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양이
권 혁 찬
언제부턴가, 밤이면
내 지난날들의 무용담은 쉽게 무너졌고
내가 집착해야 할 몇개의 암컷도 길을 잃고 서성였지요
다만, 몇 근 졸음의 중량으로 저울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쫓던 내 날렵한 수염들이 느려졌고
늘 그렇듯 밤 골목엔
식물성으로 둔갑한 어둠 몇 마리 어슬렁 거릴 뿐입니다
화살처럼 쫓던 시절과 어느 늦은 야생의 표정들,
이젠 성급히 체념해야 할 목록들일 뿐입니다
혈통이란 이젠 거추장스러운 내 발톱처럼 묘연합니다
단지 도시의 청결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귀결될
어느 삼류 정치가의 말버릇 같습니다
오늘 밤,
도시의 후미진 골목 그 끝을 따라가 보면
누군가, 잠적이란 가죽 하나 벗어 놓고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예감이 우글거립니다
그리고
오후 저쪽의 담장 밑엔, 그 잠적으로부터 몸을 말리고 있는
수고양이 몇,
중성의 눈빛으로 졸음만 핥아대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 골목에서 살다보면 문득,
경계를 잘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몸집은 크고 윤기가 흐르며 털은 빛나지만
절기에 따라 갸르릉거릴 울음을 얼마 전 거세당했습니다
![](https://t1.daumcdn.net/cafefile/pds84/1_cafe_2008_07_19_18_31_4881b47f74caf)
첫댓글 당장 체념해야 할 목록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면...집착해야 할 암컷도 숫컷도 조금은 흔들리겠지요...ㅎ
갸녀린 비명이라도 뱉을 수 있다면...잠적이라는 가죽 하나 벗어 놓고 그 잠적으로 몸을 말릴 수 있다면.....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 그것은 거세당한 현대인의 울음....
잃어버린 고양이의 꿈...발톱 빠진 고양이의 밤.....
참으로 슬픈...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