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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아리랑
작품해설: 기미양
정선, 진도, 밀양아리랑축제에 이어서 제4대 아리랑축제로 자리잡은 <대구아리랑축제>는 이제 6번째를 맞고 있다. 매년 ‘광복의 날’ 8월15일을 <대구아리랑제>을 개최하는 축제의 날로 정해서, 2003년 제1회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지역 아리랑 축제와 다른 점은 군이나 기관이 중심이 아니고 시민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고 나아가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일제치하 조국광복을 위해 피흘린 애국지사들의 뜻을 기리려고 한다. 이에 <김구의 아리랑>을 테마로 하여 검은 중국대륙에서 독립애국열사의 뜨거운 조국애를 담은 ‘광복군아리랑’을 알리려고 한다. '광복군아리랑'은 영남아리랑의 대표적인 아리랑이고 역사의 노래이기도 하다. '김구의 아리랑'을 주제로 하는 민요극으로서는 처음 올려지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백범은 일본인 장교를 국모시해범인 미우라로 오인하여, 단칼에 척살시키고 독립운동을 위해 동지들과 만주로 망명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정책과 압제에 시달린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유랑민이 되어서 간도로 떠난다.
이때 그들은 고향의 노래 영천아리랑을 가슴에 담고 간다.
그리고 독도문제를 담은 독도아리랑과 아직도 분단된 통일조국의 날을 염원하는 통일아리랑이 불러진다.
▶ 행사명: 2008 대구아리랑제 (DaeGu Arirang Festival)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김구의 아리랑'
▶ 일시 : 2008년 8월15일 (금) 19:30
▶ 장소 : 대구시민회관
▶ 주최.주관 :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 후원 : 대구광역시
출연진 및 제작진
예술 총감독 : 정은하
구성 기획/연출 : 최현묵
대본/조연출 : 김재만
조연출보조 : 주미희
무용 : 안무 백년욱
공연해설:김연갑
공연문의-053-257-6406 (총무)유정임 019-9770-2833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02-762-5030(5014)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프로그램
제1부
■ 독도아리랑 (솔로무용) - 박현미 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원
■ 울릉도아리랑 - 박숙경, 곽동현 “
제2부
■ 서도아리랑 - 오은비 외 9명 “ 영상 : 조수제
■ 해주아리랑 - 박현성 외 9명 " 무대 : 조영익
■ 본조아리랑 - 이호연 중요무형문화재 57호 전수조교 음향 : 송장익
■ 경기긴아리랑 - 이춘희 중요무형문화재 57호 보유자 조명 : 이대우
■ 정선아리랑 - 김길자 강원무형문화재 1호 보유자 진행 : 최석민
■ 경상도아리랑 - 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장 음악 :고봉혁 영남민요아리랑민속합주단
■ 문경아리랑 - 허윤도 외 “
■ 상주아리랑 - 김동숙 외 영남민요아리랑 상주지회 회원
제3부
■ 독립군. 광복군아리랑 - 이 깐딴띠
■ 영천아리랑 (군무) - 최화진 외 대구 흥춤 보존회
■ 영천아리랑 - 류정임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제4부
■ 밀양아리랑 - 신수진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 진도아리랑 - 강송대 전남무형문화재 13호 보유자
■ 대구아리랑 - 도민정 외 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원
■ 본조아리랑 - 전성희 외 전체 출연진
해설
▷ 독도아리랑
노래의사회성과 민족성을 지닌 시대의 노래이다. 여러 음악 장르의 독도아리랑들은 그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곡이다. 대중적으로 독도문제를 국내외에서 환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5년에 작창된 독도아리랑은 영남인의 독도사랑운동의 확인작업이기도 하다.
▷ 울릉도아리랑
1980년대 중반 소문난 소리꾼 중 한사람인 당시 60대 초반의 김재조(2001년 작고)에 의해 90년대 MBC라디오 ‘민요대전’을 통해 알려진 소리다. 민요적이고 강원도의 아리랑조인데다
엮음형이 있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서도아리랑
북한 지명을 쓰고 있으나 음악적으로는 수심가토리가 아니라 오히려 경토리에 가깝다. 강원도아리랑에서 파생한 것으로 서울 구아리랑과 비슷한 곡조이나 조금 더 빠르고 흐름은 유순하고 부드럽다.
▷ 해주아리랑
황해도 해주아리랑인데, 강원도민요과 가락이 비슷하나 강원도민요가 느리고 애절한 데 비하여, 비교적 빠르고 애절하면서고 거세게 들린다.
▷ 본조아리랑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탄생하여 서울 경기 지역에서부터 불려지기 시작해 ‘신아리랑’으로 불리다가 ‘아리랑’ 혹은 ‘본조아리랑’으로 대표성을 인정받았다. 서울아리랑, 경기아리랑이라고도 한다.
