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별들
나오는사람
할아버지 / 최영태 / 무대감독 / 이수형 / 아버지 / 김철진
어머니 / 장택수 / 서장 / 윤수지 / 경사 / 오정미 / 순경
유인희
막이 오르기 전이다.
객석엔 아직 불이 켜져있다.
예비종이 울린 후라 전체조명이 약간 어두워진 상태다.
갑자기 객석 뒤 출입구 쪽에서 '순철아'하고 부르는 소리 들린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60대의 할아버지가 객석을 둘러보며 내려온다.
할아버지 얘,순철아! 여기있으면 대답해.순철아!
객석에서 관객 앞 무대쪽으로 내려선다.약간 취한 듯하다.막뒤에서 무대감독이 나온
다.
무대감독 아저씨 뭐예요?
할아버지 나 내손자 찾는데 여기 와 있을지도 몰라서 들어왔어.
무대감독 아저씨 여기 연극하는 데예요.나가세요.
할아버지 내가 연극하는 덴 줄 모르는 줄 알아? 여기서 연극한다는 얘기 듣고 왔어. 내 손
자놈이 연극을 좋아해. 연극때문에 미쳐서 집 나갔다구.
무대감독 나가세요. 방해하지 마시구요.
할아버지 밀지 마. 나도 너만한 아들 있어! 어른 공경할 줄 알아야지.
무대감독 죄송합니다. 나가서 나중에 찾으세요. 아마 여기 없는 모양이에요. 곧 막 올려야
돼요.
할아버지 막 올리면 불끌 거 아니야? 어두워지면 내가 못 찾어.(관객 둘러보며)
야,순철아 나와! 할애비가 너 찾아왔다.
무대감독 아저씨! 경찰 불러야지 안되겠어.(막 뒤로가며) 파출소에 전화해!
할아버지 (객석을 보며) 이 늙은이가 주책없이 소란을 부려 죄송한데 내가 오죽하면 이러
겠소. 내가 손자놈을 찾으려고 한 달을 극장마다 헤메고 다녔어. 나도 소싯적엔
싸카스 좋아하고 신파연극 좋아서 따라 다닌적이 있지만, 아,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야? 지 애비는 지금 중동 어느 사막에서 덤프트럭 몰고 있지. 에미는 아파트
에 파출부 다니지. 이 할애비가 손자 찾아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여. 집 안이 먹구
사는 일이 급한 판에 지녀석이 공부는 않고 연극은 무슨 연극이여. 그래서 한번은
지 에미하고 이 할애비가 녀석을 앉혀놓구 치도곤을 놨더니 집을 나갔지 뭔가?
내 손자는고등학교 1학년인데 키는 162Cm고 약간 마른 편이여. 볼에 사마귀가 하
나 있응께 자세히 보면 금세 알수 있을껴. 집을 나갈 때 국방색 잠바하고 청바지
에 월드컵 운동화 신고 나갔으니 지금도 그 차림일거고..... 혹시 이런 애 보셨으
면 나한테 알려줘. 여기 있으면 얼른 나오고,순철아!
이때 객석으로 무대감독이 경사를 데리고 들어온다.
경사 여보세요.나가세요.
할아버지 아,경찰관이 내 손자 찾아주러 오셨구만.
무대감독 아저씨,그만 가세요!
경사 가십시다.취하셨구만.
할아버지 나 지금 손자 찾고 있는데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창피하니까 안나오는 모양입니
다.
경사 가세요. 손자 있을 만한 델 아니까.
할아버지 네? 안다구요?
경사 예. 하여튼 남의 업무 방해하지 말고 가시죠.(팔 잡아끈다)
할아버지 그럼 내 손자 찾아주는 거요?
경사 그런다고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끌려가며)거기가 어딘 데요?
경사 경찰서 보호실입니다.
할아버지 어? 날 경찰서 끌고 가려구 수작부리는 거지?
경사 가시면 알아요. 오늘 미성년자 풍기사범 일제단속을 해서요. 거기댁의 손자 같은
애들이 우글거립니다. 아마 그 중에 끼어 있을 거예요. 집나간 애들 천지니까요.
할아버지 음. 그렇다면 가봅시다.(나가며) 내 손자 이름이 강순철이요.
주소는 도봉구 미아동.....
무대감독 무대 앞에 서서 객석에게 인사를 한다.
무대감독 여러분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소란을 피워 개막시간이 지연됐습
니다. 젊은 사람이면 강제로 끌어내도 되는데 노인네라 경찰관을 부르느라 시간
이 걸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곧 윤대성작, ______연출의 방황하는 별들 공연의
막을 올리겠습니다. 전 무대감독 ________입니다.
무대감독 인사하고 막 뒤로 들어간다. 사이 두고 객석의 조명이 꺼지며 징소리 울린다.
막이오르면 경찰서 보호실이다.
무대 양쪽으로 철장이 실루엣으로 보이고 미성년자들 여기저기 주저 앉아있다.
김철진,오정미 서로 등진채 고개 파묻고 앉았다.
최영태는 벽에 기대 창문 밖을 보고 있다.
장택수 얼굴을 무릅에 묻고 훌쩍이고 있다.
유인희 엎드려 잠들어있다.
윤수지는 껌을 씹으며 이수형을 보고 있다.
이수형 갑갑한듯 서성거리고있다.
이수형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도대체 말도 안돼!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윤수지 어른 눈엔 우리가 다 탈선한 비행 청소년으로 보이는 거야. 몰랐어?
이수형 탈선? 뭐가 탈선이야? 디스코장에서 춤추는게 뭐가 나뻐?
김철진 (고개들며)조용히해!
이수형 형씨, 안 그렇습니까?
김철진 (험상ㄱ은 얼굴로)나한테 말시키지마,주먹나가!
윤수지 쉬,조용히해! 누가 온다.
철장 열리는 소리.
경관이 할아버지를 데리고 들어온다.
경사 아저씨, 혹시 여기 있나 찾아보세요. 고개들어! 바로앉고(이수형에게) 넌 왜 서
있냐?
이수형 네?(얼른 앉는다)
할아버지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니 모두 얘들뿐이오?
경사 부모들이 각서 쓰고 데려간 애도 있구요. 이 애들은 부모들도 몰라라 하는 애들
아니면 저희 이름을 숨기는 애들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집 나간 애들이죠.
할아버지 쯔쯔..... 생긴건 멀쩡하게 생긴 녀석들이 부모 속썩이는군!
