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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
박 경 준(동국대 불교학과)
<목 차>
Ⅰ. 머리말
Ⅱ. 육조혜능의 선사상
1. 중국 선종 성립시대와 순선(純禪)
2. 혜능의 생애
3. ������육조단경������의 핵심사상
Ⅲ.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
1. 선사의 생애와 사상
1)선사의 생애
2)선사의 불교관-안심법문과 원통불법
2. 선사의 실상염불선
1)염불과 염불선
2)실상염불선
3. 혜능선과 실상염불선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청화(淸華, 1923~2003) 선사는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승 가운데 한 분이다. 하루 한 끼만의 공양[一種食], 40여년의 장좌불와, 태안사에서의 묵언정진 3년 결사 등은 스님의 투철한 용맹정진의 생애를 웅변해 준다. 그러한 수행의 결과로 선사는 항상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말씨[和顔愛語]를 잃지 않았고, 신도들과 맞절을 할 정도로 한결같은 하심(下心)을 지켜나갔다. 이는 근본적으로 선사의 뭇 생명에 대한 깊은 자비심에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선사의 자비심은 타고난 천성이기도 하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 6․25전쟁, 5․18광주민주항쟁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픈 질곡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선사는 이러한 시대의 아픔을 불법(佛法)으로 어루만져 달래고자 하였음직하다. 그것은 선사가 불교의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 특히 ������정토삼부경������(1980년)과 ������약사경������(1981년)을 번역․출간한 사실, 그리고 불교를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고 정의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청화선사의 ������원통불법의 요체������(1993년刊)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선사의 불교관의 특징은 바로 ‘원통불법’이다. 붓다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의 전통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사람들의 문제와 근기에 따라 다양한 불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남방불교와 북방불교, 교와 선, 중관과 유식, 화엄과 천태, 정토와 선,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등의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청화선사는 이러한 대립과 혼란이 원통불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고 ‘염불선’, 즉 ‘실상염불선’을 통해 이를 극복․회통하고자 하였다. 근래 한국불교에는 ‘통불교(通佛敎)’라는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간화선만을 정통으로 여기고 절대시하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청화선사는 간화선이 5가 7종으로 분파된 중국 후기에 나타난 전통으로 보고,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이른바 ‘순선시대(純禪時代)’에 주목한다. 순선시대에는 교와 선, 정토 등의 차별이 없이, 간경과 참선과 염불이 모두 같은 안심법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청화선사의 염불선은 이같은 원통불법과 순선사상의 토대 위에서 주창된 것으로 보인다.
청화사상연구소에서 개최하는 이번 학술세미나는 바로 청화선사의 이 실상염불선에 관한 것이다. 순선시대 조사들의 사상 및 수행법에 나타난 실상염불선의 원형을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이 이번 세미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 중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을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다.
필자는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세 권의 단행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2003년 4월, 광륜출판사에서 발간한 청화 선사 역주(譯註) ������육조단경������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 선사는 ‘회통법문’ ‘귀의자성삼신불’ 등의 다섯 가지 해제(解題)를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선사의 실상염불선의 개념이 용해되어 있다. 그 두 번째는 1993년 11월에 성륜각(聖輪閣)에서 펴낸 ������원통불법의 요체������이다. 이 책은 1993년 2월, 동리산 태안사 금강선원에서 제방의 수좌 스님들의 청법으로 이루어진 7일간의 특별법회에서 청화선사가 설한 법어를 녹음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선사의 체계적 불교 지식과 불교관을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의 단행본이다. 그 세 번째는 2010년 광륜출판사에서 출간한 ������안심법문������(벽산문도회 편)이다. 이 책은 1995년 1월 미국 카멜에 위치한 <삼보사>에서 선사가 7일간에 걸쳐 사부대중을 위해 개최한 <순선안심탁마법회: Pure Zen Peace of Mind Cultivating Dharma Meeting>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물론 이 외에도 ������금강심론������을 비롯한 청화 큰스님 법문집 ������마음의 고향������ 시리즈(6권) 등을 참고하여 고찰할 것이다.
Ⅱ. 육조혜능의 선사상
1. 중국선종 성립시대와 순선(純禪)
김동화 박사는 그의 ������선종사상사������에서 중국 선종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1)선종성립시대, 2)선사상 발달기, 3)5가분립시대(853~960), 4)계승시대(960~1290), 5)쇠퇴시대(1270~1736)로 분류한다. 여기서 ‘선종성립시대’란 달마로부터 헤능과 신수 등에 이르는 시대를 말한다. 이 기간 동안에 중국의 선 사상은 점차 그 지반이 굳어지고 특색이 나타나서 기존의 교종과 대비되는 고유하고 독특한 종풍이 확립된다. 김동화는 이 시기의 사상적 특징과 종풍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달마는 1경1론에 치우치지 않고 대승경전 공통의 중심사상을 추리하여 그 신조로 삼았다.
둘째,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대승 정신과 자성청정한 인간의 본심(本心)을 현세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셋째, 면벽관심하는 좌선의 방법을 취하며, 관의 대상을 일심으로 하되 간화(看話)나 묵조(黙照)와 같은 형식적 틀[死型]에 떨어지지 않았다.
넷째, 제자들을 순수한 관심법(觀心法)으로써만 가르치고 후대에 일반화된 불권방할(拂拳棒喝)이라든가 양미순목(揚眉瞬目)과 같은 기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섯째, 선정을 실수(實修)함에 있어 염세적 또는 현실도피적 생활태도로써 신이(神異)를 나타내는 일 없이 평상적인 생활태도를 취하였다.
김동화는 이 성립시대의 선은 자유스럽고 순수한 선정 사상으로서 자연스런 생활태도를 지향했다고 본다.
청화선사는 이 시기의 선을 ‘순수한 참선’이라는 뜻으로 ‘순선’이라고 일컫는데 이것은 김동화 박사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선사는 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의 초조 달마 스님 때부터 육조 혜능 스님까지의 시대를 순선시대(純禪時代)라 하고 그때의 선을 순선이라 합니다. 육조 혜능 스님 이후에 다섯 파로 참선이 갈라져 서로 반목하고 옥신각신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것을 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순선이라 하면 참선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런 쪽으로 공부를 하지 않으신 분들도 다소 생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마 스님 때부터 육조 혜능 시대까지를 가장 순수한 참선으로 보고 이것을 순선 시대라 합니다. 다른 수행법으로서 화두선, 묵조선, 또 무슨 선 해서 복잡한 갈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 그대로 닦아서 나아가는 참선을 말합니다.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은 바로 이러한 순선시대의 선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순선시대를 처음 개창한 초조(初祖)는, 남조(南朝)시대 양(梁) 무제(武帝) 때에 남천축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보리 달마(菩提 達磨)이다. 달마는 숭산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며 9년 동안 면벽(面壁) 좌선하였다. 달마는 의발(衣鉢)을 혜가(慧可) 대사에게 전하였으므로 혜가는 훗날 2조로 불린다. 혜가의 법명은 원래 신광(神光)이었으며 숭산 소림사에서 달마 대사를 참견하고 6년간 수행하였다. 2조 혜가의 법을 전해 받은 사람은 3조 승찬(僧璨) 대사이다. 승찬은 선법(禪法)을 공개적으로 널리 전파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남긴 ������신심명(信心銘)������은 훗날 선종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승찬을 이어 4조가 된 사람은 도신(道信) 대사이다. 도신은 여산 대림사(大林寺)와 기주 황매의 쌍봉산(雙峰山)에서 보리 달마의 선법을 선양하며 500 여명의 문도를 지도했다. 도신이 활약하던 때에 선종은 비로소 조직적 종문(宗門)의 성격을 확립하게 된다. 4조의 법통을 이은 5조 홍인(弘忍) 대사는 기주 황매에서 선법을 선양했으며 그가 펼친 불법은 그가 머물던 산 이름을 따 흔히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불린다. 홍인의 영향력으로 선종의 수행과 일상생활은 서로 융합하게 되고, 선종의 조직과 형식의 기본적인 토대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홍인은 의발을 6조 혜능에게 전한다.
