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
한때 밀실 정치의 현장이었던 요정 대원각이 법정스님에 의해 길상사로 변신하게 된 데는 법정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가 다리 역할을 했다.
대원각 소유주였던 김영한(1916-1999)씨는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월북시인 백석(1912-1995)과 사랑에 빠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린 그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해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운영하던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은 제3공화국 시절 대형 요정 대원각이 됐다.
김영한씨와 법정스님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씨는 1987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설법 차 로스앤젤레스에 들른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7천여평(당시 시가 1천억원)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줄곧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1995년 마침내 청을 받아들여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말사로 조계종에 '대법사'를 등록한다. 이후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꿔 12월14일 창건법회를 갖는다.
길상사 창건법회 날 김영한씨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천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1999년 11월14일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목욕재계 후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고,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다.
길상사는 유골이 뿌려진 자리에 조그만 돌로 소박한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7일 기재를 지낸다. 길상사의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맑고 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을 만들어 매년 고교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길상사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 분원을 두고 있고, 헝가리 원광사, 인도 천축선원, 호주 정혜사를 자매도량으로 삼고 있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창건 후 회주(법회를 이끄는 어른스님)를 맡아 정기법회에서 법문을 들려줬으나, 2003년 12월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그 후에도 길상사에서 열리는 대중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해왔고, 이번 생의 마지막 시간도 길상사에서 보냈다.
“‘무소유’는 말로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무소유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었을 적에야 비로소 가능한 경지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겸손과 사랑이 없는 무소유는 공허할 뿐이죠. 때론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영적 우월감에 빠질 수 있고, 때론 자기 방식의 무소유를 강조하며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죠. 이 길은 참으로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께선 이젠 정말로 스님의 본래 뜻대로 완전한 무소유가 되셨네요. 스님께서 그리고 꿈꾸시던 정토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스님께서 그토록 좋아하셨던 ‘어린 왕자’처럼 별나라에 가시거든 종종 꿈에라도 잠시 오시어 더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길들이는 법을 일러주세요. 길들인 것과의 이별이 쉽지 않은 우리에게 잘 이별하는 법도 가르쳐 주세요.”
-시인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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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들의 큰형님! 참으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주위에는 너무 많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하물며 지금 인터넷만 없어도 얼마나 불편하지 모르지요. 아마도 ‘사랑’이란 커다란 화두를 던지고 그분은 가셨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소식을 자주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형님도 이곳에 자주 들리셔서 인생사 慧眼(혜안)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4월에 팔당역에서 뵙겠습니다.
무소유.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는 것을 찾아 내어 가릴줄 아는 혜안 이지요. 우리 곁에서 가장 인간 다운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삶의 이정표가 되셨던 분이
법정 스님이 아닐까 합니다. 미둔께서 올려 주신 글을 보면서 오늘 또 한번 그 분의 아름다운 삶을 가슴에 새겨 봅니다.
공박사님! 모든 세상을 돌아 보면 생각나는게 있지요. 가족, 고향 그리고 친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 지난 시간 만큼 어디서나 장을 만들면 좋겠군요. 그리고, 늦께나마 따님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무소유-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로 다가 옵니다.지키기도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세상은 무소유는 아니더라도 덜 소유하려는 세상이라도 좋겠것만 모든 것을 늘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것이 늘 문제입니다. 나 또한 그런 부류 중의 하나가 아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그렇네요. 가지면 더 갖고 싶고 누리면 더 오래도록 누리고 싶은 것이 우리네 생활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황사가 오고 눈이 많이 내려도 봄은 어김없이 저기 잡초 바람타고 오네요. 맑은 회장님의 목소리 닮은 냄새를 이곳에서 이젠 느껴야 하는군요. 바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