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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성의 제자원리〉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에 의하면 초성 중 기본자(基本字:ㄱ ·ㄴ ·ㅁ ·ㅅ ·ㅇ)는 그 자음(字音)이 나타내는
음소(音素)를 조음(調音)할 때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곧 설음(舌音:ㄴ), 순음(脣音:ㅁ), 후음(喉音:ㅇ)에서
불청불탁(不淸不濁)으로 기본문자를 삼은 것은 그 소리가 가장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치음(齒音)에서 ‘ㅅ’과 ‘ㅈ’은 비록 둘 다
전청(全淸)이지만 ‘ㅅ’이 ‘ㅈ’에 비하여 그 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기본자로 삼았다. 다만 아음(牙音)에서 불청불탁(ㆁ)을 기본문자로 삼지 않은
것은 그 소리가 후음(喉音)의 ‘ㅇ’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밖의 초성자(初聲字)들은 이들 기본자에 가획(加畵)하거나 또는 약간의
이체(異體)를 형성함으로써 만들어졌다. ㄱ → ㅋ(ㆁ), ㄴ → ㄷ → ㅌ(ㄹ), ㅁ → ㅂ → ㅍ, ㅅ → ㅈ → ㅊ(ㅿ), ㅇ → ㆆ →
ㅎ에서 ‘ㆁ ·ㄹ ·ㅿ’ 3자는 이체를 형성한 경우이다. 그리하여 전탁(全濁) 계열의 각자병서(各自竝書) 6초성을 합해서 훈민정음의
23초성체계가 이루어졌다. 이 23초성체계는 동시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의 자모체계(子母體系)이기도 하다. 위의 23초성에서 후음(喉音)
전청(全淸) ‘ㆆ’은 훈민정음 해례 용자례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것은 이 초성이 《동국정운》의 한자음(漢字音) 표기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전탁계열의 초성 각자병서는 모두 전청을 병서하였고 다만 후음의 ‘ㆅ’만이 차청(次淸)을 병서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제자해에서는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凝則] 전탁이 되는데 유독 후음은 차청으로 전탁이 되게 한 것은 전청인 ‘ㆆ’이 소리가 깊어서 엉기지 아니하므로 이보다
소리가 얕은 ‘ㅎ’으로써 전탁을 삼았다고 하였다. 이들 각자병서는 주로 《동국정운》의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었다. 이 훈민정음 초성체계에 대하여
훈민정음 해례 초성해 첫머리에 “정음초성은 곧 운서(韻書)의 자모이다(正音初聲卽韻書之字母也)”라고 하였는데, 이는 정음의 초성체계가 중국
음운학(音韻學)의 자모체계와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도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 ·반설음(半舌音) ·반치음(半齒音),
또는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 등의 술어가 이를 뒷받침한다.
〈중성의 제자원리〉 훈민정음의 중성은 중국 음운학에 없는
독자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초성해와는 대조적으로 중성해 첫머리에서 “중성은 자운(字韻)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초성과 종성이 합성함으로써 음을
이룬다(中聲者 居字韻之中 合初終而成音)”고 하였다. 중성의 세 기본자(基本字: · ㅡ ㅣ)는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그 밖의 중성자(中聲字)들은 이 기본자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與 ·同而口蹙 ·其形則 ·與一合而成… 與 ·同而口張
其形則ㅣ與 ·合而成… 與 ·同而口蹙 其形則一與 ·合而成 與一同而口張 其形則 ·與ㅣ合而成…). 그리고 ‘ ‘ㅣ’에서 일어난 ‘ ’재출자(再出字)라
하였다( 始於天地 爲初出也 起於ㅣ而兼乎人爲再出也).