2. 혜능의 생애
혜능의 전기는 비사실적인 자료와 전설에 의거한 바가 커서 정확하게 그 생애를 밝히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혜능의 생애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는 기록과 자료들은 결코 적지 않다. 정유진(鄭唯眞)은 이러한 자료들에 근거해서 혜능의 생애를 상당히 상세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서는 편의상 단칭선사가 요약 정리한 혜능의 행적을 약간 수정 보완하여 인용하기로 한다.
혜능은 능대사(能大師)라고도 불리우며, ‘혜능(惠能)’으로도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慧能’으로 쓰인다.
혜능은 638년 영남(嶺南) 신주(新州, 지금의 廣東 新興縣 동쪽)에서 태어났다. 속성(俗姓)은 노(盧)이며 아버지는 노행도(盧行道)이고 어머니는 이(李)씨이다. 아버지는 원래 관직에 종사하였으나 신주에서 좌천을 당해 농사를 지었다. 혜능이 세 살 되던 641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남해(南海)로 이사하여 살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꾸려갔다. 23살 때(661년), 어느 날 시장에서 땔나무를 옮기다 객점의 손님이 읽는 『금강경』의 한 구절(應無所住而生其心)을 듣고 깨달은 바 있어 출가를 결심하고, 다음 해에 황매의 홍인대사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공부한다.
방앗간에서 8개월 동안 일하던 혜능은 심게(心偈, 보리수게 또는 오도게)를 지어 홍인대사의 심법과 의발을 전수 받는다. 그 후 남쪽으로 피신하여 하층민 노동자들 틈에 섞여 15년간 생활하였다. 혜능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중 대유령 고개에서 혜순(惠順)의 추격을 받았으나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를 감복시켰다.
혜능의 어머니가 667년 타계하였으며, 혜능은 멀리 조계(曹溪)로 가서 시골 사람 지략(志略)을 알게 되어 의형제를 맺는다. 백천동(白天洞)에서 일하다가 저녁 늦게 지략의 고모 무진장(無盡藏)이 『열반경』읽는 소리를 듣고 무진장을 위해 『열반경』을 강의해 주었다. 그 후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 혜능은 시골 사람들을 불러 보림사(寶林寺)가 있던 자리에 절을 다시 지었다. 보림사에서 9개월 동안 머물다 악인(惡人)에게 쫓겨나 사회(四會), 회집(懷集) 등을 전전하며 오랑캐 무리와 4년간 함께 살았다. 혜능은 676년,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지금의 光孝寺)로 가서 인종(印宗) 법사를 만났으며 삭발한 후 인종법사로부터 계를 받았다.
후일 동산법문을 열어 나무 아래서 설법하였다. 혜능은 677년 봄, 조계로 돌아간다. 조계 보림사에서 30여 년 동안 법을 설하였으며 그를 추종하는 대중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당나라 중종(中宗) 신룡(新龍) 원년(705년), 혜능의 나이 67세 때 조정에서 관직을 내리고 초청했으나 사양했다. 75세 되던 해(713년) 7월, 신주로 돌아갔으며 8월 3일 국은사(國恩寺)에서 입적했다.
3. 『육조단경』의 핵심 사상
인도문화를 뿌리로 하는 불교는 중국에 전래된 이후 중국문화와 갈등을 빚게 된다. 그 갈등은 근본적으로 충효(忠孝)를 중시하는 중국 유가(儒家)의 전통과 해탈열반을 목표로 출가 수도를 장려하는 불교전통의 충돌에 연유한다. 또한 인도불교는 경전과 교리체계가 복잡하고 수행 방법도 번삽하여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혜능이 활동하던 때와 그 전후 시기의 중국불교는 걸출한 불교 사상가들로 가득하였다.
이를테면, 법상종(法相宗)의 교학체계를 견인한 현장(玄獎, 600~664)과 규기(窺基, 632~682), 화엄종의 지엄(智儼, 600~668)과 법장(法藏, 643~712), 천태종의 지의(智顗, 538~597)와 관정(灌頂, 551~632), 삼론종(三論宗)의 길장(吉藏, 549~623), 정토종의 도작(道綽, 562~645)과 선도(善導, 613~681), 진언종의 선무외(善無畏, 637~735)와 금강지(金剛智, 671~741), 남산율종(南山律宗)의 도선(道宣, 596~667) 등이 그들이다. 혜능은 이렇게 여러 종파로 나뉘고 번쇄한 불교 이론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현실과 인간을 중시하며, 단순하고 대중적인 중국적 선불교를 주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권위주의와 봉건주의의 전통은 사회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을 심화시키며 불평등 사회를 조장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서민 대중들은 모든 인간이 존엄한 인간 평등과 자유사상을 희구하였으며, 이러한 대중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혜능의 선사상은 출현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혜능의 선사상은 불교전통과 단절된 독창적인 사상은 결코 아니다. 혜능 대사의 『육조단경』 속에는 『능가경』과 『금강경』을 비롯하여, 『반야심경』․『유마경』․『화엄경』․『열반경』․『보살계경』의 사상이 무르녹아 있다. 혜능은 『단경』 속에서 다양한 불교사상을 하나로 회통시켰고, 중국의 전통사상을 흡수하여 불교와 중국문화를 융합함으로써 중국적 불교사상을 창출해 낸 것이다.
이제 이러한 혜능의 사상을 잘 집약하고 있는 『육조단경』의 주요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청화 선사는 돈황본 『육조단경』의 내용을 <서언(序言)> 외에 10품(品)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품제(品題)를 정하고 있다.