예끼 이놈들! 정신차려서 공부를 해야지! 너희 부모들은 너희들 때문에 애간장이
탄다.
경사 아저씨, 손자가 여기 없는 건 확실하군요.
할아버지 내 손자는 이런델 안 와요. 어디선가 열심히...
이수형 (얼른 받아서)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아이들 키득거리고 웃는다.
경사 조용히해!
할아버지 나 집에 가도 되우?
경사 좀 계셔야겠습니다.
할아버지 아니 왜?
경사 남의 극장에 무단 침입해서 소란을 피우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저씨를 모셔 온
거 아닙니까?
할아버지 (끌려나가며) 나 서장 좀 만나봅시다. 내가 이래뵈두....빽 있는 사람이야!
무대는 조용해진다.
장택수 훌쩍거리고 울기 시작한다.
이수형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난다.
이수형 너 왜우니? 배고파? (장택수 고개 젓는다)엄마 생각나니? (장택수 끄덕인다) 이
런 녀석! 어리긴 어리구나. 어디서 잡혔니?
장택수 다방에서.
이수형 비디오 보다가 잡혀왔구나?
장택수 네.
이수형 몇 학년이냐?
장택수 중학교 3학년, 차라리 세 살 때로 돌아가고 싶어!
이수형 엄마 보고 싶은 녀석이 집엔 왜 빨리 안 가고 다방에서 비디오 보고있냐?
장택수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수형 아.너희 엄마 잔소리 뭔지 안다. <공부해라><테레비 그만 봐라><나쁜 친
구 사귀지 마라><밥 많이 먹어라>그거지?
장택수 (놀란 듯 일어나며)형, 우리엄마 알아요?
이수형 그게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공통 언어야. 그 말 안하는 엄마는 어머니 자격이 없
는 여자라구.
장택수 그래서 난 엄마 잔소리의 반대로만 했더니 여기 들어오게 됐어요.
이수형 잘 왔어. 이게 다 인생 경험이라구 쳐!(둘러보며) 여러분 우리가 어차피 이렇게
같은 운명의 역사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서로 알고나 지
냅시다. 또 누가 압니까? 먼 훗날 우리 중에 누가 지도자가 되면 같은 감방에서
복역한 동료 투사로서 만나게 될지.
김철진 집어쳐!
이수형 형씨, 우리 이대로 밤을 밝히지 말고 즐겁게 보냅시다. 게임을 해요. 알아맞히기
게임.
윤수지 좋아요. 우리 놀아요.
이수형 내가 시작할게. 형씨 왜 여기 왔는지 맞혀볼까? (오정미를 가리키며) 우정도 없
고 경쟁만이 판치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타인을 내 몸처럼 애끼고 사랑한 죄.
(끌어 안는 몸짓)
김철진 집어치지 못해! (주먹을 겨눈다)
오정미 아빠가 알면 날 죽일꺼야. 난 어떻게 해? 어떻함 좋아?
김철진 (오정미에게) 운다고 해결되니?
오정미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 우린 어떻게 되니?
김철진 나한테 자꾸 묻지마. 나도 몰라!
이수형 우린 어른이 아냐. 모르는게 당연해.
최영태 그러나 어른들도 우리를 몰라. 알려고 하지도 앉아. 우리를 어른들이 생각하는
틀 속에다 집어 넣으려고만 해!
이수형 어른이라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너!
장택수 술,담배!
윤수지 돈과 부동산 투기.
최영태 세속적인 이기주의자.
김철진 입으로는 청렴,결백,부르짖으면서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거짓말쟁이들!
이수형 그런 어른들이 우리더러 비행소년이란다. 말되는 얘기니?
일동 안돼! (소리지른다)
윤수지 너 아주 재미있다. 이름 뭐니?
이수형 왜?
윤수지 (수첩에 적으며) 전화번호?
이수형 (수첩 뺏어본다) 뭐하는 거야?
윤수지 이리내! 내꺼야.
이수형 이게 뭐야? 맨 남자이름하고 전화번호 아냐?
윤수지 미팅 대상 후보 명단이다. 네 이름도 내 수첩에 올리려구 해. 미팅할때 연락할
께!
이수형 (수첩주며)하, 그러니까 넌 미스 뚜구나.
윤수지 대화의 상대 없고 갈 곳도 없고 놀 데도 없는 외로운 남녀학생들을 짝지워 주는
게 내 임무야.우리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데가 어디있니? 그래서 난 예산 때문
에 국가가 미처 마련해 주지 못하는 부족한 놀이 공간을 마련해 주고 디스코를
활성화해서 여가선용에 기여하고 있어. 물론 수고비 얼마 먹지만.
오정미 그래.우린 정말 갈 곳이 없었어. 여인숙 밖에는.
장택수 산에 가면 입산금지야. 불낸다고 우리만 의심해.
최영태 도서관은 만원이야. 새벽부터 줄서야 돼.
김철진 극장은 미성년자 입장금지.
윤수지 길거리를 헤매다간 불량배로 찍히기 십상이지.
김철진 우린 어디 가나 단속 대상이야!
이수형 우릴 환영하는 디스코장뿐! 그래서 난 디스코를 즐긴다.(디스코 추기 시작
한다)
무대감독 라디오를 들고 들어온다.
무대감독 이게 필요할 거야. FM라디오다.
윤수지 라디오다! (윤수지 라디오 튼다. 빌리진 들린다)
무대감독 (관객에게) 이 애들은 디스코에 중독된 애들입니다. 이런 때 애들에게 필요한 것
이 바로 음악입니다.
이수형 마이클 잭슨의 흉내를 내며 춤추기 시작한다. 모두 박수친다.
그때까지 자던 유인희 일어나 눈 비비고 본다.
유인희 여기 어디야?
윤수지 나이트 클럽이야. 밤에 남녀가 몰리는 데니까.
순경 등장한다.
순경 뭣들 하는거야? 여기가 극장인줄 아나? (모두 정지한다) 너희들은 지금 단속에 걸
려서 보호조치 받고 있는 중이야. 남들 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깔고 엎드려 있
을 시간에 이런 철장 안에 있다는 사실만 으로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반성 할
것이지. 춤추고 박수치고,지금 그럴땐가?
이수형 네 !
순경 뭐가 네야?
이수형 백번 옳으신 말씀이란 뜻입니다.
순경 모두 일어섯! 차렷!
모두 일어선다.차렷자세.
