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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교, 한국불교 제 종단의 공동 참여로 거듭나야
말씀 : 이협우 월명종민 스님(예비역군승, 통영 미륵도 용궁사 주지)
구세대비주 석가세존과 모든 불법승 삼보님께 지심 귀의하옵고.
먼저,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호하심과 평강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존경하는 종단 지도자 여러분! 불교를 믿고 삶 속에 실천하며 나라 지키기에 힘쓰시는 군불자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불교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예비역 군승으로서, 현재 통영 미륵도 용궁사 주지 직분을 담당하며 지역 포교에 힘쓰고 있는 이협우 월명종민 이라고 합니다.
1. 제가 이 글을 여러분께 올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는 비록 전역하였지만 군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현역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신념을 갖는 까닭은 한국의 내일을 짊어질 건강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게 되어 있는 군대에, 또한 미래의 가장이 될 청년군인들의 가슴에 불심을 심고 그들을 돌보는 일이 그 어떤 수행보다도 더 훌륭한 수행이고, 그 어떤 보살행보다도 더 거룩한 보살행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불교의 발전이 작게는 불교 발전에, 크게는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발전에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굳이 이와 같이 군불교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께서는 이 점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종단 현실을 돌아보면 군포교에 대해 실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대책마련을 강구하는 종단 지도자와 불교인을 많이 만날 수 없었고, 그저 군불교를 산하기관으로 둠으로써 종단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여기는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종단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고 여기는 답답한 풍토임을 저 자신 절실히 느끼는 바이기에, 군불교를 사랑하고 군불교에 몸 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다소 내용이 미흡하고 정리가 덜 되어 산만하지만, 시점을 더 늦출 수는 없기에 "부처님이시여, 장차 우리 군불교가 이렇게 변화되어 위대한 새 시대를 맞게 하시고, 불교 번영을 통한 민족의 번영을 이루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저의 이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러한 취지만은 십분 이해하시어, 너그러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 주실 것을 청하는 바입니다.
2. 군불교는 한국불교 제 종단이 공동 참여함이 마땅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군불교의 발전과 번영은 곧 한국불교의 사활이 걸린 절실한 문제임과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앞날에도 직절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군불교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과 함께, 「군불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가」라는 주제를 시종일관 염두에 두면서, 다 함께 군불교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는 우리 군불교가 처한 지금의 현실에서, 군불교의 발전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코파이 공급? 군법당 하나 더 짓는 것? 물론 그것도 시급하고 중요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지금 우리 군불교에 있어 이보다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란 무엇일까요? 이를 지금 간단히 언급하기보다, 말씀을 진행해가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 중요한 문제를 찾아봄과 더불어 그에 대한 대안까지 함께 마련해 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육해공군 불교 군종장교(군승)로 구성된 35년 역사와 전통의 「군승단」은 지난 2006년도에 조계종의 군종특별교구가 되었습니다. 군승단이 조계종 군종교구가 되면 자동적으로 군승단의 신앙지도를 받는 군신도단체 역시 조계종 신도단체가 될 수밖에 없기에, 지난 2000년 2월 25일 참으로 어렵게 출범하였던 전군차원의「국군불교신도회」역시 조계종 산하 신도단체로 편입됨으로써, 군불교의 두 축인 군승단과 국군불교총신도회를 사실상 조계종이 점유하게 되었습니다.