1)오법전의(悟法傳衣)
2)정혜일체(定惠一体)
3)교수선정(敎授禪定)
4)귀의자성삼신불(歸依自性三身佛)
5)무상참회(無相懺悔)
6)설마하반야바라밀(說摩訶般若波羅蜜)
7)돈교설법(頓敎說法)
8)석공덕정토(釋功德淨土)
9)참청기연(參請機緣)
10)부촉유통(付囑流通)
이들 품제에 『단경』의 주요 내용과 사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필자는 이 모든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직․간접적으로 선사의 <실상염불선>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단경』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색은 ‘자기 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역동적 불타관에 있다. 다시 말해, 부처란 시간적으로 2600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 실존인물도 아니고 공간적으로 저 먼 서쪽에 있는 이상적 존재도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중생이 부처요, 자기 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다. 과거의 부처나 저 먼 곳의 부처는 참다운 부처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내 마음의] 부처가 참다운 부처다. 「부촉유통품」에서 혜능은 “만약 뒷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지니, 그러면 바로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연유하기 때문이며(卽緣有衆生)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佛心)이 없느니라”고 설하며 다음 게송[見眞佛解脫頌]을 읊는다.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달으면 중생이 부처니라
어리석으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정(平正)하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한 생각 깨달아 마음 평정하면
바로 중생 스스로 부처며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自佛)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부처는 나와 그리고 우리와 별도로 존재하는 고정불변의 정태적(靜態的)․대상적 타자(他者)가 아니라 역동적 주체적 존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혜능은 부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佛行是佛)고 설하는 것이다. 또한 ‘자성(自性)의 삼신불(三身佛: 法身, 報身, 化身)에 귀의한다’는 사상이나 ‘자성의 삼보(三寶: 佛, 法, 僧)에 귀의한다.’는 사상도 결국은 『단경』의 역동적 불타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둘째, 『단경』에서는 위의 역동적 주체적 불타관에서 불성(佛性)과 진여(眞如) 등의 개념을 통한 보편적․전일적(全一的) 불타관으로 진일보(進一步)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제10 부촉유통품의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의 내용 중에 나오는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부처요”(眞如淨性是眞佛) 라는 가르침에 잘 나타난다. 또한 5조 홍인 대사가 “그대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 출신이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라는 힐문에 대해 혜능이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佛性)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승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답변도 바로 보편적 불타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불성과 진여[성]은 종종 자성(自性)이라는 용어로도 쓰인다. 자성의 보편성 또는 평등성은 곧잘 허공에 비유된다.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대지산하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자성(世人性)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큰것(마하)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이다’는 가르침은 분명 ‘자기 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불타관보다 한 차원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자성을 보아 불도를 이룬다(見性成佛道)’고 설한다.
나의 이 법문은 8만 4천의 지혜를 따르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8만 4천의 진로(塵勞)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달은 이는 곧 무념(無念)이며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의 성품(眞如性)이니라.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불도를 이루느니라.
이러한 자성, 진여(성), 불성은 이른바 중도실상(中道實相)과도 통한다. “자성의 본체는 남(生)도 없고 없어짐(滅)도 없으며 감(去)도 없고 옴(來)도 없느니라”는 혜능의 가르침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셋째, 『단경』의 세 번째 중심사상은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서방 세계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이른바 ‘유심정토(唯心淨土)’사상이다. 따라서 아미타불 또한 마음과 자성(自性)을 떠나서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이른바 ‘자성미타(自性彌陀)’사상이 그것이다. 『단경』「석공덕정토품(釋功德淨土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서방정토에로 인도하여 교화하는 말씀을 하셨느니라…(중략)…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나니,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곳에 나려고 하지마는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고 말씀하셨느니라.
경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만약 생사(生死)를 여읜 돈법(頓法)을 깨달으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돈교의 큰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할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청화 선사는 이러한 『단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아미타불은 바로 진여 불성의 생명적 표현이니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난다[往生]는 것은 불성을 깨닫고 성불한다는 뜻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넷째, 『단경』에서 역동적인 불타관은 역동적인 수행론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먼저 정(定)과 혜(慧)를 일체(一體)로 보는 입장에서 드러난다.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바로 혜의 몸이요 곧 혜는 바로 정의 작용이니, 혜가 나타날 때 정이 혜 안에 있고, 또한 정이 나타날 때 혜가 정 안에 있느니라.” 정과 혜를 일체로 보는 이러한 혜능의 입장은 ‘무념(無念)’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낳는다.
없다(無)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念)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요, 생각함이란 진여본성(眞如本性)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여기서의 무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이라고 할 때의 무념과는 확연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무념이 ‘염(念)’과 상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무념이 바로 염이 되며 무념의 ‘무’는 ‘념’을 수식하는 수식어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무념위종(無念爲宗)’이라는 『단경』의 종치(宗致)는 ‘염’도 역시 『단경』의 종치가 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염은 진여의 용(用)으로서의 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수행법은 결국 다음의 무념행(無念行)으로 귀결된다.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 하되 모든 곳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색성향미촉법)으로 하여금 여섯 문(안이비설신의)으로 달려 나가게 하나 육진(六塵) 속을 떠나지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 감에 자유로운 것이니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로서, 무념행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다섯째, 돈오돈수(頓悟頓修)의 가르침을 들 수 있다. 돈수라는 용어는 다음 가르침에서 볼 수 있다.
법에는 단번에 깨달음과 점차로 깨달음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달은 이는 단번에 닦느니라(頓修).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달으면 원래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자기의 성품(自性)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나니 생각생각마다 지혜로 관조하며 항상 법의 모양(法相)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기의 성품을 단번에 닦을지니(頓修), 세우면 점차가 있게 되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위의 구절에서 ‘자기의 성품을 단번에 닦을지니’에 상응하는 내용이 돈황본 이외의 『단경』에서는 대부분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쳐서 돈오돈수하여 또한 점차(漸次)가 없느니라(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고 하여 분명하게 돈오돈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돈황본 『단경』에는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단번에 깨침과 점차로 깨달음(頓漸)’을 모두 세우나니, 생각 없음을 종(宗)으로 삼으며, 모양 없음을 본체로 삼고 머무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라는 가르침이 나오는데, 해석하기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이다. 청화 선사는 위의 ‘돈점’을 “단번에 깨침과 점차로 깨달음”으로 해석하는 반면, 성철 선사는 “돈점 두 자는 군더더기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로 말미암아 결국 성철은 ‘돈오돈수’를 철저하게 주장하게 되고 청화는 ‘선오후수(先悟後修)’를 통한 돈점의 회통을 주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Ⅲ.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
1. 선사의 생애와 사상
1) 선사의 생애
선사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사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 살피기로 한다.
청화 선사는 1923년 11월 6일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서 아버지 강대봉(姜大奉)과 어머니 박양녀(朴良女)의 아들로 태어난다. 속명은 강호성(虎成)이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苦學)으로 동경대성중학(東京大成中學)을 졸업하고 귀국 후 무안 일로농업실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한 뒤, 무안 망운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1942년에는 부모님의 뜻에 의해 청신녀 성삼녀(成三女)와 결혼하였으며, 1943년 형 강범룡(姜凡龍)의 죽음으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절실히 느낀다. 1945년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징병되어 진해에서 훈련을 받던 중, 8․15해방을 맞는다. 이후 광주사범학교에 편입하고 졸업과 동시에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출가한 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 벽송사, 구례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에서 철저한 수행 정진을 계속한다.
