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의자 등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고 무대 좌우편으로 도어가 있다. 소장 책위에 국화꽃이 핀 화분 하나가 보인다. 막이 오르면 서기 金씨가 책상에 엎드려 뭘 쓰다가 팽개치고 客席쪽으로 내려온다.
[서기]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사무실 문을 열기 전에 애 또, 사무실에 비친 고귀한 사업상 이 얘기를 좀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신 시간을 저희들과 같이 보내주신 데 대하여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즘 세상꼴이 잘돼 가는 겁니까? 못돼 가는 겁니까?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가지고 우리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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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물질위주의 원인으로 인한 애정파탄 문제이지요--- 이렇게 하루종일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싸우는데 시달리다보면 세상 사람들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도 드니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니, 낭만적인 꿈이니 하는 말은 전 세계에서나 있었던 우스꽝스런 잠꼬대 같이 들리니 말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나중엔 어떤 종말이 올런지---. 참 우스운 말씀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니까 세상이 변해가는지 세상이 변하니까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이제 우리 소장님이 나오실 시간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고귀한 것이 뭣인가를 가장 걱정하시는 분이지요. (이때 소장 등장 큰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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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
[서기] (소장을 보고 기겁을 하고 무대로 올라가서 인사를 하고) 소장선생님 나오셨습니까?
[소장] 무슨 광고가 그렇게 길지오?
[서기] (웃으며) 히히히 광고--- 옳습니다. 말하자면 광고이지요. 아니 요즘 세상은 자기 PR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소장] 우리 가정 상담소를 PR 해야 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요?
[서기] 뭐 별다른 이유야 있겠습니까만 여기 이렇게 많은 귀중한 손님들을 모신 김에 한번 제가 뽑아 봤습죠. 실은---.
[소장] (의자에 앉는다) 무슨 말이라도?
[서기] 저의 상담소 일이야말로 하늘과 땅이나 알지 누가 이 거룩한 선생님의 사업에 대해 알아줍니까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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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신 귀중한 손님들에게 좀 자기 PR을 하려다 그만---
[소장] PR보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시면 됩니다.
[서기]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소장] 그것보다 이제 시간도 되고 했으니 서류나 챙기시죠.
[서기] 네네 잘 알았습니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정리한다)
((이때 객석 중에서 서부인이 남편 金사장을 들어 가자느니 싫다느니 하고 옥신각신이다.))
[서부인] 어때서 싫다는 거요? 이제 속시원하게 이혼해 주겠으니 가자는데 왜 싫어요, 왜?
[金사장] 여보! 정말 이렇게 해야만 속이 풀리겠소? 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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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
[서부인] 난 이제 막가는 길이에요.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란 말이에요?
[金사장] 그게 무슨 소리야--- 체면도 좀 생각해야지!
[서부인] 체면이요? 아니 체면이 있는 사람이 처자식을 놔두고 버젓이 기집년을 얻어서 살림을 차리고서 날더러 체면이오?
[金사장] 남자란 그럴 수도 있는 거요.
[서부인] 남자란 기집질을 담배 피우듯 해도 상관없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이혼하자는 게 옳은 일인지 그릇된 일인지 법으로 알아보자는 게 아니요?
[金사장] 당신이 언제부터 법을 의지했어? 참 챙피해서---.
[서부인] 내가 5년을 두고 당신에게 매달려 성화를 했지만 해결이 안 나니까 이젠 법에 의해 정식 이혼수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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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자는 게 챙피하다고요?
[金사장] 법으로 할려면 가만히 앉아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아요.
[서부인] 이젠 당신 말에 속지도 않을 거고 나도 결말을 내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데 왜 막아요?
[金사장] 글쎄 집에 가서 해결합시다.
[서부인] 다 왔어요 난 우리내력을 다 털어놓고 끝장을 내자는데 무슨 군소리예요?
[金사장] (애원조로) 글쎄 집으로 가요.
[서부인] (남편을 끌다시피 하여 무대 쪽으로 향한다)
[서부인] 실례합니다.
[金사장] (어이없이 그저 체념쪼다)
[서기] 어서 들어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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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客席으로 해서 도어를 열고 들어간다)
[서부인] 여기가 이박사님 계시는 가정상담소지요!
[서기] 그렇습니다. 바로 (소장을 가리키며) 이분이 이박사님이올시다.
[서부인] (정중히 인사를 한다)
[金사장] (그 역시 인사를 한다)
[서기] 앉으시죠
[서부인] (소장 앞으로 다가가서) 선생님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늘 접할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 억울한 말씀을 드릴려고---
[金사장] (담배를 꺼내 물며 두리번거린다)
[소장] 거기 앉으시죠.
