎虹?
넓은 바다 유람선은 달빛 몰아 돌아온다
/ 滄海樓船駕月還
기중가가 들어오니 보는 자가 놀라고 / 起重架來觀者愕
유형차가 굴러가자 일꾼들이 한가롭네 / 游衡車轉役夫閒
지난 봄에 길을 가다 중령포를 지났는데 / 前春路過中?浦
삼나무며 전나무들 울창하여 올라볼 만 / 杉檜森森尙可攀

삼일포란 이름난 호수
십주속에 들었는데 / 三日名湖列十洲
머언 옛날 영랑이 술랑 짝해 노닐었지 / 永郞云伴述郞游
깊은 못의 신룡은
요초 갈기 서투르고 / 湫龍不慣耕瑤草
둥지의 학 놀잇배 떠가는 소리 들을 뿐 / 巢鶴唯聞駕綵舟
상전 벽해 도리어 눈앞의 일이라면 / 碧海桑田還卽事
백제 소언 그 또한 풍류가 아니었나 / 白?蘇堰也風流
신선이 벽곡한 일 뉘라서 믿을 건고 / 神仙?穀能誰信
가을철에 백 두락의 메벼를 거둔다네 / ?稻秋天百頃收

태액지 동쪽에 홍화문이 드높은데 / 弘化門臨太液東
겹지붕의 복도가 안으로 서로 통했구나 / ??閣道內相通
들창문에 동방 햇살 거꾸로 내리쏘고 / ??倒射蒼龍日
날쌘 바람 버드나무 살랑살랑 불어오네 / 楊柳徐吹駿馬風
당 나라 때의 사신은 모두
책부 관리였고 / 唐代詞臣皆策府
한 나라 때의 훈척은 전부 원수들이었지 / 漢家勳戚摠元戎
건양문 서쪽 가에 대궐문이 열렸는데 / 建陽西畔開?闔
오색 안개 그 안에 옥서 은대 들어 있네 / 玉署銀臺彩靄中

오경밤 촛불 아래 시 쓰기 게으른데 / 五更殘燭懶題詩
꼬끼오 어린 숫닭 새벽 소식 더디네 / ?膊雛鷄報曉遲
맑고 찬 가을 기운 야윈 뼈를 침범하고 / 秋氣澄寒侵瘦骨
쓸쓸할사 취한 시름 눈썹 위에 오르누나 / 醉愁牢落上疏眉
해국이라 문장이 정교해도 진부하고 / 文章海國工猶朽
세속길에 명예 규범 깨끗해도 위태롭네 / 名?塵途潔亦危
일만 가닥 얽힌 생각 그 모두 허무할 뿐 / 萬緖?紆皆妄耳
아무쪼록
헌호따라 흉금을 펼쳐야지 / 須從軒昊展心期

[주D-001]운길산 : 경기도 광주(廣州) 동쪽 30리 지점에 있는 산이다.
[주D-002]장한은 …… 이뤘거니 : 진(晉) 나라 오군(吳郡) 사람인 장한(張翰)은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을 지내다가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그립다는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주D-003]전군 …… 저버리랴 : 마의는 포의(布衣)와 같은 말로, 평민의 신분을 뜻한다. 전군은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곧 시골 사람이 한때 세상에 나가 벼슬살이를 한다 해도 결국 시골 생활을 잊지 않고 돌아온다는 뜻으로 보인다.
[주D-004]계자 : 전국시대 유세가(遊說家) 소진(蘇秦)을 가리킨다. 연(燕)ㆍ조(趙)ㆍ한(韓)ㆍ위(魏)ㆍ제(齊)ㆍ초(楚) 등 여섯 나라에게 서로 동맹을 맺고 진(秦) 나라를 대항하도록 유세하여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차고 종약(縱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주D-005]드높은 …… 돌아온다 : 철관은 중국 서역(西域)의 지명이고, 오문은 궁궐 정문의 별칭이고, 구산은 중국 하남(河南) 언사(偃師)의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넓고 웅장한 중국을 환상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주D-006]십주 : 조주(祖洲)ㆍ영주(瀛洲)ㆍ현주(玄洲)ㆍ염주(炎洲)ㆍ장주(長洲)ㆍ원주(元洲)ㆍ유주(流洲)ㆍ생주(生洲)ㆍ봉린주(鳳麟洲)ㆍ취굴주(聚窟洲) 등이다. 모두 팔방(八方)의 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신선이 산다고 한다.
[주D-007]요초 : 선경에서 자란다는 진기한 풀.
[주D-008]백제 소언 : 송 나라 문장가 백거이(白居易)가 쌓은 제방과 소식(蘇軾)이 쌓은 제방을 가리킨 듯하다. 소식은 광동(廣東) 혜주(惠州)로 좌천되었을 때 서호(西湖)에 제방을 쌓고 그것을 사들여 방생지(放生地)로 삼았다 한다.
[주D-009]책부 : 고대에 제왕의 서책을 간직해 둔 곳인데, 여기서는 한림원을 가리킨 듯하다.
[주D-010]헌호 : 중국 태곳의 제왕인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와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의 합칭으로, 순박하던 태고시대를 가리킨다
 