순경 왼쪽부터 번호붙여!
일동 하나,둘,셋....번호 부른다.
순경 엎드려 뻗쳐.
남자들 엉거주춤 엎드린다.
윤수지 여자두요?
순경 남녀평등이다.
할수없이 여자도 엎드려 뻗친다.
순경 난 너희들이 미워서 기압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 너희들은 부모의 사랑을 지나
치게 받아서 분에 겹게 놀았기 때문에 단속대상이 된것이다. 디스코장이 뭐야? 비
디오 다방? 여인숙에 혼숙하고? 술집에서 노닥거리고 내가 너희만할 때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비디오도 없었고 디스코장도 없었다. 고고장은 있었지만 우린 돈이
없었다. 왜 웃나? 학생때 우리도 너희처럼 말썽을 부렸다. 선생 몰래 술마시고 담
배 피우고 여학생 뒤쫓아다니고, 그러나 너희들하곤 다른 점이 있었다. 우린 최소
한 남 몰래 그랬다. 그런데 너희들은 공공연히 그러지 않았나? 최소한도의 예의도
모르고 너무 뻔뻔하다! 그래서 단속대상이 된것이다.일어섯!
모두 일어선다.
순경 내 말에 비위가 뒤틀리는 사람 있으면 손들고 말해봐.(아무도 없다) 없나? 그럼 이
제부터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반성한다.앉아!
모두 앉는다. 순경 나간다.
윤수지 비위들도 없나? 왜 아무 말도 못해?
이수형 하고 싶은 얘기가 목구멍에서 울컥 나오는 걸 그냥 참았다. 이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게 누군데? 어른들이 몰래 뒤에서 일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정정당당히 공공연하게 일을 저지를 배짱도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
터 여태껏 모든 사회 부조리와 비행은 누가 저질렀는데 우리 청소년만 비행의 대
명사로 쓰느냐? 난 이걸 항변하고 싶다.
장택수 옳소!
윤수지 왜 그럼 그런 얘기 진작 못해?
이수형 내가 한마디 해봐. 아마 열마디 스무 마디로 변명과 잔소리를 늘어놓을 꺼야. 우
리가 처한 여건이 어떻고 남북 분단의 현실이 어떻고 그 당시에는 어쩔수 없는 처
지였다, 등등...
윤수지 제법 똑똑한데?
유인희 누구 물 좀 떠 줄래? 목이 타!
장택수 누나, 경관 불러줄까요?
유인희 싫어, 부르지마, 경찰은 싫어
오정미 아침이 되면 아빠가 오실텐데 난 어떡함 좋지? 차라리 죽어버렸음 좋겠어
김철진 죽고 싶음 죽어! 혁대 끌러줄께.(혁대를 끌러 내민다.)
오정미 서러운 듯 더 운다.
최영태 너무하잖아?
김철진 넌 참견하지마!
최영태 넌 저 여학생한테 책임이 있어.
김철진 뭐? 책임? 지가 좋아서 날 따라다녔는데 무슨 책임이야?
최영태 너는 사나이야. 여자를 불행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책임을 져야해!
김철진 저도 집 뛰쳐나왔구 나도 집 뛰쳐나온 처지야. 밤에 한데서 잘 수는 없지 않아?
경비도 줄일 겸 여인숙에서 같이 잔 게 뭐가 어떻다는 거야?
최영태 집에 가야지? 너희들도 가저은 있을 꺼 아니야? 부모님들이 걱정하잖아?
김철진 누가 누굴 걱정해 주는 거야? 가정? 부모들? 자식이 뭘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들이 있는집? (일어나며) 난 나자신을 잘 알아. 애초에 공부하곤 담싼 놈이
다. 공부 해봤자 난 따라가긴 글러먹게 생겼어. 내가 소질 있고 자신 있는 건 이
두 주먹뿐이야. 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드릴때마다 자신감이 용솟음쳤어.
그래서 난 부모님께 용기를 내서 말했지. 대학에 안가고 권투 선수가 되겠다고!
도장에 보내 달라고...., 그랬더니 뭐라는지 알아? .... <미친놈>.... 난 울화통
이 터져 뭐든지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어! 써클에도 가입했어. 공부 잘한다고
뻐기는 놈들 패주기도 했어. ..... 그러다 정미를 만났다.
오정미 내가 잘못이었어. 고1때 독서실에 다니다가 어떤 남학생을 알게 됐어. 그 친구들
과 등산을 같이 가게 됐는데 비를 만나서 집에 못오게 됐어. 할 수 없이 산에서 밤
을 지내야 했어. 그때 난 이성에 대해 호기심에 끌리기두 했구. 또 나란애는 원래
남자를 좋아하게 돼 있나봐. 그만 실수했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실수 안할 수
있니? 결국 학교서 알게 됐구. 난 퇴학당했다. 아버지는 날 버린 딸 취급했어! 난
가족들의 눈총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 무조건 집을 뛰쳐나오구 말았다. 갈
데도 없었지만 더 견딜 수가 없었어. 차라리 죽어보리려구 마음 먹었는데 철진이를
만났어. 그저 아무한테나 의지하고 싶었어. 아빠만 아니면, 어떤 남자든 상관없었
어. 나만 따뜻하게 보호해 준다면,.... 철진이는 나를 보호해줬어. ... 그런데 이
젠 난 어떻게 되지?
최영태 너무 걱정하지 마, 아버진 널 용서해 주실 꺼야.
오정미 아냐. 이번엔 아빤 날 용서하시지 않을 꺼야! 난 알아! 아빠가 얼마나 내게 실망했
는지. 우리 아빠는 무서운 분이야. 얼마나 엄하고 신경질이 많은 분인줄 너희들은
몰라. (훌쩍인다.) 용서해 주시지 않을꺼야.
최영태 우리 아버진 엄하신 분은 아니야. 그러나 왜 자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
어. 아버지도 나를 사랑해. 나를 위해서 뭐든 해주셔.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들어주시지 않아! 난 별을 사랑해. (창 밖을 향하여) 저 하늘에 많은 별들. 그 별
자리가 얼마나 오묘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너희들은 모를꺼야. 서울에선 별
같은 게 보일새가 없지만 시골에 가봐. 여름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
을 보렴. 거기엔 찬란히 빛나는 별과 우리의 꿈이 수놓아져 있어. 그래서 난 결심
했지. 대학에 가서 천체기상학을 연구해 보겠디구. 그런데 아버진 나더러 법대에
가라는 거야. 천체기상학 하면 중앙기상대에 취직하는 게 고작 아니냐구. 테레비에
나와서 일기예보나 할 꺼냐구? ... 나는 왜 판사나 검사가 되어야 하지? 나는 별을
사랑하는데 말야.
