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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 (2006년 10월 17일) 멜린다 사건
tomato 추천 0 조회 532 06.10.17 11:20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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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0.18 11:37

    첫댓글 처음 읽으며 미란다에서 멜린다,란 생각을 잠시 하게 되더군요.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들어오는 기사들 중 저 역시도 멜린다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보았었습니다. 토마토님이 이 기사로 가슴이 호벼파인 듯하였다면, 저는 가슴 아픈 사연이구나하며 넘어갔습니다. 추석등의 명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재산싸움에 사랑해야하는 식구의 목숨을 잃게 하는 사연들 한 두개처럼요. 무엇을 위해 사람은 사는 걸까, 왜 사는 걸까를 의문해보는 시간을 갖지만, 이내 잊었습니다. 그렇게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키가 150cm 도 안되는 자그마한 키의 멜린다라는 것도, 아이의 소식도 여적 모른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 작성자 06.10.18 13:03

    미란다 멜린다, 다음엔 M & M 초콜릿 얘기를. 아니면 M.M. 몬로 얘기를. 마릴린 몬로, 흠! 없진 않네. 얘기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이브 아놀드, 브루스 데이빗슨 이 세 작가 사진집에 '찍힌' '애리조나의 마릴린 몬로'에 얽힌 사진 얘기. 1962년이었나? 그때. (꼬리말을 읽는데 끼어드는 생각)

  • 06.10.18 11:33

    개인적으로 이 가을 제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서래마을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세 아이를 죽였다고 자백했다는 쿠르조부인의 병든/아픈 정신상태에 대해서요. 아직까지 자세하게 쿠르조 부인의 정신감정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해서 그처럼 무심할 수 있는 그녀의 정신이 전 심각하게 걱정되더군요. 살면서 느껴지는 죄책감이 생사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닌데도, 유독 생사에 대해서는 심각해집니다. 조건이 안 되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유산을 감행한 어머니들의 죄책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거든요. 내 몸을 빌어 세상을 찾아왔지만, 내 몸을 빌려주지 못한 듯하여 죄스러움을 갖는 어머니들도 있더라구요.

  • 06.10.19 19:44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이는 혹은 죽게 내버려 두는 부모들은 현재 독일에서도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자식에 대한 '무심함과 병든, 아픈 정신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자식에 대한 이런 식의 '정신상태'는 한편으로 오늘날의 문화가 점점 더 '초월적' 믿음과 희망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죽음 '이후'까지를 생각하고, 염려하고, 계획하게 만드는 아이를 통해 인류가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있는 세계와 시간'에 대한 생각과 믿음들을 형성해왔었다면, 이제 저 '초월적

  • 06.10.19 19:49

    시간과 세계'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단지 자신의 삶의 시간에 국한해 바라보고 계획하는데 익숙해지면서, 아이들이란 존재는 점점 더 어떤 '장애물'로 여겨지게 되는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특히 아이가, 지금의 삶도 가누기 힘든 부모들에게 그들의 삶의 시간을 넘어있는 아이의 삶에의 걱정을 강요하는 매개로 작용하게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 지지 않을까요?

  • 06.10.20 13:48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김남시님 꼬리말입니다. 아이살해에 관해서 저는 부모에 의한 영아살해와 생계유지할 능력은 없지만 말을 하고 걷는 아이들의 살해를 달리 생각해봅니다. 전자의 경우 자신은 사는 살해일 듯싶고, 후자는 자신도 죽(게되)는 살해일 듯싶습니다. 물론 둘다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마음이 마음이 아닐테지만 말입니다. 다르덴 형제의 <차일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젊은 아빠가 자신의 삶에 걸림돌에 된다는 이유로 아이를 돈을 받고 팔아버립니다. 그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그 행위를 용서하지 못하자 아이를 찾게 되지요. 자신의 아이를 찾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와 함께 있고싶어서요.

  • 06.10.20 13:54

    물건을 훔친 뒤 그걸 돈과 물건으로 교환하며 살던 그는 돈보다 가치있는 한 아이의 생명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됩니다. 허나 이미 때는 늦습니다. 절도죄로 감옥에 갇혀 우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납니다. 쿠르조부인의 영아살해와 관련한 뉴스를 보다가, 프랑스 현지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경악에 쌓인 프랑스라 말하며, 처음 발생한 일이 아닌, 영아살해에 대한 분석을 하더군요. 그건 물화된 아이라는 관점이었는데, 퍼뜩 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라 싶더군요. 양육하지 못할 아이를 어린 나이에 낳아 어찌할 줄 몰라 아이를 죽이는 사례도 있었던 것 같은데...