[서부인] 선생님! 세상에 이럴 수 있습니까? (큰소리로)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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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진정하시고 말씀하십시오.
[金사장] (쑥스런 자세로 소장을 보고 꾸뻑한다)
[서부인] 저는 여기 있는 이이하고 십오 년을 같이 살아 왔습니다. 딸자식이 둘 아들이 하나. 글쎄 뭐가 부족해서 젊은 기집을 버젓이 얻어서 살림을 차려 놓고 같이 고생한 처자식은 돌보지를 않군요 그래---
[金사장] 아니 돌보지 않았다구?
[서기] (金사장을 보고) 잠깐 부인 말씀이 다 끝나면 또한 충분히 선생께서 말씀하십시오. 여긴 가정상담소올시다. 여러분들이 부딪치고 있는 풍랑선을 무사히 도착지까지 당도하도록 모든 조력을 아끼지 있을 테니까요.
[서부인] 선생님 (반 울음소리로) 저와 이이와 처음 결혼할 때에는 사과 궤짝 하나에 밥그릇 두 개, 수저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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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하나 솥 하나 뿐이었답니다.
[金사장] 아니 그 이야기가 여기서 무슨 소용이람?
[서부인] 뭣이 어째요? 왜 소용이 없어요. 왜! (울음)
[소장] 진정하시고---.
[金사장] 죄송합니다.
[서부인] 게딱지만한 방에서 그래도 그때는 오붓하게 행복했답니다.
[金사장] 글쎄, 그 이야기가 여기서 무슨 소용이냔 말야 (화를 낸다)
[서부인] (들은 척 만 척) 그러던 사람이 아 글쎄 그놈의 눈먼돈이 좀 생겨 밥술이나 먹게 되고 또 요즘 자가용께나 굴리게 되니깐, 그만 나를 배신하고 젊은 기집에게 미쳐서 집안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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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습니까?
[소장]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있다)
[서부인]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생각지 못한다더니 실컷 저를 부려먹고 그래 돈푼이나 마음대로 만지게 되니깐, 이젠 돌보지도 않고 배짱을 부립니다.
[金사장] (일어나며) 선생님 실은 저의 집안사람 이야기가 전부 사실만도 아닙니다.
[서부인] 아니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이 벼락을 맞을---
[서기] 고정하시고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시도록
[서부인] 그래서 전 이혼을 할려고 왔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선생님께서 이혼수속을 좀 해 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소장]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이혼 수속을 원하시는구료!
[서부인] 네에, 바로 그 이혼 소송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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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사장] (좀 당황한 어조로) 선생님 그게 될 말입니까? 지금 이 사람은 흥분상태라서 좀---
[서부인] 뭐요? 내가 흥분상태라구요? (남편에게 대들며) 이봐요! 당신 같은 천하의 배신자는 이제 지긋지긋해서 금방석 위에 올려 논대도 난 싫어요. 싫어.
[소장] 그 작은 집은 부인께서 만나 보셨나요?
[서부인] 그게 말입니다. (눈흘겨보며) 어떻게 능수능란한지 능범인 줄 아십니까 저를 따돌릴려고 아파트를 전전하면서 꼬리를 밟히지를 않은걸요.
[소장] 그래서 어떻게?
[서부인] 그래서 흥신소를 댓습죠.
[소장] 증거를 잡으셨군요.
[소장] 동침하는 사진까지도 입수했으니깐요 (빽에서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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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장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사진을 찍은걸 얻었으니깐요.
[金사장] 그건 아닙니다. 공갈배들의 농간입니다.
[소장]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서기에게 눈짓을 한다) 그럼 간통죄, 쌍벌죄에 적용되겠군요. 부인께서 저와 단둘이서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듣도록 하죠. 그럼 저 방으로! (하고 우편으로 서부인을 데리고 퇴장)
[서기] 그럼 김사장님은 저와 좀 구체적인 말씀을 나누도록 합시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끼리끼리 말씀이야.
[金사장] 도대체 여긴 뭘하는 뎁니까?
[서기] 아니, 여기가 어떤 곳인데도 모르시고 오셨나요?
[金사장] 그저 가정상담소라는 건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어요.
[서기] 여긴 주로 여러분들의 가정불화 문제 등을 취급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가령 이혼소송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그 절차 같은 것을 갖추어 드리는 곳이죠.
[서기] 문제는 바로 그겁니다. 딸린 자식들이 있고 사회적인 체면도 생각하셔야 할 터이니 이 기회에 청산하시고 가정으로 돌아가신다고 서약을 한다면 부인께서도 구태여 이혼까지 생각하시지는 않을게 아닙니까?
