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10년 3월 20-21일 (토요무박)- 자유인산악회
* 위 치 : 경상북도 문경시 & 충청북도 괴산군
* 코 스 : 하늘재,520m-탄항산,856m-평천재,765m-부봉삼거리,845m-동암문,730m-
북암문-마패봉,927m-조령제3관문,642m-깃대봉갈림길-신선암릉구간-
신선암봉,937m-조령산,1,026m-조령샘-이화령,550m
23 : 20 : 서초구청 출발 ( 20일 -토요일)
03 : 12 : 하늘재 들머리
04 : 13 : 탄항산
04 : 36 : 평천재
05 : 22 : 부봉삼거리
05 : 40 : 동암문
06 : 32 : 북암문
07 : 01 : 마패봉(마역봉)
07 : 30 : 조령(조령제3관문)
08 : 30 : 조식후 출발
09 : 12 : 깃대봉갈림길
11 : 27 : 신선암봉
12 : 53 : 조령산
13 : 44 : 조령샘
14 : 25 : 이화령
하늘재
탄항산 1.82km
부봉갈림길 1.75km
동암문 1.5km
마패봉 3.41km
조령 0.91km
깃대봉갈림길 1.0km
조령산 5.1km
조령샘 0.75km
이화령 2.12km
총마루금 : 18.36km / 11시간 13분
* 鳥嶺山 , 1,025 m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북과 경북에 걸쳐있는
이화령과 조령제3관문 사이에 명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기암괴봉의 암릉지대가 신선암봉까지 이어지며 老松과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화령(큰새재)에는 휴게소와 대형주차장이 있으며 북쪽 구새재에는 조령 제3관문이 있으며
관문 서쪽에는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용송골,절골,심긱돌등 아름다운 계곡이 있으며 문경새재를 안고
있는 조령산은 山보다 재 (嶺)로 더 이름이 나 있다.
* 깃대봉 , 821.5 m
백두대간을 따라 이화령에서 조령쪽으로 조령산을 종주하면 마지막으로 오르는 봉우리로서
지도상에 이름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옛날 측량용 깃대가 꽂혔다고 붙은 이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에서는 약간 비켜나 있으며 20분 정도면 조령으로 떨어질 수 있다.
* 鳥嶺(조령제3관문), 643m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높이가 643m 로 이화령으로부터 북쪽으로 7km지점인 조령산(1,017m ),신선암봉(967m),
마패봉(마역봉)의 안부에 위치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만큼 험하다하여 새재, 문경새재라고도 불리운다.
영남지방에서 소백산을 넘어 서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로 조선시대의 주요 교통로였다. 고개를 따라 조령펀이 남류하며 동,서 사면은 절벽을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죽령과 鷄立嶺을 이용했으나 조선초 태종때 새로 조령을 개척하였다 한다.
산꼴짜기의 기슭을 돌아 오르게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지로 임진왜란 이후인 1594년(선조 27년)에 조령제2관문인 中城을 설치했다.
그후 1708년(숙종34년)에 중성을 중건하고 草谷城(제1관문) 과 嶺城(제3관문)을 축조했다.
즉 문경읍에서 이화령쪽으로 2km떨어진 곳에 문경새재의 진입로가 있고 진입로를 따라 약 3.5km거리에 제1관문인 主屹關이, 이곳에서 약 3km 떨어진 산속에 제2관문인 鳥谷關이, 다시 3.5km 떨아진 곳인 조령에 제3관문인 鳥嶺關이 있으며 관문 좌우로 성곽이 둘러져 있다.
1925년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서울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역활은 상실했으나
1966년 3월22일에 제1,2,3관문과 성벽이 사적 제 147호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뒤에 제1관문,주흘관 제2관문,조곡관 제3관문,조령관의 3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鳥嶺藥水
조선 숙종(1708년)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m )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남나들 때 타는 목을 식혀주는 역사속의 명약수로서 사철 솟아 올라 옛날 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長壽하는 百壽養泉이라고 한다.
* 梨花嶺
이화령은 백두대간 구간중 鳥嶺山과 葛味山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조령천과 연풍천이라는 하곡에 배꽃이 많이 피고 계절이 되면 하얀색으로 온산이 눈이 온 듯
햐였다고 해서 배:리(梨) 에 꽃:화(花)를 써서 이화령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 釜峰
백두대간 줄기인 조령산(1,026m) 과 주흘산(1,106m)사이에서 갈래친 부봉은 암릉미와
균형미가 극치를 이룬 대자연의 걸작품이다.
저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여석 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광속에는 수려한 仙景이 알알이 박혀있다. 부봉 여섯 암봉가운데 어느 봉을 부봉으로 보느냐에 대한 얘기도 분분하나
장쾌한 여섯 암체가 병풍처럼 하나로 펼쳐있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굳이 어느 봉을 선택해
부봉이라 부르기 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부봉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리라 본다.
수려한 기품을 간직한 부봉 연봉들의 높이를 보면 백두대간이 지나는 첫번째 봉을 제1봉이라 부르며 제1봉=917m,제2봉=933.5m,제3봉=911m , 제4봉=923.9m,제5봉=916m(사자바위가 있슴),제6봉=916.2m이다.