윤수지 너,이름이 뭐니?
최영태 최영태
윤수지 (수첩에 적으며) 너 아주 시적인 분위기가 있구나. 여학생들이 너 같은 애를 좋아
해. 미팅할 때 연락할께, 전화번호 좀 가르쳐 줘.
유인희 야, 정말 메스껍다. 배부른 소리들 좀 하지마. 대학 때문에 고민하고 별 때문에
집을 나와? 너희들은 무모 사랑 지나치게 받아서 호사스런 고민에 싸여 있는데,
이세상엔 부모 덕은 고사하고 대학 꿈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그저 고등학교라도
다녔으면 하는 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손톱이 다 닳도록 하루 8시간 기계와 씨름
하며 노동하는 애들 생각이나 해봤니? 그저 한번만이라도 교복입고 여학교나 다녀
봤으면, 하고 꿈꾸는 여공들 생각해 봤어? 우린 너희들처럼 여유 있게 미팅하고
여가를 즐기는 그런 거 몰라. 우리의 꿈이라는 건 공부 좀 하고 좋은 남편감 만나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는 꿈뿐이야. 그런데 월급 10만원, 그걸로 집에 얼마 부치구
나머지로 친구 몇이 벌통집에 자취하면서 야간학교라도 가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은 건강 해치는 애들도 있다는걸 좀 알아줘!
장택수 누난, 그럼 학생 아니야?
유인희 구로공단에 있었지. 전에는..... 그러나 지금은 영등포 어느 술집에 있어. 우리
같은 애들이 쉽게 돈버는 길은 그 길뿐이야. 취해서 사내한테 주정이나 받구. 그
래도 버는 돈은 공장에서 시달리는 것보다 몇 배 낫더라. 미성년자가 술 따른다고
이렇게 잡혀왔어. 호호 미성년자... 어른 몫을 다해야 하는 미성년자는 술 따르면
안되나? 흐흐...
이수형 아가씨
유인희 이봐, 얘는 나더러 아가씨, 그러잖아? 레지 아가씨, 술집 아가씨, 그래 난 66번
아가씨다, 왜?
이수형 나쁜 의미로 부른게 아냐,이름도 모르고 그래서 그렇게 불렀을 뿐이야.
유인희 유인희. 나같은 애한테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수형 너무 그렇게 자포자기하지 말아요. <하는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
이런때 쓰는거 아닐까? 스스로 자기를 학대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그만이야....
난 사실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재작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자랐어.
아버진 외교관이야.
윤수지 어쩐지 춤추는 폼하구 어딘가 다르더라. 세련됐어! 미팅에 꼭 부를게.
이수형 난 이나라에 와서 놀란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학생을 때
리는 선생을 보고 난 기절할뻔 했어. 학교가 무슨 교도소냐? 미국에선 학생을 때
린다는 건 생각도 못해. 모두 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있어.
최영태 미국이니까 그렇지
이수형 그것보다 더 놀란건 교과목이 17과목이나 되는데 난 까무러 칠뻔 했어. 미국에는
고등학교 과목이 필수 선택 합해서 8개 밖에 안돼. 그것도 모두 토론식, 세미나
식으로 공부한다구. 그러니까 재미도 있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거든? 그런데
여기선 토론은 그만두고라도 질문할 시간도 없더라. 무조건 주입식이야.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고 살벌한 교육이 어디 있니?
윤수지 교육부장관한테 물어봐, 왜 그런지?
최영태 전인교육을 시키기 위한 거라더라. 모든 과목을 올백 하길 원하는 부모들. 전천
후로 어디에 갔다 놓아도 다 할 수 있는 만능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교과목이 많
은 거야.
이수형 난 아주 질렸어. 선생들도 쥐어박을 줄만 알지 대화가 안돼. 이젠 학교 다니기가
지긋지긋해. 취미생활 가질 수 도 없고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도 없어. 그냥 시
험과 성적,입시,학력고사! 맙소사!
장택수 (귀를 막으며) 시험얘기좀 그만해 형!
오정미 학력고사! 학력고사!
김철진 자율학습, 그놈의 자율학습!
최영태 새벽부터 밤까지 교실에서 도를 닦아야 해!
윤수지 우리를 학교에 잡아두기 위해서야, 부모와 학교가 공모해서!
이수형 (소리친다) 이건 시험지옥이야!
노래 합창한다.
[시험지옥]
우리는 시험지옥에 살아요
교육부장관님
왜 입시제도는 자꾸 바꾸나요
학부모님
왜 우린 공부만 해야 하죠
교육부장관님
우리들을 지옥에서 구해줘요
학부모님
우리들을 뛰어놀게 해줘요
우린 어른이 아녜요, 우린 청소년이예요
우정을 원해요, 사랑두요,
우리는 시험지옥에 살아요
다음부터 대사와 판토마임으로
김철진 우리에겐 우정은 없다. 싸움과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태권도 동작)
윤수지 여학생의 우정은 군것질 우정뿐이래요.
장택수 이사를 많이 다녀서 난 친구가 늘 새 친구뿐이래요.
최영태 친구를 쓰러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어. 난 친구가 놀때 공부해야돼. 그래야
시험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
오정미 내 친구는 남자친구 뿐이야. 그래야 우정이 애정으로 깊어지거든? (철진의 어깨에
메달린다.)
윤수지 애정을 원하면 나한테 연락해. 미팅 주선할 테니까. (열심히 수첩을 들고 남학생
이름 적는다.)
유인희 구로공단 있는 내 친구는 벌통집에서 쎄코날 먹구 자살했어. 난 약 먹기 싫어서
술을 대신 마시지. 내 친구는 술 친구야!
이수형 그래서 나느 오로지 디스코를 사랑한다. 앞으로 체력장 검사를 니스코로 대처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들의 눈치보기 바쁘니까.
일동 체력검사를 디스코로 대체하라! 대체하라! 대체하라!
무대감독 나온다.
무대감독 (관객에게) 아이들의 불만이 고조될 때 이를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집단시위할
우려가 있어서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어이, 밴드, 시작
디스코 음악이 들리며 밴드 연주를 시작하자 아이들 환성지르며 디스코 춤을 춘다.