가을밤에 지은 절구[秋夜絶句] 남고(南皐)와 함께 지었다

 

아침 구름 시꺼멓고 저녁 구름 누런데 / 朝雲?黑暮雲黃
짙은 그늘 깊은 골짝 온 숲이 쓸쓸하다 / 脩壑層陰萬木荒
까막까치 깃든 뒤에 차가운 못 지나가며 / ?耐鵲棲鴉定後
슬피 우는 기럭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 一聲哀雁度寒塘

석류 열매 흔들려 종려 잎을 때리는데 / 榴?搖蕩打棕髥
가을비 가을바람 작은 주렴 침범하네 / 秋雨秋風鬪小簾
깊숙한 방 단정하게 숙녀처럼 앉았으니 / 端坐曲房如靜女
한 가닥 향로 연기 가녀리게 피어난다 / 一爐香縷上纖纖

서울거리 삼경 밤 시간은 깊어가는데 / 紫陌三更漏報?
징소리 낭랑하고 북소리 낭랑하며 / 金聲??鼓聲寒
문밖 길에 우르릉 수레가 굴러가니 / ??轍跡門前路
서리맞은 신발 차림 높은 관리 달려가네 / 一對霜靴走達官


 

가을밤[秋夜]

 

사랑스런 임천에 정이 있는데 / 情結林泉愛
문 밖에는 오가는 거마의 소리 / 門臨車馬音
대난간을 열심히 엮어 맞추나 / 竹欄勤點綴
꽃나무 잎 시들어 앙상하기만 / 花木强蕭森
찬 이슬 가지마다 빛깔 다른데 / ?露枝枝色
가을벌레 저마다 울음을 우네 / 秋蟲喙喙吟
혼자 걷다 다시금 혼자 앉을 제 / 獨行還獨坐
밝은 달이 그윽한 흉금에 비춰 / 明月照幽襟

온천에서 느낌을 쓰다[溫泉志感]

 

경진년 과거사를 또렷하게도 / 歷歷庚辰事
유민들이 이제껏 얘기를 하네 / 遺黎說至今
복성이 세자 행차 따라왔는데 / 福星隨鶴馭
한밤중 높고 맑은 노래 들렸네 / 中夜聽龍吟
쌀 주어 망가진 밭 보상하였고 / 賜米酬殘圃
조세 감면 장마의 피해 위문해 / ?租問苦霖
내린 분부 사신이 따르지 않아 / 使臣違敎令
울분에 찬 백성들 마음 보겠네 / 扼見群心

