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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 론 --------------------------------------------------- 1
Ⅱ. 본 론 --------------------------------------------------- 1
1. 역사상의 붓다 ------------------------------------------- 1
2. 법의 세 가지 의미 ---------------------------------------- 2
3. 법(진리의 당체)으로서의 붓다 ------------------------------- 3
4. 법신의 특성 -------------------------------------------- 4
5. 화엄경에서의 법신 --------------------------------------- 5
1) 법신불의 뜻과 종류 ----------------------------------- 5
2) 법신불의 특성과 주처 --------------------------------- 5
3) 법신불의 공덕과 신통 ---------------------------------- 6
4) 법신불과 창조주 유일신의 차이 --------------------------- 7
6. 우리 모두는 곧 붓다 -------------------------------------- 7
Ⅲ. 결 론 --------------------------------------------------- 8
<참고자료> -------------------------------------------------- 9
Ⅰ. 서 론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란 말 그대로 ‘깨달은 자’, ‘완전한 인격자’의 뜻을 가진 범어 붓다(buddha)의 음사이다. 흔히 우리는 절에 가서 예불도 드리고 기도도 하면서 부처님께 무엇을 발원하기도 하며 소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경전을 통해 우리와 함께 역사적 시대를 살다간 한 인간으로서의 붓다의 일대기를 듣기도 하며, 화엄경이나 법화경과 같은 대승경전을 통해서 시방법계에 가득하신 많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환희에 젖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으로서 고타마 싣다르타가 깨달음을 성취하여 이룩한 불신(佛身)과 시방법계에 자재편만한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수많은 부처님은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귀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 부처님은 누구란 말인가?
결국 ‘부처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곧 한 인간이자 역사적 실존인물로서 샤카족의 성자로 불리던 고타마 싣다르타를 포함하여 오늘날까지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 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도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부처를 부처이게 만든 그 무엇’이 어떠한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부처님이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는 중생들과 가지는 어떤 연관성을 함께 고찰해 볼 때 부처의 의미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역사적인 모습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위에 살다간 인간으로서의 붓다의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봄과 동시에 불교에서 말하는 ‘법(法,dharma)의 의미분석을 통하여 시방법계에 편만한 진리, 즉 법신(진리의 당체)으로서의 붓다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신관(佛身觀)의 전개와 함께 제반 경전상에 드러난 법신의 특성을 정리해보고, 화엄경에서는 법신에 대한 정의, 그 특성과 주처 및 신변에 대해 살펴본 뒤, 법신이 중생들과 맺는 관계성에 대해서도 고찰해 봄으로서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해소해 보고자 한다.
Ⅱ. 본 론
1. 역사상의 붓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 인도 북부의 카필라국에서는 정반왕과 마야왕비를 부모로 하여 고타마싣다르타가 탄생한다. 그는 19세에 아쇼라라 공주와 결혼을 하고 29세에 출가를 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에 성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45년간 설법을 통해 많은 이들을 교화한 후, 80세를 일기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을 맞이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처님의 일대기이다. 고타마 싣다르타라고 불리던 인도의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그가 무상등정각을 이룸과 동시에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된 것이다.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러한 붓다의 일생을 팔상성도라는 8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하기도 한다.
석가모니 붓다 재세시에는 부처와 아라한의 의미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것은 『율장(대품)』(Mahavagga)에서 교진여를 비롯한 5명의 비구가 차례대로 깨달음을 얻자 “이리하여 이 세상에는 6명의 아라한이 있노라.”라고 외친 붓다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대승불교권에 이르러서는 불탑신앙과 불전문학을 통해서 부처님의 공덕과 위대함을 찬탄하게 되면서 아라한과는 다른 부처님의 모습을 상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불신관(佛身觀)을 낳게 되었고, 역사상 실존했던 인간으로서의 붓다가 아니라 초인적이고 신격화된 모습을 지닌 새로운 부처를 탄생케 하였다.