경사 나와본다.
아이들은 경관이 있는지 없는지 정신 못차리고 춤을 춘다.
경사 퇴장해 버린다.
한참 추는데
경사, 순경과 함께 대형 텔레비젼을 밀고 나온다.
경사 애들 발광하는거 보니까 심심한 모양인데 테레비라면 꼼짝 못하는 애들이니까 진
정시키는 방법은 이것 뿐이야. (큰소리로) 학생들, 테레비 봐, 프로야구 중계 있
어!
장택수 야! 프로야구래!
모두 텔레비전 스크린을 향한다.
이수형 한밤중에 무슨 야구중계예요?
경사 낮에 녹화해 둔 거야.(무하 경관에게) 이것두 다 우리 서장님의 아이디어야.보호
실에 미성년자가 많을 때는 프로야구 테이프를 틀어줄 것. 성인들이 많을 때는 그
렇고 그런 도색 테이프를 틀어주면 모두 잠잠해 질 것이다. 아마 오히려 우리 경
찰서 보호실에 오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틀어라!
부하, 단추 누르면 프로야구 중계하는 그림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들 잠잠해지고 열심히 야구를 보며 선수가 어떻고 투수가 어떻고 얘기한다.
경사 보라구, 금방 애들이 어린 양처럼 순해지지. 아마 한 시간쯤 지나면 침을 줄줄 흘
리면서 넋잃고 보고 있을 꺼야. ....역시 우리 서장님 아이디어는 훌륭했어. 고시
패스한 분이라 생각하는 것도 다르단 말야.
순경 (관객에게) 비디오 갖다 놓은 경찰실 보호실 가보셨습니까? 한번쯤 와보세요.
만족해서 웃으며 퇴장하는 경관들. 아이들은 넋잃고 야구를 본다.
오정미 혼자 훌쩍인다.
유인희 다가간다.
유인희 운다고 무슨 대책이 서니?
오정미 날이 밝나봐. 아버지가 오실 꺼야. 그럼 난 죽어! 집에서 영원히 쫓겨나.
유인희 그럼 나한테 오렴. 사회에 일찍 나간다는 게 해롭지만은 않다. 저 애들 열심히 공
부할 동안 돈 벌수가 있거든? 몸은 고달프지만.
오정미 그러나 내겐 아직 꿈이 있단 말이야.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시험 때문에 책과 씨름
도 하고 싶고 부모님의 기대도 받고 싶단 말이야. 부모님이 한번만 용서해 주시
면, 내게 조금만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 주시면 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정말
이야.
유인희 네가 부럽다. 아버지 오시면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 빌어. 그 길 밖에 없지 않니?
나야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래도 집이 그리워.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들
이 있는 집에 가고 싶어.
두 소녀 훌쩍인다. 서러운 듯 점점 더 크게 흐느낀다.
윤수지 얘들은 왜 질질 짜고 그래? 나처럼 집에서 부모 눈에 거술리지 않을 정도로만 행
동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책 펴놓고 하는 척하면 되잖아? 그리고 외로우면 미
팅해! 집에 있기 싫음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그러구 책가방 들고 나오란 말이야.
독서실 미팅도 주선할 수 있어. 이름하고 집 전화번호 뭐니? (수첩을 꺼내 든다)
텔레비전에서 한 선수가 홈런을 치자 아이들 열광해서 노래를 부른다.
[텔레비전의 노래]
텔레비전 벨레비전
우리들의 꿈동산
다이알만 돌리면
마징가 z, 돌아온 아톰
뭐든지 쏟아져요
텔레비전 텔레비전
우리들의 마술상자
프로야구 프로축구
무차별 중계해요
텔레비전 텔레비전
우리들의 시간 도둑
텔레비전만 보면
정신이 멍해져요
아 ---- 우리는 텔레비전의 포로
아 ---- 우리는 텔레비전의 세대
경관 나와서 본다.
순경 재미있다는 듯 어깨와 발을 들썩이며 좋아한다. 경사 그런 부하를 본다.
경사 자네 지금 뭐하는 거야?
순경 네! (차렷자세 하며 아이들에게) 그만! 그만 조용히 해!
아이들 멈춘다.
경사 너희들은 경찰서 보호실을 디스코장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좌우간 즐겁게 하룻밤
을 보내줘서 고맙다.그렇다고 또 와서는 안된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된 다음에 오는
건 환영하겠다. 곧 날이 밝는다. 보호자에 의해 너희들이 신분이 확인되면 석방해
준다. 집으로 돌아가거든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왜 자신이 경찰서 보호
실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했는가를...
순경 우리가 단속해서 잡아왔기 때문이다. (경사의 눈초리에 찔끔한다.)
경사 너희들은 경찰이라면 무조건 반발하겠지만 우리야말로 외롭고 고달픈 임무를 수행
하는 이나라의 없어서는 아니될 질서의 수호자다.
아이들 우 ------ 하는 소리
순경 차렷!
경사 우리는 학생들에게 돌팔매질 맞아 터지고 위에서는 도둑 못 잡는다고 터지고 집에
서는 돈 못 번다고 터지는 가련한 동네 북이다.
순경 옳소. 박수, 박수! (혼자 박수친다)
경사 이순경! (부하 찔끔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네들 같은 꿈많은 학창시절이 있
었다. 그 시절, 그 귀중한 시간을 왜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너희들은 나처럼 후에 어른이 되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의
너희 시간을 뜻있게 보내기 바란다. 이상
순경 박수!
아이들 박수친다.
경사 서로 작별인사 하고 나갈 준비를 하도록. (부하경관 데리고 퇴장한다.)
오정미 난 어떻게 해?
김철진 나보고 자꾸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니?
윤수지 무조건 싹싹 빌어. 죽는 시늉해. 눈물도 펑펑 흘리구.
오정미 우리 아빤 눈물 흘린다고 마음 풀릴 남자 아니야!
윤수지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내구나.
장택수 엄마가 오면 얼마나 잔소리를 할까? 차라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은데 엄마 말소리
듣기만 해도 반발이 생겨.
윤수지 난 엄마가 <얘 밥먹어라>하는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 가 없어. 그 짜증 섞인 엄마
의 목소리.
김철진 난 아마 데리러 오지 않을 거야. 나가서 없어졌으면 하겠지.
밖에서 차 소리, 타이프 소리등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수형 우린 작별할 시간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최영태 여기서?