[金사장] 그거야 서기님 말씀대로 저 사람이 누그러만 준다면야 서약서쯤이야 백 통이나 쓰겠소만---
[서기] 그럼 부인이 서약서 정도로는 타협하시지 않는다 그 말씀인가요?
[金사장]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글쎄올시다. 그 정도의 타협조건은 수없이 내세웠지만--- 번번이 거절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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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에이, 사장님은 좀 서툴게 앤조이를 하셨구만요! 하하하--- (웃는다)
[金사장] 서툴게라뇨?
[서기] 아 요즘은 밤에 역사를 이루는 게 아니라 대낮에 슬쩍 재미를 본답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에는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귀가하신다면 부인께서도 저런 상태로 비약하시지는 않았을 게 아닙니까? 그저 깜쪽같이 말입니다.
[金사장] (웃으며) 우리 집사람은 냄새를 잘 맡아요.
[서기] 냄새요? 에이 냄새를 안 나게 하셔야 외입할 자격이 있읍죠.
(두 사람은 낄낄대고 웃는다)
[金사장] 서기님 말이 일리 있소 내가 바보짓을 했죠.
[서기] 사내가 외입도 못한다면 그건 남자가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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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사장] 서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서기] 생각하다 말고요. 실은 저도---
[金사장] 그럼 서기님도 재미를 보시는구료?
[서기] 아니 실언했습니다. 그저 그렇다는 거지요. 하여튼 사장께서는 이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말씀인가요?
[金사장] 여부가 있습니까?
[서기] 그럼 좋은 수가 있습니다.
[金사장] 좋은 수라뇨?
[서기] 지금 원장 선생님은 별실에서 부인을 돕고자 구체적인 절차를 말씀드리고 또 사후 대책도 논의하실 겝니다.
[金사장] 돈 받고 이혼수속을 해주면 그만일 텐데.
[서기] 여긴 그런 영업장소가 아닙니다. (좀 실룩하여) 우리는 두 분의 가정에 평화가 일도록 최선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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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끝까지 희망이 없는 가정에 대해서만 수속을 필해 드리는 겁니다.
[金사장] 그래 좋은 수란 도대체 어떤 수인지?
[서기] (잠깐 사이) 무조건 부인 요구조건을 전부 승락하는 겁니다.
[金사장] 무조건?
[서기] 그렇습니다. 무조건 요구 조건을 승락함으로써만이 문제는 원만히 해결되고---
[金사장] (고개만 끄덕끄덕)
[서기] 그리고 그 2호분은 멀리 소개시켜 놓고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金사장] 쥐도 새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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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사장]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집사람은 냄새를 잘 맡으니까---.
[서기] 그러기에 서울서 저 부산이나 진주나 멀리 그 냄새를 풍기지 못할 곳으로 소개를 시켜야죠
[金사장] 음--- (생각에 잠긴다)
[서기] 하여튼 부인이 어떤 요구 조건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까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金사장] 최악의 경우라뇨?
[서기] 부인이 보는 자리에서 얼마만큼의 대가를 그 여자에게 지불하고 다시는 이러한 과오를 범할 때에는 이러이러한 더 큰 대가를 부인에게 지불한다든가 하는 약정서를 남겨두는 거죠.
[金사장] 할 수 없죠. 무슨 연극을 하든지 지금 내 입장으로서는 이혼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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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원장, 서부인이 등장)
[소장] 그럼 두 분은 잠깐 옆방에 기다려 주십시요. 부인하고 좀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서기] 그럼 가시죠.
[金사장] (서기를 보며) 잘 안 되는 게 아니오?
[서기] 명령대로 우리는 옆방에 가는 겁니다.
[金사장] (불안한 표정으로 서기를 따라 나간다.)
[소장] 우선 앉으세요.
[서부인] (앉는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이가 저의 말을 다 들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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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안 들으면 고소를 해야죠. 그리고 부인과 나와 단둘이만 있으니까 말이지만 부인이 지금 이혼한다면 부인만 손해를 보게 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위자료를 긁어낼 수야 있지만 남편도 자식도 버리고 이혼한 후 돈만 가지면 행복하실 수 있겠어요?
[서부인] (생각에 잠긴다.)