1968년 겨울, 누명을 쓰고 광주교도소에서 3개월간 영어의 몸이 되나, 끝까지 해명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스님은 그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1979년에는 금타 화상의 유고를 정리하여 『금강심론』을 간행하고, 1980년 5월에는 『정토삼부경』번역을 마쳐 출간하였다. 1981년에는 『약사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1985년 전남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에서 3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었다. 1986년 포교잡지 『금륜』 창간호를 펴내고 1992년 9월 설령산 성륜사(聖輪寺)를 낙성하다. 1993년 『원통불법의 요체』를 출간하고, 1995년 미주 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스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여 3년 결사를 시작하였다. 2002년 5월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하고 2003년 1월 『육조단경』을 우리말로 역주(譯註)하여 출판하다. 2003년 11월 속납 80세, 법납 56세에 성륜사 조선당에서 입적하였다.
2)선사의 불교관-안심법문과 원통불법
(1)안심법문
불교는 흔히 지(知)적으로는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종교요, 정(情)적으로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종교요, 의(意)적으로는 지악수선(止惡修善)의 종교라고 정의된다. 이 세 가지 불교의 정의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역시 두 번째 ‘이고득락의 종교’라는 정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전미개오나 지악수선도 궁극적으로는 이고득락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고통의 자각을 통한 고통의 극복’ 다시 말하면 안락(安樂)과 행복의 성취를 가르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인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과 12연기(緣起)의 가르침이 그것을 말해준다. 사성제에서 고제와 집제는 ‘고통의 자각’에 관한 진리이고, 멸제와 도제는 ‘고통의 극복’에 관한 진리이며, 12연기에서 무명(無明)으로부터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에 이르는 과정인 유전(流轉)연기는 ‘고통의 자각’에 관한 진리이고, 무명이 소멸함으로써 마지막으로 노사우비고뇌가 소멸하게 되는 과정인 환멸(還滅)연기는 ‘고통의 극복’에 관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은 고타마 붓다의 탄생게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존귀하나니, 삼계(三界)의 모든 고통을 내가 편안(안락)케 하리라(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는 게송 속에는 고타마 붓다의 전 생애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애고 이 세상을 편안케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것이다.
청화 선사는 중생의 모든 고통을 극복하여 마음을 편안케 하고 세상을 편안케 하는 것을 ‘안심법문(安心法門)’ 또는 ‘안락법문(安樂法門)’이라고 일컫는다. 선사는 『원통불법의 요체』와 『안심법문』을 비롯한 많은 저술과 법어집의 여기저기에서 불교의 대의가 바로 이 안심법문임을 강조한다.
부처님 법문의 대요(大要)는 안심법문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안락(安樂)법문이 되겠습니다.
나아가 선사는 특히 불교는 팔만사천 법문 전부가 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마음의 궁극적인 평안 또는 궁극적 행복은 우리 인간의 본성 자리에 가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의 본성인 진여불성(眞如佛性)에 도달할 것을 독려한다.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진여불성의 자리는 자비도 지혜도 혹은 능력도 행복도 본래로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본성은 본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자리에 가야만 비로소 안심입명(安心立命)합니다. 자비도 지혜도 행복도 능력도 다 갖추고 있는 그 본성의 자리에 가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우리한테 만족을 못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그 파랑새를 찾기 위해 산으로 들로 그토록 헤매었지만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집 안의 새장 안에 그 예쁜 파랑새가 있단 말입니다.
이 인간의 본성자리에 이르고자 하는 절실함은 불법 중에서도 선(禪)불교에 있어 더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청화 선사는 선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며, 특히 순선(純禪) 시대의 선을 중시한다. 선사는 보리달마에서 혜능까지의 시기를 순선시대라고 지칭하고 이 시기의 선사상을 안심법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예로서 혜가(慧可)가 달마(達磨)에게 안심을 구한 일화를 제시한다.
혜가 스님이 달마 스님한테 “제 마음이 괴롭습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안심법문의 기연(機緣)이 아니겠습니까. 선(禪)의 기본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안심법문이 확실히 자기 것이 못되면은 참선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혜가의 요청에 달마는 “괴롭고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주리라.”고 답한다. 혜가는 이 가르침을 통해 마침내 마음의 본성 자리에는 불안이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평안을 얻는다. 3조 승찬이 2조 혜가에게 죄를 씻어달라고 간청했을 때에도 혜가는 승찬에게 우리 마음의 본성에 원래 죄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4조 도신이 승찬에게 자신을 해탈로 이끌어 달라고 청했을 때, 승찬은 우리 마음의 본성에는 본래 속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마음의 평온과 해탈을 얻도록 한다. 안심법문의 전통은 이러한 방식으로 달마로부터 혜능에게 계승되었던 것이다.
청화 선사는 우리 중생들이 일체만유가 평등 무차별의 진여법계인데도 망정(妄情)으로 잘못 보고 그릇되게 행동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은, 우주의 도리대로 본래 내가 없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내가 없다고 분명히 생각해야 하고 내 집이나 내 소유물이나 내 절이나 내 종단이나 이런 것도 본래가 없다고 생각해 버리면 참 편합니다. 자기 문중이나 절 때문에 애쓰고 싸울 필요도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2)원통불법
청화 선사 불교사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실상염불선’은 안심법문, 순선사상, 원통불법 등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여기서는 원통불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선사의 원통불법의 개념은 크게 세 차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불교 내부적 차원의 원통불법이고, 둘은 여러 종교․사상계 차원의 원통불법이며, 셋은 우주적 차원의 원통불법이다.
먼저 불교(내부)적 차원의 원통불법에 대해 알아본다. 이것은 크게 선․교․염불의 회통, 돈점(頓漸)의 회통, 정혜균등(定慧均等)의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우선 선과 교와 염불을 원융무애하게 포용하는 선사의 입장은 다음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승경전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열반경』이나 『관무량수경』이나 『육조단경』이나 모두 한결같이 선(禪)과 교(敎)와 정토염불(淨土念佛)을 원융무애하게 회통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방편가설과 인연비유를 생략하고 오로지 생명의 실상(實相)인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단번에 깨닫는 견성오도(見性悟道)만을 역설함을 선이라 하고, 언어문자로써 성문, 연각, 보살 등 모든 근기(根機)들을 두루 살펴 극명하게 표현함은 교이며, 진여불성이란 우주생명에 온전히 귀명하여 수희참구(隨喜參究)함이 정토염불의 법문이다.