2. ‘法’의 세 가지 의미
법(法, dhama)은 인도 사상일반에서나 불교 자체에서도 많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어근인 √ḍr - ‘유지하다, 지탱하다’에서 파생되어 일반적으로 질서나 법칙, 규범 등을 나타내며 나아가 도덕, 정의, 습관, 습성, 성질, 진실, 최고의 실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법’을 3가지 의미로 나누어 바라보고 있다. 첫째는 아비달마 교학에서 얘기하는 것으로 제정 러시아 말기의 동양학자인 로젠베르크(O. Rosenberg)가 명명한 ‘다르마 이론’에서와 같이 법이 ‘널리 일반적인 사물 및 존재를 의미하는 경우’에서 발전하여 ‘집적되어 존재를 구성하는 바의 요소’로서 일체의 존재 및 사물, 현상의 복잡한 인과적 이합집산에 관여하는 것으로서의 법이다. 또한 이것은 법경(法境)으로서의 법으로도 그 용례가 쓰인다. 둘째는 붓다의 가르침으로서의 법이다. 불법이라던지, 법회, 법요식등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부처님이 남기신 교설을 지칭하는 것이다.
중요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세 번째인데 일반적인 자연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붓다가 깨치신 세상의 진리 그 자체를 뜻하는 법이다. 이 법은 시대나 지역,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성을 지닌 사회규범이나 약속과 같이 인위적인 세속적 법의 관념과는 다른 것으로 시대나 지역, 사람을 초월하여 불변성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법이다. 실제로『잡아함경』에는 “나는 이 ‘법’을 알고 스스로 발견하여 등정각을 이루었다.” 라는 구절을 통해 붓다가 발견한 진리의 길인 팔정도에 대한 묘사와 함께 붓다가 깨달은 법의 성격을 드러내는 내용이 드러나 있다. 또한 붓다가 남긴 마지막 교설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에 나타난 ‘법’도 부처님이 발견하신 진리 그 자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참고로 두 번째와 세 번째 개념은 중복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붓다가 설한 가르침과 진리 그 자체로서의 법은 비록 그 내용은 같을지 모르나 붓다의 교설과 진리 그 자체라는 범주적 차이를 나타내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에 대한 내용은 『잡아함경』의 ‘싱사파 나무에의 비유’를 통해서 잘 나타나 있다.
3. ‘법’(法 - 진리의 당체)으로서의 붓다
『증일아함경』의 한 구절을 찾아보면 법을 “그 법을 보는 것은 곧 나(여래)를 보는 것이고, 그 법이 있음으로 곧 내(여래)가 있다.” 라고 하여 붓다와 법을 동일시하고 있는 구절이 나온다. 또한 이러한 법은 붓다가 깨달은 연기의 진리를 말한다. 연기는 곧 일체 삼라만상의 근본법칙으로서의 진리이며 이러한 진리가 곧 붓다(여래)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대승초기에 이르러서는 불탑신앙과 붓다의 찬탄을 담은 불전문학 등이 발전하면서 붓다에의 동경이 신앙적 측면으로 발전하여 초인적이고 신격화된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결국 눈에 보이는 붓다의 몸인 색신(色身)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모습으로서의 몸인 법신(法身)을 상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법의 세 가지 개념에서 세 번째인 진리 그 자체라는 법의 의미가 좀 더 발전되어 붓다 그 자체를 법(진리)으로 보는 것으로 전개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관념은 『증일아함경』에서 ‘육신은 멸도에 이르렀으나 법신은 존재한다.’는 구절이나, 용수의 『대지도론』에서 ‘불신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법성신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의 몸을 빌려난 것이다.’ 라는 경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색신(色身)과 법신(法身)이라는 이신설(二身說)은 보신(報身)의 개념을 추가한 삼신설(三身說)의 관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4. 법신(法身)의 특성
여러 경론에 나타난 법신불의 특성에 관해서는 이도업 스님의 「華嚴經에 나타난 法身佛思想」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7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여래는 본체다. 여래는 진리의 당체로서 불변성을 지닌 법이라는 것이다.