[소장] 남자들의 외도는 남자들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좀더 냉정하게 따져 본다면 이 사회나 부인에게도 어떤 결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부인] 저에게도요--- (사이) 죽일 년이지 글쎄 선생님 돈도 좋지만 나이도 새파란 기집년이 자가용 타고 노는데 미치고 돈을 좀 긁어낼 수 있다고 해서 아버지뻘 되는 영감하고 놀아나는 세상이니 온---
[소장] 세상 탓도 있지만 남자들이 궁할 때는 얌전히 자기 부인 밖에는 가도 권력이나 돈푼이나 만지면 너도나도 방탕 짓을 하는 게 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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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인] 바로 그 점입니다. 저이도 돈을 벌기 전에는 얼마나 착실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러던 그이가 그놈의 돈 아니 그 돈이 눈이 멀었지 아무것도 아닌 그이에게 분에 넘친 돈이 굴러들어 오니깐 웬걸 기집질부터 시작이군요. 그래,
[소장] 남자가 돈을 마음대로 못쓰게 되면 여자도 지금과 같이 따르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까 전재산 관리를 부인에게 맡기던가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이혼하되 전재산의 반을 주던가 양단간에 하나를 택하도록 딱 잡아떼세요.
[서부인]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만일 안 들으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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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야지 못살겠어요
[소장] 그럼 (초인종을 누른다)
(서기 金사장이 등장)
[서기] 네에. 부르셨습니까?
[소장] 그럼, 金사장님 거기 앉으셨습니까?
[金사장] 천만에 말씀입니다. 선생님 그저 저 사람이 마음을 돌려주기만---
[서부인] 마음을 돌려요?
[金사장] 제발 이런 연극이라고요? 이---.
[소장] 아, 좀 조용히 앉아 계세요. 저의 상담소를 찾아오신 이상 여기 질서나 규칙에 순종 하셔야 합니다.
[金사장] 천만에 말씀입니다. 선생님 그저 저 사람이 마음을 돌려주기만---
[서부인] 마음을 돌려요?
[金사장] 제발 이런 연극은 그만하오?
[서부인] (큰소리로 화를 내서) 뭐요, 연극이라고요? 이---
[소장] 아, 좀 조용히 앉아 계세요. 저의 상담소를 찾아오신 이상 여기 질서나 규칙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金사장] 죄송합니다.
(서부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서기가 막는다.)
[소장] 그럼 金사장님께 묻겠는데 金사장님은 부인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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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부인의 요구 조건을 승락하시고 이혼을 않으신 대신 다시
는 부인의 이러한 문제로 해서 재혼하지 않도록 하시겠습니까? 확실히 말씀하여 주십시요.
부인께서는 이혼을 강경히 원하시고 있지만 우리 상담소는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을 위하여
가능한 한 이혼을 막고자 하는데서 충고합니다.
[金사장] (주저주저하다가)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남자란 사업관계상 탈선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이 우리 가정에서 완전히 떠났다거나 또는 저의 집사람에게 애정이 식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서 실수를 저지른 거에 불과하오니 참작하셔서--- 선처를 바랍니다. 만일 제가 이렇게까지 한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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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인] 선생님 저분 말은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말만 가지고는 믿을 수가 없어요.
[金사장] 글쎄 이제는 믿어도 돼요.
[소장]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金사장] 네에.
[소장] 부인에게 전 재산관리권을 맡기십시요. 뭐 재산관리를 부인이 맡는다고 해서 선생님이 사업하시는데 지장이 있거나 또는 불편을 느끼시는 일은 없을 터이니까요.
[金사장] 네에? 전 재산관리를 저의 아내가 한다고요?
[소장] 그렇습니다.
[서부인] 그래야만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게 될 테니 그 짓을 못하게 될게 아니오?
[金사장] 그건 너무합니다. 선생님! 실은 저도 할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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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아내가 아내의 임무를 다 수행했느냐 입니다.
[서부인] (펄쩍 일어서며) 아니 내가 아내 구실 못한 게 뭐요?
[金사장] 말이 났으니 말이지 밤낮으로 어델 쏴 다녔지?
[서부인] 밤낮으로 어델 다녔냐구요?
[金사장] 그래요. 내가 회사에서 전화를 걸어보면 밤낮 집에는 없었으니 말야?
[서부인] (좀 기세가 약화된다) 그래 당신은 며칠씩 집을 비우고 나는 친구들과 좀 돌아다녔
으면 어때서 그래 지금에 와서---
[金사장] 글쎄 그 친구들과 어디로 밤낮으로 돌아다녔느냐 말야---
[서부인] 친구집 아니면--- 당신 뒤쫓아서---.
[金사장] 소장님! 집안 살림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밤낮으로 친구집만 압니까? 그
리고 따지자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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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났으니 말입니다만 남편 꽁무니를 쫓아다니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 친구가 사
내인지 여자인지 누가 보증합니까?
[서부인] (놀라서 입을 열어 무슨 반박을 하려한다) 아니 사내 친구요? (분에 넘쳐 남편에 대들면서 발악, 한참 동안, 실랑이가 끝나고 나서) 이젠 나를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金사장] 궁지에 몰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는데요. 내가 아내에게 전 재산을 관리시키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단 나로서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장] 부인께서 외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외출한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金사장] 그게 아닙니다. 저의 잘못을 감추려드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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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사람은 자기의무를 잘 이행했느냐 하는 게 첫째고요, 둘째는 그 친구, 친구 하는데 말입니다. 저로서도 그걸 알아야겠습니다.