윤수지 내가 연락할께. 우리 미팅에서 만나. 보호실 동기생들 미팅 주선 할수 있어. 비용
은 좀 드니까 돈 준비해둬.
유인희 나도 낄 수 있니?
윤수지 그럼! 우리 미팅은 학력제한 같은거 없어. 미남미녀에다 건강한 육체만 소유하면
돼. (둘러보며) 오----- 그러구 보니 우린 참 어울리게 모였구나. 미남미녀들만
순경 들어온다.
순경 장택수
장택수 네.
순경 어머니 오셨다.
어머니 들어온다.
어머니 도대체 넌 뭐가 부족해서 집을 나가 사니? 테레비 너무 보니까 그만 보구 공부하
란 엄마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어! 그러구 집 나가서 또 테레비 보다가 이런데 집
혀와! 너 장래에 뭐가 될 거야? 공부 안하고 맨날 테레비 앞에만 죽치고 앉았으니
장택수 차라리 여기서 경찰관 아저씨 잔소리 듣는 게 더 교육적이야.
어머니 얘, 택수야.
장택수 가세요! 나 집에 안갈래. 여기도 테레비, 비디오 다 있어!
순경 너 테레비 보여주려고 잡아온 줄 알아? 어서 어머니 따라 나가!
장택수 싫어요. 여기 있겠어요
어머니 그래, 알았다. 내가 잔소리 안할께. 엄만 어젯밤 너 때문에 한숨도 못잤어. 그래
서 널 보니까 속상해서 그러는 거야. 앞으론 일체 말 안할께.
장택수 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구요. 제가 잘못하면 차근차근 타일러 주세요. 그럼 나
도 듣겠어요. 난 내가 잘못한 거 다 알아요. 이렇게 엄마가 또 습관적으로 짜증내
면서 잔소리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반발하게 돼요. 그래서 일부러 더 집을 나오게
되는 거예요.
어머니 내가 약속할께. 절대로 짜증내면서 잔소리하지 않을께. 조용히 말해서 널 설득시
키도록 하면 되겠지?
장택수 네, 엄마. (엄마품에 가서 안긴다.) 형, 누나, 나 먼저 갈께.
일동 잘가, 꼬마야!
장택수, 어머니를 따라 나간다.
순경 우리 경찰서 보호실에 오면 일단 뭐가 깨우치고 나간단 말이야. (재면서 퇴장한
다.)
이수형 우리 어머니들이 저렇게 빨리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최영태 방법은 있어! 미성년자가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되면 그 부모도 같이 가둬두는 거
야. 그래서 이 안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거야. 자식들을 윽박지르지만 말고
자식의 얘기를 들어주게 해야 해. .....여기 우리 중에 아버지와 잘 되는 사람
누구 있니?
윤수지 나! (손든다) 술 취하시면 대화 잘돼. (수지야 소주 한명 더 사와라. 딸년은 시집
가면 그만인데 공부 더해서 뭐하냐? 애비 호강좀 시켜다오!> 등등....
밖에서부터 오정미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정미 질린표정이다.
오정미 아버지 목소리야!
아버지 (경관과 함께 들어오며) 백번 얘기해도 소용없어요. 지 에미는 얘 때문에 병이 다
들었습니다. (정미를 본다.) 너, 이년아. 애비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아
예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없어지든지 할 것이지. 집 전화번호는 왜 가르쳐
줘?
경사 선생님 고정하십시오.
아버지 너 도대체 사람이 되려고 이러니? 학교 퇴학 당했으면 집에서하도 죽치고 있어야
지. 뭐? 여인숙?
오정미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잘못했어요, 아버지.
아버지 잘못했어요? 그 소리 한두 번 들었어?
오정미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뺨을 친다) 나가 죽어!
김철진 (욱하며) 때리지 마세요!
아버지 넌 뭐야? 응, 그러니까 이녀석하고 한 여관에 있었단 말이구나! 나쁜 자식.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김철진 (악쓰듯 소리친다) 어른이라고 말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말란 말이야!
이수형, 철진을 끌고 뒤로 물러선다.
아버지 아니, 저자식이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꾸야? 생긴것 보니까 꼭 소도둑같이 생겨가
지고, 이놈!
경사 선생님, 저 좀 봅시다. (무대 앞으로 아버지를 데리고 온다) 제가 보기에 따님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크게 뉘우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개버릇 남 주겠습니까? 어쩌더 우리 집안에 저런 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망신스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닛 수가 없어요.
경사 그렇다고 야단만 친다고 애가 좋아질 수다 있습니까?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학교도
다시 보내고더 타락하지 않도록 부모가 보호해야 합니다.
아버지 나더러 어떡하란 얘기요?
경사 따님은 이제 겨우 열 일곱 살입니다. 저 애가 부모한테조차 외면 당하면 어떤 사
람이 그 앨 따뜻하게 대해 주겠습니까?
아버지 나도 생각 안해본 게 아닙니다. 그러나 저앤 천성적으로 나쁜 속성이 있는 것 같
습니다. 저 나이에 남녀 관계라니? 그것도 여관에서....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닙니
다.
경사 따님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화를 내시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부녀의 정을 끊
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최선의 방법은 따님은 용서하시고 전처럼 착한 사람으
로 만드는 길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버지의 애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버지 저 앤 천성적으로 의지가 빈약하고 옳고 그른걸 판별하는 능력이 없어요. 난 절대
용서할수 없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그런 피를 가진 사람이라곤 없습니다.
경사 (화가 난다) 그 피가 누구한테 물려받은 건데요? 선생님 피 아닙니까? 그럼 책임
을 져야지! 따님은 어른이 아니예요. 완벽할 수 없어요. 저 애들한텐 실수할 권리
도 있는 겁니다! 선생님은 저 나이에 실수 한번 안했습니까? 아이들이 돌아갈 곳
이 가정이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곳이 가정인데 그 가정이 냉대하면 저 애들은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시오! 내 딸은 아니니까요. (퇴장해 버린
다)
아버지 한대 맞은 듯 돌아본다.
오정미 가늘게 울고 있다. 아이들,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 천천히 딸에게 다가간다.
오정미 다가오는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 (부드럽게) 정미야, 집에 가자!
오정미 아빠!
아버지 (딸을 와락 안으며) 그래, 용서하마. 열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용서하지. (딸을 안
고 퇴장한다)
이수형 혼자서 가볍게 박수친다.