〈종성〉 훈민정음 본문에는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終聲復用初聲)”고
하였으나 해례 종성해에서는 종성을 사실상 8자 체계로 규정하였다(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 그러므로 이 밖의 초성은 종성으로 쓸 필요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 팔자가족용(八字可足用)의 규정을 설명하여 “如곶爲梨花 의갗爲狐皮 而ㅅ字可以通用 故只用ㅅ字”라 하였는데, ㅿ ·ㅊ ·ㅈ
·ㅅ 등의 받침은 ‘ㅅ’으로 통용된다고 하였다. 종성 합용병서에 대하여 해례 합자해(合字解)에서 종성의 2자 ·3자 합용은 ‘(土), (釣),
때(酉時)’ 등에서 ‘ㄺ ·ㄳ ·ㅩ’ 등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당시 국어 문헌에 보면 종성의 합용병서는, 사이시옷을 제외하면 ‘ㄳ ·ㅧ ·ㄺ
·ㄻ ·ㄼ ·ㅭ’ 뿐이다.
〈합자〉 훈민정음 체계에서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초성 ·중성 ·종성이 음절을 표시하는 결합체를 형성한
점이라 하겠는데, 해례 합자해에서 “초 ·중 ·종(初中終) 삼성(三聲)이 합하여 글자를 이룬다”라 하고 이의 세부규칙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初聲或在中聲之上 或在中聲之左如君字ㄱ在 上 業字ㆁ在 左之類 中聲則圖者橫者在初聲之下 ·ㅡ 是也縱者在初聲之右 ㅣ 是也 如呑字 ·在ㅌ下
卽字ㅡ在ㅈ下 侵字ㅣ左ㅊ右之類 終聲在初中之下 如君字ㄴ在 下 業字ㅂ在ㆁ 下之類,곧 중성 가운데 동그라미 ‘ ·’, 가로 그은 자 ‘ㅡ’ 및 이들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중성 ‘ ’ 등은 초성 아래에 놓이며 ‘ㅣ’ 및 그와 안팎으로 ‘ ·’와 결합된 ‘ ’ 등은 초성의오른쪽에 놓이고, 종성은 초
·중성이 결합된 밑에 놓인다는 말이다.
〈방점〉 훈민정음 체계에 있어서 방점(傍點)은 당시 국어의 성조(聲調)를 나타낸 것이다.
훈민정음 본문의 설명에 의하면 “글자 왼쪽에 한 점을 찍으면 거성(去聲), 2점이면 상성(上聲), 없으면 평성(平聲)이며, 입성(入聲)은 점
찍는 것은 같지만 촉급(促急)하다”고 하였다. 훈민정음 언해에 의하면 평성은 ‘가장 낮은 소리’, 상성은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
거성은 ‘가장 높은 소리’, 입성은 ‘빨리 닫는 소리’라 해석하였다. 이 해석과 위의 훈민정음 본문 및 해례 합자해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
국어에는 ‘평 ·상 ·거’의 3성만의 성조가 존재하였으며, 그것도 저조(低調)와 고조(高調), 그리고 이들의 병치(竝置)인 상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없어진 글자
입술을 가볍게 스쳐 나오는 소리로, ‘ㅁ·ㅂ·ㅍ·ㅃ’에 ‘ㅇ’을 더하여 만든 글자 ‘ㅱ·ㅸ·ㆄ·ㅹ’의 소리를 이름. [주로, 훈민정음 제정 당시의 한자음 표기에 쓰이다가 15세기 중엽에 없어짐.]
ㅸ 순경음 비읍
옛 순경음(脣輕音) 글자의 하나. 아래위 입술을 닿을 듯 말 듯하게 조금 열고 숨을 내뿜을 때 마찰되어 나는
소리이다. 따라서 발음기관상으로 보면 양순음(兩脣音)이며, 발음법상으로 보면 양순마찰음(摩擦音)이다. 성(聲)의 유무로 볼 때는 유성음(有聲音)이며, [β]의 음가를 나타낸다.