[金사장] 선생님! 아닙니다. 잔인한 건 저의 집사람입니다. 이런 데까지 와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하는 게 전 못 견디게 불쾌합니다. 그리고 이 꼴을 보셨지요? 여자가 집을 지키는 건 당연한 게 아닙니까? 남자란 사업상 집을 비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무시하거나 집안을 돌보지 않은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집 사람도 밤낮 집을 비웠으며 친구, 친구 하지만 전 그 친구가 도대체 어떤 친군지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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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인] (분해서 어쩔 줄 모른다) 선생님 쌍벌죄로 고소장을 써주세요. 저는요, 이이가 아무리 딴소리를 지껄여도 아무 결점 없는 여자입니다.
[소장] 그럼, 서류는 만반 준비해 놓고 있다가 형식적이나마 도장은 받아 두세요. 난 좀 나가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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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네에, 염려 마십시요.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사이. 金사장이 다시 등장한다. 무대는 서기와 金사장 뿐이다.))
[서기] (웃으면서)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김사장] 소장님과 저희 집사람은 어데 나갔지요?
[서기] 그건 아실 것 없구. 그래 마음의 준비는 다 되셨나요?
[김사장] 별 수 없지 않소. 서기님도 남자니까 나하고 통하는데도 있을 터인데---
[서기] 물론, 통하는 데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고--- 김사장님은 외입을 하는 기술부족으로 혼이 나셨습니다. 그저 부인에게는 둥글둥글 원만히 하시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과부도 많고 시집 못 가 울고 있는 처녀도 많아 역사는 대낮에 적당히 호텔에서 이루어지는데 애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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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부족이야요.
[김사장] 바로 그 점입니다. 다 적당히 재미를 보는 세상인데 그만---. 그걸 모르고 나를 쌍벌죄로 옭아맨다니---. 그러나 난 재산관리는 절대 안될 말입니다. 돈이 있어야 재미보는 세상인데 그래 그 돈을 전부 관리시켜요? 천만에 말씀이지---.
[서기] 돈으로 재미 보는 세상이라---. (시니칼하게 웃는다)
((둘이는 제각기 의미 심중한 웃음을 짓는 가운데 막))
[막] 2막
전막과 동일한 무대. 막이 오르면 어두운 무대 전면에 박철과 남순이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다. 조명은 그들만을 비치고 음악은 조용히 그들의 속삭임을 축복하는 양 흘러나온다. (특히 서정적인 음악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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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두 사람의 애무가 계속된다. 사이
[남순] 여보 난 당신 거예요? ---
(한참 있다가 다시)
[박철] 정말?
[남순] 여보, 난 당신 없으면 이 세상에서 못살 것 같아요.
[박철] (역시 남순이를 어루만지면서) 정말이지? 정말---
(긴 포옹이 계속되고 음악은 계속된다.)
[남순] 왜 내 말을 못 믿겠어요?
[박철] 아니! 그저 너무나 난 지금 흐뭇하고 행복해서 말야.
[남순] 나도---
[박철] 난 말이지. 당신만 내 옆에 있으면 세상에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남순]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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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포옹-- 음악은 극이 진행되는 중 계속 흐르고--- -사이- 무대가 어두워지고 남순이와 박철이는 퇴장. 다시 무대가 밝아지고 서기, 서류를 보면서 객석으로 나온다.))
[서기] 여러분! 지금 두 사람의 속삭이는 소리를 잘 들으셨지요? 서로 없으면 못살고 사랑없이는 못살겠다구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번 생활에는 너무나 맹세와는 거리가 먼 고민이 그들의 비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말이지 이 두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아니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보죠. 행복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사랑을 서로 맹세한 남자와 여자는 우리 상담소를 찾아옵니다. 이 서류는 바로 그 남자가 제시한 비극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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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올시다. 과연, 이 남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서기는 다시 자기의 의자에 돌아가서 앉는다. 잠시후 소장이 등장)
[소장] 그 남자는 아직 안 왔소?
[서기] 곧 올 겁니다. 방금 연락이 있었으니까요
[소장] (침묵)
((박철, 헝클어진 옷차림새로 약간의 주기를 풍기며 객석에서 등장))
[박철] (소장과 서기에게 절을 하고 난 후) 바로 제가 어제 연락 드린 박철이올시다. 바쁘신 선생님들을 괴롭혀서 죄송합니다.
[서기] 거기 앉으시죠.