군승단과 국군불교총신도회를 사실상 조계종이 점유하자, 불교인들 가운데는 다행스럽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고,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발전적으로, 혹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상 조계종이 군불교를 독식 독점하게 된 이 역사적 사건은 조계종으로서는 더 할 수 없는 경사겠지만, 군불교는 물론 전체 종단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러하냐 하면, 군불교를 사실상 조계종이 독점함으로써 군불교를 향한 전체 불교 종단의 애정과 지원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안게 되었다는 점, 조계종 이외의 여타 불교 종단들로서는 독자적인 군승 파송을 추진할 필요성을 안게 됨에 따라 조계종과 여타 불교 종단들 간에 화합보다는 경쟁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었다는 점 등등이 그 이유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에서 살펴보아도, 군불교의 조계종 예속화는 발전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많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불교계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지난 군불교의 역사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기독교(개신교+천주교) 외도들은 6.25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하여 이미 57년 전부터 군종을 선점하고 있었지만, 우리 군불교는 지난 70년대 월남전 파병을 기점으로 겨우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냥 순조로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이미 군종을 선점하고 있던 이른바 외도들이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우리 불교의 군종참여 진입을 공공연히 방해하던 가운데 참으로 피나는 노력 끝에, 각계 요로에 탄원을 해가면서 때로 분노했고 때로 절망해가면서 전체 불교도들이 합심 노력한 끝에 겨우 철벽같은 저 외도들의 반대의 장벽을 뚫고서 성취한 기념비적인 불사가 바로 '한국불교 공동의 군불교' 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한국불교 공동의 군불교(군승단, 국군불교총신도회)를 조계종단이 느닷없이 조계종만의 소유물로 독점 독식 점령(?)함으로써 군불교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말았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러한 조계종이, 지금에 와서는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같은 불교 종단들이 군승단을 조계종 예속의 군종교구로 만든 것에 자극을 받아, 별도로 군종에 참여하겠다는 것까지 조계종이 반대를 하고 있으니, 외도들도 아닌 같은 불교 종단이, 그것도 저들의 패권주의적 행태와 꼭 닮은 모습으로 군불교를 독점 독식하려고 기도하고 있으니, 이는 지난날의 불교 군종참여 진입을 방해하던 저 기독교 외도들의 모습과 지금의 조계종이 무엇이 다르냐는 것입니다. 조계종단의 이러한 처사에 뜻이 같은 분들은 어디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국군장병의 가슴에 불심을 심고, 호국의 당간지주를 높이 세우는 이 거룩한 사명을 어찌하여 외롭고 힘들게(?) 조계종만이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백번 양보해도, 이는 결단코 옳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부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요,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인 줄을 우리 모두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왜 군불교는 한국불교 제 종단이 공동 참여하여야 하는가?
이제 저와 여러분은 우리 군불교를 어째서 조계종 단독이 아닌,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속한 모든 불교 종단들이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다 같이 연합하고 총화하여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영광스런 공동의 짐이요, 공동의 사명이어야만 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셨을 줄 믿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신다는 분을 위해, 잠시 군불교의 특성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군불교 안의 군불자들은 조계종만이 아닌, 전체 불교 종단의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군불교 안에는 장성, 장교, 부사관, 병사 그리고 군인가족 등 여러 유형의 불자들이 군사찰에 등록하고 일요법회와 재일법회 등 각종 법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에 힘씁니다. 그런데 그 모든 군불자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조계종 소속의 불자냐 하는 것입니다. 군불자 가운데는 분명히 조계종 신자도 있지만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그밖에도 다양한 여러 불교종단의 신자로 형성되어 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한국불교의 이러한 다양한 제종단 소속의 국민불자의 아들딸들이 군불교 신자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군불교를 조계종 군종특별교구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집어삼켜 점유한 것은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이것은 부처님 법에도 어긋나는 일이거니와, 믿음의 자유 곧 신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헌법정신에도 분명히 위배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여러분께서는 이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십니까?