모든 대승경전은 각기 선, 교, 정토염불의 경향성을 갖더라도 결국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원융하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선사는 원통불교 또는 회통불교가 불교의 역사적 전통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원효 스님 계실 때도 여러 가지 종파로 『화엄경』 좋아하는 사람은 『화엄경』이 옳다 하고, 각기 다르게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종십문화쟁론(十種十門和諍論)이라, 모든 종파를 하나로 회통시킨 것입니다. 어떤 도인들이나 그분들의 행적을 보면 당대 일어난 문화현상을 하나로 회통을 시킵니다. 보조국사도 역시 염불이나 참선, 교리 등을 하나로 회통시켰습니다. 태고 스님도 마찬가지고 위대한 도인들은 하나같이 다 회통불교를 지향했던 것입니다. 중국 원나라 때 중봉 명본(中峰 明本) 스님, 그분은 고봉 원묘(高峰 原妙)의 제자인데 아주 훌륭한 선사입니다. 당대 원나라 임제종에서 나왔는데도 교와 선과 염불을 하나로 체계를 세웠습니다.
청화 선사는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는 종밀의 주장을 원용하면서,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마음이 서로 다를 수 없듯이 교와 선도 근본적으로 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근기에 따른 깊고 얕은 가르침의 차이는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선사는 수증론(修證論)의 측면에서도, 먼저 교리적 이론 체계를 확립한 이후에 실천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른바 ‘행해상응(行解相應)’의 주장으로서 행과 해를 융합해야 한다는 원통불법의 입장이다.
불교라는 것이 마음 닦아가는 공부라서 마음 닦지 않으면 교리를 많이 알아도 분간을 못합니다…(중략)…약간 닦았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심수오묘(深邃奧妙)한 교리를 어느 정도 연구 안 하면 바른 길을 모르고 바른 닦음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교리를 바로 알고 바로 닦기 위해서는 ‘행해상응’이라, 닦아서 가는 ‘행’과 교리를 풀이하는 ‘해’가 나란히 상대해 가야만이 우리가 바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선과 염불의 회통은 선사가 줄곧 강조하는 ‘염불선’이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자명해진다.
다음으로, 돈점을 회통하는 청화 선사의 선사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선사의 기본 입장은 위에서 말한 ‘행해상응’의 원칙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 원칙은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다’는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법에는 본래 돈점이 없습니다. 다만 근기가 날카롭고 둔함으로 돈점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닦고 증하는 수증(修證)에도 깊고 옅은 심천이 있는 것이니 돈오점수라 하여 그릇됨이 될 수가 없고, 점차나 차서나 고하를 논하지 않는 무염오수행(無染汚修行)을 역설하는 의미에서의 돈수이니 돈오돈수가 그릇됨이 아니며, 다만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수기(隨機)설법일 뿐입니다.
선사는 이처럼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선오후수, 그리고 무염오수행이라는 개념을 통해 회통하고 있다. 해오(解悟)이건 증오(證俉)이건 지극히 수승한 근기가 아닌 보통의 근기로는 깨달음이 바로 구경각인 묘각 성불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깨달음에도 심천이 있으며, 깨달은 뒤에도 습기(習氣)를 착실히 닦아야 한다. 이것은 깨달음에 의해 닦는 바 없이 닦는 무념수(無念修) 또는 무염오수행이다.
그러므로 돈오점수는 그 정당성을 얻게 된다. 또한 돈오돈수도 그 돈수는 무염오수행이기에 돈오돈수라 해도 틀리지 않다. 청화 선사는 보조국사가 주장하는 ‘돈오점수’에서의 돈오나 『단경』에서 설하는 돈오는 내용적으로 차별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돈오돈수설이나 돈오점수설이나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취지는 동일하고, 중생 교화의 배경이나 시절인연에 따라 설한 수기설법으로서 어떤 것도 그르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선오후수(先悟後修)가 되어야 닦음도 올바른 닦음이 되고 성불의 길에도 도움이 된다고 선사는 강조한다. 하지만 같은 돈오돈수라 해도 성철 선사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면 닦음도 원만해져서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의 돈수를 주장한 것이고, 청화 선사는 근본적으로 돈오점수의 입장에 서면서도 그 점수는 무염오수행이기 때문에 돈수라 명명해도 좋다는 주장이어서 두 선사의 입장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정혜균등의 회통이다. 청화 선사는 『단경』에서 주장하는 정과 혜의 일체 사상에 바탕하여 정혜균등을 주장함과 동시에, 순선시대를 관통하는 순선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의 겸수 개념을 통해 정과 혜를 회통한다. 일상삼매는 곧 혜에 상응하고 일행삼매는 곧 정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화 선사는 불교 내부를 아우르는 원통불법을 넘어 이웃 종교와 제 사상을 아우르는 원통불법으로 그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음의 언급은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꼭 필요한 것이 불교의 이른바 회통불교로서 불교의 경직된 분파적인 것을 지양하고, 세계종교의 비교종교학적 연구와, 교섭과 화해를 통한 융합의 문제입니다. 다종교는 대체로 어떻게 교섭해야 할 것인가?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들을 지금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구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가운데서 다른 종교, 다른 교리, 다른 주의 주장과 서로 화해를 못할 때에는 인류 문화적으로나 개인적인 생활에나 공헌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사는 모든 종교는 ‘진리는 하나’라는 입장에서 그 ‘궁극적인 하나의 도리’에 입각해 종교적․사상적 갈등과 대립을 극복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 종교간의 소통과 이해, 화해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선사의 원통불법은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선사는 불교는 사람만이 하나가 아니라 자연계라든가 일체만유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일원주의 사상이라고 보며, 이 일원주의만이 세계를 하나로 평화스럽게 묶어갈 수 있다고 본다. 선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주는 진여불성이라 하는 참다운 생명 자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자체는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우주 자체가 바로 한 덩어리 생명입니다. 이것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한계가 없는 우주가 하나의 부처님 덩어리, 하나님 덩어리입니다.
2. 선사의 실상염불선
1) 염불과 염불선
염불(念佛)에는 일반적으로 칭명(稱名)염불, 관상(觀像)염불, 관상(觀想)염불, 실상(實相)염불의 네 가지가 있다. 칭명염불이란 ‘나무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염불이요, 관상(觀像)염불이란 32상(相)80종호(種好)를 갖춘 부처의 원만 상호를 직접 관하는 염불이며, 관상(觀想)염불이란 부처의 자비공덕이라든가 지혜광명 등 부처의 공덕을 상상하는 염불이요, 실상염불이란 현상적인 가유(假有)나 무(無)를 떠나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 즉 법신(法身) 자리를 생각하는 염불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칭명염불만을 염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선사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염불이 고유하게 정해진 음정에 따라서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를 내면서 해도 좋고, 안 내고 속으로만 해도 좋고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염불을 해도 좋고, 계행을 지키지 못하면 또 지키지 못한 대로 염불을 해도 좋습니다. 염불은 다 좋은 것입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소리를 내나 안 내나, 염불하는 것은 어느 때나 좋습니다. 염불이라는 것은 생각 염(念)자에 부처 불(佛)자, 부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칭명염불에 국집하지 않는 청화 선사의 염불관은 단순한 염불에서 염불과 선이 결합한 ‘염불선’의 차원으로 진전한다. 선사의 염불선은 흔히 ‘시방 세계에 두루한 자성불(自性佛)의 지혜광명을 관조하면서 닦는 선’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서 ‘나무아미타불’은 소리내어 부르든 마음속으로 부르든 문제되지 않는다. 선사는 염불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염불선은 근원적인 문제, 즉 본체를 여의지 않고서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이치에 따라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어려워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천지우주는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참다운 진여불성의 자리가 바로 내 자성(自性)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본체를 여의지 않고 염불을 하면 그것이 바로 염불선입니다. 부처님이 저 밖에 다른 어떤 곳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은 염불선이 못 됩니다.
