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란
지난 21일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을 모두 클린하며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 김연아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판정을 두고 전세계 언론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거셌으나 당사자인 김연아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런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김연아는 올림픽 시즌 갈라쇼 프로그램으로 선택한 '이매진'이 주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하다. 존 레논의 1971년작 앨범'이매진'의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인 이매진은 아름다운 곡과 그의 사상이 담긴 가사로 존 레논의 수작으로 평가를 받는 노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노래했던 존 레논처럼, 최근 인권 단체인 국제엠네스티가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단의 인권 환경 개선 기금 마련을 위해 팝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다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리메이크한 '이매진'은 평소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아와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특히 논쟁과 의혹 속에서 진흙탕이 되어 버린 이번 대회 피겨스케이팅에 '이매진'이 전하는 우아한 평화의 메시지는 각별한 느낌으로 내게 와 닿는다.
판정단의 이해할 수 없는 힘든 결정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무대에서 실수 없이 한 것에 만족한다."며 이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언론이 그녀에게 묻자, "평화를 소망하는 이번 프로그램의 의미를 많은 분과 나누고 싶다.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더욱이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러시아 인접 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유혈 사태가 초미지급(焦眉之急)이다. 그런 때인 만큼 에이브릴 라빈이 리메이크한 '이매진'이기에, 세계인의 가슴에 깊은 울림과 파장이 적다 하지 않겠다. 그 의미심장한 노랫말을 여기 다시 옮겨 적으면서 함께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에요/ 우리 아래에 지옥이 없고/머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네요/ 모든 사람이 오늘 하루를 위해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누구를 죽이거나 목숨을 바칠 필요도 없어요/ 그렇게 만드는 종교도 없을 거예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지 몰라요/하지만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바래요/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되겠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다고 상상해 보세요/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고 굶주리지도 않네요/ 인류애만 있을 뿐이죠/ 모든 사람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내가 꿈꾸고 있다고 말할지 몰라요/하지만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바래요 /그러면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세상을 함께 살아가겠죠.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로 우리들에게 마지막 올림픽 선물을 안겨주고 아름답게 마무리한 그녀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보배이자 진정한 올림픽의 승자가 아닌가 한다.
세계 올림픽 정신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 행사로써 아마추어 운동 경기 대회다. 그 모태는 그리스 시대 제우스 신을 기리기 위해 창설되었지만, 근대 올림픽 경기는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강령 속에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 정신이 현대에 와서는 국부의 크기와 탐욕의 정도, 그리고 홈 텃세에 밀려 부정 심판으로 인해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이 크게 훼손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소치 올림픽의 불명예가 그 한 예라 하겠다.
세계 평화라는 지구인의 한결 같은 공통 명제임에도 지구 한편에서는 연일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모두는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과 편견에서 오는 불행의 씨앗들일 터다. 지구 곳곳에는 생명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자유와 정의, 평등을 원하고 있지만 영원한 삶의 이데아로 남을 것 같다. 그것은 아직도 약육감식, 정글의 법칙이 현재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잡초처럼 인간이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바닷물은 퍼내면 언젠가는 말라버리지만 인간의 욕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현실은 늘 고통스럽고 불안한 세상이다. 하지만 정반합(正反合)의 하늘 법칙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세계 평화'를 꿈꾸며 사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멈추지 않는 삶의 희망 아닌가.