2) 군 장병불자들의 신앙공간인 군사찰(군법당) 역시 조계종만이 아닌, 여러 불교 종단과 다양한 신도단체의 공동 지원 속에 창건되었기 때문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군 안에는 360개 정도의 군사찰(군법당)이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군사찰(군법당)들은 군불교가 시작되었던 초기부터 군승단이 조계종 군종특별교구가 되기 이전까지, 군승들과 군불자들의 각고의 노력과 화주, 그리고 불교진흥원과 각기업을 비롯한 여러 불교단체들과 신도들, 조계종을 비롯한 태고종 천태종 등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의 여러 불교 종단들의 공동 참여와 공동 노력과 공동 희사로 건축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 국가에 기부체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 건립되어 국가에 기부체납한 군사찰(군법당)들이 어째서 조계종 군종교구 사찰로 예속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 군승단의 구성원 가운데는 「독신의 비구승」도 있고 「결혼한 보살승」도 있기에, 이 분들 가운데는 독신 비구승 종단인 조계종과 일치 또는 불일치하는 문제로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경우도 혼란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나온 김에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꼭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점은, 군승들의 일부 몇 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결혼한 보살법사인데, 이른바 독신비구승 종단인 조계종으로서 결혼한 군승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데 대하여 조계종은 종단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친미주의자요 기독교인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불교계를 정화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유시라는 걸 3번에 걸쳐 발표했습니다. 그가 유시를 발표한 배경의 이면에는, 해방 직후 대부분의 국민과 지식인들이 불교를 믿고 있어 불교를 와해시키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남반부를 사실상 점유한 미국의 종교, 곧 개신교를 쉬 전파할 수 없다고 보고, 정교분리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른바 [대통령 유시(喩示)] --- 유시란 지혜로운 이가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喩) 교시(示)한다는 뜻인데, 대통령 이승만은 그렇게 지혜롭고 그 유시를 귀담아들어야 하는 국민 내지 불교인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들이란 말입니까? 유시란 용어 자체가 이미 어폐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여간 그러한 유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잠시 유시에 대한 의미와 그로 인한 결과를 알아봅시다.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소승적 비구승도 있고 대승적 보살승도 있어 왔습니다. 대승적 보살승, 즉 이른바 대처승은 일제시대의 왜색불교의 잔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석존을 포함한 과거 7불에게 모두 부인과 아들이 있다는 아함경의 기록을 통해서나, 팔만대장경의 대부분을 번역한 구마라습 삼장법사와 지겸법사도 결혼하였다는 사실에서, 신라의 원효대사의 경우는 다 아는 일이고, 근세 한국불교 중흥조로 추앙받는 경허선사의 경우도 말년에는 함경도 삼수갑산에서 스스로 바라문이라 칭하며 부인을 얻어 함께 살면서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열반에 들었고, 시인이요 독립지사인 만해 한용운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님들이 결혼하였으니 대승적 보살승(대처승)의 역사적 연원은 수천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있어온 우리 불교계의 부정할 수 없는 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 군정을 이어받은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그는 교회 집사 직분을 받은 분으로서, 불교신자인 정실부인을 버리고 개신교를 믿는 외국 여성과 재혼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 군정의 의도대로 기독탄신일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우리 불교가 수천년전부터 석가탄신일과 더불어 4월 8일, 곧 부처님 오신 날을 표기하는 또 하나의 명칭이었던 성탄절(4월8일)이란 용어를 그들의 크리스마스를 지칭하는 날로 발표하면서 국가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무슨 불교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다고 대통령 유시라는 초헌법적 발언을 통해 불교 정화를 부촉하였을까요? 그가 유시를 발표한 것은, 불교 분규를 유도하여 소승적 비구승(독신승)과 대승적 보살승(대처승)이 서로 갈등하고 쟁투하도록 해서 민족 전통종교인 우리 불교계가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도록 조장하고자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실제로 그 많던 불교의 동산 부동산이 분규의 와중에 법원 재판 비용으로 승소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국유화 정치자금화 하였고, 일제로부터 해방직후에 있었던 총10,000명의 스님들 가운데 500명은 소승적 비구승(독신승)이었고 대부분에 해당하는 9,500명 정도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신지식인으로서의 대승적 보살승(대처승)이었는데, 이승만에 의한 분규로 이 지식인 스님들이 불교 종단에서 서지 못하게 됨으로써 불교계로서는 소중한 인적자원의 