▷ 경기긴아리랑
같은 경기민요인 아리랑 보다 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아리랑보다 훨씬 이전에 생겼고 곡의 길이도 길고 느리다. 사설의 내용도 전혀 다르며 음의 폭도 아리랑보다 크다. 중모리장단에 맞춰 부른다.
▷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은 ‘아라리’라는 이름으로 정선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 지역, 충북지역, 경기도 동부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구비전승 되어온 민요다. 남녀간의 사랑과 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산골마을의 지난한 삶, 일의 고단함과 유희 등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경상도아리랑
중국 동포사회에서 불리던 것이 분단 이후에 북한지역에서도 불리게 된 것이다. 엇모리 장단에 기초하고 있는 선율 형상은 처량하면서도 건드러진 정서로 일관되어 있다.
▷ 문경새재아리랑
영남에서 한양에 이르는 관문인 문경 조령지역과 그 일대에서 불리던 노래로 ‘문경의 노래, 홍두깨 소리’ 라고도 한다. 곡조는 강원도와 경상도 이래의 음악제인 메나리조의 긴아라리 형이다.
▷ 상주아리랑
이 소리극의 주제로 유도하는 아리랑이다. 50년대 김소희 선생 작창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작품으로 남도 육자배기제에 경상도 목으로 구성된 특이한 작품이다. 기본 곡조가 상주 민요 ‘함창 공갈 못’과 같아 ‘상주아리랑’ 이라고도 하지만 김소희 선생의 뜻은 사설에 역점을 두어 ‘통일아리랑’으로 불려지길 바랬다. 때문에 ‘통일아리랑’으로도 불린다.
▷ 독립군.광복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은 사기를 북돋우고 사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밀양아리랑 곡조에 군가로 개사한 가사를 붙여 노래로 보급시킨 것이다. 그리고 70년대 들어 중국 동포사회의 아리랑 상황이 알려지면서 밀양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광복군아리랑과 영천아리랑 곡조를 차용한 독립군아리랑이 확인되었다.
영천아리랑 곡조에 의해 불려지는 독립군아리랑은 사설의 내용과 구성면에서 광복군아리랑과 유사하다. 만일 이 아리랑이 일제시대 중국 동포사회에서 불려진 것이라면, 이를 통해 영천아리랑의 존재도 입증된다 하겠다.
▷ 영천아리랑
1930년대 중국으로 집단이주한 경상도민들에 의해 불려지다 북한에서 정형화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관현악곡, 합창곡 등으로 편곡되어 널리 불리는 노래이다.
▷ 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은 사설의 투박성과 경쾌한 곡조로 가장 널리 불리는 아리랑의 하나이며, 일제강점기 만주일대의 동포들과 임시정부 국군의 군가(광복군아리랑)로 변용되어 시대적 기능을 한 ‘역사의 노래’이다.
세마치장단의 경토리에 의한 밝은 소리로 빠르며 씩씩하고 경쾌하다.
▷ 진도아리랑
진도지방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 한다. 다른 아리랑과 달리 도서지방의 지역성과 부인들이 불렀던 부요적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아울러 세마치장단에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한 선율구조이다. 가사보다는 그 여음의 묘미가 독특하다.
▷ 대구아리랑
제1회 <대구아리랑제>에서 공연된 창작 아리랑이다. 1936년 최계란본 대구아리랑에 이은 2000년 음반으로 발매된 정은하본 대구아리랑이다.
제대로 불려진 경상도사투리의 토속성과 영남인의 꿋굿한 역동성이 강하게 실려있다. 경북대 김기현교수 작사, 정은하 작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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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장 정은하
대구아리랑의 歷史性
‘1936년 대구아리랑’을 시작으로, ‘2002 대구아리랑’ 탄생은 <대구아리랑제>로 성장하여 오늘 6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15기념 행사로 시작된 지향점을 기반으로 역사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1회 대구아리랑축제에서 우리는 “매년 8월15일이 되면, 우리 모두 대구에서는 대구아리랑제가 열리는 날임을 기억 합시다. 그럼 내년에 다시 이날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 <대구아리랑제>한마당에서 만납시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기념하여 광복절 기념일 8월15일을 <대구아리랑제>의 날로 정했습니다 .
일제치하에 우리민족은 영남의 대표적인 밀양아리랑 곡조에 광복군아리랑을, 영천아리랑 곡조에 독립군아리랑 가사를 얹어서 부르며 독립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러한 영남아리랑의 역사성을 확인하고자, 김구선생과 만주벌판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광복투사의 애국심을 담은 ‘광복군아리랑’을 주제로 영남인의 꿋꿋한 力動性과 心象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영남의 대표적인 아리랑인 밀양아리랑, 영천아리랑, 문경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등이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의 가슴과 가슴으로 共同體의 소통으로 존재하여 노래되어 왔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영남의 아리랑은 안으로는 영남인의 역동성을 담은 심상의 傳承이자, 잃어버린 大同의 자족을 복원하여 전승하여 왔습니다.