《훈민정음주해(訓民正音註解)》에는 “ㅇ 입시울쏘리 아래
니
쓰면 입시울 가
야
소리
외
니라”이라 했고,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에서는 “ㅇ를
순음(脣音)아래에 연서(連書)하면 곧 순경음이 되는데, 이는 가벼운 소리로 입술이 겨우 붙을락 말락해서
후음(喉音)의 소리가 많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 설명은 꼭 ‘ㅸ’만을 두고 한 것은 아니며, 이 소리의
글자는 순음 아래에 ‘ㅇ’을 연서해서 만든다고만 하였으므로 순음에 ‘ㅂ ㅍ ㅃ ㅁ’의 넉 자가 있으니 순경음도 ‘ㅸ ㆄ ᄬ ㅱ’의 넉 자가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으나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당시에 실제 쓰인 경향을 보면, 세종(世宗) 때에 국어를
표기하는 데에는 ‘ㅸ’만이 쓰였고, 《동국정운(東國正韻)》의 한자음 표기에서도 초성에서는 이러한 순경음자가 한자로 쓰인 일이 없고, 다만
고(高:
),
구(鳩:
)와 같은
운(韻)에 속하는 자의 종성으로 ‘ㅱ’자가 쓰였을 뿐이다.그때의 중국어에서는 ‘ㅸ ᄬ’자는 쓰였으나 ‘ㆄ’자는 쓰인 예가 없다.
이 글자는 훈민정음 초성체계에는 들어 있지 않으며, 세종 때의 국어 표기에서의 ‘ㅸ’의 사용례는
음절간(音節間) 모음 사이에서나 유성자음(有聲子音)과 모음 사이에서만 쓰였고, 어두에는 쓰이지 않았다. 이 음은 세종 당대에만 쓰이다가 [w]로
변하였다. 중국음 표기에서는 [f]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ㆆ'의 이름은 '여린히읗'입니다. 'ㅸ'과는 달리 28자에는 들었지만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었습니다.
여린―히읗
여린―히읗 [―읃] [명사]
한글의 옛 자모 ‘ㆆ’의 이름. *여린히읗이[―으시]·여린히읗만[―은―] 1
1 [자모] 여린히읗. <옛말> 옛 한글 자음의 하나. ‘ㅎ’과
‘ㅇ’의 중간음. 성문 폐쇄음. 15세기 중엽에 소멸. ¶ /快 ㆆ 字 제 /節 .
'ㆁ'의 이름은 '옛이응'입니다. 지금은 표기가 'ㅇ'으로 바뀌어서 소리값이 없는 'ㅇ'과 구별되지 않지만 종성에서 [η]음으로 실현되죠. 그러니까 첫소리의 'ㅇ'은 소리값 없는 음운이고, 받침의 'ㅇ'은 예전의 옛이응으로서 소리값이 있는 음운입니다. 'ㆁ'은 15세기 당시에는 초성에서도 발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과 다른 점이죠. 지금의 '붕어'는 15세기에는 ' 부ㆁㅓ'로 적었는데, 지금은 [η]음이 '부'에 붙어 [붕]으로 읽고 있죠.
옛ː―이응[옌니-] [명사] 한글 옛
자모(字母)로서 자음의 하나. 초성과 종성에서 [η]음으로 쓰이던 것이 자체(字體)는 소멸되고 그 음만 종성으로 남아 ‘ㅇ’자로 표기되고 있다.
‘이응(異凝)’이라는 자모명칭은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 나타나는데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 ‘ㅇ’을 같은 명칭으로 부르게 하였다. 《훈민정음주해(訓民正音註解)》에서는 “ㆁ
반ː―치음(半齒音)[명사] 훈민정음의
‘△’의 소리. 반잇소리. 음가(音價)는 유성마찰음 [z]로 추정된다. [s]가 주로 유성적(有聲的) 환경에서, 흔히 후행모음(後行母音) 뒤에 명음도(鳴音度)가 큰 -m, -n, -r 등이 연결될 때 [z]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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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극찬하는 한글의 우수성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 「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이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조선일보 94.5.25).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말한다.
또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조선일보 96.10.7).
그런가 하면 시카고 대학의
메콜리(J. D. McCawley) 교수는 미국사람이지만 우리 나라의 한글날인 10월9일이면 매해 빠짐없이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KBS1, 96.10.9).
몇 년전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