손실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분규가 시작되는 그 당시로부터 1990년대 조계사 사태에 이르기까지 근 50년이 넘도록 계속된 불교 쟁투가 끝없이 전개되자, 이를 지켜보던 불교 믿는 많은 국민들이 크게 실망하고 염증을 느껴 상당수의 불자들이 기독교(개신교+천주교)로 개종하는 사태가 줄을 잇게 되었으니, 초대 대통령 이승만 집사의 이른바 대통령 유시는, 전통적으로 외유내불(外儒內佛 : 겉으로는 유교를 신봉하면서, 안으로는 불심을 가짐)의 우리나라 국민의 불심을 짓밟아버린 참으로 간교하고 더러운 망동의 유시였고, 우리 한국을 기독교 국가화 하는 술책의 유시였음이 자명하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화합과 근본을 망치도록 만든 장본인이 이승만이었고 그 촉발이 바로 3번에 걸친 대통령 유시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조계종단은 이를 대단히 미화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정화가 아니라 불교 분규요 법난이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증거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여간 그런 그분이 우리 불교에 대하여 참으로 지극한 애정(?)을 갖고 "대처승은 중이 아니니 물러가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그의 말대로 소승적 비구승과는 달리 대승적 보살승인 이른바 대처승이 중이 아니라서 절에서 물러가야 한다면, 기독교 집사로서 우리 불교에 대해서보다 기독교에 대하여 더 큰 애정을 가졌으리라고 판단되는데, 그러한 그가 어째서 기독교계에 대해서는 우리 불교계를 향해 발표했던 그 같은 유시를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른바 종교개혁을 통해 천주교와 길을 달리한 개신교의 성직자인 결혼한 목사들을 향해, 우리 불교계를 향해 했던 것처럼 "당신들 목사는 신부가 아니므로 교회에서 물러가야 한다"고 똑같은 유시를 발표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집사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이승만 집사가 기독교에 대해서는 전혀 애정(?)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기독교인 이승만 집사는 어째서 유독 우리 불교계에 대해서만 그렇게도 애정(?)이 깊었을까요? 그는 과연 왜 그리했을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는 그 연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니고, 불교계에 분규가 발생할 때까지 3번에 걸쳐 그런 유시를 발표했던 그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 국가에서 대통령이, '스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분입니까? 이것은 대통령이 판단하고 간섭할 문제가 아니요, 그 종교 내부에서 결정하고 판단할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초대 대통령 이승만 집사가 굳이 유시를 3번에 걸쳐 발표했던 것은 불교 내부 싸움을 붙여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도록 유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로 민족종교인 불교를 와해시키지 않고서는 대다수 우리 국민의 가슴에 자리한 불심을 지워낼 방법이 없고, 우리 국민의 가슴에 담긴 불심을 지워내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반도 남반부를 점유한 미국의 종교 기독교를 심을 수 없다고 이승만 집사는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발표를 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불행하게도 우리 불교계는 그 검은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비구승(독승) 보살승(대처승) 간의 쟁투가 벌어졌고, 그리하여 인적 물적 그리고 국민적 신앙기반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토록 탄탄한 우리 불교계의 기반이 이승만의 3번에 걸친 말 한마디로 박살이 났고, 우리 불교계의 쟁투와 붕괴 위에 오늘의 기독교 성장이 자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원통하고 안타깝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한국불교의 슬픈 현대사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의 인적 물적 고도성장은 스스로 선교를 잘한 덕도 있지만 우리 불교계가, 이승만 집사에 의해 유도된 와해프로그램에 의하여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어온 데도 큰 덕을 보았던 것이 분명한 만큼, 진실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집사는 일제의 왜색불교를 청산을 한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기반을 무너뜨림으로써 불교 청산을 통한 기독교 국가화를 노렸던 것입니다.
이왕 말씀이 나온 김에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말씀은, 요즘 목사와 신부 등 외도들이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많이들 진출하여 국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건국초기에는 우리 불교계의 인적자원이 매우 풍부하고 출중하여, 이승만 정권 당시 국회의원을 지낸 최범술 스님, 법무부장관을 지낸 최법린 스님, 문교부장관을 지낸 백성욱 스님 등 수많은 불교인들이 국사에 참여했고, 한국의 미래를 위해 불교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때는 종단에서 교육기관도 많이 세워서 경기대학 마산대학 동국대학 등 여러 대학이 있었고 중고교도 전국에 산재했으며 병의원도 많았고, 심지어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신인 광주고속 그 광주고속의 전신이었던 ‘전라여객’조차도 우리 불교기업이었습니다.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면 이 땅은 지금 불국토가 되고도 남았지 않았을까요?