[주C-001]온천에서 느낌을 쓰다 : 다산이 해미현의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서울로 돌아오던 중 온양(溫陽) 온천을 지나면서 장헌세자(莊獻世子)가 영조 36년(1760)에 온천에 다녀갔던 사실을 주제로 하여 쓴 것이다.
[주D-001]복성 : 목성(木星), 또는 세성(歲星)이라고도 하는데 그 별이 비치는 곳에는 백성이 복을 받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2]쌀 …… 보상하였고 : 장헌세자를 호위했던 금군(禁軍)의 말들이 민간인의 수박밭을 짓밟아 수박이 깨지고 덩굴이 뽑혔는데, 세자가 그 말을 듣고 그 피해를 후하게 보상했던 일을 말한다. 《俟菴先生年譜》
[주D-003]내린 …… 않아 : 장헌세자가 온천의 서쪽 담장 밑에서 과녁에 다섯 개의 화살을 쏘아 명중시키고 그것을 기념하여 그 자리에 홰나무 한 그루를 손수 심은 뒤에 단(壇)을 둘러 쌓도록 분부하였는데, 세자가 떠난 뒤 그 고을 수령이 그 분부를 따르지 않았다. 사신은 수령을 가리킨다. 《俟菴先生年譜》

 

저물녘 수원에 당도하여[暮次水原]

 

살랑바람 길손 길 날이 저문데 / 客路輕風暮
관가 누각 단청한 기둥이 밝네 / 官樓?棟明
지난날 마을 주막 길이 아련코 / 閭閻迷舊店
새 진영 고각소리 웅장하여라 / 鼓角壯新營
객창의 잠자리에 성주 그리고 / 旅宿懷明主
편히 사는 시골의 백성 부러워 / 安居羨野氓
주구를 가까이서 우러러보니 / 珠丘瞻密邇
승냥이 범 어찌 감히 밟을까보냐 / 豺虎敢縱橫

 

가을 문암산장에 노닐며

[秋日游門巖山莊]

 

필마라 간단한 차림 한양을 벗어나니 / 匹馬輕裝出漢陽
푸른 산 붉은 나무 또다시 선향이로세 / 靑山紅樹又仙鄕
이 걸음은 태반이 천석 구경 위한 거라 / 此行强半爲泉石
본디 마음 벼베기 때문만이 아니라네 / 本意不全謀稻粱
묵객이라 풍류는 활달한 게 본색이니 / 墨客風流須曠達
야인이 속이는 것쯤 아랑곳 아니하네 / 野人欺蔽任毫芒
금년에도 전원의 언약 이미 어긋나니 / 今年已敗田園約
한마당의 꿈 언제나 대궐에 감돈다네 / 一夢尋常繞肅章

가을에 문암산장에서 지은 잡시

[秋日門巖山莊雜詩]

 

서까래 두서너 개 호젓한 초가집에 / 茅棟蕭條只數椽
뜰에 가득 향그런 벼 흐뭇하게 바라보니 / 恰看香稻滿階前
동방삭의 장안 쌀이 절로 생각나는구나 / 試思方朔長安米
구양수의 영미 전원 그것과는 어떨는지 / 爭似歐陽穎尾田

골짝 깊고 샘물 차서 기온 아니 고른데 / 谷深泉寒氣未平
구월이라 동풍이 너무도 무정하네 / 東風九月太無情
금년에 찰벼 심어 후회가 막심하니 / 今年悔種?毛?
내년에는 아무쪼록 메벼를 심어야지 / 來歲須栽坼背?

산속이라 풍경은 늦가을에 접어들어 / 山裏煙光屬晩秋
온 가족 빠짐없이 돌밭머리 나와 있네 / 全家都在石田頭
볕에 말린 목화는 아이에게 줍게 하고 / 棉花日?敎兒拾
서리 맞은 콩깍지는 할멈 시켜 거둔다네 / 豆莢霜凋??收

서쪽으로 오 리쯤에 어시장과 서로 통해 / 水市西通五里?
늦가을 강어귀에 장삿배가 들어오네 / 高秋穴口賈船來
아침상의 새우국 이상하다 하였더니 / 朝盤怪有紅鰕漿
어젯밤 숯을 팔고 돌아왔다 이르네 / 聞道前宵賣炭廻

나무꾼이 앞산에서 노루 잡아 돌아오니 / 樵?前林打鹿歸
온 마을 환호소리 산중 사립 술렁이네 / 一村?賀動山扉
흙화로에 구워내고 파 마늘 곁들이니 / 地爐燒炙兼蔥蒜
농가에선 고기맛 못 본다고 뉘 말하리 / 誰道農家未齧肥