위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진여불성인 자기 자성의 본체를 생각해야만 염불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 체성을 여의지 않으면 비단 화두 참구뿐만 아니라 관법이나 염불이나 주문(呪文)이나 다 참선’이라는 선사의 선관(禪觀)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청화 선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참선의 방법이 아니라 참선이 지향하는 목표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염불선의 연원은 중국 송(宋)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선과 염불은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면에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차토성불(此土成佛)과 피토왕생(彼土往生) 등으로 구분되는, 상반된 성격의 불교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렇게 상반된 성격의 선과 염불이 송나라 때의 영명 연수에 의해 서로 접목되어 염불선이라는 새로운 수행 방식이 성립된다. 특히 명나라 때의 염불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칭명염불이 공안[화두]으로 사용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즉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불리워지는 아미타불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명나라 때의 4대 고승(高僧)인 운서주굉(153~1615), 감산덕청(1546~1623), 자백진가(1542~1603), 우익지욱(1599~1655)은 모두 이러한 염불선을 선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컨대 지철 선사 정토현문(智徹禪師淨土玄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염불을 한 번 혹은 3, 5, 7편 하고, 묵묵히 반문하라. 「저 염불소리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가?」. 또 생각하기를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하여 의심이 있거든 다만 한결같이 의심해가며 만약 묻는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고 의정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시 거듭 「필경에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하라.
하지만 청화 선사의 염불선은 위와 같은 방식의 염불선과는 사뭇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청화 선사의 염불선은 칭명염불과 화두선이 결합되어 있다기보다 ‘염불이 곧 선’인 회통적․관법적 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사는 왜 염불선을 권장하였을까? 선사는 화두선(공안선)과 묵조선, 그리고 염불선을 모두 최상승선(본래부처로서 일체 무루공덕이 원만히 구족함을 信解하고 닦는 선)으로 간주하면서 그 중에서 왜 염불선을 택하였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이유는, 염불은 난행도가 아니라 이행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에 보면 난행문(難行門), 이행문(易行門)이 나옵니다. ‘나는 부처니까 내 힘만 믿고 가면 부처가 된다.’ 자기 힘만 믿고 가는 것이 난행문이라, 아주 애쓰고 갑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나도 본래 부처다’하고 그 공덕에 의지해서 가는 것을 이행문이라, 이렇게 두 문을 나누어서 말했습니다.”라고 한 선사의 언명을 통해 알 수 있다.
둘째 이유는, 염불선은 부처를 생명으로 여겨 인간의 감성을 활용함으로써 역동적인 믿음과 갈앙심을 증폭시킨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은 마음을 비약시킵니다. 우리가 객지에 나가서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보십시오.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는 그 향수는 얼마나 맑고 순수합니까. 그렇듯이 우리 마음의 고향이 부처님인데, 부처님은 하나의 이치가 아니라 바로 생명이라, 내 생명의 고향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 자리를 간절히 흠모하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을 비약시킵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2) 실상염불선
청화 선사는 실상염불(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주에 두루한 부처의 진리 곧 신비롭고 부사의한 진여광명을 관조하는 것. 환언하면 자성불(自性佛)을 비추어 보고 참구함을 말한다. 그리고 실상이란 일체만법의 실상을 말하므로 실상은 바로 자성불 또는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실상염불을 금강염불, 일상(一相)삼매, 일행(一行)삼매, 염불선, 수능엄삼매, 왕(王)삼매, 진여삼매, 화엄삼매, 법화삼매, 실상삼매, 또는 자성선(自性禪)이라고도 한다.
월암 스님은 청화 선사의 염불선사상이 여러 경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염불삼매경』, 『법화경』,『관무량수경』 등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보조 지눌의 <진여 염불>이라든가 『능가사자기』에 수록된 4조 도신 대사의 법문 및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에서 특히 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도신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한다.
도신은 일찍이 여산 대림사에서 10년 간 천태지관(天台止觀)을 수습하고 달마선종의 4조가 된 바 있다. 그래서 천태선과 달마선을 융합하고, 또한 선과 염불을 회통하는 최초의 조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회통적 염불선을 주창하는 청화스님은 도신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염불선 사상과 안심법문, 일행삼매 등은 도신선사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월암 스님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그러나 가장 가깝게는 역시 청화 선사의 은사인 금타 화상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의 다음 내용은 청화 선사의 실상 염불선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는 맑은 마음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空)과 성품(性)과 현상(相)이 다르지 않는 한결같다고 관찰하면서, 법신, 보신, 화신의 3신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실상염불이란 실상 곧 진리를 관조하면서 하는 염불이다. 여기서 실상이란,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하며 영생상주(永生常住)한 진공묘유의 생명 자체를 의미하며, 또한 실상은 진여, 여래, 불, 열반, 도, 실제(實際), 보리, 주인공, 일물(一物), 본래면목, 제일의제(第一義諦)와 같은 의미이다. 선사는 실상염불은 우리가 진리를 미처 모르지만(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부처님께서 밝히신 대로 진리를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실상염불은 부처님의 법신이 무량무변하고 만공덕을 갖춘 중도실상의 원리를 관조하는 염불로서 실상염불이 곧 염불선이라고 규정한다.
실상염불은 모든 상을 떠나서 부처님의 진리, 중도실상이라, 이른바 우주에 두루해 있는 부처님의 참다운 생명의 실상, 그 자리를 생각하고 있는 염불입니다. 따라서 실상염불이 되면 그때는 바로 염불참선이 됩니다. 실상염불은 염불선과 둘이 아닙니다.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실상염불선에는 『법화경』과 천태가(天台家)에서 주장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사상이 짙게 무르녹아있다고 판단된다. 『법화경』에 의하면 ‘제법실상’의 진리는 오직 부처님들만이 알 수 있는 난해한 진리이다. 제법실상은 ‘제법의 실상’ 또는 ‘제법은 실상이다’의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실상의 구체적 내용은 ‘10여시(如是)’이다. 제법실상론은 모든 사물과 존재를 단순히 피상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과 존재[諸法]를 중도, 진공, 묘유의 관점에서 유기적이고 역동적으로 파악한다. 천태종에서 공(空)․가(假)․중(中) 삼제가 원융하다는 <삼제원융>사상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훗날 천태지의(天台智顗)는 이 십여시를 기초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세계관을 확립하게 된다.