요즘 우리 불교인 청년들이 취직하려고 원서를 내면 '독실한 기독인이어야 함'이라는 회사 방침에 좌절한다고 하는데,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고요. 참으로 애통하고 또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정관계에 진출한 스님들은 물론이고, 그 당시 이름이 높았던 불교계의 대학자 김동화 스님, 문인인 조지훈 스님, 이광수 스님, 서정주 스님 등 수많은 지식인 승려(대처승)들 역시 대통령 유시로 촉발된 불교 와해프로그램에 의해 모두 종단에서 사회로 내쫓김을 받았으니, 불교 종단은 일시 지식인 승려가 사라지는 공백을 맞아, 불교가 운영하는 대학 병의원 기업 가운데 동국대학교 하나만 남기고 대부분 일반 사회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식인 보살승(대처승)이 내쫓김을 받자 그 자리를 채울 경영능력이 비구승 종단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청담 스님 등 소위 비구승 측이 대처승 쫓아내는 데 세가 불리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특별 기동타격대로 이기붕 부통령이 정치적 후견인으로서 관리하고 있던 종로깡패들을 모두 비구승 측에 불러들임에 따라 불교 쟁투 현장마다 폭력은 극에 달하였고, 이에 따라 시작된 폭력승들이 그 후 불교계를 떠나지 않고 큰스님 노릇하면서 설쳐대는 무참한 지경에 떨어져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집사의 유시에 의해 작동되었던 불교와해프로그램의 실체요, 실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숨은 의도를 숨긴 채, 초대 대통령 이승만 집사는 불교계를 향해 무려 3번에 걸쳐 유시를 발표했고, 이로 말미암아 대처승(보살)과 독신승(비구) 간의 분규를 일어났고,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소위 비구승 종단인 오늘의 조계종인데, 이러한 비구승 종단인 조계종이 대처승 쫓아낼 때는 무슨 명분으로 그랬고 지금 군승단 안의 대부분의 결혼한 군승들은 또 무슨 명분으로 아우르고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구승 종단에 결혼한 법사를 존치한다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부조화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단 말씀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군이라는 특수상황에서 포교하는 분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인정한다 합시다. 그렇다면 그러한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활동하였거나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다수의 결혼한 군승들, 그들이 전역한 이후에도 과연 현직에 상응하는 승직을 조계종이 하여 왔는지,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반 스님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군포교의 최전선에서 실로 혼신을 다하여 엄청난 포교의 공적을 쌓았음에도, 그 분들이 막상 전역한 후에는 거두지도 보살피지도 않은 채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으면서 방치하고 내치고 있는 것이, 솔직한 조계종의 처사가 아닙니까? 군승들이 요즘 흔히 말하는 무슨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니고…….