[소장] 5년간이나 동거한 부인을 고발하시겠다는 동기를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 보세요.
((박철, 주저하다가 냉장을 되찾고 난 후 무대 쪽으로 걸어 내려온다. 소장, 서기를 앉아서 박철을 주시한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南順이 등장. 박철과 험악한 상태로 대결))
[박철] 아니 그게 이제 와서 나에게 할 수 있는 말이야 응 ? 똑똑하게 말해보란 말야.
[남순] 내 팔자예요.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헤어져야 해요.
[박철] 어째서? 그 이유를 말해보란 말야? 나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던 당신이 갑자기 헤어지자는 데는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할게 아냐?
[남순] 이유가 간단하죠. 난 좀더 잘 살고 싶었죠. 내자식도 좀 남보다 잘 기르고 싶고요. 그
런데 당신은 너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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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그래. 내가 당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왔지 않았어. 딸이 같이 살기 싫다해서 십만원을 주어 방을 얻어 주었고 난 아내도 이혼해 버렸지 않느냐 말야. 비록 내가 놀고는 있지만 - - -.
[남순] 그걸로써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박철] 거짓말이라니?
[남순] 당신이 부인하고 법적으로 이혼했다 했지만 알아본 결과 그간 서류로 나를 속여 왔어요.
[박철] 뭐, 거짓 서류라고? ---
[남순] 물론 당신이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믿어요. 그러나 당신은 가장 중요한 것을 속여 오고,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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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비위에 거슬리면 당신은 부인 생각을 했어요.
[박철] 그걸 어데다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지?
[남순] 내가 한살, 두살 먹은 어린애가 아닌 이상 그것쯤 알 수 있어요.
[박철] 그건 당신의 신경과민이야. 나를 믿는다면 그런 게 큰 문제가 아냐. 내가 볼 때 당신이야말로 진정으로 헤어져야 할 이유를 회피하고 있어
[남순]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박철] 흥 그건 내가 무능한 남자라는 거지. 다시 말하자면 물질적으로나 또 다른 면에서 말이지.
[남순] ---.
[박철] 그러나 사람이란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야. 어떻게 항상 좋을 때만 있을 수 있느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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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 나도 더 늙기 전에 실속이 있어야겠어요. 당신은 언제 어느 때 나를 버리고 엄연히 호적에 있는 당신 본 부인을 찾지 않는다고 누가 보증합니까?
[박철] 그런 억지소리야. 호적도 곧 해결돼. 그러나 당신은 실속을 차린다니 그게 ---
[남순] 당신은 노력을 안 했어요. 또 당신이야말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구걸하
다시피 살고 있지 않아요? 이렇게 살다가 전 더 나이 먹으면 그땐 어떻게 되죠?
[박철] 같이 나이 먹어가며 같이 죽을 때까지 사는 거지 뭘? 내 마음이 변한다고. 엉뚱한 말
을 끄집어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남순] 그런 당신위주의 생각이에요. 제가 좀 잘살아보기 위한 꿈을 가진 데서, 그게 나쁠 게 없지 않아요? 정말 당신이 나를 위한다면 말이에요. 전 당신하고 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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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 저대로 당신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데 힘을 써 왔다고 생각해요.
[박철] 그랬으면 됐지. 누가 뭐라고 했던가?
[남순] 당신이 나에게 베푼 만큼 나 역시 다했다는 겁니다.
[박철] 그럼 내가 당신에게 베푼 정도의 대가는 당신도 나에게 했으니 이젠 실속없고 장래가 막연한 나하고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건가?
[남순] ---.
[박철] 우리 일이년을 같이 지낸 사이도 아니고 탁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자고 ---.
[남순] 글쎄. 당신은 생각을 해 보세요. 만날 된다는 취직은 안되고 설사 된다 하드라도 우리 두 사람은 살기에도 바쁜 터에 내 자식, 당신 자식을 어떻게 기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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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
[남순] 그래서 난 결심한 거예요. 나도 거리에 나서서 뭐든지 해야겠어요. 당신이 나를 대포집이라도 하나 차려 주신다면 몰라요. 그러나 지금 당신 형편으로는 그것도 어렵지 않아요?
[박철] 뭐 대포집?
[남순] 당신은 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따지고 보면 차라리 툭 털어놓고 우리가 앞날을 생각하는 것이 피차 현명한 태도가 아니겠어요.
[박철] 그래. 당신 말은 내가 대포집을 차려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갈라서서 자기 갈 길을
찾자는 건가---
[남순] 당신이 생활비를 못 벌어들이면 결국 내가 뭐든지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박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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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 내가 나선다면 뭘 하겠어요? 다방마담 아니면 술집 접대부, 그것밖에 우리생활을 유지하는 길이 더 있느냐 말이에요?