둘째, 석가모니불의 육신은 멸해서 없어져도 법신은 영원히 상주한다. 이것은 이미 『증일아함경』의 구절과 초기대승불교 흥기시점에서의 붓다의 신격화와 초인화와 관련하여 설명하였다.
셋째, 번뇌가 멸진한 것이 열반이며 열반은 곧 여래의 법신이다. 열반은 번뇌가 사라져 더 이상 번뇌의 속박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아비달마에서는 ‘6因4緣5果’의 교설에서 이계과(離契果)로 표현되고 있다. 즉 모든 번뇌를 불어서 꺼버린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경지 그 자체라는 것이다.
넷째, 여래의 법신에는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의 네 가지 덕이 있으며 이 상락아정의 4바라밀은 정각(正覺)이다.
다섯째, 진여의 지(智)가 법신이며 그것이 여래다. 성문(聲聞), 독각(獨覺)은 여래지를 얻은 해탈신이지 법신은 아니다. 여래법신은 이타의 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진여의 지(智)를 갖춘 여래의 덕성에는 이타적인 공덕이 있다는 것으로 다만 여래의 지혜만을 가진 것은 아라한의 경지일 뿐 진정한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춘 진정한 여래의 법신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여래의 법신은 보살의 십지(十地)가운데 최고의 지위인 법운지(法雲地)에 올라가서야 증득할 수 있으며, 심행(深行)의 보살이나 부처만이 볼 수 있지, 범부, 성문, 연각, 초심보살 등의 사종중생(四種衆生)은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곱째, 법신은 모든 곳에 편만해 있고 모든 중생이 본래로 갖추고 있지만 마음의 미혹한 죄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다.
5. 화엄경에서의 법신
1) 법신불의 뜻과 종류
화엄경에서는 법신과 같은 의미의 용어로 불(佛), 불신(佛身), 여래법신(如來法身), 법신(法身), 노사나불(盧舍那佛)등이 나타나 있다. 법신불이란 “법을 몸으로 하는 붓다”라는 뜻으로 여기서의 법은 진리이다. 이러한 법신불, 즉 진리로서의 붓다는 화엄경에서 비로자나(vairocana : 광명, 태양)불로서 표현되고 있다. 즉 태양빛이 어디에서나 항상 존재하듯이 이 부처님은 어디서나 존재하며 가득 차 있다는 불타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도업 스님의 「華嚴經 思想硏究」에서는 이러한 법신불의 개념을 불타의 깨달음에서 나온 지혜와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대비, 즉 공덕’ 이라 정의하면서 ‘중생태법신(衆生態法身)과 광명태법신(光明態法身)’ (혹은 ‘지혜장법신(智慧藏法身)과 공덕체법신(功德體法身)’)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중생태법신이란 『寶王如來性起品』에서 ‘모든 중생은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만 착각의 망상에 덮여 알지 못한다.’ 라는 구절에서 표현된 중생을 말한다. 즉, 모든 중생은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만 착각의 망상에 전도되어 알지 못하기에 중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혜가 전도망상(顚倒妄想)에 덮여 있고 감추어져 있는 중생이기에 중생태법신이라 이름한 것이다.
반면에 광명태법신이란『노사나불품』,『여래광명각품』,『불부사의법품』,『불소상광명공덕품』등에 나오는 법신불로서 여래의 지혜와 동체대비(同體大悲)가 구족되어 그 신변(神變)과 공덕이 불가사의한 것으로 광명의 형태로 설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다름아닌 ‘비로자나법신불(노사나불)’이라는 것이다.
2) 법신불의 특성과 주처
화엄경에 나타난 법신불의 주처에 관해서는 ‘부사의하여 색상과 형태가 없고 그림자도 없으며’, ‘색신과 음성을 떠나있고 부처의 자재력으로 존재하여 얕은 지혜로는 능히 법신불의 깊은 경계를 알 수가 없고 본업지(本業智)를 성취했을 때만이 알 수 있는 것’ 이라 하였다. 또한 여래는 ‘세상에 나거나 열반한 적이 없으며 대원력을 근본으로 하여 자재력을 현현한다’고 하였고, ‘여래의 광명은 오고가는 곳이 없고 생겨나거나 사라짐도 없어 공적하여 있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법신불의 여래는 ‘법계에 충만하여 널리 일체중생 앞에 널리 나타남과 동시에 인연따라 두루두루 나타나므로 지금 이 보리좌(菩提座)에도 항상 있다.’고 한다.