전역한 군승들에 대한 대우를 이렇게 하면서도, 어찌하여 이런 부자연스러운 군종특별교구를 조계종이 독점 유지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지금 현역으로 봉직하는 군승 가운데 결혼한 보살법사들은 전역이후를 고민만 하지 말고 군종교구장을 만날 때, 총무원장님을 친견할 때, 조계종에서 군종특별교구로 하여 자신들을 수용하였으니, 전역 이후에도 지금처럼 승직을 보장하여 줄 것인지, 그리고 일반 사찰의 주지에 임명할 것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예상컨대, 비구승 종단인 조계종에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답변을 해오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군불교는 비구승과 보살승이 모두 함께 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공유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주장처럼, 한국불교 제 종단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군승단이 되게 되면, 조계종은 독신 비구법사를 파송하고, 결혼을 허용하는 종단에서는 취처한 보살법사를 파송하여, 이 분들이 전역한 이후에도 각각 소속 종단으로 복귀하게 한다면 군승들은 모두 현역에서나 전역한 이후에도 정체성이 확실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애써 육성한 한국불교의 소중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사장하는 일 없이 모두 활용할 수 있으니, 이 때문에라도 군불교는 반드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모든 불교 종단이 공동 참여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4. 그러면 불교종단협의회는 군불교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군종장교 파송에 하자가 없는 준비된 불교 종단들은 모두 군승을 파송하도록 하고, 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연합하고 가호하고 지원하는 「공동의 군승단」「공동의 국군불교총신도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우리 옛 속담을 기억할 것입니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초목이 한 데 어우러져 살기 때문이요,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온갖 어류가 조화를 이루며 살기 때문이 아닙니까? 조계종만이 외롭고 힘들게(?) 혼자서 참여하고 있는 군불교, 조계종만이 혼자서 독점 독식하는 군불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활발한 군포교를 위해, 국가수호에 헌신하고 있는 장병들을 위해, 나아가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발전을 위해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조계종이 군불교의 문호를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군종 참여를 희망하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모든 불교 종단들에게 과감히 열어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강들이 바다에 흘러 하나가 되듯이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종단 구분에 주저앉지 말고 군종 참여를 희망하는 한국불교협의회 소속의 모든 불교 종단들, 특히 군종장교 파송에 하자가 없는 준비된 불교 종단들은 빠짐없이 참여하여 연합하고 지원하고 가호하는 공동의 군승단, 공동의 국군불교총신도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한국불교가, 한국의 모든 불교 종단들이, 가진 역량을 총집결하여 군인불자들의 가슴에 불심을 심는 희망의 군불교, 호국불교의 참 모습을 유감없이 구현해가는 군불교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러한 군불교를 가꾸어감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의 시대를 앞장서서 개척해 나가는 슬기로운 우리 불교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마치 점령군이 식민지를 경영하듯이 조계종이 군승단을 군종특별교구로 개편하여 군불교(군승단+국군불교총신도회)를 느닷없이 조계종만의 소유물로 독점하고 독식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면서, 우리 전체 불교 종단의 총화와 단결,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군불교의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자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2)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산하의 공동의 군불교(군승단+국군불교총신도회)를 가꾸려면 타종교 제도 가운데 어느 것을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인가?
생각건대, 조계종이 군승단을 군종특별교구로 점유한 것이, 천주교라는 종교가 개신교 군목단과는 별도의 군종교구를 만든 것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발상 자체가 문제인 줄을 조계종단은 물론, 저와 여러분 역시 동시에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곧 천주교와 개신교는 종교개혁이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서로 합치할 수 없는 두 종교로 오래 전 이미 길을 달리하여 왔기 때문에, 그들은 군종에서도 독립된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 불교는 조계종이든 태고종이든 천태종이든 진각종이든 그 밖의 어떤 불교 종단이든 모두 ‘한국불교종단협의회’라는 기구 속에 일치를 이루고 있는 단일 종교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불교 군종은 천주교 군종교구를 모델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불교 종단들이 참여하여 장차 군승단과 국군불교총신도회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어떻게 일치를 이룰 것인지, 그에 대한 모델이 무엇이냐고 여러분은 저에게 반문하서야 할 차례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에 대하여 해법을 개신교의 군목단과 기독군인연합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면, 여러 교단을 이루고 있는 개신교의 경우 저마다 자기 교단 이름으로 군목을 파송하여 하나의 군목단을 이루고, 그 모든 교파들의 군인신자로 하나의 기독군인연합회를 형성하면서, 군을 위해 군인을 위해 선교와 봉사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누히 말씀드렸고 또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다시피, 우리 모든 불교 종단들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를 통해 일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 불교 종단들은, 특히 군종을 독점하고 있는 조계종은, 두 종교로 갈라선 천주교와 개신교 가운데 천주교의 군종제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여러 교파를 이루고 있음에도 하나로 일치하면서 연합하고 있는 개신교의 군종제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군불교의 군승단과 국군불교총신도회는 천주교 제도를 모델로 삼아서는 아니 되고, 개신교의 군목단을 모델로 하여, 우리 불교 역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의 제종단들이 모두 참여하여 저마다 소속 종단 이름의 군승을 파송하고, 소속 종단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조화와 협력 속에 활발한 군종활동을 하는 공동의 군불교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군승단 뿐만 아니라, 그에 의하여 지도되고 육성되는 국군불교총신도회 역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가호하고 지원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마땅한 모습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4) 그래도 염려가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만에 하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의 여러 종단들이 참여함으로써 군내의 군종활동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염려된다면, 진실로 그런 문제 때문에 조계종이 다른 불교 종단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이라면, 다양성 속의 통일성(一卽多, 多卽一)을 추구하는 불교의 위대한 정신을 발휘하여 「군승들의 의제(가사장삼과 각종 규례)와 군사찰운영지침 및 법회의례 등」이른바 제도와 그 시행에 관한 부분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통일규범을 만들어 시행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것입니다.