청제봉 북쪽으론 칠원과 접해 있어 / 靑帝峯陰接?園
아름다운 산수가 무릉도원 흡사한데 / 溪山恰是武陵源
금년에는 쌀독 빌까 걱정할 게 없으렷다 / 今年不患罌無粟
팔구 뿌리 인삼을 이제 방금 캐냈으니 / 新採人蔘八九根

삼경 밤 울타리에 사나운 범 들어와 / 籬落三更猛虎來
우레 같은 한 소리에 온 산중이 고요터니 / 萬山寥寂一聲雷
소년 하나 사립문을 밀치고 빠져나가 / 少年獨出柴門去
시내까지 쫓아가서 개 빼앗아 돌아오네 / ?到前溪取狗廻

석문이라 동쪽에는 절간이 그윽한데 / 禪房窈窕石門東
산중 잎 서리 맞아 일만 나무 빨갛네 / 山葉經霜萬樹紅
어찌하면
지둔같은 고승을 한 번 만나 / 安得僧如支遁者
시냇물과 구름 속을 나귀 타고 왕래할꼬 / 騎驢來往水雲中

[주D-001]지둔 : 진(晉) 나라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도림(道林), 본성은 관씨(關氏)인데 여항산(餘杭山)에 은거하여 도를 닦았으며, 학과 말을 좋아하였다 한다.

 

가을날 회포를 적다[秋日書懷]

 

동녘으로 향해가면 우리 집 수운향이라 / 吾家東指水雲鄕
생각하니 가을이면 즐거운 일 많았었지 / 細憶秋來樂事長
밤밭에 바람 불 제 붉은 열매 떨어지고 / 風度栗園朱果落
어촌에 달이 뜰 제 자줏빛 게 향그로웠지 / 月臨漁港紫?香
마을길 잠시 걸어도 모두가 시의 소재 / 乍行籬塢皆詩料
구태여 돈 들여서 술 마실 필요 없어 / 不費銀錢有酒觴
객지 생활 여러 해에 돌아가지 못하고 / 旅泊經年歸未得
고향 편지 올 때마다 남몰래 마음 아프네 / 每逢書札暗魂傷

가을날 배를 타고 두모포로 나가다

[秋日乘舟出豆毛浦]

 

지는 햇살 강촌을 내리비칠 때 / 落日臨江屋
맑은 가을 두메골 올라가는 배 / 淸秋上峽船
돛을 높이 달고서 가지 못하고 / 不成揚帆過
쓸쓸히 등불 벗해 잠을 이뤘네 / 聊作伴燈眠
산골짜기 은거할 높은 뜻 지녀 / 丘壑懷高志
시서 익힌 젊은 날 애석할 따름 / 詩書惜壯年
명예 마당 하찮은 이해와 득실 / 名場小得失
약한 아내 동정을 도리어 받네 / 還被弱妻憐

 

월파정에 올라[登月波亭]

낙동강 위에 있는데 곧 선산(善山) 땅이다

 

누관은 인물 따라 세워졌는데 / 樓館從人設
풍연은 지방마다 서로 다르네 / 風煙逐地殊
빈 강물엔
옥토가 잠기어 있고 / 水虛涵玉兎
솟은 산은 금오와 잇닿았고녀 금오산성(金烏山城)은 부상(扶桑)과 약목(若木) 사이에 있다. / 山聳接金烏
뱃길은 남쪽 바다 멀리 통하고 / 舟楫通南海
관방되어 도성을 보호한다네 / 關防護上都
아내가 그런대로 정분이 있어 / 細君頗有分
산천 유람 어울려 함께 한다오 / 遊覽與之俱

[주D-001]옥토 : 달의 별칭이다.