[박철] 고작 생각하는 게 그거야?
[남순] 그거 아니면 뭐 뾰족한 게 뭐가 있어요? 당신 자식 두 아이와 내 자식 두 아이해서 공부도 가르쳐야 하고---
[박철] 내가 항상 이 모양으로 놀고만 있을라구?
[남순] 글쎄 그게 쉬운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런 화류계로 나서서 당신과 나 사이에 이러쿵저러쿵하기 전에 깨끗이 헤어져서 나도 자식들을 위하고 또 나도 위하여 살고 싶다는 겁니다.
[박철] (큰소리로) 그럼 난 어떻게 하란 말야? ---.
[남순] 그럼, 이런 질식상태를 지속하자는 건가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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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에 묶어놓고 말이에요? 그리고 법적부인이 있지 않느냐 말이에요?
[박철] (차츰 이성을 잃어간다) 내가 내 옆에 묶어놨다구? 그래 좀 생각해 보라고 내가 놀고 있기 전에는 이런 말이 없더니 그래 내가 놀고 있다고 해서 당장 헤어지자고 하다니. 그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당신이 그럴 수가 있느냐 말야
[남순] 그럼 당신은 놀고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니 몸을 팔아서라도 벌어다가 당신 자식하고 같이 살자는 거예요?
[박철] (크게 격분) 몸을 팔아 돈을 벌어오라고 누가 했어! 누가 그랬느냐 말야? 흥, 내가 돈이 떨어지고 놀고 있으니까 요년이 나를 차버릴려고? 그러나 내가 가만히 둘 줄 알아! 이 도둑년 같으니 세상인심이 모두 변해 버렸다지만 난 설마 네년만큼은 이렇게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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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몰랐단 말야 그런데 그런데 그걸 말이라고! 차라리 나를 죽이라구, 차라리 나를 죽이고 마음대로 하란 말야
[남순] 전 남과 같이 살고 싶어요. 집도 갖고 싶고,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싶고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태도로 나와 살아왔어요. 그저 성생활에만 급급했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떳떳하게 해보았냐 말이에요. 그래서 살림은 뭐하나 갖추어 논게 있으며 겨우 입에 풀칠이나 면할 정도였지. 그래도 난 당신의 말에 희망을 걸고 5년을 살아왔어요. 그런데 당신은 5년간을 어떻게 살아왔죠? 금방 집도, 살림살이도 생활안정도 해결된다고 날 속여 오고서 겨우 한다는 게 남에 등을 쳐서 딸애 방 한 칸 얻어 준 것 밖에 뭘 해논 게 있느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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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은 흥분에 몸을 떨고 있다)
[남순] 내 말이 뭐가 나쁘냐 말이에요. 이젠 우리가 같이 살자면 내 몸을 팔아 살길밖에 없지 않느냐 말이에요. 그래도 같이 살자는 건가요?
[박철] (반울음 섞인 소리로) 듣기 싫여---
[남순] 나더러 도둑년이라지만 도둑년이래도 좋아요. 그러나 내가 도둑년이라면 당신은 나보
다 더 나쁜 사람이란 말이에요
[박철] 난 너를 위하여 살려고 발버둥쳤어.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안된 것뿐야. 그러나 시간이 해결할 줄 믿고 있었어. 내가 너를 속인 것도 사랑하기 때문이었지 아무것도 다른 게 없어. 그걸 네가 몰라주다니 그게 말이나 되느냐 말야.
[남순] 그 점은 알고 있어요.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이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헤어지는게 피차의 장래를 위한 것이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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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넌 나를 위하여 준다는 마음이 네 마음속 한구석에 조금이라도 자리잡고 있다면 내곁에서 떠난다는 말을 말아줘---.
[남순] (일어선다. 그리고 냉정하게) 지금 세상은 변했어요. 변해버린 세상에 나는 발을 맞추
지 않고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애요. 그 옛날처럼 사랑만으로는 이젠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니까요.
[박철] (붙들고 애원한다) 여보! 제발 마음을 돌려줘요. 아무리 세상이 변해서 돈으로 사는 세상이지만 우리들의 사랑의 힘으로 살아봅시다. 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앞으로는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거요. 우린 그걸 믿고 살자 말야
[남순] 이미 끝났어요.