밖으로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으로서 1998년도 세계유네스코가 세계 구비문화와 무형문화재상을
제정하면서 그 명칭을 ‘ARIRANG PRIZE'로 제정할 만큼 '아리랑‘
의 세계적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아리랑의 위상을
바탕으로 2011년 세계육상경기대회 등을 통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나아가려고합니다.
오늘 이 뜻 깊은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대구시장님 관계자님 여러분 그리고 출연해주신 여러 선생님, 연출에 최현묵 교수님, 스탭여러분, 영남민요아리랑보존후원회,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그리고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본 단체회원 여러분, 그리고 대구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구아리랑축제, 역사와 함께
김연갑/(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1948년 8월 15일, 이 날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일이나 해방 3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정부수립식은 중앙청에서였고 해방 기념식은 남산에서 있었다. 그런데 남산에서 있었던 기념식에서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아리랑을 합창했다. <애국가> 가사의 ‘대한 사람 대한으로···’와 ‘조선사람 조선으로····’가 좌우익 간 합의 되지 않아 아리랑으로 대체된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좌우익 갈등을 아리랑은 증언하고 있다. 아리랑이 ‘역사의 노래’임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60년 전의 상황만은 아니다. 단적으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기념하여 시작된 <대구아리랑축제>가 제6회를 맡고있는데, 이 역시 대구에서 있었던 국제경기를 아리랑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구아리랑축제>는 기존의 아리랑 연고지에서 개최되던 일종의 향토축제와는 달랐다. <대구아리랑>을 창작하고 ‘도시축제화’와 ‘아리랑 세계화’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외부 문화를 수용하여, 창조적인 축제 모델을 지향했던 것이다.
<대구아리랑축제>는 금년으로서 제6회를 맞았다. 이즘에서 다음의 두 명제를 화두로 삼을 필요가 있다.
“창조라는 것은 전승된 것과 수용된 것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것,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가 아리랑도 되고 베토밴의 <운명>도 된다. 창작음악이 전승음악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민족음악으로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임재해, <문화의 존재양식과 민속문화의 위상>에서)
1980년대 중반, 민속문화 담론에서 전승 문제를 아리랑 양상을 예로 한 글로 <대구아리랑축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제 6회를 맞는 자리에서 ‘전승’과 ‘수용’과 ‘창조’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세상을 크기와 형태로 보아왔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핵심인 정보의 최소단위 비트(bit)는 크기와 형태도 없을 뿐더러 색깔도 없다. 따라서, 미래 디지털사회에서는 크기와 형태가 아니라 의미와 상징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그로폰테, Being Digital에서)
<대구아리랑축제>가 회수와 규모의 문제에서 기획의도와 시대적 필요성을 어떻게 발현해 낼까를 화두로 삼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그런 지위에 이르렀고, 그런만큼 책임감을 무거워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주최자 대구광역시와 주관자 정은하선생의 영예이자 책임이기도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대구지역 문화인들과 아리랑 관련 단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어려운 여건에도 이러한 장을 마련한 정은하 선생과 스텝, 그리고 출연자 모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끝-
탯줄 같은 어머니의 노래 아리랑
박 해수(시인, 문학박사, 대구아리랑보존회 회장)
정읍사, 청산별곡, 가시리에 이어 “아리랑”은
우리 민족혼이 그대로 담긴 넋의 소리요 넋의 노래입니다.
기뻐나 슬프나 괴로우나 외로우나 <세한도>처럼
꿋꿋하게 겨울 찬바람을 이겨 내고
서 있는 청솔 푸른 나무처럼 외로움과 고통과 아픔을
이겨 나온 가슴 뭉클한 우리의 가슴적시는 탯줄 같은 어머니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지키며 꿋꿋하게 서 있는 청솔 푸른 나무 같은 정 은하,
그는 봄날 봄꽃 같은 마음으로 아리랑을 위해 오로지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일본의 壓政에서 나라를 다시 찾은 날입니다.
뼈아프고 가슴절인 恨과 아픔의 노래가 대구 시민회관에서
우렁차고 아프게 가슴 절이고 녹이는 아리랑의 노래로 다시 탄생합니다.
특히 백범 김 구선생의 삶을 극작가 최 현묵의 글로 '나라 사랑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연극으로 보게 되어 異彩를띄고 있습니다.
아련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넉넉한 우리들의 민족혼이 아로새겨진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만이 아니라 세계의 노래로 살아 있습니다.
공연문의-053-257-6406 (총무)유정임 019-9770-2833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02-762-5030(5014)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