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전주=국제뉴스) 신홍관 기자 = 자음카드한글학습법을 창안해 장애학생들의 한글 학습에 큰 도움을 준 김영생 교장. (사진=인터넷카페) |
(전주=국제뉴스) 신홍관 기자 = 지적장애아를 위한 혁신적 한글학습법 교육을 펼친 교장이 반대측 요구로 강등된 후 소청에 의해 구제됐지만 정작 벗지 못한 정직처분에 대해 진정한 명예회복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2012년 1월 전북 정읍 A초등학교에 재직하던 김영생 교장은 당시 도교육청 인사 공문을 전달받고 직위해제 돼 도 교육연구정보원 대기발령에 이어 2주 후 교감 강등 처분의 중징계를 당했다. 이후 김 교장의 짧지 않은 투쟁이 시작된다. 교육과학부 소청을 포함 항소에 이어 대법원 상고까지 가는 행정소송의 법정 투쟁을 벌여 최후의 멍에를 벗게 됐다. 대법원에서 지난 2월17일 정직처분 취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대법 판결을 두고 전북교육청은 다시 조만간 징계위를 소집할 예정이어서 징계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김 교장이 이렇게 진정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6단계에 걸친 소송 투쟁에 2년3개월간 10여회의 법정 출석 등 외로운 투쟁의 값진 결과다. 김 교장은 오래 전 특수아동의 교육을 위해 '자음카드한글학습법'을 창안했다. 김 교장이 스스로 터득한 교육방법이다. 1500자 한글로 5개월 기간을 정해 학습을 시키면 500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장애아들이 한글을 배우기 위해 김 교장 학교로 몰려들었다. 2007년 김 교장이 부임한 S초등학교는 당시 폐교가 결정된 상태였지만 김 교장에게 교육을 받으려고 전학 온 100여명의 학생들 덕분에 폐교를 면하기도 했다. | | | ▲ (전주=국제뉴스) 신홍관 기자 = 자음카드한글학습법을 창안해 장애학생들의 한글 학습에 큰 도움을 준 김영생 교장이 학부모들의 부축을 받는 장애아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인터넷카페) |
그러나 이들을 가르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학교 숙직실에서 이들을 교육하는 일도 벌여졌다. 하지만 정기인사때 타 학교로 전근되면서 김 교장의 교육을 중지할 수 없었던 학생들이 뒤따라 전학을 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들 학부모들이 장애아와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을 거부하며 등교 거부 등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하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듬해 일방적으로 직위해제된 것이다. 그래서 내려진 결정이 교장 전보조치였지만 한글교육이 절실했던 장애우와 학부모들은 이를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장애아 학부모를 포함한 300여명이 김 교장을 구명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고, 이에 용기를 낸 김 교장도 불합리하게 전개된 일련의 사태와 자신이 해온 특수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부에 소청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중징계는 면했지만 김 교장의 가슴에는 완전한 명예회복이란 숙제를 남기게 했다. 2012년 9월 무주 모 초등학교로 복직한 김 교장은 정직처분의 부당성에 대한 투쟁을 계속해야만 했다. 김 교장은 교장 복직 전 같은 해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 당했고, 이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6개월 후 고법에 항소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김 교장의 투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7개월 뒤인 2013년 8월 위헌법률심판제청제정신청에서도 기각 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교육방법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인 대법에 상고하기 이른다. 지난해 11월 이 때만해도 기대를 걸지 않았다. 장애아를 위한 자신만의 학습법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교육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상고한지 3개월째인 지난 2월27일자 승소 판결서를 받아든 김 교장의 가슴은 만감이 교차했다. 전보조치와 직위해제에 이어 강등 처분과 법정 투쟁속에서 종전의 보통 수업으로 되돌아간 강순이(가명)가 자음한글 학습법을 잃어버려 애타는 생각만 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기발한 장애아 학습 창안으로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으면서 이를 두고 보지 못한 비장애아 학부모의 반발로 시작된 일선 학교 교장의 '슬픈투쟁'의 대가는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할지? 이를 보다못한 교총이 고등법원 항소에서부터 변호사 선임비용을 지원해 준 것이 그나마 큰 보탬이 됐다. 김 교장은 오는 8월말로 41년간 머물렀던 교단을 내려온다. 김 교장은 "평생 문맹으로 살 수도 있는 장애우들에게 맞춤형 교육으로 새 삶의 희망을 주었는데, 교육당국이 이런 교육을 외면하고 오히려 이기적인 님비성 민원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