  • 06.10.20 14:04

    아직까지는 우리네 속담, “산 입에 거미줄치랴”에 충실한 산자를 위한 의식구조, 삶과 죽음에 관한 업보/인과응보의 민족적 무의식이 잠재되있는 상태가 아닐까 싶더라구요. 물론 지금도 변화하고 있겠지만요.과도하게 부여된 부모의 양육의 의무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크지만, 의무라기보다는 당위적 측면이 강해보입니다. 그래서 난치병인 아이의 질병을 비관하거나 자신의 실패 후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부모의 사례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물화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낳았으니, 내가 길러야 하니, 그 생사마저도 내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착각 같습니다.

  • 06.10.21 19:39

    '내가 낳고 내가 길렀으니 그 생사도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엔 여러가지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적하셨듯이,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의 삶 공동체로 바라보는 민족적 - 혹은 유교적 - 사고가 유럽에서와 같은 개인주의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데에서도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사회 구성원의 생존을 사회와 국가가 보장하는 대신 전적으로 그 '가족'에게만 맡기는 사회구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연금 및 사회보장들을 통해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개인이 혼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와 개인의 생존이 전적으로 가족의 지원에 의존되어 있는 사회를 비교해보면 분명히

  • 06.10.21 19:41

    드러나는 문제이지요. 자기가 없으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이 세상에 놓아두고 간다는 건, 자살을 꿈꾸는 부모들에게 커다란 도덕적, 심리적 부담이겠지요.

  • 06.10.21 21:28

    그 사이 김남시님은 어느새 [아이와 메시아주의]라는 글을 쓰셨군요?^^ 제가 지난번 꼬리말을 달면서, 보고자 하는 부분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이전 꼬리말을 달 때 세개의 사연(전해들은 얘기와 두 개의 기사)로부터 뭔가 말을 하려다가, 화요논평의 글에 벗어난 듯하여, 어디로 가는지 모를 생각이 되어버려서, 간단히 꼬리말로 달았거든요.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간과하면 안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06.10.20 14:23

    그 중에는 살기 위한 화해가 필요한 경우도 있구요. 토마토님 덕분에 1985년에 태어나 멀리 입양되어 자라게 된 한 입양아 멜린다 마리 유뱅크 덕킷(이미경)의 삶을 한 존재로 느끼게 됐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 세상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 존재에 대해서 덕분에 생각하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빌게 됩니다. 사건 결과에 상관없이요. 더불어 토마토님의 소망처럼, 안전한 곳 어딘가에 트렌튼 덕킷이 살아있기를 저 역시도 바랍니다.

  • 작성자 06.10.20 02:58

    기사들을 정리하면서 트렌튼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의학상 질병은 아닐지라도 일종의 경미한 싱태의 정신병리 증상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걸 느꼈습니다. '충동적 강박' 증세였죠. 멜린다의 경우가 가장 두드러져 보일 뿐 모두에게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멜린다 뿐만 아니라 (아기의 아버지인) 조슈아도, 조슈아의 어머니도 환경적 강박감을 보였죠. 올랜도 센티널 지의 칼럼리스트 로렌 리치는 CNN의 '뉴스메이커' 낸시 그레이스의 과거 검사 시절 기록에서 그녀에게 어떤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였는데, 일종의 강박증세였습니다. 지나치게 '직업적이었던' 경력이 밝혀졌지요.

  • 작성자 06.10.20 03:02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사건의 관련 당사자들이 갖고 있을 수 있는 사정들이 더 궁금해더군요. 대체로, 모두가 불우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건 자체에 극히 현대적 단면들의 양상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직 종결되지 않은 사건이라 올릴 수 없지만,) 가족 간이라도 사정이 참으로 복잡하게 연동하게 돼있는 현대인의 고단한 정신적 궤적이 드러나더군요. 이런 현대의 사회 문제가 보편적 경향을 띨 수 있는 문제라면 실로 '잠재적 사건'을 끼고 사는 것일 텐데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더군요. 요즘 들어 많이 회자되는 '창조적' 강박증자 편집증자 자폐증자와 같은 말들이,

  • 작성자 06.10.20 02:57

    '충동적' 그들로 화(化)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이 깊어집니다 ― 멜린다 사건(Melinda Case)이란 말은 원래는 없는 사건명이고 이미 명명된 '트렌튼 사건'에서 원용한 것입니다.

  • 06.10.20 14:35

    역시나 (지금 시대의) "현대적 단면'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토마토님이시군요. 발생된 어떤 사건을 들여다보면, 온통 아픔이고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내하는, 견딜 수 있는 삶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됩니다...견디는 삶은 또한 향유하는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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