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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25년 근속 포상 휴가로
중국 북경관광을 4박5일 다녀 왔습니다.
북경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7월25일 06시 롯데관광 여행사 직원과 미팅 관계로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여 간식을 먹고 있습니다.
8시 40분발 북경행 아시아나 항공을 기다리면서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북경 수도공항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미팅을 하고
바로 자금성 관광에 나섰습니다.
천안문 광장앞에 있는 전문 거리입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때문에 급조된 거리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빈집도 있고 이거리 뒷골목으로 가면
전형적인 중국 거리가 나옵니다.
북경오리 요리로 유명한 집이라고 합니다
전취덕 이라고 써 있는것 같습니다.
건물들 앞에 가보면 이렇게 그 건물의 유래를 보여주는 뭔가도 있는데
중국글씨에 약하다 보니 잘 모르겠네요.
전문거리를 나와서 천안문 광장으로 이동 했습니다.
전문거리에서 천안문광장 자금성 모두 도보로 이동합니다.
관광포함하여 약 2시간정도 소요 되는듯 합니다.
천안문(톈안먼) 사건으로 유명한 천안문 광장입니다
등소평이 후원한 차기 서기 휴야오방이 민주화 개혁을 하려고 하자
공산당 보수파의 반발로 당총서기직에서 물러나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톈안먼 광장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으로 유명한 바로그 광장입니다.
기념탑 뒤로 보이는 건물이 중국 인민대회의가 열리는
대 회의장이라고 합니다.
중국 공산당 마크도 놓여져 있습니다.
현재의 문은 청나라 순치 8년에 재건된 것으로, 이 때에 현재의
〈천안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고 합니다
이 천안문이라고 하는 명칭은 ‘천상의 평화로운 문’이라는 의미보다
만주어 명칭인 ‘천명을 받아서 안정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명나라, 청나라 두 왕조 시대에 큰 법률이나 명령을 공표할 때 최초로
이 문에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또 출전하거나 개선하는 군대를 황제가 알현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1949년10월1일에 시행된 중화 인민공화국의 건국식에서
모택동은 이 문 위에서 〈건국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1952년과 1970년에는 대규모 개수를 하였답니다.
천안문을 지나 자금성으로 들어 갑니다.
자금성 매표소 앞입니다.
자금성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중국관광객도 엄척나게 많아서
가는곳 마다 정체가 일어 납니다.
중국의 10억 인구중에 이곳 북경을 관광하고
죽는 사람이 전인구에 1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관광하기 편하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1시간이면 북경을 오는데 중국 사람들은
열차를 12시간씩 타고 북경으로 여행을 온다고 하네요.
자금성의 규모에 역시 중국은 대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금성을 구경하고 나서 우리나라 경복궁을 되새겨 보니
경복궁은 미니워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인해 전술만이 이러한 큰궁전을 건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에 비례를 해보면 우리나라 경복궁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판단이 됩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이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랍니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입니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고 하네요
자금성 관광을 마치고 왕부정 거리 관광을 나섰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 처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거리입니다.
큰 백화점도 많이 들어와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중국에서도 부유층들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여기 골목으로 들어가면 살아있는 벌레를 꼬치에 끼워 튀겨파는 골목이
있는데 거기가 인기가 가장많다고 하여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결사반대로 인하여
입구만 조금보고 그냥 돌아선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첫날 여행을 마치고 쉔브라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2일차 아침 호텔로비에서 가이드를 기다리면서
둘쨋날 관광첫 목적지인 용경협에 도착을 했습니다.
용경협은 베이징 시내에서 약 85km떨어져 있는 계곡입니다.
'베이징 속의 작은 계림桂林'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베이징 근처에서 산수가 수려하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근처 댐에서 가둔 물이 만들어낸 호수에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길이는 21km정도 된다는데
유람선이 다니는 코스는 7km정도 된다고 하네요.
배를 타기 위하여 용모양의 구조물 안에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합니다.
