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몬드 포드 문제와 신신학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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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데스몬드 포드박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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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문제로 깊히 논하려는 것은 별로 좋은 일 아니라 생각하고 저도
그의 모든 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으며 그러나
김돌배님이 요청하시어 아는 데로 저가 대충 적어서
님이 한몸 클럽에 올렸던@hosanna.net 메일주소로 보냈으니
참조바랍니다
(v로 나가는 님의 메일 주소로 보내려니 님이 삭제했으니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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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데스몬드 포드박사등 신신학 자들이 히브리서를, 뜰의 사건인
십자가 중심으로만 가르치려는 것은 공통적 사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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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속죄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 졌다는 생각은 잘못된 복음주의자들의
공통적 사고입니다
또 AD31년 예수님 승천시 바로 지성소에 들어갔다는 주장입니다
오늘날 성소기별을 모르는 순진한 개신교 계의 복음 사상이기도 합니다
개신교 인들이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으나
현대진리 즉 지성소의 진리를 아는 SDA목회자나 신학자들이 그렇게 가르친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구속사업에서 요구되는 전진적 경험과 복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칭의가 정말 중요하나,경험과 관련하여 칭의적 복음만을 주장한다면
이것은 현대진리가 아닌 것이지요
(율법으로 형식화 되어간, 1888년 당시의 SDA에게는 특히 필요 되었지만)
데스몬드포드는 성소진리 등, 외에 다른 진리는 인정하고 잘 가르치는듯,,,
즉 90%는 바르게 가르치고 10%는 불신을 넣거나 오류를 섞어
가르치는 식이니 바른 90%를 들은 자들은 그를 옹호하거나 이해하려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시대에 대한 사단의 전략은 이런식일 것입니다
오늘날 사단은 우리의 어떤 형제들중에서 오류로 물들게하여 다시 자기 교회와
형제들끼리 싸우게하고 믿음의 길을 비뚤게하고 관념의 오류를 섞어 넘어지게하려는
것이 최고로, 즐거운 일이요 전략일것으로 봅니다
그런 오류를 가진 자들을 대개보면 외적 겸손이 더 있는 것같이 보이고
극단적 원칙적이고 생활은 검소한 것같아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을수밖에
없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안에서 기생하여 수명을 오래 유지하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자의 특징은 양보가 없고 주로 자기가 세운 논리에 대한
주장과 고집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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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데스몬드 포드박사도 지성소에 믿음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SDA)들을
성소개념으로 되돌아가게 하던지, 아니면 그 표준(뜰)에서 머물도록 하려는
,,,,,,보이지 않은 사단의 계략에 협력하는 일환일 것입니다
문제는 SDA가 믿음에 허술하고 분별력이 흐리지니 때를 타고 그런 논리가 활개를
칠수가 있는 것이지요
성소 뜰에서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희생으로서 죄에서 승리하시고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일은 완수하셨겠지만
, 우리가 알다싶이 그렇다고 구속사업이 모두 완결된 것이 아니지요
승천하시어 예수께서 행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봉사를 제외해 버리려는 상태에서
속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결국 부인하려는 것이거나
구속의 심오한 과정 즉 온전한 복음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알다싶이 성소의 기별은 십자가에 맞추어진 촛점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십자가를 성소기별의 가장 중심으로 부상하게 하는 것임을
어떤 분들은 이해를 못하는 것이겠지요(특히 개신교인들은)
지성소 안에는- 뜰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피를, 역시, 가지고 들어와
법궤앞에 뿌려진다는 것은 이것은 십자가의 사건의 피의 사업 연속임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1844년이후 진리를 받은 SDA가
십자가의 중심의 기별과 성소 진리를 혼합하여 꾸준히 조화있게 올바르게
이해되고 가르쳐왔다면,,,,,,,,,
오늘날까지 SDA교단의 교인 평균적 믿음이 더욱 향상했을 것이고
또 1888년에 하늘에서 기별이 올 때도 능히 분별하였을 것이며
그런 가운데 오늘날같이 기성SDA가 세속화의 물결이 넘치지 않을
것이 당연하며,, 또한 1914년의 사단이 일으키는 전쟁에의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당연히 높이고 온 세상에 빛의 교회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절대로 재림이 늦어지지 않을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또한 당연히 저희 SDA개혁운동 세계선교회 교단도
그 뒤 탄생되어야할 아무 이유나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결국 미지근하고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타락해가는 기성SDA 의
모습이 결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 의 시초는, SDA가 1888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거절하니