윤수지 신파영화 보는 것 같구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이수형 경찰 아저씨 통하는데가 있는데.
최영태 옳은 얘기다. 우린 어른이 아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그러나 실수한다는 게 자랑
될 건 없어. 가장 귀중한 시간 속에서 실수하지 않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애들로
있어. 그런 애들이 더 많지. 우린 왜 그럴 수 없지?
김철진 나도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야. 부모들리 이해 못한다고 불쑥 반항하고 집을 뛰쳐
나온 건 내가 경솔했던 탓이야. 내가 좀더 참고 설득을 했어야 해.
윤수지 요새 어른들이 어디 설득을 당하니? 저만 옳다구 하지! 부모들이 무식해서 그런다
면 얘긴 또 달라. 이건 도리어 공부한 부모들이 더 하다구. 자기만 옳다구 생각하
는 걸 뭐.
최영태 어떻든 우리도 곧 어른이 된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우린 최소한도 우리 다음에
오는 세대를 더 잘 이해하는 부모가 될 건 틀림없어. 그렇게 생각지 않니?
모두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윤수지 난 엄마가 되어봐야 알 것 같아. 우리 딸애가 미팅이나 한다구 허구헌날 싸돌아
다니면 그걸 어떻게 해? 내쫓을 수도 없구.
최영태 제 할 일 안하고 미팅이나 하고 다니는 건 잘못이지. 타일러야 해!
윤수지 나한테 하는 소리 같다.
순경 들어온다.
순경 김철진, 윤수지, 이수형 나와.
서로 본다.
이수형 (최영태에게) 먼저 나간다. 우리 좋은 데서 만나자.
윤수지 만나는 문제에 대해선 신경쓰지 마. 내가 연락해 줄 테니.
최영태 (친절하게)잘해내길 바래. 참고 견디는 힘을 기르자.
김철진 고맙다. 해봐야지.
윤수지 (인희에게) 언니, 힘내요!
유인희 잘가!
순경 언제들 만났다고 저렇게 인사가 길어? 어서 나가!
서로 손 흔들며 나가는 세 사람.
순경 (나가다 객석에다 대고) 우리 보호실에 들어왔다 나가는 불량천소년들은 이 정도
로 교화됩니다.
최영태와 유인희만이 남는다.
유인희 학생은 왜 아무도 데리러 안 오지?
최영태 주소, 이름, 전화번호, 다 엉터리로 가르쳐 줬어.
유인희 왜?
최영태 집에 알리고 싶지 않아서.....
유인희 그럼 여기 있을 거야?
최영태 누나는 어떡할 거예요?
유인희 갈 데가 없어. 아마 구류 처분 시키든지 갱생원에 넣든지 하겠지.
최영태 안돼요,그럼. 공장에 도로 가세요. 힘이 들더라도 견디고 이겨내야 해요. 공장에
서 일하고 학교도 가는 여공들 있잖아요?
유인희 쉬운일이 아니야. 나는 이미...
최영태 자포자기하지 마세요. 스스로 포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 없어요. 현실과 싸워
요. 견뎌요. 인생을 사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구요. 어른들이 일부러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이런 어려운 일들을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인생이란 현실이 어려운 만
큼 여기서 살아 견디는 힘을 키워주려고 공부시키고 어려운 입시 제도도 만들고
규율과 틀 속에 집어 넣는 거예요.
유인희 학생은 어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지?
최영태 별을 보면.... 늘 하늘을 보고 있으면 별이 내게 인생을 말해 줘요. 질서와 혼돈
과 암흑이 함께 있는게 별들의 세계예요. 별중에는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꾸준
히 달리는 별도 있어요. 또 갑자기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별도 있구요.
블랙 홀이라는 암흑 속으로 영원히 빠져 소멸해 버리는 별도 있어요. 우리 인생이
나 다름없어요.
유인희 늘 규칙적으로 일정한 길을 달리던 별이 어쩌다 길을 잘못 잡아 방황하는 별이 되
어버린 것이 바로 너로구나.
최영태 그래요, 그런가 봐요.
두 사람 노래 부른다.
[별의 노래]
밤하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
꿈과 사랑 안고 기도드리네
달빛 속에 흩어진 별 하나한
쓸쓸한 추억 안고 하염없이 우네
아 ----- 먼 곳의 별님이여
그리워 그이름 불러보네
아 ----- 떠도는 별님이여
보이다가 풀밭에 지네
유인희 집에 가! 너는 방황하는 별이 되지 마.
최영태 누나는? 누나는 어떡할 거예요?
유인희 나? (암담하다)
최영태 누나, 나하고 약속해요. 바른길로 걷겠다고. 그럼 여기서 나갈 수 있어요.
유인희 어떻게?
최영태 약속해요! (진지하다) 네? 누나! (손가락을 건다)
유인희 (끄덕이며) 약속해! 공장에 가겠어. 날 환영할꺼야. 어렵더라도 견디겠어! (손가
락을 건다.)
최영태 (소리 지른다) 경찰관 아저씨!
순경 들어온다.
순경 왜 그래? 너희들은 보호자가 없어서 그냥 내보낼 수 없다.
최영태 서장님 좀 불러주세요.
순경 뭐 서장님? 야, 서장님이 할 일 없이 너희를 면회하고 있겠니? 우리 서정님은 바
쁘신 분이야.
최영태 그럼 저를 서장님한테 데려다 주세요.
순경 작작 웃겨. 서장님 지금 수사과 형사들 집합시켜 놓고 기합중이야. 할 얘기 있음
나한테 해. 나도 너희들한테 사식 넣어줄 권한 있어. 배고프냐?
최영태 최영태가 여기 있다고 전해주세요.
순경 최영태가 누군데?
최영태 저요
순경 네 이르이 무슨 장관 이름쯤 되니?
최영태 최한용 서장님이 제 아버지예요.
순경 뭐? 최... 서장님이? (무의식중에 최영테에게 경례 붙인다) 어서 나오십시오.서장
님 아들을 우리가 잡아 넣은걸 알면!
최영태 어서 가서 말씀 드리세요
순경 뛰어나간다.
유인희 정말이야?
최영태 네, 그러니까 염려 마세요.
경사, 순경과 황급히 들어온다.
경사 자네가 최영탠가?
최영태 네
경사 왜 아버지가 서장님이라고 진작 얘길 하지 않았나?