총기 사용문제로 인해 내전 양상까지 우려되는 현재 상황이지만, 장외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EU와 러시아간의 힘겨루기 양상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 소치 올림픽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러시아의 인권 탄압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올림픽마저 끝나면 러시아 시민 사회는 국제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동시에 러시아 정부의 인권탄압 수위도 더욱 높아질 것을 세계인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지만 더 나아가 승리의 월계관은 정신적 명예가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김연아 선수는 참으로 대단한 선수다. 세계가 극찬한 것도 눈에 보이는 메달 색깔 때문이 아니리라. 다름 아닌 그녀의 수준 높은 멘탈(정신)과 올림픽 정신의 진정한 영웅다운 처세 때문이다. 그녀는 누가 뭐라해도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자랑스런 체육인이자 국가인이다. 그녀의 신산한 불모지와 다름없는 환경을 극복하고 화려한 선수 경력도 그러하거니와 삶의 도를 깨친 대인다운 인품을 우리는 이미 벤쿠버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만방에 알린 진정한 한국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23살의 젊은 여성에게서 결코 느낄 수 없는 카리스마와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장인 정신이 오랜 수련을 거친 도인답지 않은가. 그 정신적 깨달음의 단계와 깊이가 실로 예사롭지 않다.
그녀의 연기는 관중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하는 신기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 고난도의 경기를 한 점 흩트러짐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인간 새처럼 피겨 전설이 된 김연아는, 마치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다니며 먹이를 구해 굶주린 동료와 새끼를 먹여 살리는 희생정신과 전쟁의 한 복판에서 현대인의 전서구로 희망과 평화의 봉사 사절단이자 올림픽 집배원 같았다. 흰 바탕에 청색 무늬가 있는 비둘기는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전파를 통해 보여준 감동의 연기와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는 지구촌 곳곳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아 우리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한 마리의 마법의 비둘기였던 것이다.
비둘기는 성서 이야기에도 나온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에 따르면 노아가 땅이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배에서 비둘기를 내보냈고, 비둘기는 올리브 가지를 물어와서 땅이 있음을 알려줬다. 마태복은 3:16절과 누가 복음 3:22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동안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비둘기를 써왔다. 또한, 통신 수단이 없던 옛날에는 비둘기 발에 편지를 메달아 통신 수단으로 사용했다. 1,2차 세계 대전 때에도 비둘기(傳書鳩)를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흰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해 오지 않았는가.
그녀는 7살부터 피겨 생활을 시작하여 24세가 되도록 피겨 하나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언젠가 사이트에서 그녀의 발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마디로 내겐 가히 충격적이었다. 누렇게 굳은살이 발바닥 전체에 퍼져 있고, 모양은 참혹한 기형이었다. 거기다가 허리 디스크와 발목 부상은 그녀를 떠나지 않은 피곤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녀의 감독은 그녀를 보고 연습벌레라고 했다. 수만 번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차가운 얼음판에서 세상의 고통을 배웠고, 연습을 통해 능력을 키우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세계의 비정함을 배웠으리라. 그곳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습’뿐이란 걸 일찍부터 깨달았으리라. 그런 그녀여서일까, 그녀의 행동 하나, 언어, 의식 하나하나가 마치 대인이자 도인의 사자후 같다. 한 마디로 내공이 꽉 찬 가을배추 같았다. 그것이 내겐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부정 심판으로 대한민국이 분노해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국민을 위로한 그녀 아니던가. 그 담대함과 관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녀가 있어 동계올림픽의 겨울밤이 행복했고, 나의 조국이 이토록 눈물나게 자랑스런 존재감으로 다가오기는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척박한 환경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기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품격 높은 지성과 우리의 금메달 너머의 인품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것이 더욱더 자랑스럽고 대견하지 않은가. 그것이 나는 눈물나게 고맙고 미안하다. 마치 내 딸의 일인양 대견하다.
그녀는 이제 이 무대를 끝으로 선수 생활은 공식적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성공적인 인생을 엮어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피겨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의 높은 단계와 경지를 터득한 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피겨의 전설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을 대한의 맏딸 김연아다. 더욱이 세계 평화 메시지를 통한 기품과 우아함의 권위는 지구인의 가슴속에 따스한 인간 새(비둘기=인류애)로 영원히 아름답게 기억되리라. (2014.2.25)
첫댓글 "김연아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품격 높은 지성과 우리의 금메달 너머의 인품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것이 더욱더 자랑스럽고 대견하지 않은가. 그것이 나는 눈물나게 고맙고 미안하다. 마치 내 딸의 일인양 대견하다."
격조높은 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