[박철] (흥분하여 고함과 동시에 난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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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음악으로 두 사람이 붙들고 실랑이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암전. 사이. 두 사람 중 박철이만 무대 앞에 앉아서 소장, 서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철] 소장님! 저는 억울합니다. 소장님께만은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만, 전 진정으로 그 아
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는 무슨 꼬임인지 또는 그가 말하는 장래를 위하여 피차 헤어져야 한다는 점에서인지 막무가내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돈밖에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소장] (심각한 표정이다) 박선생님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계십니다. 본부인과의 이혼도 해결이 안 돼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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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이상을 같이 살았지만 애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한테서는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기] 그 애정이 유죄로군요. 즉 박선생님은 애정으로 대했지만 지금 부인은 애정이 전부가
아니라---
[소장] 선생님은 뭘 착각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을 똑바로 보실 줄 몰랐기 때문에 이런 비극을 가져오게 한 겁니다. 선생님의 경우 선생님이 책임을 져야하죠. 누구에게 원망도 불평도 고발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박철] 지금의 아내에게는 저의 모든 것을 바쳤는데도요?
[소장] 현재 선생님은 아내를 잡아 둘 힘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또 법적으로도 선생님은 애정을 호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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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박철] 결국 돈이라는 거군요.
[서기] 말하자면 현재 선생님의 친구는 --- 돈도 문제이지만 본부인과의 관계입니다.
[박철] 저는 고발하렵니다. 당국에 고소하렵니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거짓 애정을
호소한 그녀를 고발하렵니다. 선생님 도와 주십시요.
[소장] 선생님 좀더 냉정히 생각해 보세요. 현실은 냉혹한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돈을 못
버니까 같이 살기 싫다는 여인을 붙들고 있는다 해서 선생님이 행복할 수 있으며 애정을 만
끽할 수 있습니까?
[서기] 바로 우리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십시요. 여자는 또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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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뭐요? (화를 내며)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서기] 암, 얼마든지 있죠. 그 돈만 있으면 말입니다요.
[박철] 저에게는 내 아내가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있는 다른 수많은 여자보다도 내 아내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소장] 선생님의 그 진정을 잘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진정한 애정으로 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걸 부인은 깨달을 겁니다. 앞으로 부인이 나서서 돈을 벌게 되는 경우 더 비참한 결과가 오기 전에 헤어짐으로써 선생님과의 관계에 어떤 미련을 남기자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기] 즉 그 헤어지자는 그 심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보아야죠.
[소장] 선생님은 부인과의 대화 중 사람이 살다보면 기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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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도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본부인의 입장을 생각하시고 지금 생활을 청산하시고 나아가신다면---
[박철] (운다) 선생님! 전 앞이 캄캄합니다. 참된 애정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서기] 아따 진정하시죠. 참된 애정이 통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을 겝니다. 찾지를 못해서 말이죠.
[소장] 선생님은 돌아가셔서 좀더 냉정히 생각해 보세요. 좀 더 시간을 두고--- 저로써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말뿐입니다.
[박철] 너무합니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너무합니다. 이럴 수도 있는 세상입니까? (관객석으로 나오며 흐느끼면서) 아무리 세상이 변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칼날처럼 무섭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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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잔인하게 남을 속여서는 말입니다 (박철은 관객석을 통하여 퇴장. 조명 南順이를 비친다. 남순, 소장 쪽으로 온다.)
[남순] 실례합니다. 선생님! 전 나쁜 년이라고 욕을 하고 갖은 모욕을 당해도 좋습니다. 저 역시 박철씨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저와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장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본부인이 엄연히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한 저의 심정은 박철씨 못지 않게 쓰라립니다. 그러나 한남자의 장래를 위하고 또한 여자를 생각할 때 고루한 사랑관에 묶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관계를 청산하는 게 보다 밝은 장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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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다같이 불우한 처지입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책임을 져야겠어요. 일시적인 쾌락 때문에 매일같이 한숨과 불안에 떨면서 살 수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역시 흐느낀다)
[소장] 참으로 오래간만에 기쁘고 보람찬 광경을 보았습니다. 두 분의 관계는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두분의 장래는 밝을 것으로 믿어도 의심할 바 없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남순] 감사합니다. 저의 심정을 이해하여 주시니 이젠 아무 여념없이 제가 갈 길을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역시 관객석을 지나 퇴장)
[서기] 선생님! 세상은 변했다지만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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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자기들의 갈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려---
[소장] 문제는 어떤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도 있다는 게지--- (하고 무대 안으로 퇴장, 서기 관객 앞으로 나와서)
[서기] 통속적인 이야기를 지루하게 들려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현실을 초월하고 살수도 없고, 현실에 순응하자니 비극이 따르는군요.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하시지 않아요? 우리가 이 사무실을 지키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움직임을 대강 집착할 수 있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 소장님 교훈처럼 물질위주 세상보다 인간성위주의 세상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군요. (주위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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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의 소장님이 들으시면 자기 PR은 필요없다고 꾸짖으실 거예요. 자기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입니다. 참!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 이 보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객석을 지나 퇴장. 음악과 더불어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