 

웅진에서 고적을 회상하며[熊津懷古]

공산(公山)은 백제의 옛 도읍지이다

 

서리맞은 숲 너머 하얀 성이요 / 粉堞霜林外
금강이란 강에는 붉은 배로세 / 紅船錦水中
들판은 넓디넓은 금마 잇닿고 / 地連金馬闊
산봉우리 웅장한 계룡 마주해 / 山對碧鷄雄
서글퍼라 도읍지 자주 옮기어 / 都邑悲遷變
나라의 지도 서적 어지럽기만 / 圖書憶混同
공연히 천험 요새 버려 던지어 / 無端棄天險
용을 낚는 공적을 이루게 했네
/ 成就釣龍功

[주D-001]공연히 …… 했네 : 백제가 공산에 있던 도읍을 부여로 옮김으로써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을 낚았다는 것은 당 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 날 대왕포(大王浦) 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바위나루에서 낙화암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 나라 병선(兵船)이 뒤엎어지는 변고가 일어났는데, 소정방은 이것을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의 짓이라 하여 강 가운데에 있는 바위에서 백마(白馬)를 미끼로 그 용을 잡았다 한다. 그리하여 강 이름이 백마강이 되고 용을 낚았다는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 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공주에 당도하여 이장만나 함께 길을 가면서

[行次公州逢李丈偕行] 이장은 소암(蘇巖)이다

 

금릉을 향해 가던 도중에 / 知向金陵道
금강이라 강변에 함께 만나서 / 相逢錦水邊
바람 앞에 한쌍의 검정색 일산 / 風前雙早蓋
흰 눈 속에 하나의 붉은 배로세 / 雪裏一紅船
꾸준히 길을 걸어 쉬지를 않고 / 行邁仍無倦
시를 지어 스스로 읊음도 좋아 / 詩篇好自傳
병속에는
죽력이 들어 있기에 / 壺中有竹瀝
돈을 쓰지 않고도 실컷 마시네 / 取醉不須錢

[주C-001]이장 : 이름은 동욱(東郁)으로 자는 유문(幼文), 본관은 평창(平昌), 광직(光?)의 아들이자 승훈(承薰)의 아버지이다. 정조 때 참판ㆍ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역임했는데 순조 1년(1801) 아들이 천주교도로 사형되자 관작이 추탈(追奪)되었다.
[주D-001]금릉 : 경상북도 김천(金泉)의 옛 이름이다.
[주D-002]죽력 : 대나무를 불에 구워 받아낸 대나무 진액으로, 담(痰)을 녹이고 열을 내리는 약으로 쓰인다
 

하담에서 유숙하며[宿荷潭]

 

서글퍼라 서로 돌아온 배는 / ??西歸櫂
어느새 칠년 세월 까마득한데 / 微茫已七年
이제는 치포관을 드높이 쓰고 / 緇冠今突爾
당당할사
화개가 펄펄 나네 / 華蓋獨翩然
해묵은 풀 첫눈에 얽히어 있고 / 宿草纏初雪
저녁 연기 삼나무 감싸 덮었다 / 高?冪暮煙
깃들인 참새들이 짹짹거리니 / ??有棲雀
흐르는 눈물방울 어찌 거두리 / 那禁涕漣漣

[주C-001]하담 : 충청북도 충주(忠州) 가차산면(加次山面)에 있는 지명으로, 다산의 조부모와 부모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주D-001]화개 : 호화로운 일산으로, 흔히 높은 관리가 이용하는 물건으로 인용된다.

 

실제(失題)

 

맑은 새벽 옛 우물에 양치하니 / 淸晨漱古井

옛 우물이 붉어 타는 듯하구나 / 古井紅如燃

복사꽃 만발한 걸 알지 못하고 / 不知桃花發

단사천 있지 않나 의심을 하네 / 疑有丹砂泉


뭇 꽃다움 시내 집에 비추이는데 / 群芳照澗戶

아침 해에 조각 노을 불그레하네 / 朝日片霞紅

숲의 새는 짓궂게도 꽃잎 쪼으니 / 林禽啄花?

이따금 술잔 안에 떨어뜨리누나 / 時時落酒中


약 캐는 길 외딴 곳에 뚫리었는데 / 藥徑通幽?

등라 얽힌 마루에 운무가 쌓였네 / 蘿軒積雲霧

산사람 홀로 앉아 술 따를 적에 / 山人獨酌時

나는 꽃과 더불어 다시 만나네 / 復與飛花遇


시내를 타고 가다 살짝 앉으니 / 緣溪行且坐

인정을 사로잡는 곱고 푸르름 / 芳綠近人情

사랑에 겨워 원심처에 이르니 / 愛到源深處

꽃과 버들 밝아 마을이 있네 / 有村花柳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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