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방향 : 11-5번타고 군포구사거리 하차하셔서 60번이나 8번가는 방향으로(YWCA사무실 반대방향) 반정거장쯤 걸으시면 다리가 있는데 다리앞에서 한무리교회가 보입니다.
평촌방향 : 범계역 4번출구(킴스클럽 앞)에서 60번타시고 군포구사거리 다음정류장인 다리앞에서 하차하셔서 다리에서 좌측으로 보면 한무리교회가 보입니다.
한무리공부방 전화번호 : 453-9603 / 신은희간사 HP 011-399-0475
우리가 방문하게 될 한무리공부방에 관한 기사입니다.
6월30일은 한무리공부방에서 수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직업설계 3 시간이 견학으로 대체됩니다).
원장님 목소리가 시원시원하신걸 보면 그날의 프로그램도 가히 기대가 됩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말씀드리죠.
그리고 반장님은 제게 받아갈 거 있으시죠? 오늘 제가 잊어서 그만... 금요일에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뚝방마을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노래
안양시와 군포시의 경계를 흐르는 안양천 옆 뚝방마을에 자리한 한무리교회(최주상 목사·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한무리교회는 "한무리 나눔의 집"을 운영하며 안양공단 노동자들과 그들 가정의 고단한 삶을 돌보고 있다. 나눔의 집은 인근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의 자녀, 소년소녀가장, 독거 노인들의 어깨를 누르는 인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열린 학교"와 "신나는 밥집"
나눔의 집 문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맡기고 출근하는 8시부터 열린다. 노동자들의 미취학 아이들은 "열린 학교"의 어린이집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를 보낸다. 단, 이곳에서는 전세 또는 월세 살이, 맞벌이부모나 한부모 또는 친척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우선권이 있고 환영을 받는다. 나눔의 집은 그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공단마을 초등학생들은 열린 학교 공부방에서 4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소박한 꿈을 키워나간다.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느끼는 절망감에서 치유될 수 있도록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를 잘 이해하기 위해 "엄마가 다니는 공장 탐방하기", 환경오염이 심각한 안양지역의 환경실태를 배우는 "우리동네 공해지도 그리기" 등 여러 대안적인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방학 동안에는 목공·분해조립·십자수·연극 동아리 등 동아리별로 모임을 갖고, 방학이 끝날 무렵 방학과제를 가지고 "동아리 축제의 날"을 열어 지역 어른들에게 발표할 기회도 가진다. 중·고등부 공부방에서는 입시학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거나 학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보통 아이들보다 뒤쳐지지 않을 만큼" 교과과정을 가르친다.
매일 오전 10시 한무리 나눔의 집에서는 "신나는 밥집" 문이 열린다. 부지런히 60여명 분의 쌀을 씻어 군포그린재활용센터에서 얻은 70인분 가스 솥에 올려놓고 반찬과 국을 만들다 보면 두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오후 1시가 되면 신나는 밥집은 밥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신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찬다.
밥집은 원래 결식 아동을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어린이집과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도 같이 모여 밥을 먹는다. 국가에서 준 식권으로 식당에 찾아가 우울한 어깨를 늘어뜨리고 밥을 먹던 아이들도 신나는 밥집에서는 당당하게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의 배만 채워주는 게 아니라 가슴을 채워주고 싶다는 게 한무리 나눔의 집 식구들의 바람이다.
신앙과 일치하는 삶
한무리교회는 하고 있는 일의 규모에 비해 작은 교회이다. 주일예배 인원이 40명 남짓이다. 그러나 지역에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는 교회이다.
한무리교회가 이 지역 주민들을 섬기며 함께 나누는 일을 시작한 때는 1985년. 한무리교회는 그때부터 종일탁아소, 노동자 야학, 무료진료소, 노동 상담소 등을 통해 지역의 노동자들,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해 왔다. 그 동안 상가 전셋집을 14년 동안 전전하며 6번의 이사 끝에 2000년 11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군포 시유지에 지어진 무허가건물이지만 사용료만 내고도 계속 쓸 수 있게 됐다.
처음 이러한 선교활동을 하였던 한무리교회는 기관의 요시찰 단체였고, 지역 주민들도 오해를 가지고 은근히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집에 혼자 남아있는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도 가르쳐주고 밥도 함께 나누며, 지역을 위한 선교활동을 계속하자 차츰 주민들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중심이 된 신앙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열린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환한 웃음으로 자라나자 고마운 마음에 교회에 나오는 부모도 있었다.
최주상 목사(46)가 한무리교회에서 민중사역을 꿈꾸게 된 계기는 1979년 장신대 3학년 시절 친구의 권유로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다니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최 목사는 같은 또래의 노동자들이 장시간 저임금의 노동에 시달리며, 단칸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저 편하게 대학에 다니며,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이 시대 속에서 목회자가 어디를 향해 가야하고 또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야하는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목회를 한다면 이런 사람과 함께 하겠다, 이 사람들과 함께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 후 "일하는 예수회"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안양에서 10개월 간 공장생활을 하며 안양공단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가정을 이룬 박광혜 사모는 나눔의 집 부대표로 나눔 사역을 도맡아 하는 가장 든든한 동역자가 됐다.
최 목사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인들보다 잘 살기를 원치 않고 그들처럼,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에서 자신이 깨달은 만큼, 사는 만큼, 살 수 있는 만큼 전하려 한다. 교인들에게도 말씀과 삶의 일치를 강조한다.
최 목사가 강조하는 또 하나는 지역 주민들과 교인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 자존감을 가지는 것이다. 대다수 지역 주민들, 노동자들, 교인들은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소중한 존재인 그들이 현실에 밀려 자신의 존재와 삶을 하찮게 여기며 부인한다며 안타까워한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 가정 안에도 종합적인 문제가 있다. 교회가 한 사람을 만날 때 다양하고 다면적이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그 문제의 해결점들을 찾아 오다보니 이렇게 나눔의 집의 일들이 다양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뉴스엔죠이/최소란 (2003-08-14 오후 2:04:57)
첫댓글 가는 버스편 번호라도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버스역 이름이랑요.
8번과 60번타고 오시면 되고요 60번은 범계역 4번출구로 나오셔서 저희 센터를 경유한 후에 하차하시면 됩니다. 하차하실 정류장은 박은숙씨가 확인해서 올려주시기로 했거든요. 저두 알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