3) 법신불의 공덕과 신통
앞에서 화엄경에 나타난 법신 비로자나불의 특성과 주처 및 부사의한 점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법신불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성문연각과 같이 지혜만을 갖춘 수용신이 아니라 지혜와 함께 중생을 향한 동체대비의 자비와 복덕을 지닌 존재라고 하였다. 따라서 『화엄경』에서는 ‘시방 세계를 다 다녀도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고 일신을 무량하게 나투기도 하고 무량신을 일신으로 만들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여래의 공덕은 헤아리기 어려워 법신을 본 중생은 번뇌가 소멸하고 더없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솟아난다.’ 라고 하여 단지 진리의 당체로서의 법신이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대원력을 바탕으로 대비자재력을 발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화엄경』<불부사의법품>에는 여래를 보는 자가 얻는 10가지 공덕과보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악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공덕
둘째, 모든 선근을 빨리 기를 수 있는 공덕
셋째, 모든 선근을 빨리 성취할 수 있는 공덕
넷째, 깨끗하고 묘한 천상에 빨리 가서 태어날 수 있는 공덕
다섯째, 모든 의혹을 곧 끊을 수가 있는 공덕
여섯째, 이미 보리심을 낸 자는 불퇴전(不退轉)의 자리를 얻을 수 있고, 아직도 발심하지못한 자는 정등정각심(正等正覺心)을 빨리 낼 수 있는 공덕
일곱째, 생멸을 떠난 성도(聖道)를 얻지 못한 자는 성도를 곧 얻을 수 있는 공덕
여덞째, 청정한 세간의 사람들로 하여금 세간의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공덕
아홉째, 모든 장애를 빨리 없앨 수 있는 공덕
열째, 두려움이 없고 끊이지 않는 변재(辯才)를 얻을 수 있는 공덕
4) 법신불과 창조주 유일신의 차이
법신불의 신변은 걸림이 없으며 자재하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이 세상의 진리로서 만물을 움직이고 변화케하는 법칙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을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교에서 주장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주로서의 여호와신이나 알라신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기신론』에서는 ‘제불여래의 법신은 일체처에 평등하게 두루하여 “작위(作爲)가 없는 고로” 자연(自然)이라 설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한다거나 하겠다는 생각(作爲)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알라신이나 여호와신과 같이 미래를 예언하고 사람을 심판하여 벌을 주거나 상을 주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신불은 독선적이지 않으며 법신불을 보거나 보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중생들의 능력과 근기에 달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결정론적이고 숙명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의 수행과 노력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공용의 법신불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와 같이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인격신으로서의 유일신을 주장하는 입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법신불은 진리의 당체이자 본체로서 시방법계에 변만해 있으면서 각 중생들에게 그 몸을 무량하게 나툴 수 있는 신변을 가짐과 동시에 누구나 자신의 무명과 미혹을 걷어냄으로서 법신불과 계합할 수 있는 것이다.
6. 우리 모두는 곧 붓다
앞에서 지혜장법신(智慧藏法身) 또는 중생태법신(衆生態法身)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는 이미 깨달아 법신을 이룰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미혹과 번뇌에 뒤덮여 우리의 자성에 갖추어진 본래면목으로서의 붓다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화엄경』<보왕여래성기품>에서는 이러한 중생들에 대해 ‘모든 중생은 전도된 망상에 뒤덮혀 있기에 여래의 지혜를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라고 하면서 ‘누구나 착각에서 벗어나 지혜를 발현하기만 하면 중생은 더 이상 중생이 아니라 부처’라고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처란 곧 우리 모두’를 말한다. 여래의 본성을 발현하기만 하면 우리는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아직까지 성취하지 못한 부처들이다.