둘째, 실상염불선은 대체적으로 우리 모두가 ‘본래부처(本來是佛)’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본래 부처로서의 자성청정심을 강조한다. 그것은 “염불이란 본래시불이니 닦은 뒤에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본래 부처인데 부처인 줄을 모릅니다……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염하는 우리 마음이 본래는 청정심입니다.”라는 가르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셋째, 실상염불선은 중도실상, 진여불성, 본래면목, 제일의제(第一義諦) 등에 생명성을 불어 넣는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의 생명입니다. 나의 생명인 동시에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연계나 이 삼천대천세계 우주 전부의 근원적인 생명입니다. 생명이니까 ‘부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우리 마음이 생명인데, 마음의 근본 고향인 동시에 일체 생명의 근본자리가 생명이 아니라고 할 때 우리 마음은 너무 건조해집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이 생명이 아니라 무슨 논리나 이치, 지혜라고만 생각할 때는 신앙이 정말로 감성적으로 감격되기가 어렵습니다……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계신(法界身)이라, 부처님 몸이 바로 우주입니다.” 청화 선사는, 온 우주의 생명현상은 ‘무(無)’로부터 나타날 수는 없고, 그 바탕에는 우주적 생명력(에너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가졌다고 생각된다. 또한 대각(大覺)을 성취한 역사적 붓다가 있고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깨닫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마음 현상에도 그 뿌리[佛性]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러한 불성도 결국 생명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과율 조차도 초월한 순수생명 자체로서의 생명이다.
3. 혜능선과 실상염불선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에는 여러 갈래의 사상적 원류(源流)가 혼재되고 통합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단경』의 사상은 실상염불선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제 실상염불선 사상을 『단경』에 의거한 혜능의 선사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앞의 제Ⅱ장 3절에서 『단경』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색은 ‘자기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역동적 불타관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실상염불선의 내용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실상염불이란 실상을 관조하면서 하는 염불인데, 이 실상의 개념에는 자성불, 여래, 불, 주인공, 본래면목과 같은 것들이 포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상염불은 자성을 떠나고 본체를 떠나 부처님은 내 마음이 아닌 저 밖에 다른 어떤 곳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을 경계한다. 단적으로 그러한 염불은 결코 염불선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것은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라고 하는 혜능의 가르침에 잘 조응하고 있다.
다음으로 필자는 『단경』에서는 위의 역동적․주체적 불타관으로부터 진일보하여 불성, 진여 등의 개념을 통한 보편적․전일적(全一的) 불타관을 주장한다고 하였다. 이 보편적 불타관은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부처’라든가 ‘만법 모두가 다 자성(自性)’이라는 가르침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사상은 실상염불(선)에 대한 청화 선사의 정의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실상염불(선)이란 우주에 두루한 부처의 진리 곧 신비롭고 부사의한 진여광명을 관조하는 것, 환언하면 자성불을 비추어 보고 참구함을 말한다.
그리고 실상이란 일체만법의 실상을 말하므로 실상은 바로 자성불 또는 아미타불이다.”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본래부처(本來是佛)’라는 사상으로 귀결되며 청화선사는 결국 ‘본래부처로서의 자성청정심’을 강조하게 된다.
그리고 『단경』에서는 극락정토가 서방세계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유심정토(唯心淨土)’와 아미타불이 자성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설한다. 이러한 『단경』의 사상은 아미타불을 진여불성의 생명적 표현으로 보고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불성을 깨달아 성불한다는 의미로 설명하는 청화선사의 가르침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사상적 입장은 실상염불선의 토대를 이룬다.
나아가 『단경』의 역동적인 불타관은 정(定)과 혜(慧)를 일체(一體)로 보는 역동적인 수행론으로 전개된다. 청화 선사는 이러한 입장에 의거하여 정혜균등을 주장함과 동시에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의 겸수 개념을 통해 정과 혜를 회통한다. 일상삼매는 혜에 상응하고 일행삼매는 정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실상염불선에서는 우주적 생명성이 강조된다. “부처님은 바로 우주의 생명입니다. 나의 생명인 동시에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연계나 이 삼천대천세계 우주 전부의 근원적인 생명입니다.”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실상염불선에 있어서 실상은 진리인 동시에 불생불멸하고 불구부정하며 영생상주(永生常住)한 진공묘유의 생명 자체를 의미하며, 진여, 여래, 불, 열반, 도, 실제, 보리, 주인공, 일물(一物), 본래면목, 제일의제와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실상염불선의 역동성은 『단경』의 역동적 불타관에 연유한다고 보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Ⅳ. 맺음말
불교는 흔히 깨달은 자가 깨닫지 못한 자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는 가르침으로 정의된다. 깨닫지 못한 자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데에는 전통적으로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제시되어 왔다. 참선, 간경, 염불, 주력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우리나라 불교에는 간화선만을 정통으로 여기고 절대시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간화선은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청화 선사는 간화선이 중국 후기에 확립된 전통으로 보고,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이른바 순선시대(純禪時代)의 불교에 주목한다. 순선시대에는 교와 선, 그리고 정토 등의 차별이 없이 간경과 참선과 염불이 모두 동일한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 받아들여졌다. 청화 선사의 염불선은 이러한 원통불법과 순선사상의 토대 위에서 주창된 것으로 생각된다.
청화 선사는 불교가 대중을 진정으로 안락하게 해 줄 수 있기 위해서는 불교 수행법이 종교적 생명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수행법이 바로 염불선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상염불선이다. 실상염불선은 시방삼세에 두루한 자성불(自性佛) 즉 아미타불의 지혜광명을 관조하면서 닦는 최상승선(最上乘禪)이다. 실상염불선을 닦아 가는데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가 필수적이다. 일상삼매란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의 실상인 바, 그 실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고, 일행삼매란 우주가 하나의 생명의 실상이라는 생각을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간단없이 유지시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청화선사의 실상염불선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단경』의 역동적 불타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실상염불선은 『단경』의 유심정토 및 자성미타 사상에도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실상염불선에는, 수행방법으로서의 실상염불선과 궁극적 깨달음의 내용으로서의 실상염불선이라는 양면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이 두 측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도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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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핵심어: 청화 스님, 원통불법, 일상삼매, 일행삼매, 순선 시대, 도신, 안심, 금타 스님, 곡성 성륜사 조실, 실상염불선, 정토
○국문초록
본 논문은 ‘원통불법’이 성립된 배경으로서 청화(1923~2003)의 생애사, 순선 시대, 그리고 도신의 선사상과 그 영향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그 의의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해방 직후 출가하여 수행에 전념했던 청화는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청화는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살다 간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과 동서 간의 이념대립이 있었고, 국내에서도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에 이어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후 이어졌던 국내의 혼란상과 함께 불교계 역시 정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대립이 거셌다. 이러한 시대적 질곡을 해소하고자 청화는 ‘원통불법’의 기치를 들었다.
둘째, 한국불교의 특징으로서 (원)통불교임을 확인하였다. 청화는 원효, 의천 등 한국의 고승들이 이미 원통불교를 지향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청화는 최상승선인 화두참선은 누구나 향유하기 어려운 선법으로 보았다. 청화는 제종파를 포섭하는 원융과 회통의 불교를 주창하였다. 禪者들 뿐만 아니라 근기의 차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행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청화의 원통불교 취지가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를 벗어나지 않았음을 논증하였다.