최영태 전 특별 취급 받는 건 싫어요
경사 알았다. 서장님한테 확인하고 내보낼 테니 기다려라.
최영태 부탁이 있어요.
경사 뭐지?
최영태 이 누나 내보내 주세요. 저하고 약속했어요. 공장에 돌아가서 일하겠다고.
경사 (유인희를 본다) 정말인가?
유인희 네.
경사 나와.
유인희 (나가며) 고마워. 영태 말 잊지 않을게.
최영태 취직하면 편지하세요. 서장님 앞으로 하면 제게 전달될 거예요. 안녕!
유인희 안녕!
경사 유인희 데리고 나간다.
순경 네가 밤새 보호실에 있었다는 걸 서장님이 아시면 노발대발하실거야. 워낙 성질이
개떡같아서.(자신의 입을 가리며) 내 말은 대쪽 같은 성미시라는 뜻이다.
최영태 상관없어요. 나도 이젠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얘길 하겠어요. 정정당당히!
경찰서장 들어온다.
서장 뭐가 어쩌고 어째? 내 아들이 보호실에 잡혀 있다구?(그러다 최영태와 마주친다.)
최영태 아버지.
서장 (기가 막힌 듯)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최영태 어젯밤 거리를 방황하다가 잡혀 왔어요.
서장 거리를 방황해? 네가 뭣 때문에 방황해? 뭐가 부족한 게 있어? 집에서 너한테 안
해준 게 뭐 있어? 부모가 야단이라도 친 적이 있냐?
최영태 아버지. 그런건 아니에요. 전 아버지 어머니한테 감사드려요. 제게 과분하게 해주
셨어요.
서장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최영태 꼭 불만이 있어서 방황하는 건 아니예요. 전 제 인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서장 인생? 네가 인생에 대해서 뭘 알아? 넌 지금 고등학생이야. 다른 생각 말고 오직
공부할 때야. 내일 모레면 대학입시야. 넌 우리집의 장남이고 최씨 가문의 장손
이야! 넌 아버지를 이어야 돼! 그런데 뭐 방황해! 인생이 뭐가 어떻다구?
최영태 (소리지른다) 아버지! 전 아버지의 장남이고 최씨 가문의 장손이기 전에 저 자신
이예요. 전 아버지가 훌륭하신 분인 건 알아요. 그렇지만 제가 진정 무얼 원하는
지 제 꿈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보신적 있으세요?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저하고 대
화해 보신 적 있으세요?
서장 그 황당무계한 별 얘기를 하는 거냐? 그건 이미 끝난 얘기야! 넌 아버지가 시키
는 대로 해야해! 넌 법관이 돼야 해! 인생에서 성공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최영태 권력과 돈인가요?
서장 남에게 존경을 받는 입장이 되는 거다.
최영태 아버진 지금 존경 받고 계십니까?
서장 뭐가 어째?
최영태 (폭발하듯) 권력과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예요. 그건 이 나라에선 부정과 부패
와 같은 의미예요.
서장 느닷없이 아들의 뺨을 때린다. 최영태 놀란다. 경관들 놀란채 보고 있다.
서장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너희 눈으로 보는 어른의 세계가 다 그럴지는 모르지만 아
버진 부정하게 권력을 휘두른 적 없다. 세강을 오직 한 가지 색깔로 보아선 안돼.
너도 어른이 돼면 곧 알게 될 거야. 이 세상은 선과 악이 공준해 있다. 제각기 다
른 꿈을 갖고 야심을 갖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 속에서 어
떻게 살아 남는가는 꿈만으로 성취되는 일이 아니다.
최영태 그렇지만 아버지, 전 아직 꿈많은 청소년이예요. (울먹인다) 전 어른이 아니예요!
서장 (수그러진다) 그래 알고 있다. 내게도 너 같은 때가 있었지. 나도 너희 때는 꿈
을 갖고 있었다. 멋진 영화배우가 되는 꿈을. 헛! 허....
최영태 아버지!
서장 ......널 때린 걸 용서해 다오. 널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우리 한번 진지하게 대
화해 보자. 내가 너무 내 욕심만 부린 모양이다. 정말 널 여기서 이렇게 만나고
보니 우리가 너무 오래 대화를 못했다는 걸 알겠구나.
최영태 아버지! (아버지에게 안긴다)
서장 (부하 경관에게) 내가 최영태의 보호자니 나가도 되겠지?
경사 네! (경례한다)
서장 (아들에게) 우리 어디 가서 아침 먹으면서 얘기해 보자. (나가며) 배고프지?
최영태 아버지, 제가 어젯밤에 단속에 걸려 잡혀오길 잘했어요.
서장 그렇다구 나하구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잡혀와선 안돼!
최영태 네.
웃으며 두 사람 나간다.
경사 우리 서장님 목석 같은 사낸 줄 알았더니 인간적인 데도 있구나!
순경 서장이기 전에 자식의 아버진데 별수 있어요? 아버진 자식에게 다 약하게 돼 있
어요.
경사 장가도 안 간 사람이 뭘 알아?
경사, 서장 뒤를 따라 나간다. 부하 으쓱하며 철장 안을 본다.
순경 경찰서 보호실이 텅 비면 쓸쓸하단 말이야. 눠가 꽉차 있어야 내가 경관 하는 맛
이 나는데... (객석을 보며) 오늘 몇 명쯤 잡혀오겠지. (퇴장한다)
할아버지 (나오며) 순철아, (객석에다) 야, 순철아 거기 있음 그만 나와, 할애비 왔다.
무대감독 뛰어나온다.
무대감독 아저씨, 또 이러면 어떡하세요? 남의 연극 방해하시면 경찰 부르겠어요.
할아버지 연극 끝났잖아?
무대감독 막이 내려야 끝나죠.
할아버지 그럼 빨리 막 내리고 객석 불 좀 켜.
무대감독 무대인사를 해야 막을 내리죠.
할아버지 그럼 해! 어서.
무대감독 저기 나가 계세요. (할아버지를 밀어 객석으로 내보낸다. 관객에게)소란부려 죄
송합니다.(무대 뒤에 대고) 어이, 무대인사 해!
[청소년의 노래]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부모님의 답변은 안돼 안돼
자세히 듣지도 보지도 않고
늘 안된다고 했지요
시간이 흘러 어른되면
우리의 아이에겐
사랑과 자유에 대해서
열심히 가르칠 거예요
우리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책에도 없고요.
오직 부모님의 두 마음 속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