Ⅲ. 결 론
지금까지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역사적 실존인물로서의 붓다의 모습과 함께 불교에서 규정하는 법(法)의 세 가지 정의를 바탕으로 그러한 붓다의 모습이 신격화, 초인화의 과정을 통해 법신불이라는 불변적 개념으로 발달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화엄경에서 진리의 당체이자 법으로서의 붓다가 다시금 중생제도라는 동체대비적 존재로 발전되어간 모습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재하고 무애한 법신불로서의 붓다는 창조주 유일신을 주장하는 타종교와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그것은 작위(作爲)가 없는 무공용(無功用)의 법신이라는 것이다. 작위나 인격과 같은 유루적인 요소를 떠난 진리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중생들과 상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은 붓다 그 자신은 열반을 통해 다시 진리 그 자체로 돌아갔다. 붓다 이전에도 존재했고 붓다가 입멸한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진리로서의 법이라는 눈으로 볼 때 붓다는 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요,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진리라는 큰 법의 흐름에서 중생들 각자가 부처임을 자각케 하고 다시금 진리가 된 것이다. 진리가 된 붓다는 우리 모두가 미혹과 번뇌를 떨쳐버리고 법신의 당체로 계합케 하기위해 광명을 나투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라는 역사적 인물의 탄생 이전에도 우리는 부처였으며, 그의 입멸 이후에도 부처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여래의 법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불성의 씨앗을 갖추고 있다. 언젠가 자성불의 법신을 가리고 있던 번뇌와 미혹의 그림자를 떨쳐낼 때, 자재하고 무공용하며 제법실상의 이치이자 우주법계의 질서라할 수 있는 법신불로서의 붓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부처란 역사상의 석가모니 붓다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에 편만한 동체대비적 진리의 당체이며, 우리 모두가 지닌 법신불로서의 가능성이 실현된 깨달음의 경지 그 모두를 통칭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인용경전류 (인용순서에 따른 배열임)
『잡아함경』(대정장 2, p.80 중, p.718 상)
『증일아함경』권20 (대정장 2, p.652 하)
『증일아함경』(대정장 2, p.787 중)
『대지도론』(대정장 1, p.15 중)
『화엄경』<世界成就品> (대정장 10, p.37 하)
『화엄경』(대정장 9, p.485 하)
『화엄경』<菩薩雲集讚佛品> (대정장 9, p.485 하)
『화엄경』(대정장 9, p.646 중)
『화엄경』(대정장 10, p.30 중)
『화엄경』(대정장 9, 464 상)
『화엄경』(대정장 9, p.397 하)
『기신론』(대정장 32, p.581 하)
『화엄경』<寶王如來性起品> (대정장 9, p.623 하)
2. 논문류
「華嚴經 思想硏究」(이도업 著, 민족사, 1998)
「華嚴經에 나타난 法身佛思想」(이도업, 1993) (「불교학보」불교문화연구원, Vol.30, No.1 [1993])
3. 단행본류
「불타 석가모니」(와타나베 쇼오꼬 지음, 법정 옮김, 동쪽나라, 2002)
「붓다」(폴커 초츠 지음, 김경연 옮김, 한길사, 1997)
「붓다, 그 삶과 사상」(나까무라 하지메 지음, 이미령 옮김, 무우수, 2002)
「인도불교의 역사 上」(히라카와 아키라 지음, 이호근 옮김, 민족사, 1989)
「아비달마의 철학」(우에야마 슌페이 지음, 정호영 옮김, 민족사, 1989)
「화엄의 세계」 (해주스님 지음, 민족사, 1998)
「다시보는 화엄경」(대안스님 지음, 혜성출판사, 2000)
「현대인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안양규 지음, 여시아문, 2005)
「불교교리」(조계종출판부, 1998)
「화엄경을 읽는다」(기무라 키요타카 지음, 김천학, 김경남 옮김, 불교시대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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