이용경협은 장쩌민(江澤民)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난하던 이고장 사람들에게 관광산업의 부와 귀한물의 자원을
만들어준 장쩌민은 이곳 사람들한테는 우상이라고 합니다.
배를 타기 위하여 용모양의 구조물 안의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터널을 빠져 나가야 유람선 타는곳이 나옵니다.
댐위에 이곳이 유람선 타는 곳입니다.
댐위의 산으로 연결된 케이블카도 설치 되어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유람선 관광만 한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안내원이 메가폰을 들고 구석구석 설명을 하는데
당연히 알아 들을 수 가 없었습니다 ㅋㅋ
과연 또하나의 계림이라는 소리가 나올정도로
멋진 관경에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곳에 내려서 보트놀이를 하고 번지점프도 하고 다른배를 이용하여
처음 출발한 곳으로 와도 됩니다.
가운데 바위에 써있는 용겹협의 글씨도
장쩌민이 썻다고 하네요
절벽에서는 번지점프가 한창입니다.
양쪽산을 가로지른 외줄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줄타기 묘기를 펼칩니다.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나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는곳이 있습니다.
나오는길도 들어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터널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장소를 이동하여 만리정성 케이블카를 타는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만리장성부터 관광하려고 왔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는 문에서 통제를 하여 용경협을 먼저 관광하고
다시 돌아 왔습니다. 만리장성 올라가는 길은 여러길이 있는데
다른길은 첨부터 걸어서 올라가느라 힘들어서 케이블카 있는곳으로 많이
몰리는가 봅니다. 오는길에 보니까 걸어올라가는 코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케이블타에서 내렸습니다
동굴을 빠져 나오니 장엄한 만리장성이 눈앞에
나타 났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여기도 내국 관광객이 인산인해 입니다
그저 앞에 사람만 보고 올라 가야 합니다.
정상에 올라서자 펼쳐지는 광경
역시 대국에서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기 중국사람들은 만리장성 축성할때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하네요
북쪽의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진나라 시황제(진시황)가 증축하면서 쌓은 산성
이라고 합니다. 이산성을 쌓으면 나라가 천년만년 영원할줄 알았는데
너무많은 국력을 소모하고 많은 백성들을 여러가지 토목공사에 동원하여
나중에는 반란으로 인하여 진나라가 멸망하였다고 하네요.
산성의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산성에 가득찬 사람들이 멀리 떨어질 수록 적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답니다.
만리장성을 내려와서 다시 북경시내로 들어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내부는 출입통제라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양과 사진촬영을 하였는데
사진을 찍고나서 돈을 달라고 요구하네요
우리돈 1000원을 주었더니 3장을 달라고 합니다
화가 나서 사진을 삭제하겠다고 표시를 했더니
그냥 돌아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쁜양이라고 하네요 ㅋㅋㅋ
뒤에 보이는 건물이 워터큐브로 박태환 선수가
400m 자유형 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 경기장입니다.
2일째 관광을 마지막 하는 시간에 발맛사지 샆을 찾았습니다.
3일째 아침 관광을 출발하기전 호텔에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육교위에 올라가서 호텔 전경을 담아 보았습니다.
미천궁 반점으로 영어로는 쉔브라 호텔이라고 읽습니다.
중국에는 호텔을 주점,반점으로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하늘에 제를 지내던
천단 공원을 찾았습니다. 여기서도 대국의 웅장함에
감탄을 했습니다.
원구단 입니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곳으로 하늘을 형상화한 거대한 원과
황제만의 공간이라는 뜻의 3층 기단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원구단에서 우리가 걸어 들어온 문쪽을 돌아 보았습니다.
앞으로 걸어서 갈 곳입니다.
어마어마한 대규모 의 천단에 감탄을 합니다.
황우궁입니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천단내부에는 300~500년 된 측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시 한참을 걸어가면 황우궁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나오는데
규모는 황우궁보다 훨씬더 크답니다.
드디어 나타 났습니다
기년전입니다.
천단공원의 상징이면서 황제가 매년 곡식을 받치며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제단인 기곡대위에 사당인
기년전이 올라와 있는 형태 입니다.