당연히 성결의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의 교회가 되고 , 많은 성도가
결국 첫째천사의 기별의 경험이 부족한 결과로 ,,,
그러다보니 이제 SDA교회 내에서 이상하게도 역순하여
포드박사의 사상에 동의하려는 듯 , 오히려 이론적 성소 진리들을 배척하려하고
십자가와 칭의적 복음만을 높이고 돌아가려하며
도리어 사모하려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판단해 봅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던지 남은 교회 안에 또는 성도들에게 대쟁투적
개념을 흐리게 하고 지성소에서 요구되는 개인적 사명과 책임성도 말소하게
하려고 하고있습니다
성소의 문을열고 되돌아 가도록 하려는 셈입니다
이미 밝혀진 중요한 기초복음의 진리만 붙잡고 기뻐하며 살게 하려는 것이지요
즉
144,000명을 상징수로 가르치는 것은 , 또한 그 계략의 쐐기적 논리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지성소 대제사장의 12지파의 이름이 적혀있는 흉패와 관련된 사업을 경시하는 것이지요
"조건적 투쟁의 숫자"로 보지 않고, "믿은 자의 통칭 숫자"로 점점 보이게하는 것은
지성소 의 요구와 목표를 없애고 개신교적 믿음으로 전략시키려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뜰의 "십자가 복음의 본질"(요3;16절)에서 나온 숫자로 연결하여
전략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은 자연히 승리에 대한 인내와 용기와 필요성 조차 없어지고
목표도 상실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단은, 지성소 진리의 말뚝하나 옮길때 언젠가 이렇게 되는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 뜰의 사건인, 우리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해 놓은
십자가 중심만으로 살게 하고 마냥 구원받았으니 ,,,
아니면, 교회(SDA)안에 이제 입교되었으니....이제 기쁘게 지내면된다는
식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십시요
부드러운 사랑이야기가 인기있지 않습니까
목회 강단에서 가르침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른 지식과 생애로 깨어있는 초기 SDA신앙이 점점 상실되어 온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교회 안에 거듭남의 경험들이 없는 신앙이 넘치기
때문에 그런 성소 뜰의 이론이 맞물려 오늘날 요구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가운데서 율법을 높이고 전진하는 것이 어쩜
메마르게 보이기 때문에 칭의적 복음이 급하게 요구되고 인기가
있어 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지성소 진리가 빈번해 지지않게 되고
개인적 전진의 경험도 없어지고 해서 결국
교회의 표준이 낮추어지고 뒤로 물러가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그동안 오늘날 SDA안에 팽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성SDA는 이제는 그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왔다고
저는 진단해 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국 더 때가 차면 개신교 안에서도 신실한 자들이 탄식하고 나오듯이,,
SDA에도 그 안에서 깨어있어 탄식하는 무리들은 나오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지요
왜냐하면 그 안의 소수무리들이 아무리 신실하게 외치고 발부둥쳐도
자기 교회를 변화시키거나 리드할 수가 없을뿐더러 주축무리가 절대로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축무리가 될수없으면 결국 교회가 정결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늦은비 받는
교회의 조건에 미흡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개혁할 수는 없으며 시대마다 개혁은 안에서 그렇게 완성
결론되지 않았다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보존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늦은비를 받는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받는다면 교회가 타락해도
그안에서 자기만 잘하면 되겠지만,,) 교회적으로 우선조건되고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성SDA성도님들은 이것을 잘 아셔야 합니다
아래에서 그 결과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초기문집 261)
나는 하나님께서 명목상의 재림 신도들과 타락한 교회들 가운데 당신의 성실한
자녀들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보았다. 재앙이 내리기 전에 교역자들과 백성들이
이러한 교회들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나와>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 크게 전파되기 전에
그는 이러한 종교 단체들 중에 능력을 베풀어 진리를 거절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는 신실한 자들을 속여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 교회들을 위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믿도록 유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빛이 비추일 때 모든 신실한 자들은 타락한 교회를 <떠나> 남은 무리와
함께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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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십시요
모든 신실한 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명목상의 재림교회에서나, 이미 타락한 개신교에서 둘다 그안에서 탄식하거나
울지만 말고 나와서 이미 모은 백성의 무리에게 함께하라!는 권면과 호소라는것을
빨리 감지 하시길 바랍니다
기성SDA 가 이안에서 나가면 오류로 떨어져 가는것 ! 으로 단단히 가르쳐놓았으니
노이로제 성 개념이 박혀있다는것이 문제입니다
분리와 재조직에 대한 이해의 융통성이 상실 된것입니다
"데스몬드포드" 문제로 분리되어 떨어져 간 것은 -"오류에로의 흔들림"이라면
"개혁운동"으로의 합류문제는- "진리에로의 흔들림"이란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흔들려 분리된다고 다 "오류로의 분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