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이다. 아니 별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2023년 겨울방학 강독 특강 도서로 <코스모스>를 선정하고 안내했을 때, ‘좋은 책’을 골라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청소년에게 권하는 과학도서 1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교양서!”라는 타이틀이 있는 책입니다. 책을 좀 읽는다는 가정에는 대부분 두 권의 책이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하나는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이고, 또 다른 하나가 <코스모스>(칼 세이건)입니다. 읽으면 참 좋은 책들인데도, 많은 아이들이 읽지를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선 많이 두껍지요. 7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에 글자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그 양에 압도되어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앞부분의 내용이 그다지 흥미롭지 못합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두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강독 철학특강의 첫째는 “도전”입니다. 강독! 그 첫째 의미는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야, 즉 전체를 보아야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월수금 격일로 진행되는 특강이기에, 특강 안 하는 요일에 책을 읽고 준비하기에 용이했습니다. 전체 분량을 다섯 번으로 나누어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단, 각각의 장chapter에 소단원이 없어서 끊어 읽기에 좋지는 않아요.) 같은 책을 다른 친구들도 읽고 있다는 사실에서 의지도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철학수업하는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연필과 형광펜(또는 색연필)을 꼭! 준비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중요한 ‘단어’에는 동그라미도 합니다. 책을 읽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책의 여백에 적습니다. (포스트잇에 적어도 좋아요.) 이렇게 읽은 책은 그 누구의 책도 아닌, 바로 ‘나의 책’이 됩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 때는 애써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읽고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이해되는 내용이 나오면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한 내용은 <워크북>의 “내가 읽은 <코스모스>” 란에 정리합니다. 아이들마다 적어오는 내용이 천차만별이에요. 해당 란이 부족한 아이도 있고, 몇 줄만 적은 아이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한 내용이 있기만 하면 됩니다. 함께 모여서 얘기할 때 각자 자신이 이해한 것을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께 이해한 바를 나누다보면 혼자 읽을 때 넘겼던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독 철학특강의 둘째 의미는 “이해”입니다. 이해하는 내용이 늘어감에 따라 특강수업을 마치고 책을 다시 읽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읽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해당 책의 가치를 알아내기도 해요.(한지훈이 <사피엔스> 전도사가 된 사연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각자 책 내용과 생각을 말할 때, 철학교사는 그 생각 속에 담겨 있는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 내용에는 분명 엄청난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날은 1학년 차이교민과 박승유의 생각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2학년 강윤동, 최준혁, 한지훈은 철학교사인 저와 함께 정규수업을 하고 있기에 다른 두 친구들에게 기회를 먼저 주었습니다.) 승유가 찾아온 “하이케게”에서 자연선택으로, 다시 특정한 조건이나 환경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외계 생명체를 찾아야 할까?”라는 탐구문제로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교민이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우주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이에 “우주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할까?”라는 탐구문제를 가지고 토론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찾아온 한 대목이 해당 장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합니다. 의미를 찾은 아이는 “그래서 그런 거네요?”라고 말하지요.
저자인 칼 세이건은 목성의 타이탄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더라도 개입하지 말고 그냥 냅두고 지나가라고 말합니다. 지훈이는 이 대목에서 “인간이 외계 생명체를 이용해도 될까?”라는 탐구문제를 찾아왔습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외계 생명체를 이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3차원에 살고 있는 인간(납작이 주민)은 세상을 2차원, 즉 ‘면’으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4차원으로 끌어올려져 3차원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가 이것입니다. 동굴 밖을 경험한 사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진짜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죠. 윤동이는 이에 대해 “2차원을 인식하는 납작이가 3차원을 인식하면 행복할까?”라고 묻습니다. 별빛은 관찰자에게 다가올 때 파란색으로 보이고, 멀어질 때 빨간색으로 보입니다. 도플러 효과입니다. 준혁이는 별빛의 색깔을 인간이 알 수 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 인식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고 싶어합니다. “별빛의 진짜 색깔을 알아야 할까?” “우리에게 관측되는 별빛의 색깔이 우리에게 의미 있을까?”
칼 세이건은 천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회의”와 “상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창의적인 상상으로 우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다섯 번의 <코스모스> 강독특강을 하면서, 그의 조언대로 회의하고 상상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생각을 나누고 고민하고, 따져보았지요. 그리고 각자의 정리된 생각들을 글쓰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정해진 특강시간을 훌쩍 넘겨서 글을 쓰기도 했고, 집에서 마무리하여 파일로 철학교사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1500자 원고지에 1300자 이상을 쓰고도 자신의 생각에 빠진 내용들이 있는지를 살펴서 수정하여 제출했습니다. 철학교사는 과제 내용과 글쓴 내용을 꼼꼼히 읽고, 최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첨삭하여 피드백해 주었습니다.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은 아이들에게 먼저 축하를 보냅니다. 그리고 강독 철학특강을 기다려주시고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과학자가 밝혀낸 과학 지식”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코스모스>라는 책을 이 세상에 남겨준 칼 세이건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코스모스> 강독 특강은 마무리했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야 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처럼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작은 지구인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교실 창밖으로 휘날리던 함박눈이 좋았고
초롱초롱 빛나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좋았고
사각사각 생각들이 종이 위에 새겨지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2024년 여름방학 강독 철학특강 도서는 <총,균,쇠>(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문학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