셋째, 삼매로서 ‘일상’‧‘일행’의 실천이다. 청화는 혜능 이전의 순선시대 조사들이 설정한 ‘일행삼매’에 주목했으며 특히 도신의 선사상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스님은 도신의 일상과 일행을 ‘止’와 ‘觀’, ‘慧’와 ‘定’에 배치하여 선법을 체계화하였다. 그 수행의 목표는 ‘安心’으로 귀결되도록 하였다. 이 안심의 의미는 불교에서 지칭하는 깨침과 동등하다. 조사들의 고원(高遠)한 선기(禪機)의 세계라기 보다 누구나 불법 실천에 의해 ‘안심(편안한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전했다.
넷째, 정토(불국토) 구현이다. 청화는 철저하게 유심정토를 주창하였다. 염불하거나 모두가 (실상)염불선으로 회통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화두선 역시 염불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결국 청화의 목표는 정토구현이며, 이는 대중들이 ‘안심’에 도달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keywords: seon master chunghwa, wontongbulgyo, ilsang samadhi, ilhaeng samadhi, sunseon period in china, ansim, master gumta, pureland, the seon of chant
○영문초록
Study on seon idea of Daoxin, Pure seon, Ansim, Ilhaeng samadhi of ordinary life on the basis of Wontong Buddhism
by choi, dongsoon
This article examined lifetime history of chunghwa(1923~2003), the age of pure seon, Seon idea of Doxin and its relationship as being a background of the Wongong Buddhism establishment.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o be summarized as following 4 points; First, Chunghwa concentrated on attainment upon ordained Buddhism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started its full swing activity during 1980s. chunghwa is a figure who was bor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passed away witnessed the upheaval of modern Korean history. During his period, there was the 2nd World War, East – West ideological confrontation , and locally, Korean war erupted as a result of sever left-right confrontation. Together with domestic confusion that continued after the war, there was a sever confrontation in the Buddhism society as well in the name of purification. To overcome such ordeal of that age, chunghwa raised the value of wongong buddhism.
Second, he verified wongong buddhism as being a typical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m. According to chunghwa, Korean priests of high virtue like Wonhyo, Uicheon. has directed already wongong buddhism. But chunghwa regarded Hwaduchamsun the supreme seung seon as a difficult seon-bub(method) that can not be mastered by everyone. chunghwa preached Buddhism of Wonyung &Hoetong embracing all religious branches. He presented the method of attainment capable to be participated by ordinary people not only priest monk but also without discrimination based on length of period of discipline. It proves that the theoretical principle of wongong Buddhism not left the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s Cadence.
Third, as being samadhi, the implementation of ilsang. ilhaeng. chunghwa paid attention to ilhaeng samadhi that was established by the priest during pure seon age prior Hyeneung and influenced particularly from the seon idea of Daoxin. Master chunghwa systematized Buddhism method by positioning gi &gwan, Hye &jung being the ordinary life and ordinary behavior of Doxin. The objective of attainment discipline is designed to be concluded to ansim. The meaning of ansim corresponds to the enlightenment of Buddhism. Rather than the world of enlightenment of master, chunghwa delivered the hope &confidence capable to attain ansim (peace of mind) by everyone through discipline of Buddhism.
Four the realization of Jeungto (pureland Buddist land). chunghwa seriously proclaimed Yushimjeongto(immaterialism). He emphasized the harmonization to Chan Buddha meditation or (true nature)mindfulness of the Buddha meditation. by everyone. The point konganseon meditative practice as well connects to Chan Buddha-mediation was presented. In conclusion, the aim of chunghwa is to realization of pureland, and clarifies this can be attained by ordinary people by reaching to ansim.
토론
혜능의 선과 청화의 실상염불선을 “역동적”으로 비교하기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에 대한 논평
변희욱
서울대 철학과
1.논문은 기획의도를 이렇게 썼다.
“순선시대 조사들의 사상 및 수행법에 나타난 실상염불선의 원형을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이 이번 세미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 중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을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다.”
2.논문은 청화 불교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청화 선사의 불교사상은 꽃”은 “실상염불선”이라 할 수 있다. “실상염불선은 안심법문, 순선사상, 원통불법 등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원통불법’은 “선·교·염불의 회통, 돈점(頓漸)의 회통, 정혜균등(定慧均等)의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돈점의 회통에 대한 논문의 설명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먼저 논문은 청화의 법문을 인용한다.
“(가) 법에는 본래 돈점이 없습니다. 다만 근기가 날카롭고 둔함으로 돈점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닦고 증하는 수증(修證)에도 깊고 옅은 심천이 있는 것이니 돈오점수라 하여 그릇됨이 될 수가 없고, 점차나 차서나 고하를 논하지 않는 무염오수행(無染汚修行)을 역설하는 의미에서의 돈수이니 돈오돈수가 그릇됨이 아니며, (나) 다만 선오후수(先悟後修)의 수기(隨機)설법일 뿐입니다.
논문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청화의 법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1)선사는 이처럼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선오후수, 그리고 무염오수행이라는 개념을 통해 회통하고 있다. ··· (2) 깨달음에도 심천이 있으며, 깨달은 뒤에도 습기(習氣)를 착실히 닦아야 한다.”
법문 (가), 정리 (1)의 요지는 ‘회통’이다. 이 내용은 일견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모두 인정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법문 (나), 정리(2)는 전형적인 돈오점수의 근거이다. 논문의 정리가 타당하다면, 청화는 “돈오점수를 근간으로 회통했다”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돈오돈수 쪽에서는) 논문의 정리한 청화의 회통은 “회통이 아니라 돈오점수”라고 여길 것이다.
3. 머리말에 따르면, 논문의 의도는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논문은 “육조혜능의 선사상과 청화 선사의 실상염불선”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잘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이 점이 논문의 탁월함이다.
3-1 논문을 공부하면서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역동적”이란 어휘이다.
“『단경』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색은 ‘자기 자신이 부처요 자기 마음이 부처’라는 ‘역동적’ 불타관에 있다.”
“『단경』에서 역동적인 불타관은 역동적인 수행론으로 전개된다.”
“염불선은 부처를 생명으로 여겨 인간의 감성을 활용함으로ㅆ 역동적인 믿음과 갈앙심을 증폭시킨다.”
논문은 혜능의 선에 대해서도 “역동적”이란 수식어를 사용했고, 청화의 실상염불선에 대해서도 같은 용어로 묘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이 쓴 “역동적”이란 말의 맥락과 의도를 좀 더 자세히 풀어주신다면 논문의 기획이 보다 쉽고 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3-2 좀 더 친절하게 “비교 검토”해 주신다면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1) 혜능의 수행법과 청화의 수행법 비교
2) 청화의 『육조단경』해석의 특징·강조점
3) 염불을 주제로 한 『육조단경』의 내용에 대한 청화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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