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린이들의 글 올립니다.
타성이 붙었는지 시가 좋아지지 않아 한 동안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끈기있게 달라붙어 글 지도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기도 했고요.
희아를 주인공으로 한 시는 지난 5월 가정의 달 특집으로 보여 준 MBC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모습을 보여 주고 쓰게 한 것입니다.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고 정신 지체아인데도 피아노를 열심히 쳐서 세계 무대에까지 서게 된 인간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아 보여 주고 시를 써 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상투적인 말 몇 마디만으로 감동을 절실하게 표현 못 한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슴 아픕니다.
엄마
배 유 진
엄마가 특이해졌다
다른 날 보다 무섭다
떨린다
게다가 오늘은 나를 데리러 학교까지 왔다는 거다
난 엄마한테 좀 겁먹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혼나 가면서
자라는 거 아닐까
전등불
최 재 희
전등에서
불이 반짝반짝
언뜻 보면 태양같이
눈부시네
전등불이여
우리 미소도 환하게
비춰 주세요
오늘 나는 아름다웠다
최 승 훈
나는 아름다웠다
동생에게 양보했던 나의 마음이
오늘 나는 아름다웠다
스스로 공부하고 숙제하는 모습이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모든 것이
모습은 이래도 마음만은 아름답다
최 재 희
모습은 어리둥절해도
마음만은 아름답지
마음이 아름다우면
모습도 언제나 아름답지
마음이 나쁘면
모습은 당연히 나쁘지
이렇게 마음이 변하는 대로
모습도 변하지
오늘 나는 아름다웠다
송 이 령
오늘은 마음이
아름다웠다
친구들에게 잘 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공으로 놀아주며
여령이를 즐겁게 해 주었다
오늘 나는 아름다웠다
고 현 영
우리 집 열대어 가족
새끼와 어미가 있어요
새끼는 열 마리
학교 갔다 돌아오니
두 마리가 물밑에
가라앉아 있었네
살펴보니 죽은 거였네
하늘 나라 가서 잘 살아라
땅에 묻어 주었네
그런 내가 아름다웠네
내 글씨
최 승 훈
내 글씨는 춤을 춘다
삐틀삐틀 춤을 춘다
내 글씨는 말을 한다
내 마음을 말한다
내 글씨
박 정 우
내 글씨는 대벌레
막대기 같다
내 글씨는 귀신
내 마음 속을
읽고서 쓴다
내 글씨
최 수 민
내 글씨는 엉망진창
그걸 그림으로 내면
1등으로 뽑힐 거야
내 글씨는 예쁜 그림
내가 보기에도
내 글씨는 그림
마음이 간지러워
박 정 우
마음이 간지러워
친구들을 기다리는
내 마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얘야, 안 춥니?”
강아지는
“집에서 쫓겨났구나, 컹컹.”
친구들을 기다리는
간지러운
내 마음
마음이 간지러워
김 기 준
마음이 간지러워
심장이 두근두근
어떻게 할지 몰라
사랑의 화살이 꽂히니까
마음이 간지러워
최 수 민
마음이 간지러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나는 남자 애들이 싫은데
매일 여자 애들을 놀려서 싫어
근데
마음이 왜 이렇게
간지럽지?
내 마음도
한 지 호
하하 호호
우리 동생이 간지럽힐 때
내 마음도 꾸물꾸물
한다네
휘이잉 바람 불 때
나뭇잎 사르르 떨 때
내 마음도 덜덜
떤다네
마음이 간지러워
고 현 영
놀이동산
무서운 놀이기구 타면서
악 악 악
내 마음은 간지러워
높은 곳 올라갔다
낮은 곳 떨어질 때
내 마음은 간질간질
마음이 간지러워
송 이 령
아빠 몰래
카트라이더
볼 때
마음이
간질간질
마음이 간지러워
최 승 훈
마음이 간지러워
내 마음 속에 개미라도 있나?
마음이 또 간지러워
그럼 이번엔 생쥐?
내 마음은
장난꾸러기인가?
오뚝이
최 승 훈
오뚝아 오뚝아
넌 이름이 특이하구나
넌 몸은 뚱뚱하고
얼굴은 작구나
너는 기우뚱기우뚱 살고
우리는 바른 자세로 살지
오뚝이
박 정 우
한 대 맞으면
일어서고
두 대 맞아도
또 일어선다
세 대 맞아도
다시 일어선다
“오뚝이야, 안 아프니?”
물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불사신 같다
오뚝이
최 수 민
우리도 오뚝이가 됩시다
갸우뚱갸우뚱
이리저리
우리도 함께 오뚝이가 되어
흔들흔들
온몸을 흔듭시다
오뚝이
송 이 령
오뚝이는 용감하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일어선다
오뚝이는 참을성이 많다
계속 건드려도
화내지 않는다
웃는 내 얼굴
김 현 진
방긋방긋 내가 웃어요
입이 웃으니 코도 웃어요
내 얼굴이 웃으니
손이 룰루랄라 춤춰요
손이 춤추니
발도 짝지어 춤춰요
모두 웃으니
내 얼굴이 예뻐져요
나뭇가지
백 지 연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다
떨어지면
주워서 붙여 주고 싶어
아기는 울었다네
아기가 우니
나뭇잎이 떨어진다네
감나무
고 현 영
길거리에 주렁주렁 열린
감
거기에 나무가 없으면
감도 없다
감하고 나무는 짝
감이 없으면 나무가 썰렁하고
나무가 없으면 감이 없다
둘이 같이 있으니까
짝꿍 같다
수요 특기 녹화
배 유 진
수요 특기 녹화 전
웃을까봐
걱정
하고 나니
잘못 찍혔을까봐
걱정 걱정
난 난
꿈틀꿈틀 할까봐
또 걱정
수요 특기 녹화
고 현 영
나비 넥타이
멋진 옷
수요 특기 녹화 날
가슴은 설레고
무용과 노래는 재미있네
내 얼굴은 싱글벙글
수요 특기 찍을 때
백 종 현
내 친구는 노래를 작게 부르고
또 다른 친구는 크게 부르네
나는 틀릴까 봐
다리를 흔들었네
춤출 때는 친구 뒤에
숨어서 췄네
수요 특기 발표
박 정 우
우리는 따라쟁이
똑같이 춤추네
우리는 실룩이
엉덩이를 흔들흔들
우리는 26 남매
모두 다 똑같이 움직이지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 누나
김 동 건
희아 누나는 네 손가락인데
피아노 소리는 예술이다
우리는 열 손가락인데
희아 누나처럼
피아노를 잘 치지도 못 하고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을
고마워하지도 못 한다
손가락이 네 개인 희아 누나
고 현 영
네 손가락 희아 누나
건반 위에 손가락 네 개
오른 손에 두 개, 왼 손에 두 개
손가락 지나간 자리엔
아름다운 음악 소리
얼마나 연습했을까?
손가락 네 개인
희아 누나
마술사 같아요
첫댓글 오랜만에 올려 주셨다구요 아이들도 조금씩 세상에 물들어 가나보네요! 꽃님선생님 아자 아자!
꽃님 언제 그 아이들하고 미팅을 한번 할까요. 꼬마 시인님들하고... 참 귀엽네요.
좋은 방법이네요. 꽃님 다운 발상법, 리듬을 깨트리지 않고 꾸준히 쓰게 하세요. 이 어린이들이 자라면 꽃님선생을 닮겠지요. 참 보기가 좋아요
감사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05학년도인지만, '어린 것들'(김현승 님 시 제목?)을 더욱 잘 가르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