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님.
저는 지난 일요일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도 깨어나서 보니 허망하고 아쉽디 아쉬운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이렇습니다.
밤 내내 눈이 날리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눈 속을 드라이브 하며 뒷날 산행으로 함께 하지 못함을 대신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수원행 버스를 타고 광교산 입구에 도착하니
홈피에서 참석을 확인할 수 없던 분들까지 오셨더랬습니다.
진부령 이후 뵐 수 없었던 조사장님도, 김사장님도 오시고,
한참을 못 뵈었던 박장학사님도 오시고
박사장님도 아침까지 못 드시고 오시고
언제나 변함없는 박교장님도 오시고
웃음과 간식 창고 윤사장님도 오시고
안교감님도 오시고
강사장님이랑 친구분도 보이고
대장님도 오신 것 같고.
많이 반갑지만 버선을 신지 않아 버선발로 나갈 수 없어
그냥 눈인사로만 했지만 마음은 버선발이었답니다.
그분들이랑 하얗게 첫눈이 쌓인 산길을 걸으며 너무 즐거웠었답니다.
아이젠을 하지 않아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주변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꿈속이지만
민들레꽃님, 그리고 시험 감독 하고 있을 승애 언니도 생각하며
이런 아름다운 날에 산에 올 수 있는 내 행운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차로 달리며 궁금했던 도로변의 산 뒷동네도 확인하고
내가 통근 했던 길도 산 위에서 보니 새롭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지역을 보며
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꿈이었으니 그랬겠지요? 아마도.
박사장님이 배고프다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배고프다는 박사장님 버리고 앞서 가시던 김사장님이 보고 싶어서 그냥 급하게 갔답니다.
광교산 표지석이 예쁘게 세워진 곳에서 주변 산들을 살펴보고
작은 오두막집에서 차도 한 잔씩 나눴지요.
청계톨게이트 부근쯤 왔을 때입니다.
꿈속인데도 너무 현실처럼 배가 고팠습니다.
점심식사 10분전인데 그 급경사 내려갈 힘이 없었네요.
아! 하오고개
모두 내려가시는 모습 보면서도 혼자 남았습니다.
양갱 하나 먹고, 물 마시고, 그리고 발걸음도 힘차게 걸은 것이 아니라 주저앉았습니다.
스틱을 저 아래로 던지고 주저앉아 미끄럼을 타고 왔는데 이런 급경사가 이리 길게 된 곳은 처음이었답니다.
다 내려오니 무섭게 달리는 도로, 산행차림으로 도로를 걷는데 마주 오는 차가 보이니
꿈속인데도 조금 민망하네요.
추운 날씨에 감싸고 가는 제 폼이 멀쩡하게 차 안에서 보면 좀 우스꽝스럽겠지요.
오싹하며 제 사전에 없는 무단횡단을 했답니다. 꿈속이니까.
다행히 멀리서 기다려 주시고 수신호 해주시던 세 회원님 덕분에 용기도 나고 무사했습니다.
구도로 빙판길 사고차량들 사이를 겨우 지나 미끄러져 넘어지며 포장마차에 도착했습니다.
산행 중 웬 포장마차? 꿈이니까.
등반도중에 만나는 포장마차는 또 특별하네요.
추운 날에 먹으면, 아니 해장국 필요할 때 드시면 참 좋을 것 같은 맛있는 칼국수.
그것도 공동묘지 아래에서 국물을 제가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현실에서 이해되는 얘깁니까? 그래도 꿈이니까.
식사를 하고 나더니 회원님들이 산으로 가시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하시네요.
대간길을 함께 했던 그분들이,
홀로 나머지 공부까지 하시던 그 분들이,
폭풍도 뚫고, 허리까지 빠지던 눈길도 함께했던 바로 그분들이
아무리 꿈속이지만 산이 아닌 삼겹살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아무리 꿈이지만 그분들이 그럴리가......
꿈이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산으로 향하는 분보다 삼겹살집으로 더 많은 분들이 떠나시고
터벅터벅 찬바람 부는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침에 만날 때 오랜만에 많은 참여에 벅찬 기쁨도 짧은 꿈이었고
다른 때 중간 탈출은 돌아오는 차에서라도 뵐 수 있었는데
그냥 휑하니 떠나고 오르는 길은 참 허전했습니다. 꿈인데도 말입니다.
식사 전보다 더 차가와진 날씨
을씨년스런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소리
광교산보다 더 쌓인 눈
예쁜 새들에게 남은 밥도 꺼내 주고
어묵이랑, 막걸리, 언 양파랑 마늘쫑 찍어 먹고.
이런 일은 우리 산행에서는 없던 일이지요. 꿈이 아니었으면.
우리끼리지만 윤사장님, 강사장님 주신 간식 나눠 먹으며
오붓하고 정이 넘쳤습니다.
거기다 어둠이 가만히 내릴 때의 아름다운 풍광이라니
새하얗게 뒤덮인 눈 세상
거기에 천천히 조용히 덮어지던 어둠
줄기만 남은 새까만 나무줄기의 아름다운 선들
그 사이로 걸어가던 회원님의 움직임.
이렇게 한분 한분이 작품이 되었습니다.
진짜 꿈에서도 꿈같은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서쪽 하늘 짙은 구름 뒤로 붉은 해가 하루를 마감하던 시각
구름 가장자리에 이글거리던 남은 햇살의 붉은 열기
저 멀리 경마장의 휘황하던 불빛
아이젠 팝니다. 1000,0만원 (너무 비싸서 못 샀어요)
실눈썹 같던 가녀린 달
어둠속에서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한배~”하시던 대장님의 외침소리
짙어지는 어둠따라 더 화려해지던 양재동의 야경.
매봉에서부터 지친 제가 홀로 무서울까봐 함께 기다려주시던 멋진 분들.
끝까지 제 꿈에 출연해 주신 대장님, 안교감님, 윤사장님, 강사장님.
처음 제 꿈 시작 때 뵈었던 분들이 모두 어디 가시고 다섯분만 남았나요.
꿈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민들레꽃님
다음에 만나면 제 꿈 해몽 좀 해 주세요.
올해가 가기 전에 모든 분들 뵐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꿈 보다는 함께 건강하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꿈을 꾸겠습니다.
첫댓글 끝까지 함께 산행하지 못한 것 죄송하고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중간 탈출도 쉬운 일 아더군요. 다음부터는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배의 긍지를 끝까지 지킨 산꾼들, 회이팅!!!!
에구 아쉬워라! 이번 종주 못하신분들 다음 겨울방학때 저하고 다시 도전하시지요... 가장 추운날 눈이 많이 온날로 정해서 정신가다듬기 위해 한번 해 봅시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