높이로 본다면 제2봉이 단연 으뜸이지만 정상표지석을 제1봉에 세우게 된 것은 국립지리원
1/5,000지형도에 제1봉이 부봉으로 표시되어 있고 백두대간길에 자리하여 山客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이 곳에 그 표석을 올리게 되었다.
* 鷄立嶺遺墟碑(하늘재의 옛이름)
" 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그느적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활을 맡아 長久한 새월동안 역사의 온갖 風霜과 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지릅재,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阿達羅王 3년(156)
4월에 竹嶺과 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빨리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 곳부터는 남한강의 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게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게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의 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진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御駕가 남쪽으로 蒙塵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高麗時代 불교의 聖地인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戰亂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寺址만 전한다.
朝鮮朝 태종14년(1414)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地勢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활을 조령로로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香臭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2001년 1월 문 경 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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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강풍과 약간의 비를 동반한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일요일 새벽 2시반경에 도착한 하늘재
(옛 계립령)에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눈쌓인 빙판길 마루금에 대비해 전회원들이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출발준비를 한다.
도연의 백두대간 종주시 지원단으로 참여하여 이화령-하늘재구간을 북진 완주한 바 있으나
無心했던 시절이라 조령산/문경새재(조령) 이외에는 마루금길이 기억이 나지 않으며 이번에는 南進코스로 나의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셈이다.
* 하늘재-탄항산-평천재- 마패봉
하늘재를 출발하여 1차 탄항산을 향해 마루금길에 들어서니 야간산행에다 빙판길과 강풍으로 체감온도도 뚝 떨어져 쉽지 않은 산행길이라 선두와 후미가 뭉쳐 이동하며 1시간여만에 855m 탄항산에 도착한다.
앞서가던 회원중 얼음바위를 밟다 미끄러져 옆 절벽으로 떨어지다 천만다행으로 나무에 걸려
대형사고를 면하는 안전사고도 겪는다.
평천재로 내리막으로 떨어져 959봉인 주흘산 갈림길도 지나고 2-3번의 로프구간을 넘어 부봉삼거리에 닿는다.
약5km 떨어진 마패봉까지는 동암문으로 내리막으로 떨어진 후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지릅재 갈림길인 북암문을 지나 1시간 40여분만에 마역봉 정상에 선다.
마패봉에서는 신선암을구간, 시선암봉 과 조령산에 이르는 마루금이 눈에 덮힌 채 굽이쳐
한눈에 조망된다.
약 60여곳의 로프지대를 타야 되는 난코스인데다 강풍은 사그러 졌으나 빙판길로 백두대간 구간중 난코스로 top3안에 든다는 유명세로 어렵고 힘든 산행길이 예상된다.
* 마패봉-조령제3관문-깃대봉갈림길-신선봉- 조령산
마패봉 정상에서 내리막 하산길이 가파르며 첫 빙판길 로프지대를 지나 20여분만에 朝食장소인 조령(문경새재, 조령제3관문)에 도착하여 1시간여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08:30에 조령산을 향해 출발한다.
40여분만에 도착한 기새봉갈림길에서 부터 약60여곳의 로프지대를 넘어야 하는 오늘 쵀대의 난코스인 ,신선암릉구간-신선암봉-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치열하게 3시간30분여를 지나 드디어 3번째로 조령산 정상에 선다.
조령산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만은 안주에 이슬이를 비우고 ...
조령샘에서 약수 한잔을 들이킨 후 이화령으로 내려 서며...
영남의 관문인 이화령을 날머리로 도연께서 염려를 하던 난코스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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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두대간 코스 중 가장 어려운 A급 난이도를 혼자 애썼소이다..
2006년 초봄, 혜운, 여산, 경암과 함께 걷던 조령산-주흘산 길이 생각납니다..
진부령 까지 좋은 걸음 이어가시고..따님 결혼, 사위 보심을 앙축드립니다..
2004년 가을 26산케들과 조령/주흘산에 올라 넙적바위에 발가벗고 나이들어 거의
햇빛구경을 못한 촌놈(?) 소독 시켯던 기억과 하산길 맑은 물에 거풍하던 추억이...아-옛날이여,
이제 대간 끝이 보이요 고지가 바로 저기요 얼마 안남앗소 부디 건강하게 백두대간 종주를 바라며.화이팅 경암!
대단한 경암거사...화이팅^^
대단한 발길이요... 근데. 컬러썬그라스 아무나 할 수 있소?
세파를 이겨낸 천길 낭떠러지 위의 날아 갈 듯한 한 그루 소나무...그를 친구삼아 남긴 한 컷이 경암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양...하늘 끝까지 뻗어가는 기상일세. 4월17일 결혼식장에서 봅시다.
20회차면 이제 반정도 하신건가요. 이화령과 조령은 몇 번 가본 곳이라 사진이 눈에 익네요. 사진속의 당당한 경암의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백두대간 마치는 날까지 무탈산행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