천단 공원을 나오면서
천단공원을 나와서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첫날,둘째날은 중국식당에서도 밥을 잘 먹었는데
2틀을 먹고나니 속이 느끼해서 더이상 먹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고량주 작은것 1병이 우리나라돈 천원을 받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량주와 같이 먹으니까 그래도 넘어 갑니다.
처음에는 맛나게 먹던것들이 이제는 중국 고유의 향만 맡아도
머리가 아파 지려고 합니다
중국 여행 갈때는 짱아치 몇종류는 가지고 가야 할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국사람 왔다고 김치도 나왔는데
맛은 먹을만 합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는 중국 사람들은 항상 식사때는
쟈스민차를 같이하여 먹는답니다. 쟈스민차가 느끼함을 없애준다고 하네요.
나중에 이계란탕에 밥을 말아서 먹었습니다.
중식을 마치고 중국식당앞에서
점심후 시간여유가 있어서
가이드가 골동품 시장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여기에도 가짜가 많으니까 그냥 아이쇼핑만 하라고 당부를 다더군요
엄척난 규모의 골동품 시장입니다.
인사동과 비교를 할 수가 없겠네요
우리의 5일여행을 안내한 롯데관광 북경 가이드
김강군 가이드 입니다.아직 총각으로 연대출신이라고 하여
놀랬더니 서울의 연대가 아니고 연변대라 하더군요 ㅋㅋ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나중에 헤저질때 너무너무 서운했어요.
중국 짝퉁시장을 찾았습니다
세계명품의 짝퉁을 버젖이 팔고 있었습니다
명품 몇개하고 기념을 여러가지를 샀습니다.
여기서 부르는 가격을 반이상 깍아야 성공하는 겁니다
금면왕조쇼를 보기 위하여 이동을 했습니다.
극장입구에 놀이공원 입구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극장보다는 놀이공원을 가고 싶어 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금면왕조쇼를 관람을 했습니다.
대규모 무대의 스케일에 또한번 대국을 느꼈습니다.
금면왕조쇼는 한 소녀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꾸는데 이 꿈이 "금면왕조" 이야기입니다.
전쟁-상전-단조-축제-월하-홍수-제천-몽환 스토리로 8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군대를 이끌고 온 남면왕(남자부족) 과 금면여왕(여자부족)은 전쟁을 치르게 되고 금면여왕은
남면왕을 이기게 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전쟁 후 금면여왕은 포로가 된 남면왕과 그 부하를
위해 축제를 열어주고 결국 두 왕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하늘이 홍수를 내려 금면왕조는 멸망의 위기를 맞게되고 금면여왕은 스스로
거대한 돌이 되어 홍수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죽는데.
금면여왕을 그리워하는 남면왕과 백성들앞에 금빛태양새로 변하여 금면여왕이 나타나고
금면왕조의 번영을 영원히 지켜준다는 내용입니다
금면왕조쇼 관람후 저녁은 처음으로 한식당에 들렸습니다 불고기정식으로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우리 입맛에 너무 좋았습니다. 소주한병에 9천원 주고 사먹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더플 레이스"라는 쇼핑몰로 왔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급조하여 만든것 같습니다. 천장에 있는 대형 스크린은 무려 2천5억 위안 한화로 400억 가량을 쏱아부은 것입니다 역시 중국의 통큰 저력이 느껴 졌습니다 모든돈이 정부인 공산당에서 나오니까 가능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스크린을 LG에서 만들었다고 하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족관에서 드라마도 나오고 끝날때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면 그문자내용을 천장 스크린에 그대로 쏘아 준다고 하네요 연인들의 고백 장소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더플레이스를 마지막으로 3일째 관광을 마무리 했습니다. 4일째 아침 북경 수도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워낙큰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경에서 3번째 큰 박물관이라는데 우리나라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 박물관은 여기에 비하면 너무 조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경수도 박물관 내부에 촬영금지 구간이 많아서 눈으로 관람만 하고 나왔습니다. 인력거 투어를 하기 위하여 북경의 옛 거리를 찾았습니다. 이곳이 경성운하 인데 사람이 직접 물길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길이가 우리나서 서울 부산을 왕복할 거리라고 하니까 중국의 스케일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라텍스 매장에 쇼핑을 하러 왔습니다. 