조계종이, 그러한 사소한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 가능함에도, 그런 문제점을 핑계로 삼아 다른 불교 종단의 군종 진입을 조계종이 거부한다면 이것은 분명 명분 없는 반대요, 부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이며, 민족 화합에 역행하는 일이라,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총화요, 협력이요, 지원이요, 불교 번영과 국가 민족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안을 제시한다면, 각 종단별 책임자들께서는 소속 종단의 불교대학에 능력 있는 예비역 군승들을 교수진으로 발탁하여, 군종장교로 임관하기를 희망하는 학생(후보생)들에게 통일성 있는 군종활동이 가능하도록 통일된 교범을 마련하고 가르쳐 차이점보다 일치점이 훨씬 많도록 불교 역량을 결집해나간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실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한국불교가 군불교를 위해 이렇게 협조하고 협력할 때 화엄경에서 말하는 총화(總和)를 이룰 수 있고, 나아가 민족 대화합(大和合)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존경하는 한국불교 종단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군불교 관계자 여러분! 오늘 저의 말씀의 결론은 다음 5가지입니다.
1) 오늘날 우리 군불교를 조계종만이 독식하는 지금의 모습은 외롭고 험한 ‘비포장 오솔길’이 분명하기에, 이러한 비포장 오솔길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발전의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위대한 군불교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그러기 위해서는 군승단이 지금처럼 조계종 소속 군종특별교구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반드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군승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현역 군승 가운데 소수의 독신 비구법사와 다수의 결혼한 보살법사들이 조계종단과 신분적 일치 또는 불일치 속에서 겪는 정체정의 문제는 물론, 전역 이후의 종단복귀, 포교역량 및 경력환산, 종단적 인재 육성 및 손실 등을 따져볼 때도 마땅히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의 제종단들이 공동 참여하는 군불교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4) 국군불교총신도회 역시 조계종 소속의 신도단체가 아닌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제종단들이 모두 지원하고 가호하고 응원하는 군불교, 그런 국군불교총신도회로 가꾸어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막강한 위력을 갖는 군불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5) 각기 출신 종단이 다르고 의제와 교리 및 법회의례가 다른 데서 오는 문제점은 한국불교종단협읠회 차원에서 통일된 의제와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면 되고, 필요시 능력 있는 예비역 군승들을 해당 불교대학(군승 후보생 교육기관)에 교수진으로 투입하여 차이보다는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미리 확실한 교육을 시켜 파송하여 임관토록 하면 아무 문제가 있을 수 없고, 이것이 바로 화합이요 총화요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이루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존경하옵는 각 종단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군불교 관계자 여러분!
진정으로 군불교가 이렇게 될 때 군승단과 국군불교총신도회는 지금보다도 훨씬 월등한 공급과 지원 속에 장병들의 가슴에 불심을 심을 수 있고 호국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꿈의 대작불사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또한 이 대작불사의 성취로 나라와 민족이 하루속히 통일된 번영의 선진강국으로 도약하기를 우리 자비하신 부처님 전에 엎드려 축원 올리며,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