이번에 찾아 간곳은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입니다. 금나라 초에 처음 조성되어, 1750년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대폭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칭이위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1860년 서구 열강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답니다. 이후 서태후(西太后)가 실권을 쥐고 있던 1886년 재건되면서 이허위안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주로 이곳에서 수렴청정을 했던 서태후는 일시적인 피서와 요양 목적으로 건설되었던 이허위안에 각종 전각과 사원을 추가해 본격적인 국사를 볼 수 있는 궁전 형태로 변모시켰답니다. 이허위안 재건비용 때문에 청나라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 이화원의 이자는 우리나라 옥편엔 안나오는 글짜라고 합니다. 이화원안에 드넓은 호수 곤명호 입니다. 이 곤명호는 인공호수라고 하여 대국의 스케일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호수의 흙을 파서 산을 쌓았다는데 그산이 뒤로 보이는 만수산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중국인들이 정말 힘들었을거라 생각이 됩니다. 건륭제가 모후를 위하여 지었다는 긴 복도입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배인 청안방(淸晏舫) 서태후는 이 곳 여름 별궁에 기거하면서 군함의 건조비를 유용하여 움직이지 않는 돌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말기 잇따른 외우내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전 양식의 대리석 석방에서 파티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합니다. 용모양의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줄을 섰습니다. 중국의 명차를 파는 차 가게 쇼핑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이차,쟈스민차 등 여러가지 차을 샀습니다. 이화원 관광을 마치고 찾은 두번째 한식당 메뉴는 대패 삼겹살인데 오랫만에 먹어서 그런지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4일째 중국에서 마지막 밤을 묶을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호텔에서 짐을 풀어 놓고 길거리 음식을 시식하기 위하여 육교를 건너 왔습니다 먹는 장소가 열악하여 양꼬치 한개2위안 우리돈으로 330원정도 주고 사서 호텔로 돌아와 호텔 정원에서 같이 여행한 가족들과 마지막밤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저 양꼬치는 먹을만 했습니다. 양꼬치를 사서 오면서 찍은 쉔브라 호텔 전경 5일차 마지막날의 밝았습니다 에제 양꼬치를 먹던 호텔 내부 정원입니다. 모든짐을 쌓놓고 체크아웃을 기다리면서 정원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호텔 방에서 본 전경 육교 건너 버스세워진곳이 어제 양꼬치를 샀던 곳입니다. 마지막날 아침에 비가 내려서 걱정을 했지만 금방 그쳐 버렸습니다. 이번에 찾은곳은 솔라노 거리입니다. Solana에는 없는 브랜드가없을정도로 쇼핑하기에 좋은 곳이지요 요즘 한국에도 대부분의 브랜드가 입점해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 없는 브랜드들이 여기엔 있다고 하네요 여기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중국에서도 돈있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찾았을때는 비오는 아침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고 하네요. 이번에 중국에서 마지막 찾은곳은 798예술 거리 입니다 옛날에는 중국 군수품 공장들이 밀집했던 곳인데 공장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예술가들한테 공장을 빌려줘서 예술과 까페 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발을 이유로 예술가 한테 나가라고 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떠나서 조금은 썰렁한 거리가 된것 같았습니다. 예술거리를 마지막으로 관광하고 북경 수도 공항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17:10분 비행기였는데 기상악화로 인하여 아시아나 항공이 두시간 넘게 연착을 하여 기다리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첫댓글 사진으로 북경 여행 덕분에 관광 잘 했습니다.
자금성이 쌍용아파트 옆에도 있는데,
걍~ 배달 시켜 드시지 멀리까지 찾아 갔디야..??
ㅎㅎ 감상 잘 혔습니다
중국관광 아주 잘 하고 갑니다. 잘다녀오셨군요~~~~~~
관광휴유증인가? 손가락이 피곤하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